신앙은 교회생활이 아니라 예수님과의 동행이다. 교회에서 설교를 듣고 예수님을 메시아(구원주)로 발견 했다면 축하할 일이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가 왜 십자가에 피 흘리셨는지를 근본으로 하지 않는 것은 신앙과 아무런 관계가 없다.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이 무엇을 의도 하는지를 모른다면 그는 교회생활을 하고 있을 뿐 천국 복음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그저 목사님이 시키는 대로만 잘 하면 신앙생활에 성공 하는 줄 알고 있다면 커다란 착각에 빠져 있는 것이다.
훌륭한 목사나 신부나 교황마저도 죄인이라서 자기의 욕심에 눈이 어두워지면 자기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사는 것으로 뒤바꿀 수 있다. 그들은 자신이 스스로 속고 있는 줄 모르고 자기가 하는 일에 장애물이 나타나면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는 것으로 여기고 마귀로 공격하는 일이 벌어진다. 이런 사례들은 교회사 속에서 얼마든지 있어왔다. 천주교가 그리스도의 제자들을 얼마나 많이 죽였는가?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누가 죽였는가? 하나님께 열심이라고 하는 자들이 죽였다. 이들이 바로 바리새인이요 서기관들이었다. 그들은 기도와 금식과 구제에 철저한 자들이었다.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다고 하는 자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
그러므로 사도행전 2장에서는 너희가 죽인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다고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는 것은 나의 죄를 발견하는 것이 우선이다. 따라서 나의 공로는 없는 것이다. 예수님을 위하여 일하면 예수님도 보답을 해주어야 한다는 생각은 일종의 거래이다. 주님을 섬기는 것은 거래가 아니라 순종이며 종의 자세이다. 성경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 하는 것이다.(요5:39), 천지만물도 인간을 위하여 창조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위하여 창조되었다(골1:16) 이러한 성경의 말씀을 가지고 인간의 욕심을 채우기 위하여 사용하면 그것이 곧 우상숭배이다.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은 그 속성이 자신의 유익이라는 것에 유감없이 발휘되고 있다. 목회자의 애로사항은 교인들의 의견을 물리치고 주님의 의견에만 따라가야 하는데 있다. “교회 유지”를 포기하고 “복음 유지”이다. 사람들은 교회가 인간의 가치를 무시한다면 그 교회를 잘못된 교회로 정죄한다. 거기에 최종 판단자는 ‘나’라는 존재이다. 대세, 다수, 투표, 여론, 인간들의 모임을 유지하는 방법은 이런류이다. 그러나 교회가 그렇게 경영되고 유지된다면 그것이 바로 그리스도가 왕이 아니라 인간이 왕이 된 것이다. 지옥에 가든 천국에 가든 교회만 유지되면 그만이 아니다. 오직 변질 없는 복음이 중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