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는 택하심을 입은 부녀와 그의 자녀에게 편지하노니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요 나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모든 자도
그리하는 것은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진리를
임함이로다 은혜와 긍휼과 평강이 하나님 아버지와 아버지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로부터 진리와 사랑 가운데서 우리와 함께 있으리라“
(요이1장1-3절)
택하심을 입은 부녀라는 말은 선택받은 교회의 다른 이름입니다.
교회의 별명 같은 말입니다. 여성명사인 교회의 별칭이죠.
그래서 사도요한은 부녀와 그의 자녀라고 표현합니다.
내가 참으로 사랑하는 자,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사랑하는 마음입니다.
그리고 요한 자신 뿐 아니라 진리를 아는 자들은
반드시 다 몸 된 교회를 뜨겁게 사랑하게 됩니다.
건물이나 조직과 제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몸이 된 교회입니다.
에베소서와 같은 주의 몸 된 교회는 성도에게 알파와 오메가입니다.
교회를 사랑할 수 있는 조건은 우리 안에 있는 진리로 인함입니다(현재)
우리와 영원히 함께 할(미래) 진리를 사랑하는 것이 바로 교회 사랑입니다.
교회에 은혜를 받으러 간다고 말을 하는데 참 안타까운 말이죠.
교회는 진리의 터 위에 세워진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진리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하나가 될까요?
은혜와 긍휼 그리고 평강은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진리와 사랑으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복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임하실 때는 진리로 오십니다.
성령도 진리이십니다(요일5:7) 그 외엔 천하에 진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과 진리로 참 예배를 드린다고 말씀하는 겁니다(요4:24)
약1:18절에는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를 낳으셨다’고 하십니다.
그 진리의 말씀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형상을 이루어 가십니다.
곧 창1장의 실현입니다(생육 번성 충만 정복 다스림 창1:28)
예수 그리스도를 닮고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을 닮아 가는 거죠.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속성은 은혜이며 긍휼이며 평강입니다.
은혜는 주신 것이며 그리고 긍휼은 베푸심 그 나타나심은 평강입니다.
진리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이 스며들면 평강이 됩니다.
근데 예수의 십자가의 은혜만 주장하고 진리를 모르면
긍휼과 평강이 결여 되어 있기 때문에 변화 없이 평생 아장거립니다.
예를 들면 만약 태양빛과 같은 은혜만 있고
긍휼의 비가 내리지 않으면 온 땅이 다 사막이 되고 말 것입니다.
사하라 사막을 종일 걸어가도 장미 꽃 한 송이 발견할 수 없습니다.
어쩜 지금의 기독교가 천박한 자본주의에 물들어 교회들이
축복이라고 여기는 것들을 보면 은혜로 인한 긍휼과 평강과는 멉니다.
현재적으로 우리 안에 거하여 영원히 함께 하신 그리스도를
밖에 세워둔 라오디게아 교회와 같은 현실이 때론 무섭기도 합니다.
그리스도를 밖에 세워두고 그의 십자가의 피 흘리심의
은혜도 받고 세상과 세상의 것들을 잔뜩 쌓은 복도 받았겠지요.
그러나 긍휼이 없으니 남을 긍휼히 여기지 못하여 그만 환난과
곤고가 그 안에 가득한 표면적인 그리스도인으로 전락하고 맙니다.
하나님의 긍휼 안에 거하지 않으니 마음의 청결함이 없어
하나님을 뵐 수 없어 마음의 평강이 없습니다. 파리한 얼굴들입니다.
중요한 핵심 포인트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거하시므로
진리가 되어 그의 생명을 얻어 평강에 이르러 하나님을 찬양하는 겁니다.
이런 상태에서는 Bless the Lord O my soul, O my soul.
Worship His holy name. Sing like never before O my soul,
I’ll worship Your holy name. 진리 안에서는 이런 찬송을
부르지 않고는 베길 수 없을 정도로 복이 심령에 항상 머뭅니다.
첫댓글 좋은 신앙 글 감사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주께 영광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