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충 나무와 신발
- 두충대장 한종철
누군가 옆에 있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자벌레 한 마리가 무어 그리 바쁜지
부지런히 알뜰한 허리를 굽혔다 폈다 하면서
갈 길 재촉합니다.
두충밭의 제왕이라 자칭하는 까치가 즈덜 나름
바쁘게 하늘 뻗은 나뭇 가지 사이로 분주합니다.
똑 같은 얼굴은 아닙니다.
저마다 분칠을 달리하고 몸매가 다릅니다.
또,
딛고 일어선 땅에 나 있는 잡초가 다릅니다.
같지만 다른 존재.
내 새끼들은 두충 나무입니다.
날씬한 청년처럼 보여도 벌써 스물하고 여덟살이나 더 먹었습니다.
언제 이렇게 세월이 갔는지 참 빠르기만 합니다.
눈 보라 치는 겨울을 지나
새싹 파릇한 봄에 새소리 들리더니
비 오는 여름이 지나고
낙엽 곱게 나부끼는 가을이 오고.
이것이 세월인가봅니다.
십 수 년 전,
폭풍이 심하게 불던 날 밤
우지끈 하고 가지가 떨어져
곤두박질 친 흔적이 내 새끼들의
몸에 깊숙한 자상을 남겼습니다.
사람들은 배꼽 닮았다고 하지만
이것은 잊을 수 없는 그녀와의 밤도 아니고
밤새워 술 잔 기울이던 추억은 더더군다나 아닌
그것은 세월의 흔적이라고 칭하고 싶습니다.
무상한 세월이 지나도 봄이 되어 찾아와 주는 이 푸른 빛이
참 고맙습니다.
까탈스럽게 변덕 부리지도 않고
변함없이 같은 모습을 하고 찾아오는 푸른 빛.
크레용으로 나뭇잎을 제법 그럴 듯하게 힘주어 그렸던 어린 시절.
보이는 것만 보였던 그 시절과 달리
지금은 보이지 않는 것도 보입니다.
수 없이 달린 이 아이들이 무언가를 만들어 줄기를 타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서
뿌리에 다다르면
뿌리에서는 공생을 즐기는 조그만 녀석들이
그것을 먹고 산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우리 함께 살아요.
우리 함께 웃으면서 살아요.
우리 함께 웃으면서 정답게 살아요.
살아 있어야 이렇게 살 수 있어요.
우린 서로 닮았지만 한 녀석도 똑 같지 않답니다.
수 만 명이 살고 있지만 모두 다른 얼굴입니다.
누굴 탓하겠어요?
우리 조상님들도 다 이렇게 살았어요.
날씬한 놈
뚱뚱한 놈
곰보
째보도 있어요.
장군과 같이 호령하는 자세인 놈도 있고
조잘재잘 말하고파 하는 놈도 있지요.
사람과 똑 같아요.
묵묵히 서 있지만
가만히 보고 있으면
작년 삼월 삼진 날에 제비가 나아와서
박씨 이야기를 하고 간 이야기.
동네 강아지들이 얼러리 꼴러리 한 이야기.
지렁이들이 발 밑에서 시끄럽게 회의를 하다 대판 싸운 이야기.
이런 저런 이야기를 쏟아 낸답니다.
나무가 하는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난 나무의 아빠가 됩니다.
그래, 이쁘다. 그래 잘 했다.
토닥여 주면 그걸로 족합니다.
나무에 더불어 있다
땅으로 내려와서 숙성 되고 있는 얘들의
속을 들여다 보면
조잘재잘 시끄럽습니다.
조그만 녀석들이 나무를 분해하면서
수 많은 사연을 들려줍니다.
한 수저의 흙에 2억 마리의 조그만 꼬마 아이들이
들려 주는 이야기는 한 달 낮 밤을 이야기해도 다 못할 것입니다.
광합성 미생물이 선충과 싸운 이야기,
어느 박테리아가 다른 박테리아와 전투하다
휴전하게 된 사연.
냄새나는 박테리아가 여자 친구에게 절교를 당해서
냄새를 버린 이야기.
흙에 떨어진 익어가는 나무 가지를 보는 것도 즐겁습니다.
저 푸른 녹음에 평상을 내어 펼치고
맑은 청주 한 잔 거나하게 걸치고 난 후
늘어지게 자고 싶습니다.
그러면 푸른 아가씨 살포시 찾아와
달콤한 속삭임을 하는 꿈을 꿀 수도 있겠지요.
나에게로 와서
자연과 벗하기를 3년.
내 신발은 아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신발일 것입니다.
어느 때는 송화 가루 가득 내려 앉고,
어느 때는 아카시아 향이 펑펑 스치우고,
어느 때는 개미 왕국 앞에 다다르니
이보다 더 행복한 신발은 없을 것입니다.
주인 닮아서 투박한 신발이
주인을 살린 나무와 함께 있으니
내 신발아 ~~ 너 참 행복하지?
날 더워서 굵은 땀 툭툭 떨어지면
그제서야 내 신발은 목을 축이라고 재촉합니다.
그래 이제 일 다 했으니
시멘트 구조물로 들어가야겠구나.
소리 한 마디 하면서 가보자.
이 산 저 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어 왔건 마는
세상사 쓸쓸허더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날 백발 한심 하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
왔다 갈 줄 아는 봄을 반겨~ 헌들 쓸데 있나~.
어느 4차선 길 옆에 자리 하고 있던
식당에서 먹었던 메밀 막국수가 참으로 일품이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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