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겨울 12월 초순경, 밀양농장에 아담한 집을 짓기 시작하였다. 이미 20년 전에 집을 지어본 경험이 있었던 관계로 그 어려움을 어느 정도 알고 있기에 함부로 건축일을 벌일 수 없었다. 그러나 언재까지나 버틸 수 없으므로 큰마음 먹고 목조전원주택을 전문으로 하는 건축업자를 선정하여 공사에 착수하였다. 그로부터 5개월여가 지난 봄날, 그런대로 아담한 집이 완성되었고 마당에는 잔디를 심고 통로에는 자갈을 깔아 생활하는데 불편 없게 만들었다.
집 뒤 산에는 소나무가 울창하고 집 앞에는 200년이 넘은 회화나무가 너그럽게 寓居(우거)를 감싸고 있다. 농장에는 매실나무와 감나무가 줄지어 서 있고 앞마당에는 집을 정리하던 중 나온 돌로 운치 있는 작은 정원을 만들고 목련, 매화나무, 모과나무, 라일락, 기타 등등의 과일나무들과 정원수들을 심으니 그런대로 운치가 있어 보인다. 땅파기에서 나온 큰 바윗돌을 현관과 회화나무 중간에 옮겨두니 꼭 거북이가 우리 집을 방문하는 사람들을 환영하는 형상으로 서 있다. 또 긴 바윗돌을 정원 모서리에 세워두니 부처님이 서서 중생들을 굽어보는 듯하다.
며칠 전에는 농장 옆 도랑에서 야생미나리를 캐서 집 뒤에 작은 미나리 밭을 만들었다. 아마도 금년 8월경이면 여기서 키운 미나리를 아침반찬으로 먹을 수 있기를 기대한다. 집 앞 마당 가장자리에 작은 채소밭을 만들고 오이, 양배추, 방울도마도, 일반도마도, 가지, 고추 등을 심었다. 이렇게 분주하게 마무리를 하고 있지만 아직은 미흡한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다.
요즘은 일주일의 반은 밀양전원주택에서, 나머지 반은 부산에서 생활하고 있다. 9월 개학을 하면 토요일~화요일 까지는 밀양에서 생활하고 수요일 아침에는 부산으로 나와 3일간을 강의와 저술활동을 하면서 보낼 작정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먼저 기수련을 통한 명상을 한 시간 가량 한 후, 개 3 마리를 데리고 500쯤 떨어진 고개 너머로 산보를 간다. 그곳에서 개를 풀어놓으니 풀쩍 풀쩍 뛰면서 온 산을 뛰어다닌다. 나는 이들이 만끽하는 자유를 음미하면서 야생 복분자를 채취한다. 10여분 따니 밥그릇에 하나 가득 찬다. 휘파람을 불어 개들을 불러 모은 후 호주머니에서 건빵을 꺼내 하나씩 주면서 오늘의 산보를 마무리 한다.
집 주변에 지천으로 솟아오르는 죽순으로 만든 죽순밥통 아침을 먹고 테라스에 앉아 차를 달여 마시며 회화나무의 너그러운 운치를 감상하며 세상사를 잊는다. 오늘이 며칠인지 잊 지 오래이고 부산이 여기서 얼마나 되는지도 기억에서 까마득하다.
육조단경과 논어를 번갈아 펴 들고 대 성현들이 하신 말씀의 깊은 뜻을 헤아려 본다. 밀양에서는 왠지 전공분야인 管理會計(관리회계) 보다는 명상서적과 聖典(성전)들이 자주 손에 집힌다. 오전에는 1~2시간가량 풀을 베거나 발의 잡초를 제거하는 일을 한 후 1시경이며 농장 일을 마감한다. 오후에는 회화 나무 밑에서 앉거나 누워서 오전에 읽던 책을 읽고, 해질 무렵이면 앞집 土也(토야) 도예원에 들러서 토야(도예가)와 담소하거나 차를 마신다.
이렇게 하루가 다하니 화화나무 너머로 석양이 지고 뒷산에는 소쩍새와 휘파람새가 번갈아 운다. 여름이 짙어지니 휘파람새보다는 뻐꾹새 소리가 많이 들린다. 뒷산 골짜기에서 멧돼지들이 다투는 소리, 발정 난 암 고라니를 차지하려는 수놈들의 투쟁소리가 가까이 들리니 우리 집 개들이 산을 향해 난리를 친다. 이렇게 밀양의 여름밤은 깊어만 가는데 맑은 과일주를 마시면서 깜깜한 하늘 가운데 빛나는 별들을 쳐다보며 하루를 마무리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