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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창 유성준 선생의 묘소 |
경남 하동군 악양면 출신으로 근대 판소리 5대 명창중의 한 사람인 유성준(1873~1949) 명창의 추모비 제막 기념행사가 하동 야생차문화축제 기간인 내달 3일 거행된다.
이번 행사를 주관하고 있는 대한민국 판소리 동편제 명창 기념 사업회(회장 유한호)는 선생이 잠들어 있는 악양면 중대리 905-1번지 현지에서 유족과 전국 국악인 및 지역주민이 참석한 가운데 기념행사를 갖는다고 밝혔다.
이번행사와 관련해 기념 사업회 정재상 사무국장(향토사학자)은 “국창 유성준 선생 추모비 제막 기념행사에는 선생에 대한 헌화와 업적 소개, 정연가 하동문화원장이 직접 지은 비문낭송 그리고 1934년 제작된 유성준 명창의 판소리 중 <수궁가> 와 <적벽가>공개와 더불어 선생의 제자 임방울과 김정문 명창의 소리도 함께 공개한다.”고 밝혔다.
정국장은 이어 “한국전쟁 당시 월북한 서편제의 거장 박동실 선생의 초한가(楚漢歌)등 17곡을 담아 동편제와 서편제 판소리를 비교 감상하는 자리도 마련 할 것이다.”라고 덧 붙였다.
이에 앞서 기념 사업회는 지난 4월 5일 유성준 명창 묘소 단장을 위해 묘소 주위 부지를 매입하고 국악인 및 지역주민이 참석한 가운데 사토제를 지내고 묘소 단장을 마친 상태다.
또한 기념 사업회는 하동군 악양면 출신으로 일제 때 한국 최초의 판소리 다섯마당 창본집 인 오가전집(춘향가, 심청가, 화용도, 수궁가, 박타령)을 발행하고 동편제 명창 가운데 송만갑 다음으로 많은 음반을 남긴 이선유(1873~1949)선생 기념사업도 함께 추진하고 있다.
한편 유성준 선생은 근대 판소리 5대 명창중의 한 사람으로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동편제의 거장이라 일컬어지고 있다. 선생은 하동군 악양면에서 태어나 13세 때 부친을 따라 구례로 이주해 명창 송우룡 선생 등으로부터 소리를 배워 명성을 얻자 서울로 진출하여 장안을 누비며 소리가락으로 이름을 날렸다.
1902년 선생의 나이 29세 때 참봉벼슬을 받아 국창에 올라 궁중협률사(왕실극장)와 김창환(1854~1927·전남 나주, 서편제의 거장 5대 명창중의 한사람) 민간협률사의 대표적 인물로 활동했다.
선생은 그의 특기인 <수궁가> 와 <적벽가>를 부를 때면 관객들은 열광의 도가니에 빠져 들었고, 이후 판소리를 민중 예술의 장르로 승화시킨 선생의 소리에 고종황제와 대원군도 크게 감동했다고 당시 기록은 전한다.
선생은 나라가 일제 지배를 받자 잠시 활동을 접고 후진 양성에 정열을 쏟았다. 그리고 1929년 하동으로 가족과 함께 돌아 왔다. 선생은 1928년과 1934년 오케에서 발매한 3종의 유성기 음반 녹음에 참여해 귀명창(판소리 애호가)로부터 열광적인 호응을 얻었다.
선생은 악양, 진주, 경주, 순천 등지에서 활약 김정문, 김연수, 정광수, 박동진, 강도근, 임방울, 박귀희 등 수 많은 국가 중요무형문화재 예능 보유자를 길러냈다.
그러다 1949년 하동군 악양면 신대리 277번지 자택에서 76세의 일기로 생을 마쳤다. 선생의 묘는 악양면 중대리 905-1번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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