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들 아빠는 기술고시를 패스하여 공무원이 되었으나, 결혼 당시 학력은 한양대 2년의 중퇴였다. 결혼한후 안정 되자 남편이 다시 공부를 시작하길 원했고 아무래도 남편을 세워야겠다는 생각에 성균관대2년 재학중인 나는 휴학을 마음 먹었다.
게다가 난 26세에 결혼하면서도 성에 대한 지식이 전무한 상태라 신혼여행 가서 아이를 갖게 되었는데도 처음에 왜 이렇게 몸이 천근만근 쳐지고 방속으로 기어들어가는 것처럼 힘든데도 원인을 모르고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임신임을 알게 되었고, 남편이 학업을 다시 시작하길 원하여서 내가 학업을 중단하기로 결정하였다.
남편은 산업대에 편입하여 졸업하게 되었고, 또 서울대 환경대학원에서 도시계획 석사 과정을 이수하여 졸업하게 되었다. 그후 유학을 준비를 하던중 국가에서 공무원에게 장학특혜를 주어 외국에서 유학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데 그 영광을 주님께서 우리가정에 선물로 주셨다. 그래서 1994년 여름 온가족이 미국 콜럼버스에 있는 오하이오 주립대 도시계획석사과정 공부를 위해 떠나게 된다. 물론 미국생활에 대한 호기심과 자녀교육에 대한 관심도 있었으나 이때는 아직 교회가 성전건축하기전이고 성도가 70-80 명 수준으로 몇년간 정체된 상황이라서 도저히 교회를 떠나기가 어려운 처지였다. 그래서 "왜 주님께서 나를 미국으로 보내시는 지? 굳이 안가도 되는 경우라면 주님의 뜻대로 인도하시길 기도하였는데 오빠 목사님의 섭섭해 하시고 안타까워 하시는 그 눈을 보고 아픔을 안은채 미국으로 향하게 된다. 남편 학비와 생활비는 물론 한국에는 파견근무가 되어 기본월급을 받게 되어 온 가족이 미국에서 생활하고 공부하고 여행하였어도 오히려 통장에 잔고가 남아있었다. 정말 나라에도 주님께도 감사할 뿐이다! 만 2년동안 거주하는 동안 큰딸인 사라는 초등학교 3,4학년을 다니게 되고, 막내인 혜신이는 유치원과 킨더가든 과정을 마치게 된다 . 물론 나도 주2-3회 ESL과정을 공부하고, 또한 주님의 특별한 다루심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미국에 와서 처음 나이아가라 폭포와 그랜드캐년을 돌아보고 자연의 충격을 받고 방학때만 되면 미국에 가자마자 구입한 소나타를 타고 차에 캠핑도구를 싣고 완전 최저경비로 여행을 하게 된다. AAA에서 짜준대로 일정대로 여행하며 야영장을 찾아 텐트를 치고 모든 식사는 물론 점심인 도시락까지 손수 준비하여 알찬 여행을 다니게 된다. 미국의 거의 모든 주를 남과 북, 동과 서를 질주하며 대부분의 국립공원들을 섭렵하게 된다. 너무도 광활한 대지와 주님의 창조물인 자연 앞에서 주님의 솜씨를 만나는 놀랍고 신기한 탐험의 시기였다. 아이들은 이때부터 이미 넓은 가슴으로 세계를 품고 하버드, 예일등의 유명대학도 들려 탐방해가면서 가슴을 넓히는 작업을 주님은 행해주셨다. 아이들은 이동시 차안에서 미국의 지도를 그리는 게임을 하고 또 그려놓고는 도시찾기 놀이를 하며 세계가 자신의 무대임을 그려보며 그렇게 꿈을 키워가게 하셨다. 2001년 3월 사라는 서울외고를 입학하게 되었고 사라는 엄마하고 의논도 안하고 스스로 유학반에 들어가 수업을 받았나보다. 유학반 학부모 모임 통지를 받고 나서야 그 사실을 알게되고 난 단호하게 사라에게 "대학은 한국에서 다니고, 대학원은 미국을 생각해보겠다"고 말하였으나 여전히 뜻을 굽히지 않은 상태로 유학반에서 공부를 하였다.
뿐만 아니라 난 그 때 밤중기도 기간이라 새벽2-3시면 나가서 새벽기도까지 기도하고 오는데 집사님들이 사라가 밤12시 전후에 교회와서 밤마다 간절히 기도를 하고 간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영문도 모르는 나에게 "사라는 대체 무엇을 위해 그렇게 기도하나요?" 하고 물으신다. 나도 모르는 사실이라 "글쎄요 저도 금시초문인데요" 하고 말끝을 흐리게 된다. 후에 물어보니 주님께 유학보내달라!고 기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럴즈음 아빠는 인터넷으로 친구를 만들려고 글을 올렸다. 자꾸 영어를 안쓰니 영어실력이 뒤떨어져 글쓰기 연습이라도 할겸 미국친구를 만나기 원하던 중에 세명의 미국인에게 메일을 남겼는데 그중 한분에게서 연락이 왔단다. 그분이 바로 '메리"라는 미국인 공무원이고 사라아빠와 나이도 비슷하고 해서 연락이 닿아 자주 글을 주고 받는 친구가 되었다. 서로의 삶을 나누다 보니, 자연히 메리가 로타리클럽 회원이고, 자기집에 외국에서 로타리를 통해 교환학생온 아이들을 무료로 홈스테이 하는 이야기들을 나누게 되고, 자연스럽게 사라아빠도 "엄마가 반대하고 있어도 사라가 유학보내달라!"고 기도하고 준비하고 있다는 얘기를 나누는 과정에서 메리가 "그럼 내가 미국 로타리클럽에 박사라를 추천하고 그후 모든 과정은 본인이 스폰서가 되어 사인하겠다"고 하셨다. 우리는 믿어지지 않는 그녀의 제안에 반신반의 한채 기다리고 있는데 그녀가 추진한대로 미국 로타리 클럽에서 한국으로 서류를 보내 한국의 박사라(설리)학생을 보내달라!"고 콕 찍어 초청이 왔다. 모든 비용 즉 학비도, 홈스테이도 모두 무료이고, 한달에 용돈 100불을 오히려 주시고 여러 로타리클럽 행사및 가족행사에 초청되어, 여행도 하며 문화를 익히는 놀라운 선물을 받게 된다. 이때는 내가 10의 5조를 헌금으로 올리는 시기이다. 주님인 내가 한국에서 물질을 자녀들 학원원비용에 투자하는 대신 주님전을 위해 올릴때에 주님은 아예 미국으로 자녀를 옮겨서 주님께서 직접 아이를 양육, 훈련해 가심을 보고 주님의 자녀는 주님이 직접 준비시키시고, 키워가심을 바라보게 된다. 사라의 고교시절 유학은 거기서 끝나지 않고 1년을 마치고 돌아와야 하는 시점에서 마저 고3학년까지 졸업하고 가라는 로타리 클럽의 스폰서가 계셨고, 또 한편 함께 공부했던 스페인계 멕시코여자 친구가 그녀의 부모님 또한 멕시코 로타리클럽 회원이신데 그분들의 배려로 "사라를 멕시코로 데려가 공부시키겠다!"는 멕시코 로타리클럽의 통고도 받게 된다. 두가지 중 선택을 해야하는 시점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을 하도록 본인에게 선택권을 주고 우리는 한국에서 그저 기도할 뿐이었다. 사라도 결정이 어려워 학교 상담선생님께 상담을 하자 "넌 신의 축복을 받은 아이다~!"라고 축하해 주시며 두말 할 것도 없이 멕시코로 가서 미국인 60%가 스페인어계통이니까 스페인어를 배우는게 좋겠다고 조언해주셔서 고작 이제 고2학년인 딸은 그렇게 스스로 모든 서류를 갖추어 한국에 돌아오지 않고 곧바로 멕시코로 향하였다. 기적이다! 고2학년이면 어리다면 어린데 그 모든 일을 스스로 해 나가는 용기도 대단하고! 주님의 축복의 인도하심 또한 놀라웠다!!!! 멕시코에서 한국인 한명 없는 곳에서 지낸지 9개월이 지나자 스페인어로 뉴스를 시청하고 이해할 정도가 되자 스스로 결단하고 대학 진학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왔다. 대학진학은 거의 미국으로 품고 돌아왔으나 엄마인 나는 한국 대학을 나는 추천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2년동안 한국교회도 없는 곳에서 외국생활을 하였고 그곳 부모님들도 크리스챤이 아니시고, 자기 차도 없기에 매주 교회도 갈 수 없었을 것이다. 이렇게 신앙을 까먹은 상태에서 곧바로 미국으로 가면 아이의 신앙을 점검하거나 확증할 방법이 없었고! 주님께서도 기도중 "사라는 대학을 어디에서 공부하느냐가 문제가 아니고, 대학을 다니는 동안 신앙을 견고하게 뿌리내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기에 한국에서 4년을 공부하도록 권면하였다.
사라가 고등학교 기간동안 세나라를 다니며 공부한 터라 졸업장이 없어 사라가 한국에 2월에 돌아오자마자 검정고시를 준비하여 시험을 치루고, 또 토플시험을 치루는 등 숨가쁘게 준비하여 여름에 수시로 대학을 지원하였고 주님의 은혜로 많은 학교에서 합격통지를 받게 된다. 결국 사라는 이대 국제학부를 선택하게 되고, 서울외고 유학반 친구들의 외국유학길을 오르는 것을 보며 매우 견디기 힘들어하였으나 이대에 입학하면서 영어디베잍클럽에 들어가 영어토론에 열중하며 대학생활에 재미와 흥미를 느끼며 활기를 찾아갔고 입학하여 영어토론 써클에 들어가자 마자 국내대회를 나가게 되고 뜻밖에 "베스트상"을 수상하는 등 입학선물을 안아들게 된다.
대학 3학년때는 고급 스페인어를 구사하고 싶다고 도전하여 또 스페인으로 장학혜택을 받으며 1년 교환학생을 다녀오게 되고, 좋은 친구들! 좋은 스승들을 너무 많이 만나게 되어! 행복을 주체하지 못하는 아이의 모습을 보니 나 또한 흐뭇하기 그지없고 모든 식구들과 함께 감사의 천재가 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사라를 돌보아주었던 미국 홈스테이 맘인 메리가 한국에 여행을 오시게 되고 둘째 혜신이는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아 유학을 권해도 생각도 못했던 아이가 언니가 한국에 돌아와 외국생활 얘기들을 들려주자 "그럼 나도 한번 교환학생을 가볼까요?"하고 그제서야 반응을 보인 때였다. 메리가 방문한 첫날! 늦게서야 학교에서 돌아온 혜신이를 보고 메리가 첫마디를 건넸다. "혜신?! 너도 미국에 가서 공부해 보지 않으련?" 그러자 혜신이도 "기회가 된다면 그렇게 할께요!" 라고 대답했고 그러자 메리가 여행을 끝내고 돌아가면 미국로타리클럽에 사라때와 같은 방법으로 신청을 해보겠다고 약속을 하셨다. 그때가 이미 가을인 10월경이어서 너무 신청이 늦은 시기라 아마 용돈 100불 받는 것은 어려워 보인다고 하셨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 결정이 났는데 사라와 똑같은 케이스로 초청되어 혜신이도 용돈을 받아가며 공부하기 위해 고1 여름에 미국으로 떠났다.
이렇게 둘째의 외국유학 생활이 시작되었다. 사라와 달리 성품이 온유하고 소심하고 내성적이라 많은 염려가 되었으나 주님 품에 역시 혜신이를 올리기로 하였다. 육신의 부모 품보다 주님의 품이 더 안전하고 완전하기에.... 한학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세계에서 모여든 로타리클럽 교환학생들을 대상으로 한달간 미국전역의 여행까지 시켜주셨다. 그러는 동안 얼마나 서로간 친밀감을 느끼고 언어도 향상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본다. 혜신이가 가장 손꼽아 기억남는 추억으로 그 마지막 미국여행을 꼽곤 하는걸 보게 되기에.... 혜신이는 1년간의 교환학생 기간이 넘 아쉽고 영어 실력도 일년으로는 넘 어중간하다고 판단하여 미국 교환 학생 기간이 끝난후 뉴질랜드로 옮겨 공부하고 싶다고 간청을 하였다. 소심한 친구가 그렇게 부탁을 할때는 분명한 이유가 있으리라 보고 마침 조카(혜신에게는 언니가 되는)가 뉴질랜드 크라이스트철치라는 도시에 있기에 그곳에서 1년더 공부하기로 결정하고 옮겨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공부를 하던 중 혜신은 미국생활과 많은 차이를 발견하게 된다. 미국에서는 한국인이 한명도 없는 곳에 지내다 보니 6개월이 지날때 이미 영어로 꿈을 꾸는 등 언어가 향상되는걸 피부로 느낄수 있고 영어로 의사소통도 불편이 없을 정도인데 뉴질랜드는 한국인이 많아 한국인끼리 모여 대화라고 하다보니 미국에서 처럼 영어가 제대로 늘지않는 것을 보고 한학기를 마치고 돌아와 한국에서 대학 진학을 위해 준비하게 된다. 혜신은 호주등으로 외국대학을 바라보고 있었으나 난 다른 마음을 갖고 있었다. "아이들중 한명은 중국을 품어야 할텐데!"라는''''''' 심중에 그 비젼을 놓고 기도로 준비하던 과정에서 중국이라고 하면 미개국이라고 거들떠 보지도 않던 혜신이가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중국 하남성의 정주중의대에 인터뷰를 하게되었고 그 학교를 담당하던 한 선교사의 비젼을 보고 혜신이는 부모가 있는 앞에서 "선교를 위해 자신을 드리겠다!"고 하나님 앞에서 서언하고 하남중의대를 마음에 품게 되었다.
이렇게 진행되는 과정이 "꿈이 아닌가?!" 하고 반문할 정도로 속히 결정되었고 혜신이도 호주등으로 생각했던 진학의 꿈을 접고 중국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가기 시작했다. 너무도 갑작스러운 결정이었고, 주님의 인도하심의 손길 이었다. 어찌나 놀랍고 감사하던지! 물론 엄마인 내가 선교에 비젼을 두고 준비하며 주님 부르시면 나갈 준비를 하고 살고 있었으므로 자녀들에게도 자연스럽게 그런 생각을 할 여지를 준것같다. 그렇게도 원했던 자녀들이 선교을 향하여 한걸음 한걸음 비젼의 길로 옮겨지는 것을 보고 너무도 감격스럽고 감사를 어찌 표현 할 길 없어 그저 영광을 주님께 올리게 된다.
혜신이가 선교의 비젼을 품었다고 해도 아빠의 벽을 어떻게 넘어야 할까? 걱정했는데 모두가 있는 가운데서 혜신이가 너무도 정확하게 선교사의 비젼을 갖고 중의학을 공부하겠다는 다짐에 아빠는 "한번 더 생각해보고 결정하거라!"라는 말씀을 하셨으나 단호하고 확고하게 자신의 의지를 내 비추자는 딸의 결단에 아빠도 흔쾌히 동의해 주시고, 그렇게 혜신이는 중국 하남성의 정주중의대로 주님의 도구되는 훈련을 위해 떠나 지금 5학년으로 병원 실습 중이다. 주님의 행하심은 놀라울 뿐이다! 과정 과정 주님의 인도하심과 일하심에 어찌 헐떡이며 주님을 찬양하며 높이지 않을 수 있으랴! 이 세상에 태어나 선교하며 전도하며 주님의 증인되는 일 외에 무엇이 가치있으랴!'''' 이 마음에 미리 전가족을 선교사로 써주시길 소원하며 기도하고 있었으나 자녀들은 스스로 자신의 비젼에 대해 결정해야 하기에 기도만하고 있었으나 주님께서는 주님의 방법대로 그렇게 자녀들을 주의 도구로 준비시켜 이끌어 가고 계셨다. 나를 손잡고 이끌어 가심 처럼 내 딸들에게도 손잡고!!!! 감사하며 엎드려 그은혜에 헉헉거릴 뿐이다! 주님 감사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