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보존, 자아아욕이 강한 사람들이 모이면,
하나의 국가의 영역(靈域)도 어두운 상념으로 뒤덮여 버린다.
나라의 혼란은,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의 혼란에 의해 일어난다.
지도자에게 그 책임을 전가하기 전에,
한 사람 한 사람의 국민의 마음이 깨어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물질의 노예에서 자기 자신의 마음을 해방시켜,
인생에 족(足)함을 아는 생활 속에,
진정한 평화, 진정한 인생이 있음을, 우리는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
마음의 존엄을 깨닫고, 잠재의식의 실마리를 풀어,
지식의 학문을 마음에 흡수하여,
생활 행위 속에 활용하여 자신을 더욱 갈고닦아,
사회 인류를 위한 정신적, 물질적, 실천적 활동을 하는 과정에서,
진정한 보살의 마음은 싹터 가는 것이다.
보살의 마음에는 용기가 동반되는 것이다.
잠재의식의 무한대한 보고(寶庫)는,
자기 자신의 생활 노력에 의한 스스로의 힘과,
수호령, 지도령의 힘에 의해 열려 간다.
마음의 왕국의 지배자는, 자기 자신인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하지만 일부의 지식계급을 제외하고,
대다수의 학자라고 칭하는 사람들은,
과거의 오래된 문헌이나 개조된 지식과 의(意)의 산물을 소중하게 여겨,
자기 자신의 바른 마음속을 보려고도 하지 않는데 빠져 있다.
자연과학의 분야에 있어서는, 문헌은 도움이 되지만,
종교적인 학문의 대부분은 사람들의 지(智)나 의(意)가 우선되어,
마음을 잃는 경우가 많다.
교조의 생년월일이 다르다던가,
가문이 어떻다든가 등과 같은 쓸데없는 것에
머리를 사용하고 있다.
진정한 마음의 올바른 자세야말로 필요한 것이다.
이쪽이 본산의 정통파고 저쪽은 분원 따위라고
자기의 종파 내에서의 본가 싸움은
이미 불법(佛法)이 아닐뿐더러 신리(神理)라고도 할 수 없다.
이러한 형식주의는, 이미 마음을 잃고 있는 말법의 모습에 지나지 않는다.
중요한 것은 형식이 아닌,
<마음의 올바른 자세와 행위>인 것이다.
종교가 신리를 잊고, 형식주의로 추락하여,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그 생명의 목적과 사명을 설명할 수 없게 된 것은,
과거의 유물, 화석이 되어 끝난 종교라고 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 원인은 오랜 역사의 흐름 안에 있다.
정법이 시대의 권력자에 의해 바뀌거나,
정책의 도구로 변했거나 하는 역사가,
그 개정을 말하고 있다.
물론 그것은 육체를 갖고 인생의 수행을 하고 있는 우리에게도 책임이 있다.
자신의 마음의 세계를 탐구하지 않고,
물욕에 사로잡혀, 욕망대로 살아가려고 하는 점을 반성해야 한다.
덧붙여 매스컴에 대해 말하자면,
돈만 벌면, 어떤 방법으로 무엇을 발표해도 좋다고 하는 사고방식은,
의문이라고 해야만 할 것이다.
사회 인류의 조화와 평안을 위한 보도라면,
불변의 평안을 주는 것이 가능하지만,
정욕을 유발하는 듯한, 사람의 마음을 동요하는 저속한 것에,
이치에 맞지 않는 핑계를 대는 것은, 일시적인 것이다.
사람의 마음은 일시적으로는 떠들썩해도, 반드시 떨어져 간다.
불성실한 것을 출판하거나, 영화화하거나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부조화한 상념 행위가 되돌아가,
그 마음은 검게 뒤덮인다.
그들은 그것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지위나 명예 따위에 관계없이,
자신이 만들어 낸 어두운 상념은,
스스로에게 부조화한 번뇌와 고통을 불러들이고 만다는 것을,
우리는 부정할 수 없다.
정법이라고 하는 레일 위를 달리고 있는 사람과,
그 레일을 도외시하고 나아가는 사람들의 상념 행위는 확실히 다르며,
이 현상계를 떠날 때에
자기 자신이 옳고 그름의 단죄를
스스로에게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 바보 같은>
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사람들도,
좋든 싫든 그러한 때가 시시각각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만 한다.
현대사회의 육체 선조를 신앙의 대상으로 하거나,
타력본원에 의해 구제된다고 하는 종교로부터,
우리는 깨어나지 않으면 안 된다.
특히 불교는 지식으로 배워, 머리만의 판단에 의해 잘못된 길로 나아가버린 것이 많다.
불교의 신리는 하나이다.
몇 백이라고 하는 종파는,
인간이 만든 것으로,
지(智)와 의(意)의 산물이며,
이미 마음은 잃어버리고 있다.
만약 이 문제를 부정하는 승려가 있다고 하면,
<당신들은, 진정한 불제자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입니까>
라고 나는 질문을 던지고 싶다.
진정한 불제자라고 하면, 자기보존을 하지 않을 것이다.
종파의 난립에 의문을 가질 것이다.
권력욕에 의문을 가질 것이다.
분노, 비난, 질투의 마음을 갖지 않을 것이다.
일체의 모든 현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자신을 잃는 일이 없을 것이다.
생로병사의 근본을 깨닫고,
중도의 상념 행위에 의해 정법의 신수(神髓)를 깊이 연구할 것이다.
보시에 대해서도, 족(足)함을 알고 있을 것이다.
겉모습에 연연하지 않고,
모두 평등의 견해를 갖고 자비와 사랑의 마음을 실천할 것이다.
부자연한 욕정에 마음을 현혹시키는 일이 없을 것이다.
생각하는 것, 말하는 것, 행하는 것이 항상 정법에 적합하며,
바른 마음대로 생활을 하고,
고통과 쾌락의 인생을 해탈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에게, 인생의 목적과 사명을 가르치고,
스스로에게는 엄격하고 사람들에게는 관용으로,
생사에 구애됨을 갖지 않을 것이다.
혼의 전생 윤회의 사실을 깨닫고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일상을 보내고 있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불제자라고 할 수 있다.
종이쪽지의 논문으로 깨달음을 여는 것은 불가능하며,
상념과 행위의 조화에 의해, 마음의 창은 열려 간다.
그것은, 조화에 의한 기쁨과 평안의 세계가 전개되기 때문이다.
지(智)는, 마음에 우선할 수 없다.
마음이 있어 지(智)가 생기는 것임을 깨닫지 않으면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