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興也라 關關은 雌雄相應之和聲也라 雎鳩는 水鳥니 一名王雎라 狀類鳧鷖하고 今江淮間有之하니 生有定偶而不相亂하고 偶常並遊而不相狎이라 故로 毛傳에 以爲摯而有別이라하고 列女傳에 以爲人未嘗見其乘居而匹處者라하니 蓋其性然也니라 河는 北方流水之通名이오 洲는 水中可居之地也라 窈窕는 幽閑之意라 淑은 善也라 女者는 未嫁之稱이니 蓋指文王之妃太姒爲處子時而言也요 君子는 則指文王也라 好는 亦善也요 逑는 匹也라 毛傳之摯字與至通이니 言其情意深至也라
○흥이라(하고 싶은 말을 하기 위해 먼저 다른 사물에 대해 보고 느낀 바를 말하여 흥기하는는 문장. 곧 ‘窈窕淑女 君子好逑로다’라는 말을 하기 위해 ‘關關雎鳩 在河之洲로다’라는 문장을 앞세운 것을 ‘흥’이라 한다.). 관관은 암수가 서로 응하면서 화답하는 소리라. 저구는 물새이니 일명 왕저라. 형상이 오리와 같고, 지금은 강수와 회수 사이에 있으니 날 적부터 정한 짝이 있어 서로 난잡함이 없고, 항상 짝을 지어 서로 노닐고 서로 친압함이 없느니라. 그러므로 『모전』에 이로써 지극하여 분별이 있다 했고, 『열녀전』에서는 사람이 일찍이 그 승거(말 두 마리가 나란히 끌고 가는 것으로 짝지음을 말함)함은 보았으되 외짝으로 처하는 것은 보지 못했다 하니, 대개 그 성품이 그러하니라. 하수는 북방에 흐르는 물을 통칭한 이름이고, 주는 물 가운데 가히 거할 만한 땅이라. 요조는 그윽하고 한가로운 뜻이라. 숙은 선함이라. 女는 시집가지 않음을 일컬음이니 대개 문왕의 비인 태사가 처자일 때를 가리켜서 말함이고, 군자는 곧 문왕을 가리킴이라. 호는 또한 선함이고, 구는 짝지음이라. 『모전』의 摯자는 至와 통하니 그 뜻이 깊고 지극함을 말함이라.
○興者는 先言他物하여 以引起所詠之詞也라 周之文王이 生有聖德하시고 又得聖女姒氏하사 以爲之配하시니 宮中之人이 於其始至見其有幽閑貞靜之德이라 故로 作是詩라 言彼關關然之雎鳩則相與和鳴於河洲之上矣어늘 此窈窕之淑女則豈非君子之善匹乎아하니 言其相與和樂而恭敬이 亦若雎鳩之情 摯而有別也라 後凡言興者 其文意皆放此云이라 漢匡衡이 曰窈窕淑女君子好逑는 言能致其貞淑하고 不貳其操하여 情慾之感이 無介乎容儀하며 宴私之意不形乎動靜이라 夫然後에 可以配至尊而爲宗廟主하니 此는 綱紀之首요 王敎之端也라하니 可謂善說詩矣라
○흥은 먼저 다른 물건을 말하여서 읊을 바의 말을 일으킴이라. 주나라의 문왕이 날 때부터 성덕이 있으시고, 또한 성녀 사씨를 얻어서 배필을 삼으시니, 궁중의 사람들이 그 처음 이름에 그 그윽하고 한가롭고 바르고 정숙한 덕이 있음을 보았으므로 이 시를 지음이라. ‘저 끼룩끼룩하는 물오리들은 곧 서로 더불어 하수 위에서 화목하게 울고 있거늘 이러한 요조숙녀라면 어찌 군자의 좋은 배필이 아니랴!’ 하니, 그 서로 더불어 화락하면서 공경함이 또한 물오리의 정이 지극하면서 분별이 있는 것과 같음을 말함이라. 뒤에 무릇 흥을 말한 것은 그 문장의 뜻이 다 이와 같음을 이름이라. 한나라의 광형이 말하기를, “요조숙녀가 군자의 좋은 배필이라는 것은 능히 그 정숙함을 이루고, 그 지조를 바꾸지 아니하여 정욕의 감정이 몸가짐 사이에 끼어듦이 없으며, 즐기는 사사로운 뜻이 움직이거나 가만히 있을 때에도 나타나지 않느니라. 무릇 그런 뒤에야 가히 지극히 높은 이와 짝이 되고 종묘의 주인이 될 것이니, 이것은 강기(三綱六紀 : 삼강은 君爲臣綱 父爲子綱 夫爲婦綱, 육기는 아버지의 형제들, 집안 어른들, 일가사람, 스승, 어른, 친구 등을 바르게 대하는 것)의 머리가 되고, 왕교(왕도정치의 교화)의 단서가 된다.”고 하였으니, 시를 잘 설명했다고 이를 만하도다.
鳧 오리 부 鷖 오리 예 摯 지극할 지
(2장)參差荇菜를 左右流之로다 窈窕淑女를 寤寐求之로다 求之不得이라 寤寐思服하니 悠哉悠哉라 輾轉反側하노라
(참치행채를 좌우류지로다 요조숙녀를 오매구지로다 구지부득이라 오매사복하여 유재유재라 전전반칙하노라 興也라)
들쭉날쭉 순채나물을 좌우로 휘젓도다. 요조숙녀를 자나 깨나 구하도다. 구하여도 얻지 못한지라 자나 깨나 생각하고 그리워하니, 아득하고 아득한지라 이리 뒤척 저리 뒤척 엎치락뒤치락하도다.
○興也라 參差는 長短不齊之貌라 荇은 接余也니 根生水底하여 莖如釵股하고 上靑下白하고 葉紫赤하며 圓徑寸餘하니 浮在水面이라 或左或右는 言無方也라 流는 順水之流而取之也라 或寤或寐는 言無時也라 服은 猶懷也라 悠는 長也라 輾者는 轉之半이오 轉者는 輾之周며 反者는 輾之過요 側者는 轉之留이니 皆臥不安席之意라 ○此章은 本其未得而言이니 彼參差之荇菜는 則當左右無方以流之矣요 此窈窕之淑女는 則當寤寐不忘以求之矣라 蓋此人此德은 世不常有하니 求之不得이면 則無以配君子而成其內治之美라 故로 其憂思之深이 不能自已 至於如此也니라
○흥이라. 참치는 길고 짧음이 가지런하지 않은 모양이라. 행은 접여니, 뿌리가 물 밑에서 나와 줄기는 비녀다리와 같고 위는 푸르고 아래는 하얗고 잎사귀는 붉은보라이며, 둥글고 길이가 한 마디 남짓 되니 수면에 둥둥 떠 있음이라. 혹 왼쪽으로 하고 혹 오른쪽으로 하는 것은 방소가 없음을 말함이라. 유는 물을 따라 흐름을 취함이라. 혹 깨고 혹 자는 것은 때가 없음을 말함이라. 복은 그리워함과 같음이라. 悠는 길음이라. 輾은 轉의 반이오(반듯이 누웠다가 옆으로 돌아눕는 것), 轉은 輾의 두루함이라(돌아누웠다가 엎드려서 다시 반대로 돌아눕는 것). 反은 輾을 지나는 것이고(옆으로 누웠다가 다시 반대로 돌아눕는 것), 側은 轉의 머무름이니(다시 돌아누워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것) 대개 누워서 자리가 편안하지 못한 뜻이라. ○이 장은 본래 그 얻지 못함을 말했으니, 저 들쭉날쭉한 순채나물은 마땅히 좌우로 방소 없이 흐르고, 이 요조숙녀는 마땅히 잊지 못하고 구할 것이라. 대개 이런 사람과 이런 덕은 세상에 항상 있지 아니하니, 구하다 얻지 못하면 이로써 군자를 짝하여 그 내치의 아름다움을 이룰 수 없느니라. 그러므로 그 근심하고 생각하는 깊음이 능히 스스로 그치지 않음이 이와 같은 데에 이르느니라.
釵 비녀 차(채)
(3장)參差荇菜를 左右采之로다 窈窕淑女를 琴瑟友之로다 參差荇菜를 左右芼之로다 窈窕淑女를 鍾鼓樂之로다
(참치행채를 좌우채지로다 요조숙녀를 금슬우지로다 참치행채를 좌우모지로다 요조숙녀를 종고락지로다 興也라)
들쭉날쭉 순채나물을 좌우로 뜯도다. 요조숙녀를 금슬로 화하도다. 들쭉날쭉 순채나물을 휘저어 삶도다. 요조숙녀를 종고로 즐기도다.
友羽己反 芼音邈
○興也라 采는 取而擇之也요 芼는 熟而薦之也라 琴은 五弦이며 或七弦이오 瑟은 二十五弦이니 皆絲屬이니 樂之小者也라 友者는 親愛之意也라 鐘은 金屬이오 鼓는 革屬이니 樂之大者也라 樂則和平之極也라 ○此章은 据今始得而言이니 彼參差之荇菜를 旣得之則當采擇而亨芼之矣오 此窈窕之淑女를 旣得之則當親愛而娛樂之矣라 蓋此人此德은 世不常有하니 幸而得之則有以配君子而成內治라 故로 其喜樂尊奉之意 不能自已又如此云이라(關雎三章이라)
○흥이라. 채는 취해서 가리는 것이고, 모는 익혀서 제사 올림이라. 금은 다섯 줄이며, 혹 일곱 줄이고, 슬은 25줄이니 다 사속이니 악기의 작은 것이라. 우는 친애하는 뜻이라. 종은 금속이고, 고는 혁속이니 악기의 큰 것이라. 즐겁다는 것은 화평의 지극함이라. ○이 장은 문득 지금에야 비로소 얻었음을 말했으니, 저 들쭉날쭉 순채나물을 이미 얻었다면 마땅히 가려서 삶아야 할 것이고, 이 요조숙녀를 이미 얻었다면 마땅히 친애하여 즐거워해야 할 것이라. 대개 이런 사람과 이런 덕은 세상에 항상 있지 아니하니, 다행히 얻었다면 군자를 짝하여 내치를 이루리라. 그러므로 그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높이고 받드는 뜻이 스스로 그만둘 수 없음이 또한 이와 같음이라(關雎三章이라).
据 문득 거, 의지할 거 亨 ‘삶을 팽’
[참고] 옛날에 시를 공부하고 읽는 분들은 위의 주자의 주를 다 읽고 난 뒤에 마지막에는 ‘關雎三章이라’고 붙여 읽고 관저3장이 모두 끝났음을 새긴다. 다시 말해 관저3장의 마지막 註인 “故로 其喜樂尊奉之意 不能自已又如此云이라 關雎三章이라”고 읽는다. 아래도 모두 마찬가지로 읽는다.
關雎三章이라 一章은 四句요 二章은 章八句라
孔子曰關雎는 樂而不淫하고 哀而不傷이라하시니 愚謂此言爲此詩者 得其性情之正과 聲氣之和也라 蓋德如雎鳩摯而有別이면 則后妃性情之正을 固可以見其一端矣요 至於寤寐反側琴瑟鍾鼓하여 其哀樂而皆不過其則焉이면 則詩人性情之正을 又可以見其全體也라 獨其聲氣之和를 有不可得而聞者 雖若可恨이나 然이나 學者姑卽其詞而玩其理하여 以養心焉이면 則亦可以得學詩之本矣라 ○匡衡이 曰妃匹之際는 生民之始며 萬福之原이니 婚姻之禮 正然後에 品物遂而天命全이라 孔子論詩以關雎爲始하시니 言太上者는 民之父母라 后夫人之行이 不侔乎天地면 則無以奉神靈之統而理萬物之宜라 自上世以來로 三代興廢 未有不由此者也니라
공자 가라사대, “관저는 즐겁되 음탕하지 아니하고 슬프되 상하지 않는다.”고 하셨으니(『논어』 八佾편 제20장), 나는 이 말씀은 이 시를 하는 자가 그 성정의 바름과 聲氣(소리와 기운 곧 곡조)의 화함을 얻었다고 이르노라. 대개 덕이 물오리와 같이 지극하면서 분별이 있으면 후비의 성정의 바름을, 진실로 가히 그 일단을 볼 것이고, 오매반측하고 금슬종고하는 데에 이르러서 그 슬프고 즐거워하면서 다 그 법을 지나치지 아니하면 시인의 성정의 바름을 또한 그 전체를 볼 수 있으리라. 홀로 그 聲氣의 화함을 가히 얻어 듣지 못하는 자가 비록 한할 것 같으나 그러나 배우는 자가 짐짓 그 말에 나아가 그 이치를 구경하여 이로써 마음을 기른다면 또한 가히 시를 배우는 근본을 얻으리라. ○광형이 가로대, “배필(妃匹, 配匹)의 즈음은 백성을 내는 시작이며, 만복의 근원이니 혼인의 예가 바루어진 연후에 품물이 이뤄지고 천명이 온전해지니라. 공자가 시를 논하심에 관저로 시작을 삼으셨으니, 가장 위에 있는 자는 백성의 부모임을 말함이라. 후부인의 행실이 천지와 짝하지 못한다면 이로써 신령의 거느림을 받들어 만물의 마땅함을 다스림이 없느니라. 상고로부터 이래로 삼대의 흥폐가 이로 말미암지 않음이 없느니라.
[주남 제1편 관저3장(關雎三章) 경문 다시 읽기 - 밑줄은 韻, 이하 같음]
(1장)關關雎鳩 在河之洲로다 窈窕淑女 君子好逑로다 興也라
(2장)參差荇菜를 左右流之로다 窈窕淑女를 寤寐求之로다
求之不得이라 寤寐思服하여 悠哉悠哉라 輾轉反側하노라 興也라
(3장)參差荇菜를 左右采之로다 窈窕淑女를 琴瑟友之로다
參差荇菜를 左右芼之로다 窈窕淑女를 鍾鼓樂之로다 興也라
關雎三章이라
瑟 (特)鐘 (應)鼓 琴
출처 : 『詩經講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