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관 시인이 본 53선 지식 29차 6, 천관 보살을 친견힌 원표스님
천관 보살이 상주하고 있는 천관 산에 올라
원표스님이 천축에서 고행을 실행했던 시대를 고찰하면서
당시는 화엄경을 중시하였던 시대로 보는 이유는
측천 무후 시대에 축천무후의 통치적 불교
축천무후를 중심으로 발전했던 불교는
천축의 순례가 구법의 목적이라고 말할 수 있음으로
원표도 천축을 순행하면서 고구려 유민으로서의 수행을
근본으로 삼았던 구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고구려 유민이라는 이름을 전할 이유도 없지만
고구려의 정신은 바로 불교정신이었다고 본다
고구려 유민으로 하여금 고구려를 생각하면서
천축국에 있는 지제산에서 범본 화엄경을 입수한 원표는
그 경전을 모시고 복건성지제산으로 갔다
복건성이 있는 지제산에는 천관 보살이 상주
천관 보살의 부름으로 간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천관보살이 아니였으면 원표는 천축에서 천관산으로 올 이유가 없었은데
천관 보살이 기다리고 있는 복권성으로 갔던 원표였다
원표는 지제산 나라연동굴에서
매일 범본 80화엄경을 독송하고
50년을 수행자로 있었다는 것이야 말로
원표는 하엄승이라고 칭할 수 있다,
원표승려의 명성이 드날리는 것을 알고 있던 신라에서는
당시 경덕왕 시대라고 말할 수 있는데 비록 고구려 승려이지만
신라에 병합한 이루에는 신라로 칭송하지 않을 수 없다
신라의 경덕왕은 불교를 중흥하려는 국왕이로서
천관산에서 화엄경을 독송하고 있는 원표승을
신라에 귀국하여 신라 불교를 중흥하려고 했다,
원표는 고구려 승려로서 천축에 구법을 하였던 것인데
복건성에 있는 토굴에서 수행을 하는 동안에 신라에
원표의 수행의 명성이 전해진 신라에선는
원표의 덕행이 필요한 시기로 보아야 한다
물론 고구려 승려라고 한다면 신라에서는
국가화합의 목적이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원표는 신라에 돌아가 가지산에 있는
천관보살을 찬야아게 하고 천관산에 있는
천관 보살을 친견랄 수 있도록 원표에게
원표가 굴 속에서 기도하던 그 원력을
신라 경덕왕은 천관산에 상주하도록 했다
신라의 경덕왕은 원표에게 화엄경을 강독하도록
신라에서도 화엄사를 건립하도록 했다고 보아야 한다
신라에 전해진 화엄경을 중시하였던 경덕왕은
원표에게 있어서 천관 보살을 찬양하게 하니
신라에서 원표는 천관보살을 신앙하게 하였다,
신라에서 원표스님을 통해서 구법활동의
신라 승려들에게 전해주었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원표스님은 고구려 승려이기에 천축국에 대한
행로를 알고 있었던 것으로 보아야 한다
물론 신라에 승려들은 천추국을 향해
구법활동을 할 수 있는 승려들을 모집하기도 했다
신라 경덕왕 시대에 승려들을 가장 많은 승려들이 탄생하고
신라불교를 중흥하려는 경덕왕이었다,
원표스님이 신라에서 천관 보살을 모시고
수행을 하였는지는 모르지만 원표의 열반에 대한
기록을 볼 수 없는데 그것은 경덕왕 이후에
불교의 전변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진관 스님 카카오, 이메일 budhr4888@naver.com
2024년 6월 1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