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제사 접빈객'이라는 말이 있다.
조상(제사)을 잘 모시고, 손님을 잘 모시라는 뜻이다.
이렇게 하면 본인에게 좋은 일만 생기고, 본인 당대에 그 보답을 받지 못하더라도 후손들에게 좋은 일이 생기므로 양반가에서 지켜야 할 덕목으로 꼽고 있다. 물론 일반 모든 사람에게도 다 적용될 수 있는, 사회 속에 사는 인간들의 삶의 원리이기도 하다.
강릉의 선교장도 '접빈객'으로 유명하다. 찾아 온 손님들에게 대우를 잘 해주었다고 한다. 그리하여 관동지방과 동해안을 여행하는 이들에게 중요한 베이스 캠프 역할을 하였다. 물론 세상사 공짜가 없다고 한다. 당연히 손님을 접대하는 과정에서 중앙정치 무대에서 소외된 동해 바닷가 촌 양반은 찾아온 손님들을 접대하면서 많은 정보도 얻고, 돌아가는 정치 사회적 상황을 발빠르게 파악하면서, 대처 방안에 대해서도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구한말에 선교장 집안은 벼슬을 얻어 경제적인 부에 이어 정치사회적인 영광도 얻는다.
유물 찾기도 마찬가지이다. 공덕부터 쌓아야 한다.
특히 야외가 아닌 건물 내부에 있거나 개인이 소장한 유물인 경우에는 더더욱 그렇다.
당연하겠지만 필자 역시 유물 조사에서 공덕 쌓기의 중요성을 느낀 사례가 있다.
삼척의 흥전리사지, 대평리사지, 임원리사지를 조사한 후였다.
삼척시 미로면 내미로리에 위치한 천은사 불상을 조사할 기회가 있었다. 그 계기는 관동대 박물관의 조사에서 소개된 통일신라시대 전성기 때의 소형금동불(약사여래입상:약으로 치료하는 서 있는 모습의 부처)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불상은 주지 스님이 소장하고 있어 주지 스님의 허락을 받아야만 볼 수 있는 유물이었다. 삼척의 김도현 선생님과 필자가 천은사를 방문하였다. 하지만 당시만 하더라도 우리 둘 다 힉문적으로 유명하지도 않고, 사회(직업)적으로도 지위에 있지 않아서인지 보여주시지를 않으셨다. 아직 인연이 아닌가보다라고 생각하고, 대신 법당인 극락보전 내부에 모셔진 부처님을 뵈러 갔다. 당연히 일반적으로 볼 수 있는 조선후기의 불상일거라고 생각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 불상은 일반적으로 흔히 보는 조선후기의 괴체감(사각형식으로 몸체를 단순화하고 생략화하여 표현)을 보이는 양식이 아니라 건장한 신체를 비교적 잘 표현한 부처상이었다. 즉 통일신라시대 이래 석굴암 부처님을 계승한 양식이 고려시대[이른바 고려후기 단아양식의 불상]를 거쳐 조선 초기-전기까지 유행하는데, 그러한 스타일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아직 주지 스님과 래포(rapport)가 생기지도 않은 상태라 부처님 몸 안에 모셔진 복장물을 보자고 할 수도 없었다. 훗날을 기약하며, 그냥 발걸음을 돌려야만 했다.
그로부터 몇 년 후, 다시 천은사를 갈 일이 있었다.
그동안 공덕이 쌓여서인지.... 특히 김도현 선생님이 삼척에서 열심히 살아서인지.... 이번에는 주지 스님이 반갑게 맞이하여 주셨다.
그리하여 금동불도 직접 보고, 사진도 찍었으며, 그 과정에서 법당의 부처님이 비교적 오래된 것 같다고 말씀을 드렸다. 그랬더니 주지 스님은 예전에 부처님 복장을 한 번 열 일이 있었는데, 그 때 발원문이 있어 사진을 찍어 놓은 것이 있다고 보여 주셨다.
사진이라 정확히 판독되지 않는 글자도 있었지만 발원문 내용을 통해 이 부처님이 조선 전기에 만들어진, 적어도 임진왜란 전에 만들어졌음을 확인하였다. 즉 조선전기에서 조선후기로 넘어가는 과도기에 해당하는 불상인 것이다.
이와 같이 천은사 극락보전 불상은 조선전기(임진왜란 이전)의 작품으로 수량적으로 귀할 뿐만 아니라 양식상으로도 석굴암 부처님을 계승하여 내려온 고려후기의 단아양식의 조선시대 불상이라 더욱 가치가 있다. 또한 이러한 불상이 강원도 깊은 산골의 궁벽한 절에 모셔진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그리하여 필자는 이를 논문으로 발표하였고,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이 불상의 복장물도 조사하게 되었다.
그 결과 이 불상은 천은사 극락보전 목조아미타삼존불이라는 명칭으로 도유형문화재 제147호(2007.1.18)로 지정되었다. 동시에 천은사 답사의 계기가 된 금동약사여래입상도 도유형문화재 제148호(2007.1.23)로 지정되었다.
이미 필자가 조사하여 그 가치를 알린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사지에 있는, 삼중기단을 가진 삼층석탑이 도유형문화재 제127호로 지정(2000.1.22)된 바 있는데, 이후 이 불상도 필자가 그 역사성과 양식적인 가치를 처음 알려 도유형문화재로 지정되는 토대를 마련한 것이다.
남이 몰랐던 문화재의 역사성과 가치를 찾아 학계와 일반 대중에게 알려 문화재로 지정받는 것도 외롭게 걸어가는 학문의 길에서 찾아지는 또 다른 위안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당시 필자가 천은사 불상 발원문 사진의 한자를 판독하는 데 도움을 주신 권혁진 박사에게 늦었지만 감사드린다.
참고문헌
홍영호, 김도현, 2003, [삼척시 미로면 천은사의 불상 고찰] [[강원지역문화연구]]2호, 강원지역문화연구회
김도현, 2006, [삼척시 미로면 천은사의 역사와 목조아미타삼존불 복장] [[박물관지]]13, 강원대학교 중앙박물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