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t1.daumcdn.net/cfile/cafe/231E2A4B56FBE6581A)
● 이 호구정장은 통정대부검교호조참의 선중의(1358~1423)가 전래로 부터 가지고 있던 호구
(호적)를 왜란으로 소실되었다며 1421년(세종3년) 7월 25일 증빙서류를 갖춰 보성군에 재발급을
요청하는 진정서(소지. 所志)를 올리자 보성군은 이를 확인하고 호조에 보고한 뒤, 호조의 승인을
얻어 지보성군사(知寶城郡事, 지금의 군수)명의로 신청인에게 재발급해 준 공문서(호구문서)임.
●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서 발굴된 원본 호적(호구) 가운데 고려 말인 1390년(공양왕 2년) 작성된 국보
제131호 ‘이태조 호적원본’에 이어 두 번째로 오래된 호적으로써 작성시기, 사료적 가치 등의 측면
에서 국가문화재적 가치가 있다는 관련 전문가의 평가도 있음.
● 본인 선중의(宣仲義, 1358년生, 고려공민왕 7년) 부(父) 선원지(宣元祉), 조(祖) 선유(宣儒),
증조(曾祖) 선용신(宣用臣) 등이 기록된 모계 위주의 8祖에 대한 계보로서 12개 성씨의 본관과
6개 성씨의 각 4대의 계보, 총 40여명이 기록되었으며 사실상 광의의 족보 성격임.
○ 2006년 5월 12일 호구정장 세미나 개최 (한국학중앙연구원, 안승준 박사)
○ 2008년 한국학중앙연구원에 기탁
○ 2010년 2월 7일 KBS 2TV 쇼 진품명품 프로그램 출품 (당시 감정가 5,800만원)
○ 2011년刊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장서각 신축 개관 특별전 도록(圖錄) 『조선의 왕과 선비』112쪽에
국가 문화재적 가치로서의 설명과 함께 호구정장이 실림.
○ 2013년 8월 교육부, 국사편찬위원회의 검정을 받은 고교 한국사 교과서(동아출판刊) 108쪽에
조선시대 호적 제도의 사료(史料)로서 호구정장이 실림.
![](https://t1.daumcdn.net/cfile/cafe/2705274B56FBE65834)
보성군 호구정장(寶城郡 戶口呈狀):보성군이 발급한 호적 문서
(일명: 참의공 선중의 호구정장) 1421년(세종3년), 1장, 필사, 82.3 × 57.2cm,
1421년 7월 25일에 보성군에 살고 있던 선중의(宣仲義)가 집안의 호구(戶口)를 잃어버려 다시
발급해 달라고 소지(所志)를 올림에 따라 보성군은 본래의 호구를 살펴보고 가감이 없다는 사실을
호조(戶曹)에 보고한 문서이다.
정장(呈狀)은 하급기관에서 상급기관으로 보내는 관문서(官文書)로서 조선 초기의 관문서는 경국대전(經國大典)이 완성되어 반포되기 전까지는 명나라 홍무예제(洪武禮制)에 나오는 문서식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이 문서는 明의 장정식(呈狀式)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
이 호구정장은 문서의 서식 변화를 알 수 있는 고문서 연구와 조선 초기 호적제도 연구 자료로서도
학술적인 가치가 매우 높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자료 출처: 한국학중앙연구원 2011년刊 장서각 신축 개관 특별전 도록『조선의 국왕과 선비』)
첫댓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