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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느헤미야4장1~5장5절
제목 : 방해를 물리치다
재건 작업을 지켜본 산발랏과 도비야가 방해를 모의합니다.
느헤미야는 기도하면서 빈틈없는 경계 속에서 공사를 성공적으로 이끌어갑니다.
1. 대적들의 방해와 느헤미야의 대처(1~14절)
1) 대적들의 반대(1~8절)
(1) 산발랏과 도비야의 조롱(1~3절)
⓵ 산발랏이 성벽 재건을 반대하는 세력의 중심인물로 등장합니다(1절)
“[1]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크게 분노하여 유다 사람들을 비웃으며 ”
산발랏이 우리가 성을 건축한다 함을 듣고. - '산발랏'이 성벽 재건에 관한 소식을 들은 것은 그 작업이 시작되기도 전일 것입니다.
유대인들 중에 그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던 사람이 많았기 때문에 사전에 이미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3:1, 4 주석 참조).
그런데 본절에서 '산발랏'만이 유대 백성을 훼방하는 자로 묘사되고 있는 까닭은, 그가 유대 백성을 훼방하는 일에 선동자였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견해는 여러 명의 훼방자가 동시에 언급될 때도, 그 이름이 항상 그들 중 첫 번째에 위치한다는 사실로써도 분명해집니다(7절 ; 2:10,19 ; 6:1,2,5).
한편, '산발랏'이라는 이름은 '달신(月神)이 그에게 생명을 주었다'라는 말인 바벨론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2:10에 '호론 사람'이란 말이 나오는 것으로 볼 때, 아마도 그는 에브라임지파 남쪽지역인 '벧호론'(Beth-horon)에서 출생한 듯합니다.
그리고 요세푸스에 의하면, 그리심산의 사마리아 성전은 이 산발랏에 의해 건립되었고 산발랏은 자기사위를 이 성전의 대제사장으로 세웠다고 하나 그 사실성 여부는 분명치 않습니다.
한편, '크게 분노하며', '비웃는' 산발랏의 반응은, 2:19에서 보다 한층 강렬한 것이며 6:2에 가서는 느헤미야를 살해하려고까지 하는 것으로 발전됩니다.
⓶ 산발랏은 자신의 군대를 동원하여 군사적인 시위를 하며 위협을 가합니다(2절).
“[2] 자기 형제들과 사마리아 군대 앞에서 일러 말하되 이 미약한 유다 사람들이 하는 일이 무엇인가, 스스로 견고하게 하려는가, 제사를 드리려는가, 하루에 일을 마치려는가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하고 ”
자기 형제들. - 이들은 의논 대상이 될 만한 자신의 직속 부하들을 가리킵니다. 물론 여기에는 '도비야'도 포함될 것입니다(3절).
사마리아 군대. - 페르시아 정부가 파견한 수비대라기 보다는 해당 지역별로 조직된 부대인 듯합니다(스4 : 23).
산발랏은 이 '군대'를 이용해서 유대백성을 물리적인 힘을 동원해서라도 괴롭힐 생각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8절).
사실 페르시아 정부의 지배력이 제국 내의 곳곳에 직접적으로 미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그 당시의 상황에서, 산발랏의 이 같은 사악한 생각은 실천될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었습니다(Rawlinson).
미약한 유다 사람들. - '미약한'(아말렐림)은 '쇠퇴하다'의 뜻이 있는 동사 '아말'에서 파생된 단어로서 '나무가 시들어 말라 비틀어 지는 것'을 가리킬 때도 사용되었습니다(사 16:8 ; 24:17).
특히 사람에게 적용될 때는, 주로 소망이 없는 암울한 상태를 가리킵니다(사 19:8 ; 호 4:3).
제사를 드리려는가. - 이 문구에 대해서는,
ⓐ 이'제사'를 성벽 재건사업이 마쳐질 때에 드려지는 감사의 제사로 보고 유대 백성이 성벽 재건을 완료할 능력이 없을 것이라는 조롱의 의미로 이해할 수 있으며, 또한
ⓑ '하나님께 제사를 드려 초자연적인 힘으로 성벽을 재건하고자 하는가'라는 식의 빈정댐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Williamson).
하루에 필역 하려는가 - 이것도,유다 백성들을 무능한자들 이라고 하는 조롱 이다.
불탄 돌을 흙 무더기에서 다시 일으키려는가. - 이것은 유다 백성들이 성벽 재건에 사용할 석재(石材)를 확보 할 수 없을 것이라는 조롱입니다(Rawlinson, Fensham).
⓷ 산발랏에 이어 암몬 사람 도비야가 나서서 유다 사람들을 조롱합니다(3절).
“[3] 암몬 사람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이르되 그들이 건축하는 돌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하더라 ”
도비야는 곁에 있다가. - '도비야'가 산발랏의 측근 혹은 직속 참모였음을 보여줍니다.
성벽은 여우가 올라가도 곧 무너지리라. - '여우'로 번역된 히브리어 '슈알'구약에서 7회 나오며(삿 15:4 ; 시 63:10 ; 아 2:15 ; 애5:18 ; 겔 13:4), '쟈칼'로도 번역될 수 있습니다.
쟈칼이 주로 무리를 지어 다니는 반면 여우는 대개 혼자 다닌다는 점을 감안할 때, 본문에서는 개역 성경의 번역대로 '여우'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다면 도비야는 한 마리의 여우가 밟아도 성벽이 무너질 것이라고 조롱한 셈입니다.
일반적으로 성벽은 훌륭한 공성(攻城) 무기로 오랫동안 공격한 후에야 무너질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것은 과장된 조롱임이 분명합니다.
(2) 느헤미야의 기도(4~5절)
“[4] 우리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우리가 업신여김을 당하나이다 원하건대 그들이 욕하는 것을 자기들의 머리에 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5] 주 앞에서 그들의 악을 덮어 두지 마시며 그들의 죄를 도말하지 마옵소서 그들이 건축하는 자 앞에서 주를 노하시게 하였음이니이다 하고”
본절과 같은 탄원적 기도는,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 그분의 뜻대로, 그리고 그분의 이름으로 수행하는 사업이 원수들에 의해서 멸시되고 있었던 상황에서 드려지고 있다는 점에서 실로 시의(時宜) 적절 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5:19 ; 9,14 ; 13:14,22,29,31 ;시 69:22-28 ; 79:12 ; 109:6-20).
우리가 업신여김을...돌리사 노략거리가 되어. - '업신여김을'(부자)은 '조롱하다' 혹은 '모욕하다'의 의미이며'노략거리'(비자)는 '전리품'을 뜻 합니다.
여기서 본 저자 느헤미야는 이처럼 발음이 매우 유사한 두 개의 단어를 사용하여 말의 유희(Word play)를 살리고 있습니다.
즉, 느헤미야는 사마리아 사람들의, '부자'라는 행동, 즉 그 원인으로 말미암아 '비자'라는 불행, 즉 그 결과에 도달되기를 간절히 염원하고 있는 것입니다(Fensham).
이방에 사로잡히게 하시고. - 이것은 고대 중근동 민족들에게는 가장 고통스러운 환난이었을 것입니다.
사마리아 사람들 역시 그와 같은 불행한 과거가 있었던 민족입니다(스4:9,10).
그 악을 덮어 두지 마옵시며. - 여기의 '덮어두지'(카사)는 죄의 용서를 가리킵니다. 이와 유사한 표현이 렘 18:23 에도 나옵니다.
그러나 우리는 느헤미야가 예레미야서를 인용한 것이라고 단정할 필요는 없을 듯합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표현은 예레미야 시대나 느헤미야 시대에 공히 익숙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Fensham).
(3) 중단 없는 공사(6절)
“[6]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결되고 높이가 절반에 이르렀으니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성을 건축하여 전부가 연락(聯絡)되고. - 이것은 예루살렘의 성벽에 의해서 완전히 둘러싸여 졌음을 뜻합니다.
높이가 절반에. - 원문상으로는 단지 '절반까지' 혹은 '중간까지'라는 뜻만 있으므로, 이 말은 성벽의 길이나 넓이에도 적용될 수 있으나 높이의 의미로 이해하는 것이 가장 무난하겠습니다.
즉, 성벽이 원래 계획했던 것의 반 정도의 높이로 쌓여졌었음을 가리킵니다(Rawlinson,Fensham).
이는 백성이 마음 들여 일을 하였음이니라. - 문자적으로는 '역사할 마음이 있었다'의 뜻으로서, 참여자들의 자발적이고 헌신적인 마음 자세가 성벽 재건 사업이 크게 진척 될 수 있게 된 중요한 원인이었음을 시사합니다.
(4) 대적들의 반응(7~8절)
⓵ 대적들은 다 같이 모여 또 다른 음모를 꾸밉니다(7절)
“[7]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들과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이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그 허물어진 틈이 메꾸어져 간다 함을 듣고 심히 분노하여 ”
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이방인들의 적대감이 점증되고 있었듯이(1절), 적대감을 품고 있던 이방인들의 숫자도 급격히 많아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여기 나오는 이방 세력에 대해서는 본장 강해의 지도, '성벽 재건을 방해한 네 민족들'을 참조하라.
산발랏과 도비야 - 이에 대해서는 2:10 주석을 참조하라.
아라비아 사람들. - 이들은 페르시아가 중동을 제패했을 무렵에 팔레스틴의 동부인 요단 동편과 남부인 네게브 지방을 거주지로 삼기 시작했었습니다.
바로 이 족속의 한 분파를 다스리던 자가 '게셈'이었습니다(2:19).
암몬 사람. - 이들은 그 당시 요단의 동쪽지역 및 심지어는 요단의 서쪽 강변에서도 살던 민족이었습니다.
아스돗 사람.-이들은 블레셋 족속들이 거주했던 지역 전반에 걸쳐서 살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이 중수되어. - 본절의 '중수되어' (아루카)는, 그 어근 '아라크'의 뜻이 '연기하다' 혹은 '참다'인 것과는 달리 '상처의 치유' 혹은 '상처 위로 새 살이 돋아나는 것'을 가리킵니다(사 58:8 ; 렘 8:22 ; 30:17 ; 33:6).
건축과 관련한 이러한 표현은 대하 24:13에서도 나타나는 바, 이는 일반적으로 두루쓰인 관용적 문구인 듯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표현에는 예루살렘의 번영을 기원하는 느헤미야의 각별한 염원이 담겨 있음이 분명합니다.
⓶ 그들은 함께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곳을 치고 요란하게 할 것을 결의합니다(8절).
“[8] 다 함께 꾀하기를 예루살렘으로 가서 치고 그 곳을 요란하게 하자 하기로 ”
다 함께 꾀하기를. - 여기서 '꾀하기를(카솨르)은 '묶다' 혹은 '음모하다' 등의 의미를 갖는 동사로서, 어떤 질서 체계를 깨뜨리거나 혹은 어떤 대상을 망하게 할 목적으로 집단적인 이기심에 따라 배반하는 행위를 가리킬 때 많이 사용되었습니다(삼상 22:8 ; 왕상 16:16 ; 대하 25:27).
요란하게 하자(라아소트 로 토아)는 문자적으로 '그것(혹은 그)에게 상처를 입히다'의 의미입니다.
여기서 '그에게'(로)의 '그'는 남성 단수라는 점에서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벽 재건 사업을 주도하고 있던 느헤미야를 가리키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만일 예루살렘을 가리킨다면 '그'는 여성 단수가 되어야 합니다.
한편, 산발랏은 당시 사마리아의 총독이었으므로 느헤미야의 귀한을 허락하는 왕의 조서 내용을 잘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오직 성벽 재건 금지령만(스 4:21-23) 내세우며 심지어 무력행사까지 감행하려 했습니다(2절).
이러한 독자적인 무력행사는 명백한 불법 행위였으며 더구나 느헤미야가 합법적 절차에 따라 움직였다는 사실에서 더욱 그러했습니다.
이는 산발랏 일당의 조급함이 어느 정도 였는지를 시사하며 또한 당시 페르시아 제국의 중앙 정부의 통제력의 한계를 보여 줍니다.
(5) 느헤미야의 기도(9절)
“[9] 우리가 우리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들로 말미암아 파수꾼을 두어 주야로 방비하는데”
본절에서 느헤미야는 하나님께 사태의 해결을 부탁함과 동시에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가능한 방책을 강구합니다.
하나님께 간구하면서 동시에 자신에게 주어진 여건을 최선을 다해 활용하고자 하는 느헤미야의 신앙적 자세는 본서 곳곳에서 발견됩니다.
예컨대, '하늘의 하나님께 목도하고 왕에게 고하여'(2:4,5), '하나님이여 들으시옵소서... 이에 우리가 성을 건축하며'(4-6절), '주를 기억하고...싸우라'(14절)등이 그러합니다(Kidner).
(6) 파수꾼을 세워 방비함(10~14절)
⓵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고 비방합니다(10절)
“[10] 유다 사람들은 이르기를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하고 ”
본절에서와 같은 백성들의 낙심은 산발랏 일파의 협박(8절) 때문임이 분명합니다.
흙 무더기가 아직도 많거늘. - '흙 무더기'는 바벨론 군대의 공격 때에 파괴된 성벽과 그 밖의 것들의 잔해를 뜻합니다.
이것들은 성벽이 재건되고 있거나 혹은 재건되어져야 할 곳에 높이 쌓여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짐을 나르는 자의 힘이 다 빠졌으니. - 이것은 성벽 재건에 참여한 백성들의 심신이 매우 지쳐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렇게 된 것은
첫째, 이스라엘 백성의 상당수가 성벽 재건에 참여치 않았음에 따라 참여한 소수의 작업량이 많아질 수 밖에 없었고,
둘째, 일꾼 중에서 파수꾼으로 차출된 사람이 있었으며,
셋째, 게다가 산발랏을 위시한 대적자들의 위협이 날로 심해져갔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을 건축하지 못하리라. - 본절과 6절 내용과의 조화를 위해, 어떤 학자들은 원문 상으로 본장 6절까지가 3장에 포함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7절 이하의 내용이 6절 내용보다 시간상 앞선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굳이 그렇게 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보다는 오히려,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적들의 조롱에도 불구하고 느헤미야의 주도하에 거의 절반에 달하는 정도의 공사를 이룩했지만(6절) 대적들의 위협이 더욱 살벌해 지자(8절) 큰 불안과 낙담에 빠져버린 것으로 이해하는 것이 더 무난합니다.
⓶ 그들을 살육하고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합니다(11,12절)
“[11] 우리의 원수들은 이르기를 그들이 알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가 그들 가운데 달려 들어가서 살륙하여 역사를 그치게 하리라 하고 [12] 그 원수들의 근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도 그 각처에서 와서 열 번이나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하기로 ”
이 부분은 느헤미야가 파수대를 더 보강할 수밖에 없었던(13절) 절박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 원수들의 근처에 거주하는 유다 사람들. -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북쪽으로는 산발랏을 위시한 사마리아 사람들, 동쪽으로는 암몬 사람들, 그리고 남쪽으로는 아라비아 사람들, 또한 서쪽으로는 아스돗 사람들이라는 대적들에 의해 둘러싸여 있었습니다(7절).
따라서 본절의 '유다 사람들'은 유다 땅의 외곽 지역에 거주하던 백성들입니다.
너희가 우리에게로 와야 하리라. - 유다 땅의 변경에 살던 백성들 중 성벽 재건에 참여치 아니한 사람들은 산발랏 등의 군사적 움직임에 불안을 느낀 나머지 그들의 공세를 방어할 요량으로, 성벽 재건에 참여했던 사람들을 자신의 고향으로 데려가려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실 산발랏 일당의 계략이었습니다.
즉, 대적들은 유다 변경에 사는 사람들로 하여금 불안감을 느끼도록 만들고, 그래서 그들로 하여금 성벽 재건에 참여하는 사람들을 데리고 가게 해서 성벽 재건을 중단하게 하려는 의도를 갖고 있었던 것입니다.
⓷ 느헤미야는 파수꾼을 세워 방비합니다(13~14절)
“[13] 내가 성벽 뒤의 낮고 넓은 곳에 백성이 그들의 종족을 따라 칼과 창과 활을 가지고 서 있게 하고[14] 내가 돌아본 후에 일어나서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하였느니라”
성벽 뒤의 낮고 넓은 곳에...서 있게 하고. - 이같이 한 이유는 '성벽 뒤의 낮고 넓은 곳'은 비록 성벽이 일부 쌓여있기는 했지만 그 지형적 특성으로 인하여 적의 침투가 예상되는 취약 지점이었던 때문입니다.
또한 유다 백성들을 노출된 곳에 세움으로써, 산발랏 일당에게 일전 불사(一戰不辭)의 군사적 대응 능력을 보여주려는 것도 또 다른 이유가 될 것입니다.
여기서 '낮고'(미타흐티요트 라마콤)는 문자적으로 '가장 낮은 장소 쪽에' 의 뜻입니다. 그리고 '넓은 곳'(체히힘)은 헐벗은 언덕이나, 평탄하고 장애물이 없이 노출된 장소를 뜻합니다(Edwin Yamauchi, Keil).
또한 '성벽 뒤 '는 성벽의 예루살렘 성읍 쪽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서게 하고'(아아미드)는 '모시다' 혹은 '서다' 등의 뜻을 갖는 동사'아마드'의 사역형으로서, 특정한 직책을 수행케 하기 위하여 일정한 장소 혹은 지위에 있게 하는 것을 주로 가리킵니다(9절 ; 삿 20:28 ; 왕상 12:6 ; 왕하 9:17;슥4:14).
종족을 따라. - 이것은 군사 조직 내의 효율성을 증대케하는 효과가 있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같은 '종족' 혹은 '씨족' 끼리는 협조가 더욱 원활히 이루어질 수 있었겠기 때문입니다.
칼과 창과 활. - '칼'은 이스라엘 역사상, 근접전(近接戰)이 벌어졌을 때 가장 많이 사용됐던 중요한 무기였습니다(Fensham).
또한 '창' 은 가까이 있는 적을 찌르는 데 사용됐으며 '활' 은 약 600m의 사정 거리를 갖는 강궁(强弓)과 약 270m에서 360m 정도의 사정거리를 갖는 경궁(經弓) 모두를 가리킵니다(Y. Yadin, R. Go-nen).
내가 돌아본 후에 - '돌아본'에 대해서는 느헤미야가 백성들의 염려를 살폈다는 견해(Fensham,Schultz)가 가장 타당성이 있습니다.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 - '귀족'(호림 )은 분명하지는 않지만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어느 정도의 권세를 갖고 있었던 사람들이었던 것 같습니다(2:16 ; 5:7 ; 13:17).
한편, '민장'(세가님)은 다른 곳에서는 '방백'으로 번역된 단어입니다(2:16).
그리고 '남은 백성'은 앞의 '귀족'과 '민장'계층을 제외한 일반 백성들을 뜻합니다.
지극히 크시고 두려우신 주를 기억하고. - '지극히 크고'(가돌)가 하나님에게 적용될 때는, 달리 비교할 수 없는 강력한 능력을 강조하는 형용사로 사용되었습니다(출 18:11 ; 대상 16:25 ; 5 시 76:1 ; 86:10).
한편,'두려우신'(노라)은 '두렵다' 혹은' 두려워하다'의 뜻이 있는 '야라'의 수동형분사로서, 많은 경우에서 종말론적으로 악인들에게 진노를 쏟아 부으시는 하나님의 진노를 강조합니다(시 1456:6 ; 욜 2:11 ; 습 2:11: 말 4:5).
따라서 본 문구는 모든 악한 자들을 권능의 하나님께서 대신 벌하여 주실 것을 믿고 백성들은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에만 충실하면 된다는 뜻입니다(민 14:9 ; 신 1:29, 30 ; 삼하 10:12).
느헤미야는 옛 선조들이 믿음과 자유를 지키기 위해 대적들과 용감하게 싸웠던 사실, 특히 하나님이 친히 그 백성들을 위해 대신 싸우사 승리를 가져다주신 엄연한 역사적 사실(출 14:13,14등)을 믿음의 눈으로 확고히 돌아보았을 것입니다.
비록 당시의 성벽 파수 대는 제대로 훈련을 받지 못했고 실전 경험도 없는 군대였으며 그 무기 또한 상대적으로 열세하였지만,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이 느헤미야의 확신이 었다고 이해됩니다(Williamson).
너희 형제와 자녀와 아내와 집을 위하여 싸우라. - 이미 느헤미야는 파수대를 종족 단위로 편성한 바 있습니다(13절).
자신의 가족과 친척을 위해 싸운다는 비장한 각오야 말로 숫적인 열세를 메꾸어 주는 큰 활력이 되었을 것입니다.
2. 재건을 위해 하나가 된 공동체(15~23절)
1) 두려움을 극복하는 전략(15~20절)
(1) 하나님이 그들의 꾀를 폐하므로 스스로 계획을 철회한다(15절)
“[15] ○우리의 대적이 우리가 그들의 의도를 눈치챘다 함을 들으니라 하나님이 그들의 꾀를 폐하셨으므로 우리가 다 성에 돌아와서 각각 일하였는데 ”
대적이 우리가 그들의 의도를 눈치 챘다 함을 들으니라. - 이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느헤미야의 지휘 하에 무장을 한 채 조직적으로 파수하는 등 철저한 방어 체계를 갖췄다는 사실을 대적이 첩자들을 통해 들었다는 뜻입니다(13,14절).
대적들의 계획은 기습 공격으로 단숨에 살륙을 감행하거나(11절) 무력의 과시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성벽 재건의 의욕을 상실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의 주도하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더욱 강하게 무장하여 적극적으로 맞서는 모습을 보이게 됨으로써, 대적들의 계획은 오히려 무산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실제로 무장한 병사들이 강한 정신력으로 지키는 성읍을 공약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며, 더욱이 전투가 장기화되면 그 분쟁의 소문이 아닥사스다 왕의 귀에까지 들어가게 될 것이고 결국 산발랏 일당은 왕명을 거스린 죄과까지 치러야 할 터였으므로 그들은 애초의 계획을 포기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꾀를 폐하셨으므로. - 문자적으로는 '하나님이 그들의 계획을 부수셨다' 의 뜻입니다.
이와 매우 유사한 표현이 스 4:5에서 발견됩니다.
그러나 거기서는 오히려 이스라엘의 원수에 의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계획이 좌절됐음을 말합니다.
이처럼 느헤미야가 에스라서에서 사용된 독특한 표현을 여기서도 다시 사용한 까닭은, 상황이 완전히 역전되었음을 부각시키려는 의도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2) 수하에 사람들을 둘로 나누어 절반은 무장한 상태로 현장을 지키게 하고, 절반은 무장한 상태로 일을 하게 합니다(16절)
“[16] 그 때로부터 내 수하 사람들의 절반은 일하고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민장은 유다 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
비록 산발랏이 쳐들어오려고 했던 긴박한 상황은 지나갔지만, 그래도 느헤미야는 여전히 잔존했었던 일말(一抹 )의 공격 가능성으로 인하여 경계 태세를 늦추지 않았음을 보여줍니다.
그 때로부터 - '그 때'는 문자적으로 '바로 그 날'의 의미로서, 느헤미야가 산발랏의 음모를 감지하여 백성들을 무장시킨 그 날(9, 13절), 산발랏이 자신의 음모가 수포로 돌아가서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 계획을 포기한 '그 날'(15절)모두를 뜻합니다.
절반은 갑옷을 입고 창과 방패와 활을 가졌고. - 이처럼 느헤미야가 자신의 수하 사람들에게 파수 의무를 보다 많이 맡긴 까닭은 그들이 다른 백성들보다 훈련이 많이 되어 있었고, 그들이 보다 훌륭한 무장을 갖추고 있었던 때문이었습니다.
민장(民長)은 유다온 족속의 뒤에 있었으며. - 본절의 '민장'(솨림)은 군사적조직체로서의 유다 백성들의 지도자였습니다(Willamson, 신 9:9 )
그런데 이스라엘이 역사적으로 항상 지파 내지는 씨족 중심으로 군대를 조직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13절 ; 민 2:1-34), 여기의 '민장'는 한 씨족의 지도자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아무튼 이들은 백성들 사이에서 연락을 담당했을 것이며 유사시에는 백성들을
재건 체제로 즉각 전환시키는 책임을 맡은 자들로 짐작됩니다(Wllamson).
(3) 일하는 사람들도 무장한 상태에서 일을 하게 합니다(17,18절)
“[17] 성을 건축하는 자와 짐을 나르는 자는 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18] 건축하는 자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건축하며 나팔 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
일반 백성들은 느헤미야의 수하 사람과는 달리 성벽 재건에 전념하되 유사시에는 적을 물리치는 데 동원될 준비가 되어 있음을 보여줍니다.
성을 건축하는 자. - 원문상 16절의 '유다 온족속' 을 수식하는 문구로 봐야합니다(NIV,Williamson,Fensham).
짐을 나르는 자. - 이들은 자재(資材)를 운반하거나 흙과 무너졌던 성벽의 잔해를 치우는(10절)등의 조역(助役)을 담당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자재 운반 등의 일을 위해서 성 밖에서도 일을 할 필요가 있었다는 점에서 작업 환경은 '건축하는 자'에 비해서 보다 열악(劣惡) 했을 것이 뻔합니다.
각각 한 손으로 일을 하며 한 손에는 병기를 잡았는데. - 히브리 원문에는 '각각'에 해당되는 단어가 없습니다.
그런데 '짐을 나르는 자'가 이처럼 한 까닭은
⓵ 앞에서 언급했듯이 그들은 자신들의 작업의 성격상 성 밖에서도 일을 해야만 했던 관계로 호신(護身)을 위한 노력이 필요했으며,
⓶ 또 그 일의 성격상 한 손에 병거를 잡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Fensham, Rawlinson).
한편, '병기'(솰라흐)는 우가릿 문서에서도 발견될 정도로 오래된 것으로서, ⓵ 멀리 던질 수 있는 창, ⓶ 돌을 날려 보낼 수 있는 무기를 모두 의미합니다.
특히 본절의 '짐을 나르는 자'들이 주로 흙이나 무너진 성벽의 잔해 위에서 일했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⓶ 것이 보다 타당할 것입니다.
건축하는 자는 각각 허리에 칼을 차고. - '건축하는 자'는 앞의 '짐을 나르는 자'와는 달리 성벽을 쌓는 일을 담당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두 손을 모두 사용해야만 하는 일의 성격 때문에 '칼'을 허리에 찰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팔부는 자는 내 곁에 섰었느니라. - 이것은 위급한 상황이 벌어졌을 경우, 그것을 예루살렘 외곽에 흩어져서 성을 쌓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알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준비입니다(19,20 절).
이같이 나팔을 불어서 위급함을 알리는 연락체계는 고대국가들에서는 꽤 보편적으로 이용되었습니다.
(4) 나팔수를 두어 위기 상황을 효과적으로 알릴 수 있는 신호체계를 세웁니다(19,20절)
“[19] 내가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에게 이르기를 이 공사는 크고 넓으므로 우리가 성에서 떨어져 거리가 먼즉 [20] 너희는 어디서든지 나팔 소리를 듣거든 그리로 모여서 우리에게로 나아오라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리라 하였느니라 ”
느헤미야가 나팔 부는 자를 자신의 곁에 세워둔(18절) 이유가 언급되고 있습니다.
귀족들과 민장들과 남은 백성. - 14절 ; 2:16 주석을 참조하라.
이 공사는 크고 넓으므로. - 예루살렘 성벽 재건 공사가 성읍의 둘레 전체에서 동시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던 사실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성에서 떨어져 거리가 먼즉. - 이것은 차라리 '우리가 성벽을 따라서 각 사람들로부터 나뉘어져 있다'로 번역함이 더 나을 것입니다(Fensham).
결국 이는 백성들이 분산되어 있기 때문에 어느 한 쪽으로 적들의 대대적인 공격이 가해져 올 때 거기에 대응할 수 없음을 염려하는 문구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싸우시니라. -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싸우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 대신 싸우신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당신의 도구로 삼아서 원수와 싸우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이같이 하시는 이유는, 거룩한 성이 방어되고 또한 당신의 백성이 안전하게 사는 것이 철저하게 당신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의 뜻을 좇아 싸우는 이스라엘 백성의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 곧 성전(聖戰)일 수밖에 없습니다(수5:13-5 주제 강해, '성전(聖戰)' 참조).
그리고 이와 같은 신앙을 가진 자들은 아무리 우수한 무기와 막강한 군대를 보유하고 있어도, '여호와께서 성을 지키지 아니하시면 파숫군의 경성함이 허사로다'(시 127:1)라는 시편 기자의 고백에 전적으로 공감하기 마련입니다(Kidner).
2) 백성들의 헌신(21~23절)
“[21] ○우리가 이같이 공사하는데 무리의 절반은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창을 잡았으며 [22] 그 때에 내가 또 백성에게 말하기를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지니 밤에는 우리를 위하여 파수하겠고 낮에는 일하리라 하고 [23] 나나 내 형제들이나 종자들이나 나를 따라 파수하는 사람들이나 우리가 다 우리의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각각 병기를 잡았느니라”
16절의 내용이 약간 다른 모양으로 다시 언급되고 있습니다.
무리 - 16절의 '수하 사람'과 동일할 것입니다.
동틀 때부터 별이 나기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랜 시간 동안 노역을 감당했었음을 강조하는 시적(時的) 표현입니다.
아울러 이는 백성들의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을 암시한다 고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마다 그 종자와 함께 예루살렘 안에서 잘지니. - 느헤미야가 이와 같이 명령을 한 것은, 아마 외지(外地)에서 공사를 위해 온 사람들, 특히 예루살렘 인근에 살고 있던 사람들은 저녁에 일이 마쳐지면 자기의 집으로 가서 자려는 경향이 있었던 때문으로 짐작됩니다.
만일 백성들의 뜻대로 방치할 경우에는 심각한 문제들이 야기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문제점들이란
(1) 백성들이 고향에 왕래하는 도중 적의 기습을 받을 가능성,
(2) 백성들이 고향으로 돌아가서는 예루살렘의 작업장으로 복귀하지 않을 가능성,
(3) 아침마다 집에서 돌아오는 사람들 때문에 야기되는 혼란과 공정(工程)의 답보(踏步)현상,
(4) 고향이 멀어서 저녁마다 갈 수 없는 사람과 가까운 데 고향이 있어서 저녁마다 집으로 갈 수 있는 사람 사이에 위화감이 생길 가능성,
(5) 밤마다 발생할 예루살렘 시내의 공동화(空洞化) 현상으로 인해 적의 야간 습격이 있을 가능성,
(6) 위의 모든 문제들로 인해성벽 재건 공정이 늦어질 가능성 등을 들을 수 있습니다.
그 종자. - 이들은 16절의 '수하 사람'과는 다릅니다.
만일 느헤미야가 여기서 자신의 '종자'를 언급하는 것이라면 16절에서 처럼 '내 종자'라고 했을 것입니다.
따라서 본문의 '그 종자'는 백성들이 자신의 고향에서 데리고 온 '노예'일 것입니다(Rawlinson).
실제로 스룹바벨과 함께 귀환했던 백성들에게는 여섯 명당 한 명씩의 노예가 있었습니다(스2:64, 65).
내 형제들. - 이는 느헤미야의 친 형제들일 가능성이 많습니다(1:2 ; 7:2).
종자들 (네아라이). 문자적으로 '나의 종자들'이므로 16절에서 언급된 느헤미야의 직속 부하들을 가리킵니다.
나를 따라 파수하는 사람들. - . '나를 따라'(아하라이)는 주종(主從)의 관계에 대해서 흔히 사용되는 단어입니다(삼하7:8 ; 왕상 11:6 ; 16:22 ; 렘 7:6 ).
따라서 '파수하는 사람들'은 '종자들'이외에 느혜미야를 전심으로 추종하던 무리 들이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 -이것은 다급한 상황에 신속히 대처하기 위한 준비이기도 했지만 더 나아가서는 백성들에게 사태의 심각성을 일깨우기 위한 하나의 노력이었을 것입니다.
물을 길으러 갈 때에도 각각 병기를 잡았느니라. -대부분의 학자들은 이 문구(이쉬쉴호 하마임)가 잘못됐다고 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한 몇 가지 견해들이 제시되었습니다. 거기에는
(1) 여기의 '물'(하마임)이 '오른 손'(하야민)의 오류로 보고 '그의 무기는 그의 오른 손에 있었다'로 번역해야 한다는 견해(Fensham,Williamson, Keil). (2) 이 불완전한 문구를 오류로 보지 않고 무리하지만 '물로 각자의 병기틀 씻었다'로 번역해야 한다는 견해(Rawlin-son),
(3) 어떠한 단어가 탈락된 것으로 보고 '각 사람이 물을 먹으러 갈 때에도자기의 무기를 가졌다'로 번역해야 한다는 견해(NIV),
(4) 이 문구를 앞의 '그 옷을 벗지 아니하였으며'의 종속절로 보고, 또한 '기계'가 '그릇'을 뜻한다고 보아 '비록 각 사람이 자신의 물 그릇을 가졌지만'으로 번역해야 한다는 견해(J. P. Green),
(5) 역시 이 문구를 바로 앞 구절에 종속되는 것으로 보고, '씻기 위해 옷을 벗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으로 해석하는 견해(KJV)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같이 다양한 견해 중에서
첫째, 맛소라 본문에 최대한 근거하려고 한다는 점
둘째, 그 문맥을 고려해보건대,(1)의 견해가 가장 무난한 것 같습니다.
3. 공동체 내부의 위기(5:1~5절)
느헤미야와 귀환 공동체가 경험했던 또 하나의 위기를 소개합니다.
그것은 빈곤으로 인한 공동체 내부의 분열입니다.
1) 공동체 내부에 갈등이 일어 납니다(1절)
“[5:1] 그 때에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는데 ”
외부적으로 산발랏 일당의 방해 공작이 점점 거세어지는 와중에, 이보다 더 심각한 문제가 이스라엘 민족 내부에서 독버섯처럼 자라고 있었습니다.
본장은 이렇듯 심각한 사회, 경제적 내우(內憂)를 느헤미야의 과단성있는 결단과 주도하에 극복해가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그들의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 '차아카트 게돌라', 즉 '큰 부르짖음'은 성경에서 대개 극한적인 고통의 결과로서 나타납니다(창18:21;27:34;출 11:6;12:30).
따라서 본 문구는 일부 백성들이 심각한 환난 가운데 있었음을 강력히 시사합니다.
또한 본절에서 여자가 부르짖음의 주체(主體)로 나오고 있는 것은, 문제의 심각성을 반영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특히 백성의 환난이 한 가정의 생계 문제와 직결된 절박한 것이었음을 보여줍니다(왕하 4:1;6:26;8:3).
그들의 형제인 유다 사람들을 원망하는데. - '원망하는데'(엘)는 '-에 대해서' 혹은'-을 대항하여'의 뜻으로서 앞의 '백성'과 '그 아내'가 '형제 유다 사람'을 향하여 부르짖었음을 말해줍니다.
한편, 본절의 '형제인 유다 사람'은 구체적으로, 가난한 백성을 상대해서 고리 대금(高利貸金)을 한 사람들을 가리킵니다(7절).
여기서 느헤미야가 그들을 굳이 '형제인 유다 사람'이라고 한 까닭은, 그 고리 대금업자들이 피해자와 동족들이라는 점을 부각시켜서 그들의 몰인정성을 강조하려는 의도 때문이었습니다.
사실 동족들에 대해서 고리대금을 하는 일은 율법도 금하는 일이었으며(레 25:35-37;신 23:19), 또한 상식적 판단으로도 지탄을 받아 마땅했습니다.
2) 원망의 내용(2~5절)
(1) 부양가족이 많은 백성들의 식량 부족 문제(2절)
“[2]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와 우리 자녀가 많으니 양식을 얻어 먹고 살아야 하겠다 하고 ”
2-4절에 나오는 불평은 모두 심각한 빚 문제와 연관된 것이며, 이러한 빚더미에 눌리게 된 이유나 배경은 세 가지 유형으로 달리 나타납니다.
문맥상으로 볼 때 여기서 열거되는 불평들은 몇몇 개인의 사례들이라기 보다는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두루퍼져 있었던 일반적인 문제를 대표한 사례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Williamson).
본절은 고리 대금업자를 원망한 빈민들의 첫 번째 유형입니다.
그들은 '가족수(家族數)'가 많음으로 인하여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양식을 얻어 먹고 살아야 하겠다. - 빈민들이 반드시 돈만을 빌린 것이 아니었음을 시사해줍니다.
그들은 돈 뿐만 아니라 '곡식'과 '새 포도주', '기름'도 빌렸었습니다(11절).
(2) 식량을 구하기 위해 밭과 재산을 저당 잡혀야 하는 경우(3절)
“[3]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가 밭과 포도원과 집이라도 저당 잡히고 이 흉년에 곡식을 얻자 하고 ”
고리 대금업자를 원망한 빈민들의 두 번째 유형입니다.
본절에 빚의 원인으로서 언급된 '흉년'은 사실 첫 번째 유형(2절)과 세 번째 유형(4절)의 빈민들이 빚을 지게 된 근본적 혹은 간접적 원인이 됐을 것이 분명합니다.
이러한 흉년의 시기에 도탄에 빠지는 자들은 대다수의 가난한 백성들이었습니다. 반면에 부요한 자들은 창고에 저장된 곡식이 있었으므로 어지간한 흉년에도 버틸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들 중에서 그것을 고액에 팔아 넘겨 폭리를 취하는 자들이 생겨났으며, 결국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밭과 포도원과 집. - 이 세 가지는 고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생명 만큼이나 귀중히 여겨지던 전재산(全財産)이었을 것입니다.
(3)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습니다(4절)
“[4] 어떤 사람은 말하기를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도다 ”
고리 대금업자를 원망한 빈민의 세 번째 유형으로서 그 원인을 '세금'으로 언급하고 있습니다.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어 왕에게 세금을 바쳤도다. - 문자적으로는 '밭과 포도원에 대한 왕의 세금을 위하여 돈을 꾸었다'는 뜻입니다.
따라서 이 부분에 대한 개역 성경의 번역은 약간 잘못이 있습니다.
한편, '밭과 포도원에 대한 왕의 세금'은 그 땅에서의 평균 산출량에 근거해서 거둬들였던 토지세의 일종이었습니다(Fensham, Williamson).
이외에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페르시아 정부에게 또 다른 세금들을 바쳤습니다(스 4:13).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른 민족보다 세금 부담이 더 과중했기 때문에 곤경에 처했다고는 볼 수 없습니다(Rawlinson).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이 납세 문제로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은, 이스라엘 사회의 경제적 형편이 극도로 피폐했던 때문이었습니다.
이 같은 경제적 형편에 처하게 된 것은 흉년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입니다(3절). 물론 백성들이 성벽 재건 공사에 동원되어 농사를 짓는 일 등의 경제 활동을 영위치 못한 것도 한 이유였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공사가 불과 '오십이 일'만에 끝났음을 감안한다면(6:15) 성벽재건 사업은 이스라엘 경제를 피폐하게 만든 중요한 요인이 결코 아니었습니다.
(4) 인신매매가 이루어 졌습니다(5절).
“[5]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우리 자녀도 그들의 자녀와 같거늘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된 자가 있고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나 우리에게는 아무런 힘이 없도다 하더라”
본절의 내용은 위의 세 가지 유형의 빈민들(2-4절) 모두에게 공통적으로 해당될 것입니다.
즉, 본절은 이들이 빚을 갚지 못함으로써 다다르게 된 극단의 상황인 것입니다.
우리 육체도 우리 형제의 육체와 같고. - 이것은 채무자나 체권자 모두 동족임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결국 이 같은 말을 통해서 가난한 채무자들은 채권자들의 무자비함을 확연히 드러내려고 합니다(1절).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 사실 채권자들이 빚을 갚지 못하는 채무자들의 자녀를 노예한 경우에는 동족의 자녀를 노예로 데려올 수도 있음을 말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렇습니다.
경제적인 곤경에 처했을 경우 유대인들은 가족 구성원을 담보로 삼아 돈을 빌릴 수 있었습니다.
이 경우에 돈을 기한 내에 갚지 못하면 채무자의 딸이나 아들, 그의 아내, 심지어 채무자 자신이 채권자의 종으로 봉사해야 했으며(레 25:39, 40), 제7년째 되는 해에는 다시 풀려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신 15:12-18).
따라서 만일 채권자들에게 죄를 묻는다면, 그들이 가난한 자들로부터 고리(高利)를 취했다는 것일 것입니다(7절).
우리 딸 중에 벌써 종 된 자가 있고. - 본절에서 '종 된 자가 있고'는 문자적으로 '종으로 복속됐으나'의 뜻입니다.
그런데 이에 해당하는 히브리어(니크바쇼트)가 '성적(性的)으로 정복하는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는 점에서(에 7:8) 이는
⓵ 채권자의 성적 욕구 해결을 위한 대상이 되는 일(Williamson).
⓶ 채권자의 첩이 되는 일(Fensham)등을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사실 빚 때문에 팔려간 여종은 남종과는 달리 성적(性的)인 문제에 있어서 채권자의 처분을 따라야 했습니다(출 21:7 이하).
한편, 여기서 주목을 끄는 것은, 채무자의 자녀들이 채권자의 노예가 된 것이, 빚을 갚지 못해서 소유물을 빼앗긴 다음에 이뤄졌다는 사실입니다.
즉, 채무자들이 빚을 갚지 못하는 경우 일차적으로는 토지 등의 재산을, 그 다음에는 자녀들까지 채권자에게 빼았겼던 것입니다.
지금까지 외부의 압력을 잘 이겨내며 과업을 진행하던 느헤미야에게 공동체 내분이라는 복병이 나타난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이제 사회-경제적 불평등으로 생긴 내부의 불평, 원망의 문제를 지혜롭게 처리해야만 합니다.
그러치 않으면 내부의 갈등과 분열로 공동체가 큰 위기에 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느헤미야와 같이 비웃음을 물리치고, 두려움을 물리치고, 싸울 때는 싸워야 합니다. 비웃음과 두려움을 물리치고 믿음으로 당당하게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반대자들은 성벽 재건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조롱하다 나중에는 분노하고 결국은 무력을 동원합니다(1~3,7,8절).
이들은 성전 공동체가 무너진 후에 그 땅에 자기 권력을 세운 세속의 권세들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선포할 때 세상은 비웃고 조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가 현실이 되면 분노하며 도발합니다.
주님의 교회는 그 숭고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삶으로 구현했기 때문에 박해를 받아왔습니다. 우리의 교회는 어떻습니까?
2) 성벽 공사는 내부와 외부에서 위기를 맞습니다(10,11절).
내부에서는 회의적인 노래가 유포되어 사기를 꺾었고, 외부에서는 원수들이 급습할 계획을 세웠습니다.
교회를 갱신하는 일에는 넘어야 할 산이 반드시 있습니다.
그 산은 내부에도 있고 외부에도 있습니다.
더구나 위기는 홀로 오지 않고 자주 겹쳐 옵니다.
크고 작은 어려움에 주저앉지 말고 양보하거나 타협하지도 말아야 합니다.
3) 위기에 대처하는 무기는 ‘기도’와 ‘철저한 대비’입니다(4,5,9,13~15절).
느헤미야는 기도만 하지 않았고, 기도 없이 준비만 하지도 않았습니다. 적들의 조롱을 신뢰의 기도로 물리치고, 원수의 음모를 철저한 대비로 무력화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그들의 꾀를 폐하셨다”고 고백합니다.
4) 음모가 좌절되었다는 소식을 듣고도 느헤미야는 경계를 늦추지 않습니다(15~23절).
절반은 성벽 공사를 하고, 절반은 경계를 서도록 했습니다.
백성들에게만 짐을 지우지 않고, 자신은 더 애쓰고 수고하는 자리로 내려갑니다.
그에게는 하나님이 한편이 되어 싸우신다는 확실한 믿음과 옷을 벗지 않는 지극한 헌신이 있었습니다.
공동체를 세우는 일에는 이런 지도자의 믿음과 헌신이 꼭 필요합니다.
5) 공동체의 재건은 성벽을 쌓는 외형의 재건만이 아닙니다(5장 1~5절).
성벽의 재건과 더불어 사람의 재건, 관계의 재건이 따라야 했습니다.
당시 부유한 자들은 가난한 이들의 곤궁한 처지를 이용해 돈놀이를 하고, 토지를 저당 잡고 종으로 삼았습니다.
안에서 정의가 무너지면 밖으로 성벽을 쌓은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기도
공동체-공동체를 위협하는 내부와 외부의 방해를 믿음과 신뢰의 힘으로 이기게 하소서.
열방 _ 덴마크가 최근 공공장소에서의 종교적 의상 착용을 법으로 금지하면서 무슬림을 겨냥한 불공정한 규제라는 비난을 받고 있다.
덴마크 정부와 사회가 무슬림 이민자 공동체를 잘 통합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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