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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고린도전서 2장 1~11절
제목 : 하나님의 지혜와 성령과 복음
우리가 전도할 때에 유식한 말과 지혜로 사람을 감동시켜,
예수를 믿게 하려는 유혹을 받을 때가 많습니다.
뿐만 아니라 말을 잘하여 내가 상대방을 이기면,
그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될 줄로 알고,
어떠하든지 말로서 이기려고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도 그렇게 생각하였던 때가 있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에 오기 전에 아덴에서 복음을 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레오바고에서 유명한 설교를 하게 됩니다.
그때 그는 거기서 과거에 배운 헬라의 학문을 이용하여,
아덴의 철학자들과 변론을 하며 복음을 전했던 것입니다(행17:16~).
그때 바울은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23절)고 자기 지식을 의지하였습니다.
그 결과 아덴 사람들이 바울을 어떻게 평했는가 하면 말쟁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말쟁이라고 까지 말했으나,
바울이 전하는 말로 개종한 사람은 별로였습니다.
그 후에 바울은 아덴을 떠나 고린도에 오게 되었을 때,
바울의 마음은 굉장히 무거웠습니다.
오늘 본문 3절을 보게 되면 그때 바울의 마음의 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3]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내가 너희 가운데 거할 때에”- “내가 너희에게 갔을 때”를 뜻합니다.
“약하며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노라”
바울이 여기서 말하는 “약함”은 육체적인 허약이 아닙니다.
그가 비록 이따금 자신의 육체적인 허약을 언급하지만(고후 10:10),
여기서는 육체가 아닌 마음의 상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바울의 마음이 약하고 두려웠던 것은
그가 고린도에 이르기 직전 아덴에서의 전도에 실패한 경험이 있었고,
고린도가 아덴보다 더 부패하고 타락했고 우상을 섬기는 도시였기 때문입니다.
그의 마음 가운데 어떤 생각이 들었을 까요?
고린도에 가면 내가 어떻게 전도를 할까?
고린도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가장 효과적인 방법으로 복음을 전도 할 수 있을까?
기도하며 방법을 연구하였을 하나님께서 깨달음을 주었습니다.
복음 전도는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이 아닌,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하나님의 지혜를 전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은혜를 받으시기를 소원합니다.
1. 전도는 인간의 말로 전하는 것이 아님(2:1~5)
1) 전도는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전하지 아니합니다(1절)
“[1]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내가 너희에게 나아가” - 이 문구는 문자적으로 “내가 너희에게 나아갔을 때”라는 의미로 바울이 2차 전도여행 당시 약1년 반 동안 고린도에 머무르면서 전도하였을 때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고린도의 수도 아가야에서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 여기서 “증거”는 “복음”을 가리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계시하셨고 그 계시의 중심은 그리스도의 역사였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이 하나님을 말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말하는 것이며,
곧 “십자가의 도”(1:8 주석참조)를 전한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란 지난주에도 말씀드렸지만
십자가를 통하여 인류가 구원받는 진리를 의미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 이 십자가는 미련한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세상은 어떻게 해서든지 이익을 남겨야 되고,
희생이 아니라 자기의 욕구를 채워야 하는 것이고,
성과를 내어야 되는 것이고, 나누는 것이 아니라,
움켜쥐려고 하는 것이 바로 세상인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우리들에게는
십자가의 도 곧 희생과 나눔과 섬김과 베품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볼 때는 미련한 것이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은 십자가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는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놀라운 능력이 된다고 바울은 오늘 저와 여려분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에 대한 태도가 인간의 운명을 결정합니다.
십자가를 미련한 것으로 여기며 무시하는 사람은 멸망하게 되지만,
하나님의 능력으로 믿고 좇는 사람은 구원을 얻습니다.
치유를 받습니다. 용서를 받습니다. 화목케하는 능력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든지 자존심과 자기 의를 버리고,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수용해야 합니다.
전적으로 부패한 인간이 저주와 심판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십자가 보혈 외에 없습니다.
바울은 아덴에서 유창한 철학에 담긴 말과 아름다운 언어를 써가면서 설교를 했습니다. 그러나 소득이 없었습니다. 바울은 느꼈습니다.
2) 복음의 핵심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심”입니다(2절)
“[2]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본절에서 바울은 죄인들을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행 10:37-43).
이것은 바울이 고린도에 가고자 했던 유일한 목적이었습니다.
바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곧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을 가르칩니다.
이러한 그의 가르침이야말로 복음의 핵심입니다.
바울은 ‘복음의 핵심’ 즉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외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합니다.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바울은 그리스도에 대해서만은 깊은 지식을 가졌고 또 가지기를 원했습니다.
바울이 이렇게 다짐한 것은 바울이 회심 때에 겪은 체험과 철학적인 지혜를 동원하여 전도하려다가 실패한 아덴에서의 경험을 배경으로 한 것입니다(행 17:22-34).
바울은 이러한 경험을 통해 그리스도에 관한 지식만이 참이며,
십자가에서 죽으신 그리스도를 전하는 것이 가장 합당(合當)한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우리에게 오직 예수님과 십자가 외에는 우리에게 능력을 주고 우리에게 힘을 주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의 원동력도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입니다.
3) 전도를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였습니다(4절)
“[4]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바울은 전도를 할 때에 세상의 “지혜”로 하지 않았다고 밝힙니다.
-1절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아니하였나니”
-4절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5절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6절 “이 세상의 지혜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생명력있고, 능력있고,
하나님의 붙들린 삶을 살아가는 단 한 가지 원동력은
바로 하나님이 주신 지혜이며 능력입니다.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인간의 이성을 교묘하게 사용하여 유혹하는 말,
곧 인간의 지혜가 상상해 낸 설득조의 말을 의미합니다.
바울은 사람들을 믿음에 복종하도록 함에 있어서,
인간적인 논쟁이나 설득으로 하지 않았습니다.
일반적인 학문에는 그와 같은 논리와 설득력, 그리고 인간의 지혜에서 나온 웅변술과 화려한 말들이 필요할지 모르지만,
그러한 지혜가 부각되면, “십자가의 도”는 헛되게 됩니다.(1:17).
*고전1:17 “그리스도께서 나를 보내심은 세례를 베풀게 하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복음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로되 말의 지혜로 하지 아니함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하려 함이라”
바울은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은 강한 영적인 능력을 나타내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1:18).
바울이 2,3차 지치지 않고 전도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성령님의 능력을 힘입어서 바울이 힘차게 복음을 전도 할 수 있었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성령께서 능력 있게 나타나심에 근거하여 바울이 복음을 전했음을 보여줍니다.
바울은 성령의 나타나심에 의존하여 설교했으므로,
복음을 듣는 자들에게 확신을 주었습니다.
4)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습니다(5절)
“[5]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본절에서는 바울이 왜 인간의 지혜로 된 말을 사용하지 않았는지 그 이유를 설명합니다.
바울이 “성령의 능력” 으로 말미암아 전도하고 가르친 이유는,
우리의 삶의 원동력이 바로 성령의 능력, 하나님의 주신 능력에 의해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바울의 힘, 저와 여러분의 힘은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바로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요, 그 지혜를 다른 말로 하면 십자가를 말하는 것이고,
그 십자가를 다른 말로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지혜(2:6~9)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사람의 철학과 지식 체계로는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감추어졌던 하나님의 지혜를 밝혀 낼 수 없습니다.
그 지혜는 곧 하나님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입니다.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결코 아닙니다(히 11:3).
*히11:3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그런데도 어리석은 사람들은 자신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생각한 것이 전부라 착각합니다.
자신의 제한적인 논리를 절대적인 것으로 착각하고 끝까지 관철하려 합니다. 이 세상 것은 때가 되면 다 사라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지혜와 영원한 것을 추구하며 살아야 합니다.
1) 세상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는 본질적으로 다릅니다(6절)
“[6]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는 지혜를 말하노니 이는 이 세상의 지혜가 아니요 또 이 세상에서 없어질 통치자들의 지혜도 아니요”
“그러나 우리가 온전한 자들 중에서 지혜를 말하노니”
바울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혜'는
'온전한 자'들이 깨닫는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온전한 자'(텔레이오이스)에 대해,
혹자는 영적인 이해에 있어서 성숙한 자를 가리킨다고 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문맥상, 구원받지 못 한자와 대조되는 구원받은 자들
즉 성령에 의해 깨우침을 받는 자들을 가리킨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바울이 전하는 십자가의 도를 미련한 것으로 단정한 자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갓난 아이 된 자들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중생하지 못한 자,
즉 이 세상의 지혜 있는 자(1:20-23)입니다.
따라서 십자가의 도를 지혜로 간주하는 자들은 성령에 의해 깨우침을 받은 모든 믿는 자를 가리킵니다.
바울은 본문을 통해 진정한 의미에서의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나옴을 시사해줍니다.
바울은 본문에서도 자신이 전파하는 지혜는
세상의 것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려 합니다.
2)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7절)
“[7]오직 은밀한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말하는 것으로서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이라”
'오직'은 지혜가 바로 하나님의 지혜임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지혜' 바울은 자신이 전하는 복음이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그 복음을 이해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혜로 말미암는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바울에게 있어서 '비밀'(뮈스테리오)이란,
오랫동안 감취어져 있다가 드러난 것으로(엡 3:3;골 1:26),
이 '비밀'은 인간이 전혀 포착할 수 없는 것으로 하나님의 계시로만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아무리 연구해도 그 비밀을 알 수 없고,
하나님의 사랑도 깨달을 수 없습니다.
“곧 감추어졌던 것인데 하나님이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 만세 전에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결국 이 말은 구원으로 말미암는 모든 유익들을 가리키는 말로서 그리스도께서 마련하신 뛰어난 모든 것과 복스러운 모든 것까지도 포함합니다(롬 5:2).
*롬5:2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 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
바울은 '우리의 영광을 위하여'라고 표현함으로써 하나님의 인자하심을 돋보이게 하고 있습니다.
결국 본절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지혜라 할 수 있는 구속 계획은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하나님의 생각으로 만세전에 이미 구상되었고,
복음을 통해 인간의 구원을 위해 알려진 것임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3)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습니다(8절)
“이 지혜는 이 세대의 통치자들이 한 사람도 알지 못하였나니 만일 알았더라면 영광의 주를 십자가에 못 박지 아니하였으리라”
이 지혜는 너무나 비밀이었고, 세상의 지혜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유대인들도 자기를 구원하러온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밖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을 보여주는 호칭인 '영광의 주'는 바울 서신에서는 본 절에만 나타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강조하는 이유는
7절에서 언급한대로 그분의 영광이 '우리의 영광'을 위한 것이며,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께서만 이루실 수 있음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4) 기독자가 믿은 복음의 지혜가 하나님의 계시(啓示)로 말미암지 않고는 인간에게 알려질 수 없다는 것입니다 (9절)
“기록된 바 하나님이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을 위하여 예비하신 모든 것은 눈으로 보지 못하고 귀로 듣지 못하고 사람의 마음으로 생각하지도 못하였다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사 52:15;65:17등에서 인용한 말씀입니다.
사람이 아무리 하늘의 지혜를 얻고, 능력 있는 삶을 살고, 생명력 있는 삶을 살려고, 눈을 크게 뜨고, 귀를 기울여 들으려 해도 하나님이 지혜는 들려 지지 않습니다.
그러면 언제 들려 집니까? 성령의 능력으로만 들려 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과 일세기 수많은 복음 증거자들이 순교자들이 그리고 카타콤에서 일세기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걸고 목숨을 지키며 복음을 증거하고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성령의 능력, 하늘로부터 오는 지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때문이었다는 것입니다.
3. 통달하시는 성령(10~11)
1)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십니다(10절)
“[10]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까지도 통달하시느니라”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이 누구신 모르겠다. 혹은 하나님이 나를 위한 계획과 나를 어떻게 인도 하시는지를 잘 모르겠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신지 모르겠다고 하는 말입니다.
내가 어떤 결정을 하고, 내가 어떤 결과가 나오고, 어떤 사건을 경험했을 때, 하나님은 무엇을 원하실까? 어떻게 하는 것을 원하실까하는 것을 많은 사람이 궁금해 합니다.
그러나 정작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계획을 알 수 없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수 있을 까요?
바울은 10절에서 “하나님의 모든 것을 알 수 있는 분은 성령님이십니다.”
그 분은 삼위일체이시고, 성부, 성자, 성령의 한 분이시고,
성령님은 하나님의 깊은 생각과 마음의 깊은 곳 까지 아실 수 있는 분이라고 하십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영에 속한 사람이되어 성령의 충만함을 받으면 하나님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계신지 우리는 깨닫을 수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이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하나님이 주시는 “지혜”를 말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말하는 것이고, 예수님의 복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닫게 하시는 분은 바로 성령님 이십니다.
우리가 세상적인 지혜와 내가 알고 있는 지식으로는 하나님의 그 놀라운 복음의 지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상에서 죽어야만 했던 이유, 하나님이 주신 말씀, 이 복음을 우리가 깨달을 수 없고, 알 수도 없기 때문에 하나님은 성령을 통해서 이 비밀한 것들을, 창세전에 감추어있던 것들을 깨닫게 하실 수 있게 하셨습니다.
누구를 통해서 성령님을 통해서, 따라서 우리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이 성령님과 동행하고 성령님을 쫓는 삶을 살고, 성령님이 원하시는 삶을 살게 된면, 하나님의 뜻을 자연히 알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일은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11절)
“[11]사람의 일을 사람의 속에 있는 영 외에 누가 알리요 이와 같이 하나님의 일도 하나님의 영 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
본절은 인간의 지혜를 이해하기 위해서 인간의 영이 필요한 것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영적인 지혜와 진리를 이해하려면,
성령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인간의 논리와 설명으로는 무한하신 하나님을 온전히 이해할 수 없습니다.
유한한 인간은 성령의 도우심과 깨닫게 하심을 통해서만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내 눈을 열어 주셔야 내 실상을 정확히 보고 내가 전적으로 부패한 죄인임을 고백하며 철저히 회개하게 됩니다.
말씀 선포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만 그 효력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생각과 모든 것을 통달하시는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것을 알게 하실 때, 참된 변화가 일어납니다.
성령의 사람이라야, 하나님의 일을 알고 온전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은 마음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두려워 떠는 마음으로 나를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
이 세상 지혜와 어떤 방법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십자가가 나의 힘이요, 그리스도가 우리의 힘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바울은 전도는 인간의 아름다운 말로 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지혜와 성령의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바울처럼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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