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권 4-5장 |
제4강
고해성사와 보속
복음의 순수성과는 거리가 먼 고해성사와 보속설에 대한 논의
로마 가톨릭은 사제들이 죄인을 매고 푸는 권세를 가졌으므로, 일년에 한 번씩은 사제에게 죄를 고백해야 죄가 용서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죄를 고백하면 죄책은 용서 받지만, 그에 따르는 벌은 남아 있으므로 ‘보속’ 즉 금식, 헌금, 구제 등 행위로 대신 값을 치루어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죄 사함의 근거는 고해성사나 보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하심 즉 사랑에 있습니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사랑은 그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심으로 드러났습니다. 그러므로 회개는 이러한 고해성사나 보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십자가 안에서 찾아야 합니다.
1. 고백과 통회에 관한 교리
스콜라 학자들은 ‘회개’에는 세 가지 행동이 있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첫째는 이전의 죄를 뉘우치고 우는 ‘통회’가 있어야 하며, 둘째, 이것을 입으로 고백 즉 ‘고해성사’를 해야 하며, 마지막으로 ‘보속’ 즉 지은 죄에 대해 행동으로 값을 치루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죄 사함’은 ‘회개’하지 않고서는 받을 수 없지만, 회개가 죄 사함의 근본 원인은 아닙니다. 왜냐하면 죄 사함은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그리스도의 공로로 받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고백’ 즉 ‘고해 성사는 하나님의 명령이다’라고 말합니다. 성경에 세례를 받으러 나온 사람들이 세례 요한에게 죄를 고백했으며, 야고보 사도가 ‘죄를 서로 고백하라’고 했으므로, 우리도 사제들에게 죄를 고백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터무니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죄를 용서하고 씻어버리시는 분은 오직 주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 분께 죄를 고백하면, 그 분의 인자하심과 선하심으로 죄를 용서 받게 되는 것입니다.
2. 성경에 있는 죄의 고백
죄를 용서하며 씻어버리시는 분은 오직 주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죄를 용서받기 위해서는 오직 ‘주님께만’ 죄를 고백해야 합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아시므로, 우리는 그 분 앞으로 속히 나아가서 우리의 속마음을 쏟아 놓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고백을 진심으로 하나님 앞에서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자비를 선포할 때, 사람들 앞에서도 언제든지 입으로도 고백할 수 있으며, 교회에서도 실천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어떤 공통된 죄를 지었을 때에도 고백해야 합니다.
성경에 있는 고백은 ‘우리 자신을 위한 고백’과 ‘이웃을 위한 고백’입니다. 자기의 죄를 고백해야 할 뿐만 아니라, 우리의 잘못으로 인해서 이웃이 해를 받았을 때에, 이를 위해서도 고백함으로써 죄로 깨어진 사랑을 회복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이와 같은 고백 이외의 다른 형식의 고백은 없습니다.
3. 열쇠의 권한과 죄의 사면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열쇠를 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열쇠는 첫째, 말씀 선포와 관련된 것으로, 교회에서 복음을 전파할 때 이 복음을 듣고 믿으면, 죄를 용서 받고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죄를 범했을 때 교회가 권징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마 교회에서는 사제가 죄인을 매고 푸는 권세를 가졌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므로 남녀 모두 성인이 되면 일년에 한번씩은 사제에게 죄를 고백해야 죄가 용서된다고 가르칩니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으면 죄가 용서되지 않으며, 결국에는 낙원으로 들어가는 문이 닫힌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교회에게 열쇠를 주신 것은 복음 선포와 연결된 권한입니다. 뿐만 아니라 사제들이 당시 교회 사도들의 대리나 후계자도 아닙니다. 그리고 열쇠의 권한은 성령을 받지 않으면 사용할 수 없는 것인데, 신부들은 성령과 상관없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주께서 풀라고 하신 것은 매고, 매라고 하신 것은 푸는 일만 반복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제에게 고백해야 죄가 사해진다는 것은 너무나 터무니 없는 것입니다.
4. 그리스도만이 완전한 보속을 제공하셨다.
로마 가톨릭은 우리가 죄를 고백하면 ‘죄책’ 즉 ‘죄에 대한 책임’은 용서받지만, 하나님의 공의의 법에 따라 ‘벌’은 받아야 하므로, 눈물, 금식, 헌금, 구제 등 행위의 공로로 대신 값을 치러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죄에 대한 속죄 행위를 ‘보속’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세례를 통해 ‘죄의 용서’와 ‘화해’의 은혜를 받고 난 후에는 ‘보속’을 통해서 다시 죄를 용서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즉 성도들은 사제에게 고해성사를 해야 하며, 그 죄에 대한 보속을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죄를 용서하는 것은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죄의 값은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치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외에 다른 보속이 있을 수 없습니다. 죄를 용서하시는 권리와 권한은 하나님의 고유한 것이고, 오직 그리스도만이 죄를 위한 ‘유일한 제물’이시며 ‘유일한 보속’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받을 형벌을 대신 받으시고,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서 우리의 죄를 모두 씻어 버리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이 영예를 그리스도로부터 빼앗지 않아야 합니다.
5. 면죄부와 연옥
로마 가톨릭에서는 자기 힘으로 보속을 이루기 힘든 사람은, 다른 사람의 공로를 빌어오기라도 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이것이 바로 ‘면죄부’와 ‘연옥’입니다.
로마 가톨릭은 자신들이 그리스도의 공로를 성도에게 적용시킨다고 주장하며, 교회에서 면죄부를 발행합니다. 이 ‘면죄부’는 보속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 능력이 부족한 것을 면죄부가 보충한다고 말합니다. 사람들의 영혼 문제를 돈벌이 대상으로 만들어, 몇 푼의 동전으로 영혼을 구원한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은 죽은 후에 죽은 사람들의 영혼이 죄에 대한 보속을 치르는 곳이 있는데, 그 곳을 ‘연옥’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살아서 보속을 다 행하지 못한 사람은, 죽은 후에 ‘연옥’이라는 곳에서 보속을 행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성경과 정반대로 성령을 모독하는 것이며, 여러 가지 중대한 죄악을 선동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자들의 죄를 속죄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오직 그리스도의 피 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공로를 성도에게 적용하시는 분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6. 로마 가톨릭의 비판
로마 가톨릭은 ‘죄’를 두 가지로 구분합니다. 첫째는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소죄’이고, 둘째는 죽을 죄인 ‘대죄’입니다. 그래서 ‘대죄’를 위해서는 ‘무거운 보속’이 필요하고, ‘소죄’는 더 쉬운 수단 즉 주기도문을 낭독하거나, 거룩한 물을 뿌리는 것 그리고 미사를 통해 정결하게 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들의 죄가 용서를 받을 수 있는 것은 그 죄가 용서를 받을 수 있는 죄인지 아니면 죽을 죄인지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로 죄가 용서 받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죄책’과 ‘벌’을 구분하여,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죄책은 용서 받지만, 하나님의 공의가 요구하는 벌은 남아 있어서 ‘보속’으로 벌을 변제 받아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지시고 십자가에 달려 벌을 받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다시는 기억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신자가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징계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축복이며 사랑의 증거입니다. ‘보복의 심판’은 악인을 향한 하나님의 징벌이 목적이지만, ‘징계의 심판’은 자녀들을 양육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그러므로 징계를 받을 때 신자는 낙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징계를 통하여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시기 때문입니다.
나가면서
로마 가톨릭에서는 회개를 심령으로 하는 ‘통회’, 입으로 하는 ‘고백’ 그리고 행위로 하는 ‘보속’으로 나누고, ‘죄 사함’을 얻기 위해서는 이 세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합니다.
더 나아가 그들은 우리가 보속을 행할 능력이 부족한 것은 면죄부가 보충하며, 살아서 보속을 다 행하지 못한 사람은, 죽은 후에 ‘연옥’이라는 곳에서 보속을 행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우리 죄를 용서하는 것은 값없이 주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죄의 값은 그리스도께서 완전히 치르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외에 다른 보속이 있을 수 없습니다.
로마 가톨릭은 그리스도께 드릴 영예를, 의식이나 사제들을 통하여 가로채는 사악한 자들입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구속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