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大 方 廣 佛 華 嚴 經
第四會
修因契果生解分
差別因果周
夜摩天宮 如來放兩足趺光 功德林菩薩 入菩薩善思惟三昧
二十二, 十無盡藏品
제22 十無盡藏品 133 제목 차례
1. 삼세 부처님들의 열 가지 장(藏) 133
2. 열 가지 장의 이름 133
3. 공덕림보살이 열 가지 장을 설하다 134
(1) 신장(信藏)을 설하다 134
① 믿음의 상(相)을 밝히다 134
② 믿음의 힘을 밝히다 134
㉮ 업의 작용 134
㉯ 까닭을 해석하다 135
③ 믿음의 성취를 말하다 136
(2) 계장(戒藏)을 설하다 137
① 열 가지 계를 성취하다 137
② 널리 이익을 주는 계 137
③ 받지 않는 계 138
④ 머물지 않는 계 138
⑤ 뉘우침 없는 계 138
⑥ 어기지 않는 계 139
⑦ 시끄럽게 손해하지 않는 계 139
⑧ 섞임이 없는 계 140
⑨ 탐함이 없는 계 140
⑩ 허물이 없는 계 140
⑪ 헐고 범(犯)함이 없는 계 141
(3) 참장(慚藏)을 설하다 141
① 악을 지은 것을 부끄러워하다 141
② 과거에 악을 짓고 부끄러워함이 없음을 해석하다 142
③ 부끄러운 상을 나타내다 143
(4) 괴장(愧藏)을 설하다 143
① 과거 부끄러웠던 일을 생각하여 수행하다 143
② 중생을 해치고도 부끄러워함이 없다 144
③ 세간사(世間史)를 돌아보아 부끄러워 행을 닦다 144
(5) 문장(聞藏)을 설하다 145
① 보살이 온갖 법을 들어서 알다 145
② 인연으로 생기는 법 146
③ 세간(世間)의 법 146
④ 출세간(出世間)의 법 146
⑤ 함이 있는 법 147
⑥ 함이 없는 법 147
⑦ 기록할 수 있는 법 147
⑧ 기록할 수 없는 법 147
㉮ 아(我)에 나아가서 무기(無記)를 밝히다 147
㉯ 삼세(三世)의 범부(凡夫)와 성인(聖人)에 나아가서 무기(無記)를 밝히다 148
㉰ 선후의 범부와 성인에 나아가서 무기를 밝히다 149
㉱ 세계에 나아가서 무기를 밝히다 149
㉲ 생(生)과의 경계선에 나아가서 무기를 밝히다 149
⑨ 많이 들어 아는 뜻을 나타내다 150
6, 施藏
(1) 十種布施名
佛子야 何等이 爲菩薩摩訶薩의 施藏고 此菩薩이 行十種施하나니 所謂分減施와 竭盡施와 內施와 外施와 內外施와 一切施와 過去施와 未來施와 現在施와 究竟施니라
(6) 시장(施藏)을 설하다
① 열 가지 보시(布施)의 이름
"불자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시장(施藏)인가. 보살은 열 가지 보시를 행하나니 이른바 분감시(分減施)와 갈진시(竭盡施)와 내시(內施)와 외시(外施)와 내외시(內外施)와 일체시(一切施)와 과거시(過去施)와 미래시(未來施)와 현재시(現在施)와 구경시(究竟施)니라."
오늘 十無盡藏品
10 대목 중에서 제 6 번째
6, 施藏
베풀 施시자, 갈무리할 藏장자,
그 대목부터 시작되겠습니다.
十無盡藏品 중에서 제 6 번째 꼭지에 들어갑니다.
처음에는 믿을 信자, 信藏이 있었고
두 번째 그 믿음이 갖춰지면 계율, 그죠?
戒藏이 이렇게 갖춰지는 거죠.
법화경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藥草喩品에 보면
작은 뿌리, 작은 줄기, 작은 가지, 작은 잎사귀, 그런 풀이 있다고 그 다음에
중간 뿌리, 중간 줄기, 중간 가지, 중간 잎사귀,
큰 뿌리, 큰 줄기, 큰 가지, 큰 잎사귀가 있다.
이렇게 얘기합니다.
우리가 또 緇門 배울 때 이렇게 배웠죠.
衆生之根欲性이 殊라
이런 대목 배운 적 있죠?
근기라고 하는 것은
뿌리가 바로 믿음입니다. 믿음
믿음이 있어야 되고
줄기라고 하는 것이 계율이 청정해야 되고
그 계율로 인해서 가지가 뻗어나가는 선정의 안정감이 있어야 되고
그 가지에서 비로소 잎사귀가 달려서
광합성 작용을 하면서 이제 그 나무를 먹여살리는
분명한 판단력이 있는 지혜력이 갖춰져야 된다.
이래서 법화경 같은 데는
뿌리와 줄기와 가지와 잎사귀로 이렇게 나눠놨는데
그 때 여기서 화엄경에 비유한다면
信藏, 戒藏... 이렇게 나가잖아요. 그죠?
그 뒤에 이제 선정과 지혜까지 쭉~ 연결이 되겠죠?
그래서 믿음이 먼저 갖춰지면,
믿음이 없는 사람은 뿌리가 없기 때문에
가지고 잎사귀고 기대할 게 없어요.
믿음이라고 하는 거는
우리 앞에서 배웠지만 뭘 믿느냐?
諸行無常
딱 줄여서 얘기하면
諸法無我
涅槃寂靜에 대해서
一切皆苦에 대해서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할 수가 있죠.
그리고 거기에 흔들리지 않는
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眞空妙有에 대한 믿음,
참 신비로운 그 불가사의한 믿음,
그러니까 부처님의 가르침이라고 할까요?
그런 데 대한 信藏,
믿음을 가지고
그걸 실천하려고 하는 戒 定 慧 三學 있잖아요. 그죠?
그 중에 계율, 戒藏을 챙기다 보면
돌아보면 계에 대해서 기준점이 있어요.
잘 지키는 것도 많겠지만 범하는 것도 상당히 많지 않습니까?
거기에 대해서 慚藏,
또 愧藏을 통해서
양심을 한 번 돌아보는 그러한 일들이 있고
그 다음에 이제 어어지는 게 뭡니까?
聞藏이라고 해서
여러가지 부족한 일이 있고 비틀거리고 할 때
앞에서 남겨놓은 여러가지 법문들이라든지
현재 들어야 될 이제까지 법문들을 들으면서
그 부족한 부분들을 지식적으로 多聞을 하면서
그 법을 즐겨 듣고 환희하고 찬탄하고,
법을 즐기지 않는 사람은 이렇게 들을 수가 없죠.
귀가 막혀버리죠.
귀가 들리지 않지 않습니까?
그래서 자주 듣다가 보면
나중에 그 들은 것을 남에게 회향하고
또 실천에 옮기려다 보면
자연적으로 施藏이 연결이 되죠.
그래서 베풀어주다가 보면
남에게 베풀어줄 때 분명한 결정력이 있어야 되고
판단력이 있어야 되고
지혜력이 있어야 되고 이러니까
거기에 이제 지혜의 慧藏이 돋아나고
그래 자꾸 지혜롭게 판단하고 하다가 보니까
분명한 기억력이 우리에게 이제 심어지게 되고
그 기억력이 골수까지 사무치게 되고 뼈속까지 자라면서
이렇게 지금 한국말을 자연스럽게 하듯이
억지돼가지고 나에게 수지돼가지고 몸에 깊이 그죠?
피속까지 흐르는 그러한 불법이 흐르는 걸
持藏이라 하죠. 지장
念藏
기억할 생각할 念자, 그죠?
念藏, 持藏,
그러니까 푹~ 이래 장아찌가
오래 곰삭아가지고 속에까지 내지는
단감이 무르익어서 안에까지 단맛이 배여 있으면
남에게 이제 변설하고자 할 때
억지로 꾸미지 안해도 자기 있는 것만 드러내면 되니까
안팎이 속 끝까지 익은 사람들
밀가루가 속에 덜 익은 것 말고
그냥 끝까지 완전히 익은 사람들은
持藏이라고 할 수 있잖아요?
그렇게 되면 남을 위해서 어떤 조건과 어떤 환경에 굴하지 않고
법을 이제 설하게 되겠죠.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이제 화엄경이라든지 경전 이런 데서 보면
누구의 후신이라는 이런 얘기도
선어록에서 참 많이 배웠죠.
서장에 이래 보면 누굽니까?
大慧 宗杲종고 스님은 雲峯 文悅 禪師의 후신이었다,
이렇게 行狀에 나오지 않습니까? 그죠?
운봉 문열선사의 행장을 한 번 읽고 다 이해했었다.
이렇게 얘기 나오고
그 유명한 게송
선가에서 나오는 것
父母未生前에 凝然一相圓이라
釋迦도 猶未會어든 迦葉이 豈能傳가!
하는 대목 있죠?
父母未生前에 또렷한 한 모양이 있었다.
석가모니부처님께서도 알지 못했는데
가섭이 어떻게 전할 수 있었겠느냐!
우리의 본래 당체의 모습을 말씀하셨던 분이
雪竇설두 重顯 스님의 게송이죠. (구멍 竇두)
우리 禪家龜鑑 보면 거기 나오는 것 있잖아요?
그런데 그 설두 중현스님은
重顯, 거듭 태어났다.
누가 태어났느냐?
雲門祖의 雲門 文偃문언선사의 다시 후신이라. (누울 偃언)
이렇게 얘기하지 않습니까?
요새 말로 하면 티벳쪽으로 하면 린포체쯤 되나요?
그런 식으로 우리 선가에도 다시 태어난 분들이 상당히 많이 있죠.
누구 누구의 후신이다.
우리나라도 그런 분이 많죠.
震默大師님 같은 경우는
물가에 서서 제자한테 그런 얘기를 했죠.
"저게 뭐냐?"
"스님 그림자 아닙니까?"
"니는 어떻게 내 그림자만 보고 석가모니부처님 그림자는 못보느냐?"
이렇게 얘기했다 하잖아요?
각설하고
우리가 이제 그런 얘기들을 가만~히 생각해볼 때
우리 자신이 수기를 받고 경전을 좋아하고
자기 만족에 이제 그쳐서는 안된다고 하는 거죠.
자기 만족의 이상을 화엄경 같은 걸 보면서 추진한다고 하면
2년이라고 하는 기간이 이렇게 짧은 기간은 아닌데
그 사이 이제 탈락하지 않고
계~속 오셔가지고 하시는 스님들을 이렇게 보면서
'참 의지가 굳다...'고 하는 그런 생각을 제가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십무진장 중에서
한 번 꼭꼭 짚어보면
그렇게 聞藏까지 끝났고 오늘은
6, 施藏
여기 이제 들어가게 되겠습니다.
(1) 十種布施名
佛子야 何等이 爲菩薩摩訶薩의 施藏가 此菩薩이 行十種施하나니 所謂分減施와 竭盡施와 內施와 外施와 內外施와 一切施와 過去施와 未來施와 現在施와 究竟施니라
이렇게 이제 많이 듣고 또 베풀고
이렇게 베푸는 이런 대목을 설해놓은 것은
여기서 나오는 이런 수행 방법들이
전체가 저것하고 똑같은 거죠.
차례~차례 대로 수행해서 결과적으로 남은 것을
계속 이렇게 남기고
이렇게 글로 이제 정리해놓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우리가 施藏이라고 이렇게 얘기하는 것들은
마음 속에서 자기의 소유와 자기의 아만심 같은 걸 버리고
간탐심을 버리면서 남을 위해서 은혜롭게 베풀어주고
그리고 탐내는 그런 생각들을 많이 없애면서
집착심을 넘어서 접착심까지 돼 있는 우리 마음을 잘 정리하는 것이겠죠.
(6) 시장(施藏)을 설하다
① 열 가지 보시(布施)의 이름
"불자여, 무엇이 보살마하살의 시장(施藏)인가. 보살은 열 가지 보시를 행하나니 이른바 분감시(分減施)와
콩 한쪽도 나눠 먹는다 이거죠.
갈진시(竭盡施)와
정말 다 베풀어줄 수 있는 사람들도 있죠.
어떤 어른스님께서 이번에 대만에 가셨는데
너무 감동스러우니까
대만 4대 명찰을 돌아보니까 너무 감동스러우시니까
당신 차 좀 사시려고 가져갔던 돈을 다 베풀어주셨죠.
톡 다 털어가지고 다 갖다드리고
또 다른 절로 옮겨 갔는데
4대 명찰에 가보니까
너무 절을 거룩하고 장엄하게 잘 해놓고 불교가 융성하니까
달러 좀 남았던 그것까지 또 다 털어주시고
아무 것도 안 사오셨어요.
그래 스님께서 오셔가지고 하시는 말씀이
"아무 것도 안 사가지고 와도 속이 시원~하다."
사람이 처음에는 이렇게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이 믿음이 정확하게 잘 됐는지 안됐는지
이해하는 쪽으로 이렇게 가지 않습니까?
이해가 이제 머리속에서 이해가 되고
지식적으로 분별하는 거는
불교에 사람들이 학자도 많고 박사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우리처럼
삭발하고 화엄경 이 시간에
이 지루한 시간에 밑도 끝도 없는 이런 얘기
서로 주고 받고 앉아가지고
여기서 마음에 감동을 느낀다고 하는 거는
별로 아름다운 강의도 아닌데
이거는 전생에 선근이 없고 자기 길이 아니면
절대 감동을 느끼지 못합니다.
이것 믿는데 어설프게 믿으니까
잘 정확하게 이해가 안되고
이해가 안되는 사람은 감동이 안옵니다. 감동이
감동이 오신 분만이 그렇게 불교에 대한 감동을 하니까
당신 가지고 있던 돈 있잖아요? 그죠?
뭐 사려고 가지고 갔는데
오졸 없이 다 베풀어주시고
또 다른 데 갔는데 베풀어줄 돈이 없으니까
달러 좀 남은 것 있죠?
구석구석 다 긁어가지고 또 다 갖다주고
그렇게... 아마 보시에 대해서 제대로 감동하신 분,
또 불교에 대해서 찬탄하시는 분만이 할 수 있다고 합니다.
지금 여러분들이 보시고 계신 이 책 쓰신 어른스님입니다.
누군가는 아시겠지요? ㅎㅎㅎ
키 좀 많이 크십니다. ㅎㅎㅎ
우리 어른스님께서 대만 가셔가지고 이번에 그렇게
대만 큰~ 절 4대 명찰 있잖아요?
가보니까 얼마나 몇 천 명씩 모여서
그렇게 기도하고 정진하고 하잖아요?
대만 불교 보기만 해도 힘이 나잖습니까?
거기 가보니까 너~무 감동스러우니까 하~! 그렇게
당신 보이차 조금 사시려고 가지고 갔던 그 돈을
다 털어드리고 오신 거라. ㅎㅎ
아무 것도 안 사가지고 그래 오셨어요.
그래 우리 이 시대에 얼마나 다행스럽습니까?
竭盡
내 것 다~ 바닥이 날 때까지 남 다 퍼주더라도
후회가 남지 않는 거죠.
그래서 믿고 그 다음에
이해하고
이해하면 감동해야 되고
감동한 것은 실천으로 자연스럽게 옮겨지죠.
저는 강의하다가 한 1 시간쯤 좀 넘어가면
우리 학인들 하고 아침에도 그 얘기했습니다만
한 시간 좀 넘어가면
얼굴이 벌~개지면서 흥분합니다.
학인들은 졸고 싶고 빨리 수업 마치고 싶은데
저 혼자만 좋아가지고 ㅎㅎ
'와~! 이것 봐라! 이렇게 자세하게 정확하게 잘 돼 있다!'
고 난리 굿을 합니다.
'어떻게 이렇게 친절하게 해놨느냐고....! '
지금도 보십시오.
分減施 竭盡施 나오는데
시간만 있다 하면 막 거품을 물고 이렇게 설명하고 싶을 정도로
감동스러운 대목들이잖습니까?
다~ 해봤다는 거죠.
옛날에 사람들이 그죠?
내시(內施) 외시(外施) 내외시(內外施)
안팎이 어디 있습니까?
그냥... 뭐라 합니까?
부산 가면 허심청이라는 목욕탕이 있는데
그걸 開口見膽이라 하죠.
입을 벌려가지고 쓸개까지 다~ 빼주고
見膽현담, 쓸개까지 '아~ ' 이래 보여주는 것 있잖아.
開口, 입을 벌리고
見현, 보여준다고
膽담, 뭘 보여줘요?
자기 쓸개까지 다~ 보여준다.
인도 사람들끼리 서로 인사할 때는 뭐 내보입니까?
혓바닥을 '아~' 내보이잖아요. 그죠?
진실만 말하겠다고 자기 속도 다 내보이고
서로 만나면 혓바닥을 내보이잖습니까?
그래 그런 얘기들은 정말 법희선열에 감동했는 사람들만이
가질 수 있는 느낌이죠.
여기 보십시오.
점층법으로 탁탁탁! 넘어갑니다.
일체시(一切施)와
야~! 싹! 다 그냥 모조리 몰 밀어가지고 ㅎㅎ
과거시(過去施)와 미래시(未來施)와 현재시(現在施)와 구경시(究竟施)니라."
'사랑할 수 있을 만큼 사랑한다.'
이런 말처럼 베풀 수 있을 만큼 완전연소 시켜서 온세상을 구하겠다.
이런 뜻이 이제 이렇게 施 할 때도 묻어져 나오는 것 같아요.
그 다음에
(2) 分減施
佛子야 云何爲菩薩의 分減施오 此菩薩이 稟性仁慈하야 好行惠施라 若得美味하면 不專自受하고 要與衆生然後에 方食하며 凡所受物도 悉亦如是니라 若自食時엔 作是念言호대 我身中에 有八萬戶蟲이 依於我住하야 我身充樂하면 彼亦充樂하고 我身飢苦하면 彼亦飢苦하나니 我今受此所有飮食을 願令衆生으로 普得充飽하야 爲施彼故로 而自食之요 不貪其味라하며 復作是念호대 我於長夜에 愛着其身하야 欲令充飽하야 而受飮食일새 今以此食으로 惠施衆生하야 願我於身에 永斷貪着이라하나니 是名分減施니라
② 부분 보시[分減施]
"불자여, 무엇이 보살의 분감시[分減施]라 하는가. 보살의 성품은 인자해서 보시하기를 좋아하며, 만약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오로지 스스로 먹지 아니하고 중생에게 준 뒤에 바야흐로 먹으며, 무릇 남에게 받은 물건도 다 모두 그렇게 하느니라.만약 스스로 먹을 때에는 이러한 생각을 하되 '나의 몸 가운데에 팔만의 벌레가 나를 의지해서 머무나니 내 몸이 충족해서 즐거우면 저희들도 또한 충족해서 즐거워하고 나의 몸이 굶주리고 괴로우면 저희들도 또한 굶주리고 괴로워하나니 내가 지금 받은 이 음식을 원컨대 중생들에게 널리 충족하고 배부르게 해서 저희들에게 베풀기를 원하는 고로 스스로 먹으며 그 맛을 탐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하며 또 이러한 생각을 하되 '내가 긴 밤에 그 몸을 애착해서 배를 불리려고 음식을 받았으니 이제 이 음식으로 중생들에게 베풀어서 나의 몸에는 길이 탐욕과 애착을 끊으리라'하나니 이것의 이름이 분감시니라."
(2) 分減施
해서 낱낱이 이름을 제시하고
그 다음 이제 하나 하나 들어가겠습니다.
佛子야 云何爲菩薩의 分減施오 此菩薩이 稟性이 仁慈하야 好行惠施라 若得美味하면 不專自受하고 要與衆生然後에 方食하며 凡所受物도 悉亦如是니라 若自食時엔 作是念言호대 我身中에 有八萬戶蟲이 依於我住하야 我身充樂하면 彼亦充樂하고 我身飢苦하면 彼亦飢苦하나니 我今受此所有飮食을 願令衆生으로 普得充飽하야 爲施彼故로 而自食之요 不貪其味라 하며 復作是念호대 我於長夜에 愛着其身하야 欲令充飽하야 而受飮食일새 今以此食으로 惠施衆生하야 願我於身에 永斷貪着이라 하나니 是名分減施니라 (① 녹 ② 곳집 ③ 녹미(祿米) 품稟)
② 부분 보시[分減施]
"불자여, 무엇이 보살의 분감시[分減施]라 하는가. 보살의 성품은 인자해서 보시하기를 좋아하며, 만약 맛있는 음식이 있으면 오로지 스스로 먹지 아니하고 중생에게 준 뒤에 바야흐로 먹으며, 무릇 남에게 받은 물건도 모두 다 그렇게 하느니라.
저는 산삼이 하나 오든지 장뇌삼이 오든지
좀 귀한 것 있으면 혼자 잘 못먹더라고....
꼭 누가 와서 먹든지 아니면 그 사람이 줘서 먹든지
그래서 저는 항상 그래 생각했어요.
'내가 전생에 거지였는가보다...'
그런 말을 자주 했어요.
나는 귀한 게 있으면 희한하게 못먹는다고...
'필시 다리걸이에 생활하다 중 된 것 같다고...'
그런데 오늘 보니까 그게 아니네요. 그죠?
만약 스스로 먹을 때에는 이러한 생각을 하되 '나의 몸 가운데에 팔만의 벌레가 나를 의지해서 머무나니 내 몸이 충족해서 즐거우면 저희들도 또한 충족해서
기생충까지 같이 먹인다 이 말이네요.
충족해서 즐거워하고 나의 몸이 굶주리고 괴로우면 저희들도 또한 굶주리고 괴로워하나니 내가 지금 받은 이 음식을 원컨대 중생들에게 널리 충족하고 배부르게 해서 저희들에게 베풀기를 원하는 고로 스스로 먹으며 그것을 그 맛을 탐하는 것은 아니다' 하며
기업가 정신이 이렇게 돼야 되죠.
자기 혼자 잘 먹고 잘 살 것이 아니라
같이 사는 종업원들도, 그죠?
'다~ 같이 내 하나 움직여서
조금 힘들게 그냥 이렇게 사업 벌여놓으면 여러 사람이 먹고 산다.'
이 생각해야 되는데
'그냥 저 사람들 것 피 고름 다 빨아가지고 내 혼자 잘 먹고 잘 살자.'
이러다가 이제 맨날 노사분쟁 일어나죠.
또 이러한 생각을 하되 '내가 긴 밤에 그 몸을 애착해서 배를 불리려고 음식을 받았으니 이제 이 음식으로 중생들에게 베풀어서 나의 몸에는 길이 탐욕과 집착을 끊으리라' 하나니 이것의 이름이 분감시니라."
전부 보시
부분 보시
(3) 竭盡施
云何爲菩薩의 竭盡施오 佛子야 此菩薩이 得種種上味飮食과 香華衣服資生之具하야 若自以受用하면 則安樂延年이요 若輟己施人하면 則窮苦夭命이라도 時或有人이 來作是言호대 汝今所有를 悉當與我하라하면 菩薩이 自念호대 我無始已來로 以飢餓故로 喪身無數호대 未曾得有如毫末許도 饒益衆生하야 而獲善利니 今我亦當同於往昔하야 而捨其命이라 是故로 應爲饒益衆生하야 隨其所有하야 一切皆捨하며 乃至盡命하야도 亦無所悋이라하나니 是名竭盡施니라
③ 전부 보시[竭盡施]
"무엇이 보살의 갈진시[竭盡施]인가.
불자여, 이 보살이 갖가지 맛좋은 음식과 향이나 꿀이나 의복이나 생활을 돕는 물건을 얻었을 때에 만약 스스로 받았으면 안락하여 오래 살 것이요, 만약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면 곤궁하고 고통스러워 빨리 죽게 될지라도 그 때에 혹 어떤 사람이 와서 이러한 말을 하되, ‘그대는 지금 가진 것을 모두 나에게 달라'라고 한다면, 보살이 스스로 생각하되 ’내가 오랜 옛적부터 주린 연고로 몸을 버린 것이 그 수가 없었으나 일찍이 터럭 끝만큼도 중생에게 이익을 주어 좋은 이익을 얻은 적이 없었으니 지금 내가 또한 마땅히 지난 옛적과 같이 목숨을 버리게 되리라. 그러므로 마땅히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해서 그 가진 것을 모두 다 주며 내지 목숨이 다하더라도 아끼는 바가 없으리라'하나니 이것의 이름이 갈진시라 하느니라."
(3) 竭盡施
云何爲菩薩의 竭盡施오 佛子야 此菩薩이 得種種上味飮食과 香華衣服資生之具하야 若自以受用하면 則安樂延年이요 若輟己施人하면 則窮苦夭命이라도 時或有人이 來作是言호대 汝今所有를 悉當與我하라 하면 菩薩이 自念호대 我無始已來로 以飢餓故로 喪身無數호대 未曾得有如毫末許도 饒益衆生하야 而獲善利니 今我亦當同於往昔하야 而捨其命이라 是故로 應爲饒益衆生하야 隨其所有하야 一切皆捨하며 乃至盡命하야도 亦無所悋이라 하나니 是名竭盡施니라
(①그치다 ②꿰매다 ③조금 부서진 데를 고친 수레 輟철)
③ 전부 보시[竭盡施]
"무엇이 보살의 갈진시[竭盡施]인가.
불자여, 이 보살이 갖가지 맛좋은 음식과 향이나 꿀이나 의복이나 생활을 돕는
資生之具라고 이렇게 하죠.
생활을 돕는 물건을 얻었을 때는 만약 스스로 받았으면 안락하여 오래 살 것이요, 만약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주면 곤궁하고 고통스러워 빨리 죽게 될지라도 그 때에 혹 어떤 사람이 와서 이런 말을 하되, ‘너의 지금 있는 바를 모두 나에게 베풀어라' 하면, 보살이 스스로 생각하되 ’내가 오랜 옛적부터 주린 연고로 몸을 버린 것이 그 수가 없었으나 일찍이 터럭 끝만큼도 중생에게 이익을 주어 좋은 이익을 얻은 적이 없었으니 지금 내가 또한 마땅히 지난 옛적과 같이 목숨을 버리게 되리라.
이번에 세월호 침몰하니까 어떻습니까?
구명 조끼 벗어가지고 줘버리잖아요.
그런데 구명 조끼고 뭐고 놔두고...
내 혼자 도망가다가 지금 감옥 가가지고...
假使熱鐵輪이 在我頂上旋이라도
( 終不以此苦 退失菩提心 )
( 설사 뜨거운 무쇠 바퀴가 머리 위에서 돌아간다 해도,
끝까지 이 괴로움 때문에 보리심에서 물러나지 않으리라)
所作業은 不亡(무)하여
因緣會遇時에 果報를 還自受 하리라
所作業은 없어지지 않아서 不亡불무하야,
그때 무자도 무자로 안 쓰고 不亡불망하야 써놓는데
읽을 때는 어떻게 읽어야 돼요?
所作業은 不亡, 잊을 망자라고 써놓지만 읽을 때는?
사망할 때 亡자 있잖아요? 그죠?
읽을 때는 어떻게 읽어야 돼요?
所作業은 不亡불무하여
이게 우리 전통식으로 강원에서 읽는 겁니다.
왜 능엄경 서문에 나올 때
像季已還상계이선에 道術이 旣裂기렬하여
明心之師는 妄因緣塵하야
그런 대목이 쭉~ 나오는 게 있죠.
그것도 이제 像季已還상계이선이라고 읽어야 되는데
돌아올 還환자 써놓으니까
전통적으로 안 배운 사람들은
像季已還상계이환에
이래 읽는다. ㅎㅎ
像季已還상계이선에 道術이 旣裂기렬하여
우리가 전래적으로 읽는 방법이
南無남무도 아니고 나무라고 읽고
道場도량이라 읽고 이런 게 있잖아요. 그죠?
그러므로 마땅히 중생을 이익케 하기 위해서 그 가진 모든 것을 다 주며 내지 목숨이 다 하더라도 아끼는 바가 없으리라' 하나니 이것의 이름이 갈진시라 하느니라."
다~ 내어주고 내가 밑바닥까지 내 목숨까지
소진하게 될지라도 다 내어준다.
그런데 이거는 저부터라도 굉~장히 힘든 거죠.
어느 정도 돼야 됩니까?
信藏, 戒藏, 慙藏, 愧藏, 聞藏이
완전히 무르녹아 익었을 때
불법에 대한 믿음과 이해력이
감동으로 막 넘쳐난 사람이 실천할 때
감히 이 정도 이제 경지가 오는 것 같습니다.
(4) 內施
云何爲菩薩의 內施오 佛子야 此菩薩이 年方少盛에 端正美好하며 香華衣服으로 以嚴其身하고 始受灌頂轉輪王位하야 七寶具足하야 王四天下어든 時或有人이 來白王言호대 大王아 當知하라 我今衰老하야 身嬰重疾하고 煢獨羸頓하야 死將不久어니와 若得王身의 手足血肉과 頭目骨髓인댄 我之身命이 必冀存活이로소니 唯願大王은 莫更籌量하야 有所顧惜하고 但見慈念하야 以施於我하라하면 爾時菩薩이 作是念言호대 今我此身이 後必當死라 無一利益이니 宜時疾捨하야 以濟衆生이라하고 念已施之하야 心無所悔하나니 是名內施니라
④ 속 보시[內施]
"무엇이 보살의 내시[內施]인가. 불자여, 이 보살이 나이가 한창 젊어서 단정하고 아름다우며 향과 꽃과 의복으로 그 몸을 꾸미고 비로소 관정(灌頂)하고 전륜왕의 지위에 올라서 칠보가 구족하고 사천하를 다스릴 때에 그때에 혹 어떤 사람이 와서 왕에게 말하기를, '대왕이여 마땅히 알라. 나는 지금 노쇠하여 몸에 무거운 병이 들었으며 외롭고 여위고 지쳐서 곧 죽게 되거니와 만약 대왕의 몸에서 손발과 피와 살과 머리와 눈과 골수를 얻는다면 나의 목숨은 반드시 다시 살아나리니 오직 원하노니 대왕은 더 생각하거나 돌아보거나 아끼지 마시고 다만 자비한 마음으로 나에게 보시 하소서' 하면 그때에 보살이 이러한 생각을 하되 '지금 나의 이 몸이 뒤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나도 이익함이 없으리니 마땅한 때에 빨리 보시해서 중생을 구제하리라' 생각하고 나서 그에게 베풀어서 마음에 후회함이 없나니 이것의 이름이 내시[內施]니라."
(4) 內施
안에 걸 다~ 보시한다 이 말이네요.
云何爲菩薩의 內施오 佛子야 此菩薩이 年方少盛에 端正美好하며 香華衣服으로 以嚴其身하고 始受灌頂轉輪王位하야 七寶具足하야 王四天下어든 時或有人이 來白王言호대 大王아 當知하라 我今衰老하야 身嬰重疾하고 煢獨羸頓하야 死將不久어니와 若得王身의 手足血肉과 頭目骨髓인댄 我之身命이 必冀存活이로소니 唯願大王은 莫更籌量하야 有所顧惜하고 但見慈念하야 以施於我하라 하면 爾時菩薩이 作是念言호대 今我此身이 後必當死라 無一利益이니 宜時疾捨하야 以濟衆生이라 하고 念已施之하야 心無所悔하나니 是名內施니라
(① 외롭다 ② 근심하다 경煢) (① 여위다 ② 고달프다 리羸)
(① 바라다 ② 바라건대 기冀 ) (① 산대 ② 꾀 ③ 세다 주籌)
④ 속 보시[內施]
"무엇이 보살의 내시[內施]인가. 불자여, 이 보살이 나이가 한창 젊어서 단정하고 아름다우며 향과 꽃과 의복으로 그 몸을 꾸미고 비로소 머리에 물을 부어 관정(灌頂)하고 전륜왕의 지위에 올라서 칠보가 구족하고 사천하를 다스릴 때에 그때에 혹 어떤 사람이 와서 왕에게 말하기를, '대왕이여 마땅히 알라. 나는 지금 노쇠하여 몸에 무거운 병이 들었으며 외롭고 여위고 지쳐서 곧 죽게 되거니와 만약 대왕의 몸에서 손발과 피와 살과 머리와 눈과 골수를 얻는다면 나의 목숨은 반드시 다시 살아나리니 오직 원하노니 대왕은 더 생각하거나 돌아보거나 아끼지 마시고 다만 자비한 마음으로 나에게 보시 하소서' 하면
누가 주겠노...
나같이 못생긴 사람도 안 줄 것 같은데
대왕이 그 칠보 찬란한
그리고 생기기도 잘 생기고, 그죠?
가지고 있는 것도 많은 사람이 주겠습니까?
하~! 안되지...
그런데 이것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바가 크죠.
제대로 알면 이 정도로 이제 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을
제대로 느낀다고 하는 거죠.
그런데 읽기만 합시다. 그냥
우리는 할 수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ㅎㅎ
그때에 보살이 이러한 생각을 하되 '지금 나의 이 몸이 뒤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나도 이익함이 없으리니 마땅한 때에
'아이구... 때가 됐는가보다...'
그러니까 기회가 왔을 때 보시하는 거죠.
빨리 보시해서 중생을 구제하리라' 생각하고 나서 그에게 베풀어서 마음에 후회함이 없나니 이것의 이름이 내시[內施]니라."
우리가 이제 견주다가 이렇게 볼 일 다 보잖아요.
어디 남의 집 아이 결혼할 때 잘 해주면 되지.
그냥 친구한테 신세도 많이 진 것 있으면
그때 빨리 빨리 바깥의 처사님들은 그래 해주면 되는데
'다음 아이 때 좀 해주면 되겠지...
이번에는 뭐 하고 또 다음에 해주지...'
다음은 없습니다.
그러니까 할 수 있을 때 해주는 게 좋고
할 수 없으면 그사람한테 도저~히 저 사람 너무 잘 살고
그동안에 신세 진 것도 많고 갚고는 싶고
또 어떤 사람은 자존심이 상해가지고 못살고 이렇지만
도와주면 서로 모양이 이상할 것 같고 이러면
기회를 만들어가지고
자리를 만들어가지고 그죠? 살짝
'아이구...이것 나도 주는 건 좀 미안한데...
어쩔 수 없이 가져가야 되겠네...'
하고 슬쩍 던져주는 거죠.
어제도 보니까 범어사에는 큰~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마지막 풍경을 굉~장히 비싼 걸 아름다운 걸 이렇게 만들어가지고
어떤 스님이 만들어 달아놨는데
어떤 스님 3분이 와서 그게 탐 나는가 봐.~
내한테 와가지고
"스님 저것 혹시 파는 것 아니에요...?"
"팔지는 안하는데..."
우리는 또 헛소리를 좀 잘 하는 편이잖아요. 즉시에
"저게 뭐 대수겠어요? 사람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지. 가져가버리이소~"
했더니 어휴~! 한 스님이 풀어가지고 가져가버리는 거야. ㅎㅎ
옆에 스님이 또 달려들어가지고 풀어가지고 가져가버리는 거야.
은사스님은 내보다 여남은살 많은 양반이라.
그 어른도 또 이래 내심 탐 나는가 봐.
상좌 둘이가 그걸 한 개씩 챙겨버렸어요.
거기는 우리보다 후배니까...
'야~ 난 이거 큰일 났다!' 싶대...
그러니까 그거 옆에 만든 스님 얼굴을 보니까
이제 신경질이 난 거지...그러니까
"강주스님이 알아서 하시겠지...뭐!"
이래버리는 거라. ㅎㅎ
그래 그게 얼~마나 아름답게 풍경을 잘 만들어놨는지...
그 밑에다가 우물 井자를 딱~ 새겨가지고
梵魚寺 金井山
그 안에다가 고기 한 마리 넣어가지고
金魚, 金井山 범어사 표시를 해가지고
안에는 이렇~게 땡글땡글 부딪히는 데 있잖아요?
법륜 마크를 삭~ 집어넣어가지고
그 얼마나 이쁘노...!
그러니까 '梵語 風鈴' 탁~ 써놨는데... 풍경에
나부터라도 나도 가지고 싶은데 말은 못하고 있는데...
그러다 그 스님이 이제 어른스님이 또 이제 한 개 챙겨 가셨어요.
그래 그 스님한테 그 스님이 나중에 그러더라고
"나는 달라 하고 싶기는 한데
체면이 있어서 마음에 놔둬라 소리를 못하겠다". ㅎㅎ
너무 마음에 들어서 놔둬라 소리는 못하고 받아간다는 거라. ㅎㅎ
그리고 마지막 남은 풍경 있죠?
그 스님이 신경질 났는가 어쨌는가
내 방에 갖다놓고 가버렸어요. ㅎㅎㅎ
풍경이 4개 아닙니까? 4개
아까 이제 짐 다~ 싣고 정리하고 가시면서
내 방에 그 풍경 하나 갖다놨는데...
아휴~ 그 스님은 이래~ 보니까
무구정광대다라니 사경을 금니로 이렇게 그림을 그려놨는데
하~! 너무 찬란해!
이 한 획 한 획 그을 때 그 스님의 마음이 막 느껴져요.
'사람이 저렇게 아름다울 수 있는가...!' 싶어요.
이번에 참 僧市 때문에 겹치지만 안했으면
와서 보셨으면 참 좋았을텐데...
자~ 그 다음에
마땅한 때에 빨리 보시해서 중생들을 구제하리라'
그런데 그것 지나가지고 오늘쯤 줘도
그만큼 감동은 안오는 거요. 그죠?
그러니까 사람이 양심도 없는 게
"저는 하~! 됐습니다."
이러고 신세 지고 막~!
봉투라도 하나 그 스님한테 드리고 이렇게 될 처지잖아요. 지금?
그런데 방에 하나 갖다놓으니까
부담감보다는 왜~ 그리 기분이 좋은지 몰라!
오늘 여기까지 오는 데까지 좋은 거야. ㅎㅎㅎ
빨리 가서 보고 싶은 거야. 지금도
딸랑 딸랑 흔들어보고 싶고...
사람의 마음이라는 게 그래요.
일단 그것 쇠 덩어리에 불과하고 아무 것도 아닌 것 같지만
그게 한 사람 한 사람 기획해가지고, 자기가 그죠?
디자인해가지고 온 열정을 쏟아놨기 때문에
그런 것 한 번 받으면 좋은거라.
거기 나와서 그렇습니다.
마땅한 때에 僧市 할 때
빨리 사가지고 빨리 기념으로 보시하는 것이 좋다.
마음에 후회함이 또 없다.
덜컥 해놓고는 나중에 돌아보니까
'아휴~ 아까워래이~ '
이런 분들이 보통이잖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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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竭盡....완전연소....고맙습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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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자신이 가지고 있는 眞空妙有에 대한 믿음~
지선화 님!! 수고 하셨습니다...^^*
고맙습니다
십무진장품
화엄경에서 가장 좋아하는 품이라서 ~~~
항상 마음에 새겨서 실천 하려고 노력 합니다
고맙습니다 나무 대방광불화엄경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