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연재 소년소설
<응달의 나무들> 5회 - 《굴렁쇠 어린이》 1990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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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안개가 자욱이 깔리며 한나절이 되어서야 걷히었다. 제비떼가 전깃줄에 줄지어 앉아 재잘대는 가을이 왔는데도 영분이네 아버지는 마냥 기운을 차리지 못했다.
“여보 내가 얼른 일어나 일할 수 없을 것 같소. 그러니 영만이한테 편지해서 돌아와 가을걷이를 거들어 달라고 해야겠소.”
“안 되어요. 이제 두 달만 지나면 훈련소 마치고 곧장 취직해 갈 텐데, 집에 데려오면 그 동안 애쓴 것 모두 허사가 되잖아요.”
영분이네 어머니는 듣지 않았다.
“그럼, 일을 누가 하겠소? 원산 어르신네한테 부탁해 볼까?”
“걱정 마셔요. 제가 하다가 힘이 달리면 거들어 달래 테니까.”
영분이네 어머니는 남편에게 안심시키고는 지게를 지고 들로 나갔다.
참으로 바쁜 것이 가을걷이다. 손발이 몇 개 더 있어도 모자란다는데, 영분이네 어머니 오금골댁은 말없이 혼자서 남편 몫의 일까지 맡아서 했다. 나락을 베고 고구마를 캐고 고추포기를 뽑았다. 가을걷이가 거의 끝날 때쯤 일이었다.
순재네 집에 낯선 사람 둘이 찾아왔다. 보통 옷을 입은 형사라고 했다.
“어인일로 선상님들이 오셨어요?”
“저어 할머니댁 아드님 이름이 김지원이라고 합니까?”
안경을 낀 형사가 물었다.
“예, 맞습니다.”
“지원 씨가 요즘 집에 오지 않았습니까?”
“자식이 집에 왔느냐고요? 벌써 육년 째 소식이 없는데, 어디서 지금 살고 있답니까?”
할머니는 입안이 말라 목을 꾸부리며 억지로 침을 짜내었다.
“예, 저희들도 지금 어디 있는지 몰라 찾고 있는 중입니다.”
“뭣 땜에 그 애를 찾는가요? 무슨 나쁜 일을 저지른 건가요?”
“아닙니다. 혹시 저희들이 돌아간 뒤에라도 아드님이 집에 오시거든 잘 타일러 주십시오. 협조를 해달라고요.”
두 사람은 수첩에다 무언지 적으면서 묻고는 공손히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할머니, 아버지가 무슨 나쁜 짓을 했나?”
궁금해서 순재가 물었다.
“무슨 소리냐? 아버진 나쁜 짓 하지 않는다.”
할머니는 태연하게 말하고는 담 밑에 세워둔 깻단을 떨기 위해 비닐보자기를 넓게 깔았다.
“순재야, 한 단씩 곱게 짚어주겠니?”
“한 단씩만?”
“그래.”
순재가 깻단을 할머니께 집어드리면 할머니는 막대기로 깻단을 떨었다. 거꾸로 들고 막대기로 조금 세게 탁 탁 때려도 깨는 몇 알씩 흩어져 내릴 뿐 거의 빈 쭉정이였다. 그러나 할머니는 마지막까지 알뜰하게 떨고 또 떨었다.
“할머니, 이젠 깨알이 다 나오고 없나봐. 모두 쭉정이야.”
“그래, 안다.”
할머니는 쭉정이 깻단을 차곡차곡 쌓아놓고 긴 새끼줄로 꾹꾹 묶었다. 헛간에다 들여놓고 뜰을 쓸고, 그리고는 또 빨랫감을 대야에 담아 냇가로 갔다.
할머니는 걱정이 있거나 슬픈 일이 있으면 더 부지런히 더 많이 일을 했다.
할머니가 빨래를 해 와서 널고 있는데 쪼깐네 아주머니가 울상이 되어 찾아왔다.
“할므니, 우리 개 아파요.”
했다.
“개가 아프다니?”
“밥도 안므꼬 똥 싸요.”
할머니는 서둘러 빨래를 넣어놓고 쪼깐네 아주머니 집으로 갔다.
누렁이는 여기 저기 설사를 해놓고 누워 있었다. 할머니가 누렁이 눈을 들여다 보니 열이 나서 그런지 눈빛이 타는 듯이 반들거렸다.
“이것 몹시 심하구나. 읍내 가서 약 사와야겠다.”
할머니는 쪼깐네 아저씨를 읍내 가축병원으로 가게 했다. 그러나 말도 제대로 못하는 아저씨를 혼자 보내려니 마음이 안 놓여 순재를 따라가게 했다.
어두워서야 아저씨는 순재와 함께 돌아왔다. 가루약 여섯 봉지를 지어가지고 왔다.
“할머니, 이것 하루 세 번씩 이틀 동안 먹이라고 했어요. 입에 털어 넣으면 잘 핥아 먹는다고 했어요.”
그 말대로 누워있는 누렁이 주둥이를 쪼깐네 아저씨가 벌렸다. 한 손으로는 아래턱을 붙잡고 한 손으로는 웃주둥이를 붙잡고 할머니는 봉지의 가루를 조심스럽게 털어 넣었다.
그러자, 그때까지 가만히 있던 누렁이는 머리를 세차게 흔들어, 붙잡고 있는 쪼깐네 아저씨 손을 뿌리쳤다. 그 바람에 입에 털어 넣은 가루약이 입 밖으로 흩어져 나왔다.
“에그, 이눔아, 약 안 먹으면 죽는다.”
할머니가 황급히 누렁이 머리를 붙잡았다. 누렁이는 입안에 들어간 약이 쓴지 혀를 낼름 낼름 움직여 여기 저기 붙은 가루약을 핥아 먹었다.
쪼깐네 아주머니와 아저씨는 멍청히 보고만 서있고 누렁이는 가루약을 핥아 먹고는 둘러서 있는 사람들을 쳐다봤다.
“그만 됐다. 내일 아침에 또 먹이자.”
그런데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 보니, 누렁이는 멀쩡하게 일어나 밥도 먹고 똥도 싸지 않았다.
“어제 약 먹고 병이 다 나아버렸나?”
그러나, 할머니는 약 한 봉지를 더 먹였다. 누렁이는 싫다고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더니 역시 털어 넣은 약을 핥아 먹었다.
동짓달이 되고 첫눈이 내렸다.
낯선 사람들이 다녀가고 난 뒤, 한 달이 지난 것이다. 어느 날, 뜻밖에도 순재네 아버지한테서 편지가 왔다. 봉함엽서에 큼직큼직하게 적힌 편지는 이렇게 씌어 있었다.
어머님 전 상서
어머님, 불효자식이 오랜만에 글월 올립니다. 순재 나이를 꼽아보니 벌써 아홉 살이더군요. 많이 컸으리라 생각됩니다. 어머님 고생하시는 걸 알면서도 이렇게 세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할 일이 무엇인지 이제야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걸 하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어머님을 위해 순재를 위해 저는 이 길을 택하였습니다.
어머님, 고생이시지만 순재를 좀 더 보살펴 주십시오. 이다음에 찾아뵙고 어머님을 꼭 모시겠습니다.
그럼, 다시 소식드릴 때까지 안녕히 계십시오.
불효자 지원 올림
봉투에는 보내는 사람의 주소가 없었다. 아버지는 이 편지를 어디서 보낸 것일까?
이날 저녁, 할머니는 뒤란에 정화를 떠놓고 또 오래오래 빌고 있었다. 순재는 보지 않아도 할머니가 많이 울고 계실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뒤, 한 달 뒤에 아버지 편지가 또 왔다. 이번에도 아버지의 주소는 적혀있지 않았다.
어머님 전 상서
날씨가 많이 추워졌습니다.
어머님 건강이 염려됩니다. 순재도 여전히 씩씩하게 자라고 있겠지요.
혹시나 어머님 집에 누가 찾아가더라도 조금도 걱정 마시기 바랍니다. 저는 무사히 잘 있고 저와 같이 있는 친구들도 함께 잘 있습니다.
어서 좋은 세상이 오면 어머님 뵈오러 가겠습니다. 추위에 몸 건강하시기 빕니다.
어머님의 아들 지원 올림
할머니는 아버지 편지를 매번 원산 아저씨한테 가져가서 읽어 달라고 했다. 원산 아저씨는 두 번째 편지를 읽고 나서 무언가 짐작을 하고 있었다.
“순재 할머니, 염려마세요. 순재 아버지는 아마도 훌륭한 일을 하고 있나 봅니다.”
“글쎄 말입니다. 저희 아버지도 그랬지요. 처자식을 위해 자기가 나서서 해야 한다고 그랬는데 순재 애비 편지 보니 순재 할범 생각이 나는구려.”
그해 겨울은 몹시 추웠고 눈이 많이 내렸다. 영분이네 아버지는 점점 야위어만 가고 좀처럼 회복되지 않았다.
영만이는 직업훈련소를 나와 먼 제철공장으로 취직해갔다.
순재는 영분이와 함께 자주 은실이 누나한테 갔다. 메주 뜨는 냄새가 나는 원산 아저씨네 방은 그 누구네 집보다 따뜻했다. 윗목에서 아저씨는 짚소쿠리를 만들고, 은실이와 아이들은 아랫목에 앉아 삶은 고구마를 먹으며 놀았다.
영분이네 집에 앓고 있는 아버지가 자꾸 마음에 거려 문득 문득 불안해지는 것이었다.
“은실 언니는 아버지가 좋아? 어머니가 좋아?”
영분이가 갑자기 물었다. 은실은 어리둥절했지만 이내 웃으며 대답했다.
“아버지도 좋고 어머니도 좋아.”
“난 어머니보다 아버지가 좋아.”
영분이는 그래놓고 두 손을 꼭 모두어 잡고 오드득 문질렀다.
(아무래도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말 것 같어.)
영분이네 아버지는 영분이를 너무도 귀여워 해주었다. 젖 먹을 때만 어머니한테 안겨있고 그 다음엔 언제나 아버지가 영분이를 안아주었다. 장에 갔다 올 땐 꼭꼭 과자를 사다주고 예쁜 신발도 사왔다.
그런데 그 아버지가 벌써 넉 달째나 누워 지낸다. 하루하루 야위어가고 숨쉬기가 거북해지고 있다.
영분이네는 농협에 빚도 많고 돈이 없으니 몇 번 병원에 다녀와도 제대로 치료를 못했다. 영분이네 어머니 오금골댁은 농사를 못 짓더라도 영분이네 아버지를 치료해드리고 싶어 밭을 팔려고 내어놓아도 아무도 사지 않았다. 농사짓기 어려워 모두가 도시로 나가려드니 토지를 사려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쪼깐네 아주머니네 누렁이처럼 아버지도 약 한 봉지 먹고 금방 나았으면 참 좋겠다.)
골짜기에서 불어오는 바람은 매섭고 차가웠다.
“영분아, 아버지 병환이 낫도록 우리 같이 힘써보자.”
윗목에서 소쿠리를 만들던 원산 아저씨가 혼잣말처럼 이야기했다.
“그래 영분아, 우리가 모두 같이 힘을 모으면 아버지 병환을 치료할 수 있을 거야.”
은실이가 원산 아저씨 말을 받아서 그렇게 말하며 영분이 어깨를 꼬옥 껴안았다.
다음날 아침 일찍, 원산 아저씨는 영분이네 집으로 갔다. 방에 들어온 아저씨는 품에서 봉투 하나를 꺼내놓았다.
“이게 뭡니까?”
영분이네 어머니가 물으니까,
“이것 얼마 안 되지만 영분이 아버지 병원에 가보도록 합시다.”
“…….”
영분이네 어머니는 깜짝 놀라 원산 아저씨를 쳐다보았다. (6월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