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2023년 12월 31일 오후, 원주시 단구동에 있는 <박경리 문학관>에 갔다. 박경리가 <토지>를 완성한 작업실 앞의 눈밭에, 그 박경리가 청동의 모습으로 앉아 있었다.
박경리의 작업실 담장과 그리로 올라가는 길에 박경리가 쓴 시들이 전시되어 있다.
나는 그 시들 중에서 <사마천>과 <옛날의 그 집>을 특히 좋아한다.
<사마천>은 박경리가 <토지>를 쓰면서 틈틈이 써두었던 시들을 묶어 1994년에 출판한 시집인 <자유>에 실려 있다. <토지>를 쓰는 "피를 말리는 작업" 과정의 박경리는, 서기전98년에 사형 대신 그보다 더 모욕적인 궁형을 선택하고 살아남아 <사기>를 집필하던 사마천의 "처절하도록 치열함"을 떠올렸을 것이다. 사마천의 그 목숨과 바꾼 글쓰기를 생각하며, <토지>를 쓰는 자신의 고통을 스스로 위로했을 것이다.
<옛날의 그 집>은 박경리가 2008년 4월에 발표했는데, 그가 마지막으로 남긴 시가 되었다. 자신이 <토지>를 완성한 원주시 단구동의 그 집을 시로 기록한 것이다. 그 시 속에 박경리는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라고 썼다. 그 말이 그 시의 핵심이다. 박경리의 고통스런 창작 작업과 삶에서 그 버팀목은 바로 사마천이었던 것이다.
역사학자인 나는, 특히 고대사를 연구하며 사마천의 <사기>와 그의 힘든 저술 과정을 늘 탐구하는 나는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는 박경리의 그 삶에 크게 공감하곤 한다. 놀라운 삶의 표현이다.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는 박경리의 그 "고독하면서도 처절했을" 삶이 너무도 존경스럽다.
문학이든 역사든, 글을 쓰는 사람들은 최소한 "사마천을 생각하며 사는" 그런 처절함 정도는 있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