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2월 14일 예불문 제4강 (行禪祝願文)
춮처 : 염화실
行禪祝願文
반갑습니다
예불문 어제에 이어서 오늘은 행선축원을 할 차례입니다
부처님께 칠정례를 올리고 그 다음 행선축원을 대개 합니다
행선축원 대신에 이산혜연선사발원문을 하는 사찰도 있지요
행선축원을 먼저 설명하고 그 다음에 이제 이산혜연선사발원문을
한 번 살펴보도록 그렇게 하겠습니다
행선축원은 스님들에 따라서 또 사찰에 따라서 조금씩 다릅니다
그러나 큰 차이가 없는 것은 중간에 나옹스님의 발원문 그건 워낙 유명하기 때문에
그것은 반드시 이제 들어가고요 그 뒤에 이제 앞에 서론격인 그런 축원문이라든지
또 뒷부분에 하는 붙이는 축원문이라든지 이런 것들은 조금씩 차이가 있습니다
행선축원이라... 왜 행선축원이라고 했는가?
아마도 우리나라 불교가 여러가지 특색이 있습니다만 그 중에서도 선불교가
주도를 해서 그래서 축원문도 행선축원이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고
또 행선축원문의 중심은 나옹스님의 발원문이 중심에 있습니다
그것이 이제 축원문의 본론이지요 그래서 나옹선사니까 그래서 행선축원문이라
이렇게 되어 있는 걸로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 불교 특색은 대개 이제 조계종 이렇게 하거나 태고종 이렇게 하면 선불교죠
조계 육조스님을 종조로 모시든 아니면 조계산 그 보조스님을 종조로 모시든 아니면
태고 보우스님을 종조로 모시든 모두가 선사이기 때문에 선불교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거슬러 올라가서 선불교가 한국에 들어오기 전에 화엄불교가 먼저 들어왔지요
의상스님 같은 분이 신라 때 중국에 가서 화엄경의 공부를 해서 우리나라에다가
소위 화엄십찰이라고 하는 아주 화엄사상만을 펴기 위한 사찰들을 곳곳에 세우고
창건을 하기도 하고 중흥도 하고 설사 다른 사찰이 있었다손치더라도 새롭게 화엄경을
가르치기 위해서 의상스님의 많은 그 제자들이 전국에 퍼져서
화엄경을 가르치게 되었습니다
기록에 의하면 흔히 화엄십찰 하지마는 기록에 나와있는 사찰의 수만 하더라도
십개의 사찰이 훨씬 넘습니다
부석사가 이제 중심이 되고 범어사라든지 불국사라듣지 화엄사라든지 해인사라든지
이런 것이 전부 화엄사찰입니다
그것이 의상스님의 영향에 의한 그런 그 화엄불교가 우리나라에 크게 성행을 했고
또 따라서 원효스님이 역시 화엄경을 공부하셔서 화엄사상을 펴는 그런 활동을
또 많이 하셨기때문에 원효스님과 의상스님 두 분의 영향으로 초기불교는 완전히
화엄불교였다 우리나라 불교는 화엄불교였다 이렇게 볼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고려에 들어와서는 이제 나라를 생각하는 그런 그 어떤 경향이 크고
또 왕실의 보호를 많이 받고 또 왕실의 후원도 많이 입고 하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호국불교가 성행하기 시작하지요
그러면서 또 한편 그 밀교가 들어 와 가지고 우리나라에 밀교적인 색채가 상당히 많습니다
또 천태불교가 들어와서 또 천태불교도 섞이게 되지요
그건 법화경을 중심으로 하는 그런 사상인데 그래서 지금 우리가 수용하고 있는
한국 불교의 전반을 일별 해 보면 화엄불교 그 다음에 법화불교 밀교 선불교
뭐 이렇게 골고루 있습니다
그래서 한국불교를 통불교라 흔히 그런 말을 하지요
불교의 전반적인 그런 내용들이 많이 함유돼 있다 그렇게 봅니다
선불교에 있어서도 요즘은 또 그 비빠사나니 하는 그런 유사 전통 선법과 유사한
그런 선법들이 또 많이 소개 돼서 또 교통이 빈번하다 보니까 남방불교 소승불교
상좌부上座部불교라고 표현하는 그런 남방불교가 또 많이 들어와가지고 소개가 많이 되고
이제 수행법이나 교리나 이런 것들이 상당히 소개가 많이 돼 있어서 많은 분들이
뭐 골라 잡아서 얼마든지 마음껏 여러가지 불교를 맛볼 수가 있습니다
그야말로 참 통불교라고 할 수 있지요
그러나 지금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은 역시 선불교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일반 신도들의 그 신앙 형태를 보면 관음신앙이 많고 지장신앙이 많지요
또 그건 선불교라 하기는 또 좀 그렇습니다
모든 의식에는 또 밀교경전인 천수경이라든지 또 교과서에도 밀교경전인 능엄경을
교과서로 쓰는 걸로 봐서는 또 밀교적인 색채도 무시 못하는 입장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주된 사상은 선불교 사상이다 그래서 행선축원이다
이렇게 이제 말씀 드릴 수가 있습니다
선을 행하는데 필요한 축원문이다 그런거죠
조석향등헌불전 귀의삼보례금선朝夕香燈獻佛前 歸依三寶禮金仙
아침 저녁으로 향을 사루고 등불을 밝혀서 불전에 부처님앞에 올리옵니다
그렇지요 아침 저녁으로 그리고 사시에도 불공을 올리지요
삼시로 예불을 드립니다
귀의삼보례금선 歸依三寶禮金仙
삼보에 귀의하고 금선에 예경하옵니다
삼보속에 불 법 승 해서 부처님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이제 중복해서 금선金仙은 금으로 된 신선 이런 뜻이니까 부처님을 뜻하죠
부처님을 흔히 금선이라 이렇게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가치를 지닌 금이죠
금선 또 부처님의 참 훌륭한 가르침을 펴는 그런 그 입이라고 해서 금구성언金口聖言
부처님의 입을 갖다가 금의 입이라 이런 표현도 있기도 합니다
금은 귀한 물건이 돼서 그렇게 많이 성인에게도 많이 붙이죠
또 부처님께 금가루나 금박, 개금하는 것을 최상의 부처님께 예경을 올리고
부처님께 공양 올리는 일로 그렇게 우리가 생각하고 개금불사를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도 그런 뜻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삼보에 귀의하고 금선에 예경하오니
국계안녕병혁소國界安寧兵革消
국계는 안녕하고 병혁은 소멸하여지이다
나라와 나라사이에는 뭐 예나 지금이나 항상 그런 전쟁이 있기 마련이고
크고 작은 그런 다툼과 싸움과 살상이 늘 있어 왔죠
어리석은 중생들 궂이 생각해 보면 그럴 일이 없는데 그 뭐 니꺼니 내꺼니 이렇게 해서
남의 땅에 침범했느니 어쩌니 그래가지고 그 소중한 목숨을 그냥 가차없이 빼앗는
그런 일들이 지금까지도 이렇게 밝은 세상에도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제 나라의 경계는 늘 편안해졌으면 좋겠고 병혁은 이제 전쟁이죠
전쟁은 소멸해졌으면 좋겠습니다 해 주기를 원하나이다 발원합니다 부처님께 그러는거죠
사실 부처님께 칠정례하고 소원이 너무 많아요 불공 낮에 드리는 불공도 보면
한시간을 서서 기도했다한 들 두시간 세시간 기도했다한 들
그 기도가 얼마나 되겠습니까
그런데 우리가 부처님 앞에서 읊조리는 축원문을 읽어 보면 가당치도 않지요
조금 그저 공들이고 세상을 다 달라는듯이 그렇게 합니다
사실 아침에 하는 행선축원도 칠정례 했으면 됐지 뭐 이렇게까지 원하기가
좀 미안한 생각도 들 때가 있더라고요
그러나 이것은 개인을 위한 그런 원이라기 보다는 만중생을 위한 원이니까
그래서 이제 이해는 됩니다마는 그러나 바라는 바가 중생들에게 너무 많습니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천하태평법륜전天下太平法輪轉
천하는 온 세상은 태평해지고 부처님의 법의 바퀴는
끊임없이 굴러가지기를 발원하옵니다 그리고
원아세세생생처願我世世生生處
원컨대 내가 세세생생 태어나는 곳마다
상어반야불퇴전 常於般若不退轉
항상 반야 깨달음의 지혜죠 이거 보통 지혜가 아닙니다 반야 지혜라고 하는 것은
정말 전혀 새로운 시각에서 인생과 세상을 볼 줄 아는 그런 안목 그게 반야지죠
항상 반야에서 퇴전하지 않고 물러서지 아니하고
여피본사용맹지 如彼本師勇猛智
저 본사 석가모니불과 같은 용맹스러운 지혜가 있어지이다
여피사나대각과 如彼舍那大覺果
이건 비로자나毘盧遮那를 사나라고도 표현하고 또 혹은 노사나라고도
이제 합니다마는 여기서는 비로자나로 보는 것이 좋습니다
법신불 비로자나 부처님과 같이 큰 깨달음의 결과를 얻어지이다 또
如彼文殊大智慧 如彼普賢廣大行 如彼地藏無邊身 如彼觀音卅二應
여피문수대지혜 여피보현광대행 여피지장무변신 여피관음삽이응
저 문수보살과 같은 큰 지혜를 얻어지이다
저 보현보살과 같은 넓고 큰 행을 하여지이다
또 저 지장보살과 같은 가없는 몸을 나툴 수 있게 되어지이다
저 관음보살과 같은 삼십이응신을 얻어지이다 이제
여피관음삽이응如彼觀音卅二應이에요 삼이응이 아니고 삼이응 하면 틀립니다
본래 삽이응 서른 삽卅자죠
옛날 사람들이 글자를 한 획이라도 줄이기 위해서 삼십이응 이렇게 하는 것보다
서른 삽卅하고 두 이二 자를 쓰서 삽이응卅二應이라고
이렇게 발음해야 옳습니다
대개 스님들은 불교의 프로라고 하고 전문가라고 나는 늘 말하는데 전문가들이
사는 곳에도 이런 것들을 놓치고 삼이응이라 이렇게 발음하는 곳이 많아요 보면은
관세음보살은 우리가 우리나라 신앙중에 가장 성행하는 신앙이죠
관세음보살은 많은 어떤 응신應身 중생들의 근기에 맞추어서 나타내는 몸
이게 이제 응신應身 입니다
응할 응應자 몸 신身자니까 그게 이게 삼십이응신이라는거죠
그런 능력이 좀 있어지이다 하는 그런 뜻인데 삼십이응신을 이제 살펴보면 그렇습니다
부처님 몸에 응하여 나투어서 중생을 교화하는 불응신佛應身관세음보살 그래요
또 독각의 몸에 맞추어서 나투어 가지고 중생을 교화하는 독각獨覺응신관세음보살
그 다음에 연각緣覺응신관세음보살
그 다음에 이제 성문聲聞응신관세음보살 전부 그렇습니다
또 항상 청정하고 적정한 그런 범천왕의 몸에 응하여 나투어서 중생을 교화하는
그런 범왕梵王응신관세음보살
지거천 수미산 정상 도리천 천주의 제석천왕의 몸에 응하여 나투어서 중생을 교화하는
그런 또 이제 삼십이응신중의 하나니까 제석帝釋응신관세음보살 자재천응신관세음보살
그 다음에 외도들.. 타종교죠.. 타종교인들을 제도할려면 어떻습니까
타종교인의 지도자의 몸을 나투어야 되겠죠
그런 이들은 대자재천大自在天응신관세음보살
그 다음에 대장군大將軍응신관세음보살
대장군신도 나타내고요 사천왕신도 나타내고 사천왕태자四天王太子응신관세음보살
태자의 몸으로도 나타내고 인왕人王응신 인왕의 몸도 나타내고 그 다음에
장자의 몸도 나타내고 거사의 몸도 나타내고 이런 걸 이제 거사응신
장자長者응신관세음보살
거사居士응신관세음보살 교리적으로 표현하면 그렇습니다
재관宰官응신관세음보살 바라문婆羅門응신관세음보살 비구比丘응신관세음보살
비구의 몸에 맞추어서 어떤 그 모습을 나투어가지고 중생을 교화한다 해서
비구응신관세음보살 이렇게 이제 표현들을 하지요 그 다음에
우바새優婆塞응신관세음보살 우바이優婆夷응신관세음보살등등
여기 해당되지 않는 모습이 없습니다
관세음보살님은 중생들을 교화하는데 있어서 누구보다도 가장 자비심이 많다
그게 곧 부처님 마음의 한 부분이죠 지난 시간에도 말씀드렸습니다만
4대보살을 말씀드릴 때 모든 석가모니 이외의 모든 불보살은 모두 석가모니가 깨달으신
그 마음의 세계에 어떤 특정한 부분들을 구체적으로 형상화 해서
이렇게 뚜렷하게 부각시켜서 중생들에게 그렇게 어떤 교화할 수 있는
예배의 대상 귀의의 대상이 될 수 있도록 하는 그런 그 마음의 일부분입니다
그래서 이제 부처님의 마음에 중생들을 제도하는 데 누군들 빠뜨리겠습니까 그런데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사람들을 다 교화한다 하는 그런 마음이 여기에 담겨 있습니다
그러니까 그런 그 관세음보살과 같은 삼십이응신을 나툴 수 있게 되어지이다 그 다음에
시방세계무불현 보령중생입무위十方世界無不現 普令衆生入無爲
시방세계 나타나지 아니한 곳이 없어 어디든지 내가 필요한 곳에 또
중생의 아픔이 있는 곳에 다 나타나서 그 아픔을 어루만져 주고 교화해 주고
이렇게 하여지이다 하는 그런 뜻이죠 그래서
보령중생입무위普令衆生入無爲
모든 중생으로 하여금 무위의 세계에 들어가게 하여지이다
무위 요즘 진리를 이렇게 표현하고 깨달음의 세계를 또 이렇게도 표현합니다
시방세계무불현十方世界無不現
근래 이제 우리 불교도 교화활동을 많이 하지요 다각도로 교화활동을 많이 하고
자선 사업이라든지 그 다음에 복지시설을 통한 그런 노인들을 보살피는
아이들을 보살피는 이런 것들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꼭 내가 그런 일에 당부하고 싶은 이야기는 불법을 꼭 함께 담아서 전해줘야 된다
급식 활동을 하는 사람들에게도 밥을 한그릇 드리더라도 꼭 거기에 부처님의 가르침을
담아서 줘야지 그냥 밥만 주면 그거는 불교가 궂이 할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물론 좋은 일이죠 밥만 줘도 좋은 일이고 합니다마는
불교에서는 달라야 된다는 겁니다
불교에서는 이 불교는 보통 종교가 아니에요 알고보면 정말 길거리에서
싸구려로 파는 그렁 저급한 종교가 아닙니다
아주 고급종교고 정말 명품 종교예요
이 내용을 모르는 사람들이 종교는 다 비슷비슷하다 이런 표현을 쓰는데
그런 봉사활동 또 복지활동을 하는 건 좋은데 거기에 꼭 부처님의 진리의 가르침을
담아서 줘야 그게 불자로서 어떤 봉사활동을 하는 것이고 복지활동을 하는 것이지
만약에 그렇지 않고 다른 종교나 무슨 보건 복지부에서 하듯이 배고픈 사람 밥이나
한 끼 주고 의식주 문제나 조금 해결해 주고 그걸로 끝난다면은
그거는 궂이 불교가 할 필요가 없는 일이 아닌가
부처님은 그렇게 안 하셨거던요
부처님 당시에 굶고 헐벗은 사람이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그게 정말 급한 일이라면 부처님도 아마 밥주는 일 헐벗은 사람들
의식주 문제 해결하는데 힘썼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어요
곧 헐벗고 굶주려서 정말 기갈에 허덕이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그렇더라도
진리의 가르침을 전하려고 노력을 했던 분이 바로 부처님입니다
부처님 역사에 무슨 밥 주고 옷 주고 그런 일 한 적은 없어요
그런 사람에게까지도 밥이 필요하고 옷이 필요한 사람에게까지도
진리의 가르침을 전했지 그들에게 내가 왜 이렇게 굶는가 내가 왜 이렇게 헐벗는가
내가 왜 이렇게 집이 없는가 이런 이치를 깨우쳐 준 거에요
어떻게 생각하면 참 답답한 부처님이지
아니 당장에 배고픈 사람에게 무슨 진리의 가르침이 무슨 필요하겠습니까
얼핏 생각하기에 그렇지요 그러나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그런 일은 한 적은 없고 참으로 어떠한 상황에서도
진리의 가르침을 폈다 하는 것입니다
오늘 날 불교가 복지운동에 상당히 많은 노력을 기울이는 거 참 좋은 현상입니다
거기에 부처님의 진리의 가르침을 얹어서 봉사할 수 있으면
얼마나 아름답고 좋겠는가 하는 그런 마음을 가져봅니다
그래서 여기 시방세계무불현 보령중생입무위十方世界無不現普令衆生入無爲
어디든 다 불자가 부처님의 이름으로 나타나는건 좋습니다 그래서
중생들에게 무얼 하라고?
무위의 도리 진리의 도리 깨달음의 도리에 들어가게 한다
하는거 이것이 이제 불교의 마음이고 부처님의 마음이죠
그 다음에 축원문에서 정말 빛나는구절이
문아명자면삼도 견아형자득해탈聞我名者免三途 見我形者得解脫
아 참 기가 막히는 구절입니다
내 수행이 깊어지고 내 공부가 깊어지고 내 덕이 깊어지고 높아져서
문아명자면삼도聞我名者免三途 내 이름만 듣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지옥 아귀 축생
삼도의 고통을 면해줍니다
견아형자득해탈 見我形者得解脫
나의 형상만 봐도 해탈을 얻어지이다
뭐 힘들게 그렇게 경을 펴놓고 설명을 하고 설법을 하고 뭐 온갖 그냥 이야기를
다 동원해서 설득을 시키려고 하고 하는 그럴 필요없이
그야말로 이름만 아 누구라는 이름만 딱 듣고도 들어도 삼도의 고통을 면하게 되고
모습만 봐도 해탈을 얻을 수 있도록
그 정도의 덕이 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참 나옹스님의 말씀인데 이런 경지까지 생각 하셨다고 하는 거
이거 참 자비의 한 표현이 아닐까 이런 생각 합니다
여시교화항사겁 필경무불급중생如是敎化恒沙劫 畢竟無佛及衆生
이와같이 교화해서 항하사겁이 다 할 때까지 교화하고 필경에는 끝내는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고 부처니 중생이니 하는것이 상대적인 이름이죠
본래 우리의 모습은 부처도 아니고 중생도 아니에요 지금 우리는 부처도 돼 있고
중생도 돼 있고 별별 차별현상들이 펼쳐져 있습니다
그런 것이 다 사라진 원래의 청정한 모습으로 다 돌아가게 하여지이다 하는
그런 이야기인데 여기까지가 願我世世生生處에서부터 畢竟無佛及衆生하는데까지가
나옹스님의 글입니다
그 다음에 여기에 제가 참고로 올려놓은 그 행선 축원을 우선 말씀드리면
시방시주원성취 十方施主願成就
시방의 시주들 절에 시주하고 부처님께 시주하고 뭐 시주한 사람들이 많죠
이들의 원이 다 성취 되어지이다 그러니까 스님들이 사찰에서 생업이 있습니까
오로지 시주의 덕택에 시주가 돈 내서 지어놓은 사찰 시주가 주는 곡식 돈
이런거 가지고 생명을 부지해 가는데 시방 시주들에게 축원을한 번 해 줘야죠 아침으로
그래서 시방 시주들의 소원이 다 성취되어지이다 막연하죠
도둑질 하는 시주 도둑질 잘 하여지이다 그런 뜻도 담겨져 있고
살생 많이 하는 사람에게 살생 잘 하여지이다 하는 그런 소원도 담겨 있습니다
이게 부처님의 자비예요
시회대중각복위 是會大衆各伏爲
시회대중들이 각각 엎드려서 위한다 누구를
선망부모왕극락 先亡父母往極樂
먼저 돌아가신 부모님들 조부모님들 증조부모님들 고조부모님들 위로 올라가면서
온갖 부모님들 모두가 극락에 왕생 하여지이다 이런 축원도 있어요
아침에 예불을 하고 이런 축원 한 번쯤은 좋지요
축원을 한다고 해서 자기가 알아서 수행하고 자기가 지은대로 가게 돼 있지
무슨 남이 축원을 한다고 해서 꼭 그렇게 될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살아있는 사람으로서 또 그들의 영향에 의해서 오늘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우리로서 할 일이에요 이렇게 축원하고 기도 하는 것이 살아 있는 사람의 할 일입니다
살아있는 사람의 할 일을 할 도리를 다할 뿐인거죠
이게 정말 선망 부모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느냐 하는 것은 그 다음 문제죠
현존사친수여해 現存師親壽如海
지금 살아 게시는 스승과 어버이 친척 권속들 수명은 바다와 같이 길어지고
법계애혼리고취 法界哀魂離苦趣
법계의 외로운 영혼들은 아직 다음 몸을 받지도 못하고 구천을 떠도는
외로운 영혼들은 전부 고통의 갈래를 떠나지이다 그리고
산문숙정절비우 山門肅靜絶悲憂
사찰은 대개 산에 있죠 산문에는 산은 고요해져서 모든 문제가 사라진다
사라져서 근심과 걱정과 슬픔이 다 끊어지고
사내재앙영소멸 寺內災殃永消滅
절 안에 온갖 재앙이 영원히 소멸하여지이다
절도 지수화풍으로 만들어져 있고 아무리 청정도량 또 무슨 성인이 계시는 곳이라
하더라도 다 이게 지수화풍으로 되어 있고 유형의 존재이고 하기 때문에
온갖 일들이 다 있습니다
사찰마다요 신라 때 창건돼서 역사가 천년이 넘는 그런 사찰은 대개 역사를 살펴보면
한 7-8 번 큰 화재가 있고 자그마한 화재들은 수십 번 있었고요
그거 재앙이죠 다 큰 재앙이죠 지수화풍으로 만들어져 있고 유형의 존재이기 때문에
아무리 부처님 모셔놓은 곳이라 하더라도 그런 것은 있게 마련인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축원이 있는거죠
寺內災殃永消滅 山門肅靜絶悲憂
산문에서 절집 안에서 근심 걱정이 좀 많습니까
온갖 싸움 시시비비 영고성쇠가 얼마나 또 많습니까 마찬가지요 다 있게 마련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축원이 필요한 거지 없으면 왜 이런 축원이 있겠습니까
그런 것들도 우리가 제대로 알고 바로 알아야지 막연하게 무슨 성스러운 도량이다
성인의 도량이다 부처님 모시는 도량이다 해가지고
물론 조심하고 높이 숭상하고 하는 거는 다 좋은 마음입니다만 현실을 직시하고
사물은 사물로 볼 줄 알고 유위의 일들은 일체유위법은 여몽환포령이라고 하는 사실
이런 이치 깨우치자고 불교 배우는 것이죠 그 다음에
토지천룡호삼보 土地天龍護三寶
토지를 지키는 토지와 천룡들은 여기에 토지도 토지신이라는 뜻이 있네요
그리고 천신과 용들은 삼보 불법승 삼보를 잘 보호하여지이다
산신국사보정상 山神局司補禎祥
산신과 국사단이라고 해서 해인사 같은 데는 국사단이 있어요
국사단이 있는 사찰은 그렇게 흔치가 않습니다 거기에는 온갖 동물들을 모셔 놨습니다
거기에서 일주문 들어 서면 얼마 아니 되는 절의 정식 도량안에
중심 도량에서는 벗어나 있죠
그래서 저 밑에 국사단이라고 있는데 옛날에 해인사에 어떤 스님을 보니까
국사단을 그렇게 위하더라고요
학인 스님들은 전혀 가서 예불 한 번도 드린 적이 없는데 꼭 거기 가서
예배드리고 하는 그런 일이 있습니다 거기에는 거의 동물들을 많이 모셔놓은 곳입니다
어쨋든 산신이나 그런 그 온갖 주변의 많이 함께 살아가는 동물들도
다 정상禎祥 아주 상서롭고 복된 것을 아주 복되도록 도와 주십시요하는 그런 말입니다
준동함령등피안 蠢動含靈登彼岸
그리고 꼬물거리는 벌레 온갖 영혼들 전부 다 저 언덕에 일체 문제가 해결되고
고통이 다 떠난 그런 피안에 이르러지이다 그래서
세세상행보살도 世世常行菩薩道
세세토록 항상 보살도를 행하고 그래서
구경원성살바야 究竟圓成薩婆若
결국 가서는 구경에 가서는 끝에 가서는 일체지 살반야는 일체지입니다
모든 것을 꿰뚫어 아는 그런 지혜를 원만히 이루어지이다 그리고
摩訶般若波羅密 南無釋迦牟尼佛 南無釋迦牟尼佛 南無是我本師 釋迦牟尼佛
그렇습니다 위에서도 온갖 그런 그 불보살을 비로자나불 문수 보현 지장 관음
이렇게 많이 열거했지만 끝에 가서는 나무시아본사석가모니불 또 위에도
여피본사용맹지 그렇게 했습니다 예불문에서 본사라고 하는 말을
내가 아주 힘주어 설명을 드렸지요 아주 중요한 그런 낱말이기 때문에 보십시요
여기도 본사용맹지 본사석가모니불 이렇게 했잖습니까
여기까지가 일반적인 축원문이고 그외 사찰따라서 스님들 따라서
여러가지 축원문을 볼 수 있어요 어떤게 있는고 하면
옛날에 요즘은 그런 걸 들을 수가 없는데
주상전하수만세 主上殿下壽萬歲 임금님 수명이 만세토록 이어지소서
왕비전하수제년 王妃殿下壽齊年 왕비도 주상처럼 그 수명이
만세나 똑같이 그렇게 이어지소서
세자전하수천추 世子殿下壽千秋 세자저하는 그 수명이 천추나 가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제궁종실각안녕 諸宮宗室各安寧 궁이 여러 궁이 있지요
제궁의 종실들은 각각 모두 편안하여지이다
심지어 이런 축원도 있고요
또 저가 좋아하는 축원문중에는 이런게 있습니다
朝夕香燈獻佛前 歸依三寶禮金仙 다음에
일인유경휘천세 만민함락주백년 一人有慶煇千歲 萬民咸樂住百年
참 글이 좋더라구요 일인유경휘천세 만민함락주백년
어릴 때 이구절을 듣고 아주 감동을 해가지고
저는 행선 축원 할 때 이 구절을 가끔 했었습니다
한사람이 경사스러운 일이 있으면 그것이 천세나 빛나고 그로 인해서
만민들이 다 함께 즐거워 하는 그 즐거움이 백년동안 머물러지이다
일인과 만민과 요 대가 아주 좀 좋고 천세와 백년이라고 하는 그런 대가 아주 좋고
경사와 즐거울 락이라고 하는 이것도 대칭으로써
참 글이 아름다워서 좋아 한적도 있습니다 또 대개
상래소수공덕해 회향삼처실원만 上來所修功德海 廻向三處悉圓滿
이런 말도 빼 놓을 수가 없어요 위에 그동안 우리가 닦아온 모든 공덕의 바다
삼처에 다 회향해서 모두 원만하여지이다 그렇습니다
이 회향이라고 하는 게 참 중요하거던요
우리가 예불하는 것 여기서는 일단 예불하는 것입니다
상래소수공덕해라 하는 것은 기도하는 것이나 독경을 하는 것이나 예불을 하는 것이나
여기서는 그런데 예불뒤에 행선 축원하는 것이니까 지금까지 닦은 공덕의 바다가
삼처에 회향돼서 다 원만하여지이다
회향삼처실원만 삼처는 중생과 보리와 실제거던요
불교에서는 자기가 어떤 공덕을 지었든 어떤 공부를 했든 그것을 전부 다른 사람에게
회향하는 데 뜻이 있습니다
회향 안하면 아무 의미 없어요 자기만 갖자고 하는 것은 아무 의미 없습니다
돈을 설사 벌었다 하더라도 불자는 자기가 번 돈을 전부 좋은 일에
정말 가치 있는 일에 써야 되는거에요 그게 회향이에요
중생에게 회향하고 보리 깨달음에 회향하고 진리에 회향하라 그랬습니다
사람들에게 회향하고 깨달음에 회향하고 실제 진리 그 자체에 회향하는거
그게 삼처거던요
회향 삼처라고 해서 그것이 잘 되어지이다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내가 예불을 한 번 했든지 부처님 앞에 가서 절 삼배를 간단하게 했든지
한 시간동안 관세음보살을 불렀든지 어떤 공덕을 지었든지간에
그 공덕이 전부 다른 사람에게 돌아가지고 진리를 깨닫는 데
돌아가지고 그렇게 되어지이다 하는 그런 원입니다
불교의 제대로 된 정신은 이런 모습이죠 그 다음 또
우순풍조민안락 천하태평법륜전 雨順風調民安樂 天下太平法輪轉
이런 축원도 많이 합니다
우순풍조 비는 아주 순조롭게 내려야 되고요 태풍이 불어가지고
수해가 크게 나 가지고 집이 떠내려가고 길이 떠내려가고
그래서 재산상의 손해도 많이 보고 우리나라는 늘 그렇죠
그런 일이 옛날에 많았기 때문에 그래서 우순풍조 그런 말을 합니다
비는 아주 순조롭게 오고 바람도 아주 고르게 바람이 적당히 불만치 불어야지
태풍이 와 가지고 인민들에게 손해를 많이 끼친다면 그것도 참 안 좋은 일이죠
그래서 민안락 民安樂 백성들은 다 안락하고 천하는 태평해서
법륜은 진리의 법의 바퀴는 잘 굴러가지이다
법륜전이라고 하는 게 참 중요한 말이죠 그 다음에
원당성조복무량 願堂成造福無量
원당을 조성하는 사람들 복이 무량하여지이다
이 원당이라고 하는 것은 신도들이 법당을 짓는데 자기가 마음 가는 곳에
얼마를 시주했던지간에 그런 사람들 모두 복이 한량없어지이다 그 다음에
성상소화구덕상 聖像塑畵具德相
성상을 관세음보살상이나 불상이나 나한상이나 온갖 상을 조성하고 그렸을 때
거기에 동참한 모든 공덕 지은 사람들 덕상을 잘 갖춰지이다 그랬습니다
법당을 짓거나 한데는 복이 무량하여지이다라고 했고 불보살의 성상을 빚거나
그림을 그리는 데 동참한 사람들은 덕상 아주 아름다운 부처님이나 보살들의 모습은
아주 덕상을 제대로 갖췄잖습니까 그래서 덕상을 갖춰지이다 또 이렇게 했고요
궁전채화획장엄宮殿彩畵獲莊嚴
채화를 하는 데 동참한 사람들 단청을 했다든지 그림을 그렸다든지 하는데
동참해서 공덕 지은 사람은 장엄을 얻어지이다
인등향촉득광명 引燈香燭得光明
요게 서로 연관성이 있어요 등불을 밝히는 데 전기불 공사를 했다든지
아니면 법당 인등을 켰다든지 초를 샀다든지 아니면 향을 좀 사서 댔다든지
그렇게 공덕지은 사람에게는 광명을 얻어지이다
또 재미있는 것이 요즘 이런 축원은 옛날 스님들이 많이 했는데 근래에는
앞에 소개한 그것 만을 들을 수가 있고 이런 것들은 듣기가 어렵지요
그런데 이런 기회에 우리가 한 번 살펴 볼 필요는 있습니다
창호도배면팔난 窓戶塗褙免八難
그랬어요
창호지 문 바르는데 문이라든지 창이라든지 또 그 다음에
방에 도배하는 문제라든지 이런 데 동참해서 공덕을 지은 하는 사람은
팔난을 면해지이다 그건 역시 막는 것이고 하는 것이니까 팔난하고 관계가 있지요
팔난이라고 하는 것은 불법을 만나기 어려운 조건 8가지를 팔난이라고 그러는데
거기에는 똑똑한 것도 다 들어있고 그래요
너무 사람이 머리가 넘칠 정도로 똑똑한 것도 문제라는 것이고
너무 물질적인 복이 너무 풍성한 집에 태어나는 것도 역시 팔난 속에 들어가고요
귀머거리나 벙어리도 역시 팔난 속에 들어가고 등등 그런
불법을 만나기 어려운 8가지 조건들을 그렇게 표현합니다
창호지라든지 도배라든지 이런 것을 말하자면
그런데 공덕을 지은 사람은 팔난을 면해지이다 또
유기철물신견고 鍮器鐵物身堅固
그런 말이 있어요
사찰에 유기라든지 철물이라든지 이런 것들을 시주해서 거기에 동참해서
공덕지은 사람은 몸이 견고하여지이다
유기나 철물은 다 견고한 것이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런 말이 있고 또
불량헌답복무변 佛糧獻畓福無邊
불량답佛糧畓이라 그러죠 부처님께 논이나 밭을 시주한 그런 이들도 옛날에 많았죠
그런 이들도 복이 무량하여지이다 또 좋은 구절이 이런 게 있습니다
일당청중혜안명一堂淸衆慧眼明 팔부성신호도량 八部聖神護道場
이것도 빼 놓을 수 없는 좋은 구절이지요
일당청중혜안명一堂淸衆慧眼明
한 방에 있는 아주 청정한 대중들은 그러니까 강원이든 선방이든
큰 한 집에 모여 사는 대중들은 10명도 되고 20명도 되고 심지어 50명도 60명도 되고
중국 총림 같은 데는 100여명도 되고 그렇지 않습니까
일당청중혜안명一堂淸衆慧眼明 모두 지혜의 눈이 밝아지고
팔부성신호도량 八部聖神護道場 팔부신장들이죠 팔부성중들은 도량을 잘 보호해지이다
이런 축원은 지금도 간혹 들을 수가 있습니다 또 어떤 때는
개와영면번뇌우 盖瓦永免煩惱雨
그런 말도 있어요
기와를 시주를 한 경우 요즘 많죠 사찰에 가면 관광객들에게 기와 시주하라고
그 기와를 제대로 기와 시주를 받았으면 꼭 기와를 사 가지고 기와 써야 됩니다
한문은 개와盖瓦예요 우리가 기와 기와 하는데 개와
그걸 기와 살 거라고 시주를 받아가지고 예를 들어서 다른데 사용하면
그건 이제 호용죄互用罪라고 해 가지고 요즘 우리나라 법에도
관이나 항을 바꾸어 쓰면 그게 법에 저촉이 되지요
그게 옛날에 불법에 그런 게 있습니다
기와 사겠다고 시주를 받았는데 예를 들어서 기둥을 샀다 그러면
그건 죄에 해당이 된다는 거지요
그럼 죄에 해당되지 않도록 할려면 공사를 부쳐가지고
대중들의 동의를 얻어야 된다 그랬습니다
또 예를 들어서 서까래 시주를 받았는데 돈이 넉넉하다 이거죠
그러면 양식을 살 수도 있잖습니까 그 돈 가지고
그렇더라도 양식을 못사게 되어 있어요 원칙은
만약에 살려면 전 대중의 동의를 받아서 사야된다 만약에 그렇게 안하면
호용죄라고 해서 치문에도 보면 호용죄에 대한 그런 말이 나와요
이런 건 아주 옛날법인데 공교롭게도 요즘 국법하고도 똑같이 그렇게 적용이 됩니다
어떤 또 축원은 그런게 있어요
도배능장무명풍 塗褙能障無明風
그런 말도 있습니다
방에 도배 한다든지 법당에 도배를 해야 할 그런 경우에 그럴 때 동참을 해서
공덕을 지었을 경우 무명풍 무명의 바람을 능히 막아지이다
도배하는 것은 바람을 막기 위한 그런 한 방법이기도 하지요
등촉보조대법등 燈燭補助大法燈
등이나 촛불을 시주했다고 할 경우는 큰 법의 등불을 밝게 밝혀지이다 하는
그런거 축원 등등 아주 여러가지가 많이 있습니다
이런 등등이 행선 축원 오늘 말씀드린 행선 축원의 여러가지 면면들인데
지금은 이걸 다 하지 않고 옛날에는 사찰마다 이런 것을 다 읊조리고
예불하는 데 두시간 걸린 경우도 있어요
지금은 사실 법당에서 예불하는거 칠정례하고 행선축원이나 이산혜연산사발원문
해 봤자 불과 2-30 분이면 끝나는데 그 전에는 시간이 상당히
예불에 시간이 많이 걸렸었습니다
중국스님들은 지금도 두 시간 이상씩 그렇게 예불을 하지요
그게 이제 두분수라고 해서 부처님 앞에 가서 예배드리고 향사르고 절하고 하는
그런 일이 그대로 아주 좋은 수행 방법이다 이렇게 봤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예불문 강의 중에서 행선 축원을 말씀드렸습니다
오늘 공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그리고 예고 해 드린대로 금요일 토요일 일요일은 휴강입니다
좋은 주말 되시기 바랍니다
착오 없으시기 바라고요
지금 우리 염화실에 많은 분들이 들어 와 있어요 92명이나 들어와 있는데.........
이런 많은 분들이 동참해서 비록 수월도량 가상공간의 전법도량이지만
이 도량을 이렇게 밝혀주셨습니다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