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은 별들의 길을 탐하지 않고 새는 바람의 길을 꿈꾸지 않는다 -졸시 「그림자는 가볍다」 중에서
여름밤 내 쏘아 올린 폭죽들은 하나도 별이 되지 못했고 - 졸시 「가을 화진포」 중에서
별들의 길, 바람의 길, 새들의 길, 방패연, 수소풍선의 길은 서로 다르다. 팽팽하고 당당하던 줄이 끊어지는 순간, 들숨 다하여 날숨으로 내려오다 걸린 높은 나뭇가지에서 바람에 너덜거리는 초라한 방패연. 수소를 가득 채운 빨간풍선은 놓쳐버린 아이의 손에서 벗어나는 순간 하늘로 훨훨 달아나지만 결국 바람 빠진 헐렁하고 초췌한 모습으로 떨어지고 찢어진 채 바람에 불려 다니다 막다른 골목길 구석에 멈추어 선다.
가슴 떨리는 기쁨의 순간
어떤 책에서 읽은 기억이 난다. 전쟁터에서 총에 맞아 죽어가는 군인이 전우의 품에 안겨서 숨을 몰아쉬며 마지막으로 한 말. “우리 옛날에 이웃 동네 아이들과 야구경기 할 때…… 덩치 큰 그 투수가 던진 볼을 내가 홈런을 쳐서…… 멀리 숲으로 날아가던 볼…… 너도 기억하지? 그때 나 아주 멋졌지?” 누구나 살아오는 동안 가슴 떨리는 기쁨의 순간이 있고 그때의 기억은 절망적인 고통을 견디는 힘이 되어주는 것이다. 방패연도 빨간 수소풍선 에게도 공중 높이 떠올라 행복했던 절정의 순간들이 바로 목표이며 사명이었으므로 그들은 자신의 본분을 다한 것이다. 아무도 그들에게 새처럼 바람처럼 별처럼 될 것을 기대하지도 강요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이가 들수록 각도 수정은 이미 늦었고 내가 걷고 있는 길은 목표에서 점점 멀어져 간다는 것을 알면서도 습관대로 매너리즘의 물결을 따라 눈 감고 흘러가 버린다면 이건 정말 삶의 직무유기라고 할 수밖에. 이 생각의 시점에서 나는 정신이 좀 든다. 새로운 성장 변화는 나이와 상관없이 죽을 때까지 우리가 새롭게 찾아가야 할 ‘길’인 것이다. 조선 숙종-영조 때의 문신이자 실학자였던 성호 이익 선생(1681-1763)은 모든 벼슬을 버리고 경기도 안산으로 내려와 쉬면서 77 항목에 걸친 관물 일기를 남겼다. 주변에서 보고 느낀 일들을 기록한 관물편(觀物篇)에는 재미있는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사람이 살찌워서 잡아먹기 위해 야생거위 한 마리를 잡아서 길렀다. 거위가 날지 못하게 맛있게 익힌 음식을 자꾸 먹여 뚱뚱해지도록 했다. 점점 뚱뚱해져 가던 거위는 자신의 상태를 알아차리고 음식을 먹지 않기 시작했다. 기르던 사람은 병이 난 줄 알고 먹을 것을 더 많이 주었다. 그러나 거위는 여전히 음식을 먹지 않았다. 열흘을 굶은 거위는 드디어 몸이 가벼워져 날개를 저어 하늘로 날아 가버렸다.” 야생거위는 야생에서의 자유를 기억하고 있었고 자신이 가야 할 길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래전, 간성 시내를 거치지 않고 거진 쪽으로 바로 가는 도로포장 공사가 막 끝났을 무렵, 간성 초입 삼거리에는 임시로 설치한 것이었던지 아직 단순한 신호등이 길 양쪽에 서 있었다. 어느 늦은 밤, 거진에서 속초 쪽으로 가는 길에 파란불이 막 지난 노란불 신호등 앞 정지선에 차를 세웠다.
노란 신호등 사이에 보름달이
그런데 놀라운 광경이 차의 정면 유리창에 나타났다. 양쪽에서 마주 보고 선 신호등 노란불 두 개 사이에 명도와 채도와 크기가 아주 정확하게 똑같은 보름달이 가운데에 들어서 있는 게 아닌가. 난 처음에 눈을 의심했다. 한참 뒤 갑자기 신호등은 빨간불로 바뀌었고 양쪽의 빨간불 가운데에서 변함없이 당당하게 자리하고 있는 보름달을 본 것이다. 순간 보름달은 보통의 멈추고 서고 돌아가는 단순한 신호등의 성능, 그 이상의 것을 말하고 있는 듯했다. 내가 살아가는 삶의 길을 밝혀주는 특별한 빛 같은 신비로움이 느껴지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밤을 새워 시를 썼다.
마주 선 신호등 노란 불 두 개 사이에 보름달이 끼어들었다 놀랍도록 알맞은 간격의 크기와 밝기
누구와 누구, 무엇과 무엇 사이에서 나도 저렇게 잘 어울려 본 적이 있었던가 순식간에 색을 바꾼 빨간 불빛 사이에서 나만의 빛으로 당당해 본 적이 있었던가
고단한 밤길 달리다 잠시 멈춘 정지선 어디로 가고 어디서 서야 하는지 길 밖의 먼 길 환한 웃음으로 비추고 서 있는 달빛 신호등 - 「달빛 신호등」 전문, 시집 『따뜻한 간격』
요즘에도 보름달이 뜨는 밤이면 차를 타고 가는 길에 신호등과 보름달의 각도를 기웃거려보는 습관이 있다. 그러나 아주 시골에서는 그런 단순한 신호등이 있을지도 모르지만 요즘 신호등은 디자인이 요란하고 복잡하여 그때의 단순한 불빛 가운데에 보름달이 들어서는 구도를 발견하기가 어려운 것이 참 아쉽다. 우리의 인생에도 직진으로 달려야 할 때와 멈추어야 할 때, 오른쪽 왼쪽으로 방향 전환을 해야 할 때를 알려주는 신호등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해 본다. 꼭 신호등 사이의 달빛이 아니면 어떠랴. 나는 지금 가을이라는 길 위에서, 훤한 보름달 아래서, 잠시 멈추어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