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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예수님께 이끌리는 사람들 원문보기 글쓴이: 양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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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 이후 한국 교회는 어떻게 되었는가?
■사진설명 : 1938년 제27회 조선예수교장로회는 신사참배 결의를 만장일치로 결정했다.조선예수교장로회의 총회 이후 찍은 임원진 기념사진이다. 앞줄 중앙에 홍택기 목사, 그 오른쪽이 김길창 목사이다.우상숭배의 대가로 받은 "은전(가롯 유다의 은전)"을 헤아리던 자들이며, 신사참배를 반대했던 목사들을 이단이라고 했던자들이다.(위 사진은 글 게시자[정바울 박사,크리스찬트리뷴]의 허락없이 무단 도용을 할 수 없습니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트리뷴.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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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교회의 죄악은 국가적인 죄악의 과거사를 그대로 방치하게 만들었다. 또한 최근까지만해도 친일인사와 애국 지사 후손 사이에 땅 소송문제가 이슈가 되었었다.
전쟁의 폐허 속에서도 헌신하는 많은 목회자들이 일어나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기도하며, 상처 받은 많은 영혼들을 주님의 품으로 인도했다.
교회는 하나님 앞에 또다시 분열된 모습과 정죄하고 다투는 모습을 보이며, 하나님의 진노를 사게 되었다. 총회는 시작도 못하였고, 그 일이 있은 몇달 후 4.19와 5.16 사건이 일어나 전국은 또 한차례 피로 물들게 되었다. |
◆우리는 이를 어떻게 해결해 나가야 할까? |
■사진 설명 : 1941년 조선예수교장로회 K노회 소속 장로교 목사들이 "천조대신 외에는 참 하나님이 없다"고 신앙 고백을 하며 '미소기 바라이'(신도침례)를 집단적으로 행하며,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기념촬영한 사진. 기독교에서 행하는 침례(히6:2)는 받지 않으면서 신사참배하는 조선예수교장로회 목사들이 잡신(태양신)을 숭배하기 위해 일본 불교 중들에 의해 집행되는 '미소기 바라이'를 단체로 행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었다 (위 사진은 글 게시자[정바울 박사,크리스찬트리뷴]의 허락없이 무단 도용을 할 수 없습니다.) 저작권자 ⓒ 크리스찬트리뷴. 무단전재-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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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백을 하게 된다.
한경직 목사의 공개적인 자백이 중요한 의미를 갖는 이유는 반 세기 동안 교회를 이끌어 온 많은 교계 지도자들 중에서 신사참배에 동참했던 대부분 목회자들이 우상 숭배의 죄를 고스란히 간직한 채 교회를 섬겨왔다는 것을 확증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있을 수 있다. 하나님과의 개인적인 관계의 회복으로 가볍게 끝낼 수 없는 중차대한 문제임을 시사하는 것이다.
죄에 대한 책임이 집단적으로 나타는 경우가 성경에는 있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나아감으로 여리고성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었다. 다음 단계로 정복할 성은 아이성이었다. 아이성은 여리고 성보다 훨씬 작은 성이었기에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전혀 걱정하지 않았다.
회개를 요구하는 목소리에는 독선이니 정죄니 라는 말로 그냥 넘겨버렸다. 때로는 일제 하에서 참혹하게 죽어간 순교자들을 싸잡아 광신자로 취급하기도 하였고, 신사참배에 저항하다가 투옥된 목회자와 성도를 교회의 조직을 무너뜨리고 갈려나간 교회 분열의 원인 제공자로 말하기도 했다. 20세기 초, 전세계에 놀라운 성령의 불이 임하는 곳마다 특징적으로 선두 되었던 것은 회개의 역사였다. 하나님 앞에, 사람들 앞에 공개적으로 죄를 자백하는 것은, 단순히 표면적이고 형식적인 절차가 아닌, 하나님 앞에 눈물로 진실하게 죄를 회개하고 거룩과 성결의 옷을 다시 입음으로, 서로에 대한 상처를 용서하고 서로 기만했던 과거사를 완전히 청산하며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교회로 다시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성찬상을 뒤엎고 교회 내에서 서로 분쟁하며 욕하고 난장판을 만들며 몸싸움하는 모습은 부끄럽게도 오늘날의 국회의 모습을 보는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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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묵묵하게 섬기는 많은 교회와 목회자, 성도들이 있다. 과거의 부끄러운 역사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사랑하며 끝까지 신앙의 순결을 지킨 많은 순교자들이 있다.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며 투옥되면서까지 믿음을 지킨 알려지지 않은 많은 목회자와 성도들이 있었다.
또한 6.25의 전란 중에서도 나라와 민족을 위해 눈물로 회개하며 기도했던 교회와 목회자들이 있었다.
하나님은 우리 나라를 사랑하신다. 또한 한국의 목사님들처럼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하는 열정이 강한 나라도 드물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진노중에라도 우리를 향한 긍휼을 잊지 않은 것은, 이처럼 나라와 민족을 사랑하며 기도했던 숨겨진 의인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한국이 전세계에 일어나고 있는 대부흥과 대추수의 역사속에 합류하기 위해서는 ‘아간과 아간이 저지른 가증한 죄악’을 없애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택을 잊지말고 늘 감사해야 한다. 그리고 부흥을 준비하며, 나아가 주의 재림을 준비하는 세대로 일어나기 위해 먼저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가장 먼저 목회자들이 달라져야 한다. 교회의 모습이 우리 사회에 그대로 반영된다는 사실을 우리는 잊지 않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을 햫한 처음 사랑을 회복하고, 성결한 주님의 백성들로 일어나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진리의 길을 따라 나가야 한다.
우리에게는 해결되지 않은 남북 문제와 같은 큰 사안들이 있지만, 그 역시도 하나님이 하실 일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며 말씀대로 정직하게 순종하며 나가야 한다. 다니엘과 같이 통회하며 나라를 위해 기도하며 하나가 되어 나아가야 한다!
부흥을 사모하는 한국 교회 ‘성결과 사랑’의 회복 필요
더 좋은 부활을 바라보며 천국을 소망하는 순수한 신앙 필요
글쓴이 ; 정바울 박사 / 한국교회영성총연합회[UCSC]총재
한국 기독교 치욕의 죄악사를 읽고 적지않은 충격을 받은 분들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이러한 과거의 죄악사가 은폐되고 왜곡되어 21세기에 접어든 지금까지 흘러왔다는 것은, 한국 교회의 커다란 모순을 설명해 주는 것이 아닌가 한다. 필자는 양가 부모님(아버지쪽으로 다산 정약용, 어머니쪽으로 고산 윤선도)쪽으로 각각 순교자를 배출한 양반(남인) 집안이다. 그분들은 조선시대(영묘조) 때 ‘야소(現 예수)교’를 믿는 다는 이유로 목이 잘려 순교를 당했다. 우리의 믿음은 이처럼 우리의 생명보다도 더 소중하게 지켜져야 한다.
외가쪽에서는 윤지충이 예수님을 믿게되었다. 당시 그들은 선교사들을통해 개종된 것이 아니라, 중국에서 들어온 양학을 공부하다 성경을 접하게 되고 이를 통해 야소(예수)를 믿게 되었다.
윤지충은 제사문제로 타협하지 않다가 1791년 12월 전주에서 친척인 권상연과 함께 참수형(칼로목자르는형)을 당해 한국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다.
또한 친가쪽에서도 순교자들이 나왔는데, 정약종은 조선 후기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지키다 42세의 젊은 나이에 서소문 밖에서 참수형을 당하여 순교했고 그의 아들들과 딸인 정철상,정하상, 정정혜도 모두다 하나님 앞에 생명을 드리며 순교함으로 믿음을 지켰다.
특히 정하상은 3차의 형문을 당한후 톱으로 몸이 켜지고 그러고도 생명이 남아있어서 결국 참수형을 당하였다.
초대교회 때 굶주린 사자들의 밥이 된 수 많은 순교자들과 화형대에 매달린 많은 믿음의 선진들은 천국의 삶을 이 땅의 영화보다 더 귀하게 여겼다. 그들은 ‘더 좋은 부활’(히11:35)을 얻고자 악형을 받되 구차히 면하지 않았으며, 희롱과 채찍,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에 죽는 것을 기쁘게 감당했다. 이러한 믿음은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믿음인 것이다(히11:36-38).
우리는 신앙의 순수성을 회복해야 한다.
우리의 신앙은 ‘더 좋은 부활’을 바라보며,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이 세상을 이기는 믿음이 되어야 한다. 잠시 잠깐인 세상에서 육신의 안락을 추구하기 위해 타협하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병들게 한다. 부흥을 사모하는 많은 한국의 교회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마지막 때 반드시 ‘성결과 사랑’의 능력을 가진 교회를 통해 대추수의 일을 감당케 하실 것이다. 성결과 사랑은 우리 스스로의 의로움으로 만들어지지 않는다.
죄가 있다면 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의지해 성결의 옷을 입으면 된다. 사랑이 식어졌다면 다시 하나님 앞에 나아와 주님을 사랑하는 ‘첫사랑’으로 돌아가면 된다. 무엇보다 주님을 사랑하며 영적 순결을 지키며 신부 단장을 하자! 신랑이 언제 오실지는 모르지만, 지금은 깨어서 기름 등불을 준비해야 할 때이다. 우리 몸이 사자에 찢겨 죽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끝까지 예수님을 사랑하며 영적 순결을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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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의 말]
"외가쪽으로는 윤지충 할아버지는 제사 문제로 타협하지 않다가 1791년 12월 전주에서 친척인 권상연 할아버지와 함께 참수형을 당해 한국 최초의 순교자가 되었습니다.
당시에 한겨울 혹한 속에서 윤지충 할아버지의 목은 9일 동안이나 전주 풍납문에 내걸렸고, 정조 임금은 그들이 순교한 지 9일만에야 시체를 거두어 가도록 허락했습니다. 그런데 12월 혹한에 윤지충 할아버지의 피는 응고되지 않은 선혈로 남아, 이 때 흘린 그 순교의 피는 죽어가는 사람들을 살리는 등 많은 기적과 일화를 남겼었습니다.
저희 외가는 고산 윤선도의 종가집이고, 돌아가신 故 윤영선 외할아버지는 고산 윤선도의 종손으로, 국회의원도 역임하신 바 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다산 정약용의 외가가 고산 윤선도 집안이었는데, 저 역시 다산 정약용의 친가에 고산 윤선도 집안이 외가입니다.
그리고 두 집안을 통하여 계속해서 순교자의 피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순교자의 피는 순교자의 신앙을 사모하는 모든 이들에게 불을 지핍니다. 우리가 가져야할 신앙은 바로 세상의 누룩이 전혀 섞이지 않은 순수한 순교적 신앙입니다. |
<참고글 1.>
영적 성결을 잃은 부시 미美 대통령
글쓴이 : 정바울 목사
△순복음성서교회 위임목사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의 집안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임을 자처해왔다. 실제로 우리는 뉴스를 통해 기도하는 부시 대통령의 모습을 종종 보아왔고, 미국의 국가적인 중대 사안이 있을 때마다 기도를 요청하거나 기독교적인 입장을 운운하며 중차대한 일들을 결정했던 부시 대통령을 기억하고 있다.
그런 그가 지난 2002년도 일본을 방문했을 때 참으로 알 수 없는 행동을 했었다.
일본의 전통 문화를 체험해보고 싶다는 명목으로 메이지 신사를 방문해 목례를 한 것이다.
(사진 : 부시 미대통령 부부가 참배했다는 일본 메이지 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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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일본 교계(일본 복음주의 동맹)에서는 부시 대통령이 방문하기 전부터 ‘신사참배를 하지 말아달라’고 요청하고 충고하는 서한을 미리 보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부시 대통령 부부는 신사참배를 강행했다.
신사참배의 문제로 순교자까지 배출한 한국과 일본, 기타 아시아 많은 나라들은 참으로 씁쓸한 마음으로, 세계 제일의 기독교 국가를 표방하는 미국의 대통령이 신사참배를 하는 모습을 지켜보아야 했다.
미국 기독교계에서도 이 문제로 깊은 우려를 표명하기도 했지만, 부시 대통령은 별다른 공적 회개나 사과 없이 넘어갔다. 그리고 약 1년 후 이라크 전이 발발했다.
사단은 ‘문화’ 혹은 ‘관습이나 전통’ 등의 이유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나는 일을 거리낌없이 자행하도록 만든다. 그러나 우리는 죄에 대하여 더욱 민감해질 필요가 있다.
세상과 타협하고 하나씩 하나씩 허용하는 작은 범죄들이 결국에는 믿음을 버리는 배교의 행위까지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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