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는 에티오피아에서 처음으로 발견되어 아라비아 지역에 뿌리를 박으면서 그 향을 주변 나라로 퍼뜨렸다. 이때는 주로 열매 자체를 끓여서 마셨다. 커피의 재배는 아라비아 지역에만 한정되었으며, 커피의 종자가 다른 지역으로 나가지 못하도록 이슬람 세력의 통제와 보호를 받았다.
이후 중앙아시아의 북쪽 끝인 터키에 이르러 열매를 볶은 다음 분쇄하여 끓여먹는 방법이 성행했는데, 이것이 오늘날 터키식 커피이다. 그것은 커피가 종교적인 카테고리를 벗어나 대중적인 음료로 확산되기 시작했음을 의미한다.
그러던 중 12~13세기에 걸쳐 이슬람권을 침입해 온 유럽의 십자군이 커피 맛을 보게 되었고, 이들에 의해 유럽에도 알려지기 시작했다. 기독교권인 유럽에서는 초기 커피를 이교도의 음료라고 배척하였으나, 로마 황실에서 커피를 인정함으로써 유럽 전역으로 빠르게 전파되었다.
터키식 방식에서 핸드드립으로
17~18세기 무렵에는 유럽 각지에 커피가 대중화 되었고, 도시 곳곳에 커피하우스가 생겼다.
이때까지만 해도 커피 음용방법은 물에 커피가루와 설탕을 함께 넣은 다음 끓여서 마시는 터키식 커피가 주류였다.
문제는 가루가 입안에 남는다는 것이었는데, 이를 없애기 위해 커피를 끓인 다음 천으로 걸러서 마시는 방법이 고안되었고, 그 이후 필터에 커피를 먼저 담은 다음 그 위에 뜨거운 물을 부어 추출하는 드립커피가 창안되었다.
진한 터키식 커피맛에 익숙했던 당시 사람들이 연한 드립커피를 수용하기까지에는 많은 시간이 걸렸을 것이다. 그
러나 커피의 잡미가 터키식 커피보다 적고 뒷맛이 깔끔하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드립커피를 즐기는 사람들이 크게 늘었다.
때문에 18세기 유럽의 카페에서는 터키식 커피에서부터 드립식 커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추출방법이 고안되고 실험되면서 커피의 발전을 이끌었다.
융드립
드립포트
증기압을 이용한 추출법의 개발
그러나 터키식 커피나 드립커피는 추출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단점을 안고 있었다. 커피의 인기가 높아지고 대중화됨에 따라 커피하우스에서는 더욱 많은 손님에게 좀 더 빨리 커피를 제공할 수단이 요구되었고, 그 대안은 이탈리아에서 나왔다. 19세기 이탈리아 북부지역을 중심으로 커피의 추출속도를 올리기 위한 여러 가지 기계가 고안되었다.
추출 속도는 곧 판매량과도 직결되기 때문에 분쇄된 입자들 사이로 뜨거운 물을 빠르게 통과시킬 수단이 필요했다. 이를 위해 동원된 것이 증기압 이었다. 다양한 실험을 거치면서 1840년대에는 기압으로 커피의 추출속도를 빨리하는 여러 가지 기계들이 개발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지금의 버큠포트(사이펀) 방식이라 할 수 있는 진공추출법이다.
버큠포트 방식은 밀폐된 용기에 물을 담고 끓이면 끓는 물이 증기의 압력에 의해 다른 용기로 이동하게 되고 가열을 멈추면 압력이 떨어지면서 다시 원래의 용기로 복귀하는 원리를 응용한 것으로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발명이었다. 드립에 비해 추출력이 강할 뿐만 아니라 시각적 효과도 그만이어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다. 방식은 다르지만 증기압을 이용한다는 면에서 그것은 이후 에스프레소 커피머신의 탄생을 예고하는 신호탄이기도 했다.
다양한 버큠포트
에스프레소 커피머신의 탄생
한편에서는 더욱 진한 커피를 선호했던 사람들은 커피 추출속도를 배가하기 위한 여러 가지 실험을 계속하고 있었는데, 그 중 대표적인 것이 증기압을 이용해 뜨거운 물을 강제로 밀어냄으로써 커피가루 사이를 빠르게 통과시키는 방법이었다.
1901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베제라(Luigi Bezzera)가 몇 차례의 실험 끝에 증기압을 이용한 머신을 처음으로 개발해 발표하면서 특허를 취득했다. 이 때 나온 베제라 커피머신의 특징은 필터 홀더에 한 잔이나 두 잔 분량의 커피가루를 채우고 컵에 직접 추출하는 방식이었다.
베제라 커피머신
1905년에는 데지데리오 파보니(Desiderio Pavoni)에 의해 한층 완성도를 높인 커피머신이 개발됐다. 그는 이탈리아의 카페를 중심으로 라 파보니(La Pavoni )커피머신을 활발하게 보급함으로써 대중화의 물꼬를 텄다. 그러나 이 기계로 얻을 수 있는 증기압은 1.5기압 정도에 불과했기 때문에 한꺼번에 많은 잔의 커피를 연달아 뽑아내기 어렵다는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이때부터 커피머신의 압력을 높이기 위한 여러 가지 시도와 시행착오가 이어졌다.
라 파보니 커피머신
증기압과 온도 사이의 딜레마
기계 제조업자들의 고민은 단지 증기압을 올리는 데 있었던 것만은 아니었다. 그들은 새로운 매커니즘을 추구했다. 물을 끓여 생긴 증기가 보일러 내의 뜨거운 물과 함께 밀려나오는 방식이 아니라, 밀폐된 보일러를 가열해 증기압이 1.5기압까지 충분히 높아진 시점에 배출구를 열어줌으로써 순간적으로 뜨거운 물을 밀어내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기계로 추출한 커피는 쓴맛이 너무 강했다. 그 원인은 물의 온도에 있었다. 물은 1기압 이하에서는 100℃에서 끓지만, 그보다 높은 압력에서는 100℃ 이상에서 끓는다. 에스프레소를 추출할 때 가장 이상적인 물의 온도는 약 90~95℃정도인데, 1.5기압의 증기압 하에서 끓는 물의 온도가 너무 높았다.
결국 보일러를 밀폐한 채 가열을 계속해 압력을 1.5기압까지 올리는 방식으로는 한계에 부딪칠 수밖에 없었다.
물의 온도는 100℃ 이상이기 때문에 90~95℃에서는 추출되지 않았던 원두커피의 잡미성분까지 용해되어 나오기 때문이다.
이는 곧 커피의 일부 성분이 변화를 일으켜 에스프레소 커피 맛이 현저하게 저하됨을 의미한다.
피스톤의 원리를 도입하다
증기압을 올리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라고 판단한 기술자들은 새로운 방법으로 눈을 돌렸다. 그것은 뜨거운 물을 밀어내는 새로운 압력수단을 무엇으로 얻을까 하는 것이었다. 그 대안으로 수돗물의 압력을 이용해 보일러의 뜨거운 물을 밀어내는 머신이 고안되었지만, 온도관리가 어렵고 지역에 따라 수돗물의 압력이 달라 상용화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었다.
그러던 중 밀라노에서 카페를 경영하고 있던 아킬레 가찌아(Achille Gaggia)에 의해 획기적인 방안이 나왔다. 그는 이미 보급되어 있던 기존의 증기압 머신을 개조한 새로운 방식의 커피머신을 개발, 특허를 취득함으로써 관심을 집중시켰다. 바로 피스톤의 원리를 응용한 레버식 커피머신이었다.
가찌아 커피머신은 레버에 피스톤을 연결시킨 것으로 원리는 비교적 간단하다. 레버를 끌어올리면 피스톤이 함께 올라가면서 그 아래 공간에 유입된 뜨거운 물을 순간적으로 눌러 강한 압력으로 커피를 뽑아내는 원리이다. 그 과정에는 용수철을 이용한 지렛대의 원리가 동원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레버를 올릴 때 그 안의 용수철이 동시에 압축되도록 함으로써 적은 힘으로도 추출이 가능하게 되었다.
가찌아 커피머신은 적절한 온도를 유지하면서 추출압력도 9기압 정도의 고압을 가할 수 있다는 장점을 지니고 있었다. 또 힘 조절이나 온도 조절을 통해 추출시의 미세한 맛 조절도 가능하게 되었다. 이러한 장점 때문에 피스톤식 커피머신은 유럽의 카페들을 중심으로 급속히 보급되었다. 이 피스톤의 원리를 이용한 추출방식은 현재의 메뉴얼식 에스프레소 커피머신의 기초가 되고 있다.
가찌아 커피머신
예상치 못했던 소득, 크레마
피스톤식 기계의 발명에 의해 단시간에 추출하는 에스프레소 커피가 더욱 본격적으로 발전할 무렵 예상외의 현상이 일어났다. 추출된 커피의 표면에 미세한 선홍색 거품이 형성되었던 것이다. 높은 압력으로 인해 나타난 이 거품은 커피 자체의 맛깔스러움을 더해주는 동시에 향미를 보존하는 역할을 함으로써 에스프레소의 풍미를 더해주는 요소로 각광을 받게 되었다.
이후 크레마는 에스프레소 커피의 상징으로 떠올랐고, 그 농도에 따라 추출이 잘 되었는지의 여부가 판가름나는 기준이 되었다. 크레마는 이 새로운 커피머신의 장점이자 특징으로 자리 잡았다.
가찌아의 피스톤식 커피머신은 에스프레소 커피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다. 이탈리아는 물론 유럽의 카페들이 이 머신을 도입하면서 더욱 맛있는 커피를 빠르게, 또 안정적으로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분쇄입자의 굵기와 추출압력의 미세한 조절을 통해 다양한 맛의 에스프레소를 추구할 수 있다는 것도 큰 소득원이었다. 시각적인 퍼포먼스와 풍미가 더해지면서 ‘바리스타’라는 신종 직업군이 떠올랐고, 그에 걸맞는 현대적이고 세련된 분위기의 카페가 유럽 각국의 대도시를 중심으로 속속 문을 여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에스프레소가 인기를 누리면서 더욱 맛있는 커피를 더욱 빠르고 안정적으로 추출하기 위한 기계 개발자들과 제조회사들의 연구와 투자도 가속화되기 시작했다. 이러한 투자와 연구의 결과로 오늘날 우리가 현대적 커피머신의 완성작이자 기술적 근간이라고 평가받는 훼마 커피머신이 개발되었다.
크레마
크레마2
현대적 커피머신의 완성작, 훼마
피스톤식 커피머신도 완벽한 것은 아니었다. 무엇보다 높은 온도에서 에스프레소의 추출이 이루어짐에 따라 크레마와 향이 빨리 없어진다는 것이 ‘옥에 티’였다. 이를 보완하는 과정에서 증기압 대신 수압을 이용하는 머신이 개발됐다. 1958년 훼마(Faema)의 달라코르테(Dalla Corte )외 2인이 개발한 현대식 커피머신이 그것이다. 이로써 오늘날과 같은 보일러 시스템과 전동 펌프를 장착한 진보적인 커피머신이 탄생했다.
이 커피머신은 물관이 보일러 안을 통과하는 동안 간접적으로 가열되어 적당한 온도의 뜨거운 물이 커피에 공급되는 구조로, 오늘날까지 그 기조가 유지되고 있다.
이에 따라 기존 보일러의 결점이 극복되었으며, 기계의 크기도 현저하게 작아졌다. 커피 추출과 스팀 사용이 편리해졌고, 스팀의 온도도 별도로 조절할 수 있게 되었다. 또 그 이전의 대용량 보일러에서는 탱크내에 일정량의 물이 남아 있었지만, 새로운 보일러 시스템에서는 항상 깨끗하고 신선한 물을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현재에도 일체형 보일러는 이 시스템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개별보일러에서 독립보일러로
훼마 커피머신은 수직구조였던 기존의 기계를 수평형으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이는 에스프레소 커피를 근간으로 하는 커피바의 비약적인 발전을 가져왔으며, 작업 능률과 편의성을 더욱 증대시키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피스톤에 의해 수동으로 가했던 압력을 전동펌프가 대신하면서 항상 9Bar 정도의 압력을 일정하게 유지할 수 있게 된 것도 큰 소득이었다. 일정한 맛의 커피를 더욱 간편하게 추출할 수 있게 됨으로써 커피사업의 대형화, 즉 프랜차이즈화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후 이 시스템이 이탈리아의 모든 기계에 응용되었고, 많은 회사에서 다양한 제품을 경쟁적으로 만들게 되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부터 커피머신은 더욱 섬세하게 바뀌어나가고 있다. 스페셜티커피 바람이 불면서 로부스타보다 아라비카의 사용비율이 높아졌고, 그에 따라 커피머신도 더욱 진화하게 된 것이다.
아라비카 커피는 로부스타에 비해 온도에 민감하다. 이 때문에 온도 콘트롤을 더욱 쉽게 하고 온도 변화를 최소화시키기 위한 새로운 시스템, 즉 독립보일러 시스템이 개발되었다.
독립보일러 시스템은 그룹마다 소형 보일러를 따로 장착한 것으로, 아주 미세한 온도의 조절이 가능한 제품이다.
(출전 : 올 어바웃 에스프레소 서울꼬뮨 이승훈, 201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