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산(靑山)이라는 지역명이 940년(고려 태조 23년) 청산현으로 시작되어 올해로 1,083주년이 된다. 천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지명은 전국에서도 유례없는 일이라고 한다. 특히 동학혁명, 3・1독립만세운동 등을 통해 민족, 민주주의 뿌리가 선 조들에 의해 찬란히 계승되어오고 있는 자랑스러운 충효의 고장이다.
청산은 지난 반세기 동안 이렇다 할 큰 발전은 없지만 여러 고향 친구들이 험난 한 생을 딛고 자수성가해 성공한 친구들이 많다. 이는 바로 이름 그대로 푸르른 산과 맑은 물이 있는 칠보단장 이름난 고향 청산의 힘이 아닐까. 비록 극한의 어려 움을 딛고 성공하기까지 뼈저린 아픔들이 있었지만 노후에 돌아본 지난 시절 마 디마디들은 달다. 나의 고향 청산은 영화, TV 드라마의 단골 쵤영무대가 될 정도 로 수십 년 전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청산초등학교 3학년 무렵 나는 동생과 보청천 둑길을 걸어서 20여 분 거리에 있는 청산 한다리 아래 냇가에 자주 갔다. 물고기들이 많아 유리어항을 대여섯 개 꾸리고 참기름집에서 깻묵을 한 봉지 사서 냇가에 다다르면 비릿한 개울 냄새와 시원한 냇물 소리가 이내 우리들의 마음을 평화롭게 만들었다. 동생은 파라솔을 펴고 납작한 돌멩이를 주워다 휴식 자리를 만들고 나는 물속에 들어가 깻묵을 으 깨어 어항 속에 넣고 흔들어주면 피라미들이 종아리를 간지럽히기 시작한다. 물 고기들이 놀게끔 쌓아올린 돌무더기 아래 살며시 어항을 들여다놓으면 고기들이 물살을 따라 펄쩍펄쩍 뛰고 난리다.
어항을 대여섯 개 놓고 나면 만화책 한 권 볼 겨를도 없이 다시 첫 번째 어항부 터 거두기 시작하는데 물속에 들어가면서 고기들이 놀랠까봐 물가에 고개를 바 짝 숙이고 어항 곁으로 가면 물고기들이 어항에서 나오려고 요동치는 모습이 생 동감이 넘쳐난다.
이윽고 어항에 하나 가득 찬 고기들을 들어올리면 피라미, 무지개 색깔 예쁜 세 비(불거지), 어쩌다 힘이 무척 센 참마자(모래무지)도 들어 있다. 참마자는 어찌나 힘이 좋은지 어항을 잘못 들면 ‘퍽’ 하며 깨지니 조심스럽게 물속에 담근 상태로 꺼내야 안전하다.
자갈밭에 누워 드높은 하늘을 올려다보면 종달새가 지지배배 노래하고 고무신 접어 기차놀이도 하고 맑은 백사장에 구르며 신나게 물장구치던 추억들이 새롭 다. 당시엔 구명조끼가 없어 큰 세숫대야에 두 팔을 의지한 채 수영을 배웠는데 물 안경으로 파란 물속을 들여다보면 물고기들이 노니는 모습이 재미있고 신기했다.
고향 청산에는 이렇듯 우리가 놀기에 적당하고 맑은 냇가가 있어 어린 시절 풍 부한 감성을 불러일으켰다. 보청천 뒤로는 도덕봉(道德峰, 544m)과 덕의봉(德義 峰, 491m)은 산세가 부드러워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명산이 되었다. 그 앞으로는 청산면 소재지를 중심으로 좌청룡 우백호 마을을 감싸안고 보청천이 굽이굽이 돌아 보(補)가 일곱 개나 있으니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았다.
원래 청산은 조선 태종 13년인 1413년 행정구역제도가 개편될 때 경상도에서 충청도로 이관되면서 충청도 10현 중의 하나인 청산현이 되고, 현감으로 종6품이, 향교에서 가르치는 훈도는 종9품이 각각 배치되었다.
교평리에 향교가 그대로 남아 있고, 1960년대 초에는 학생 수가 2,500여 명에 달한 청산초등학교는 올해(2023년) 108회 졸업생을 배출해내며 충청북도에서 세 번째로 오랜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