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의 질식을 우려한다
- 촛불시민에 대한 서울시의 손배 청구를 바라보며
2008년 5월 2일 대한민국의 청소년들이 처음 촛불을 들었다. 그 시작은 광우병이 의심되는 미국산 쇠고기의 수입과 경쟁적인 입시 교육을 중단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그 뒤로 많은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주로 서울시청 주변에서 평화적인 집회를 통해 정부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과 한반도 대운하 추진 등 정책에 대한 다양한 비판 의견을 개진했다.
그리고 2009년 5월 2일 촛불 1주년을 기념하는 집회와 하이서울 페스티벌 개막식이 서울시청 주변에서 예정되어 있었다. 경찰은 그날의 집회를 불허하며 강경 진압하였고 하이서울 페스티벌 행사장인 서울광장으로 밀려난 집회 참가자 가운데 수백 명은 개막식이 예정된 단상에 올라갔다. 이 사건으로 개막식 행사가 취소되었고, 서울시와 하이서울 페스티벌을 공동주관하는 서울문화재단은 그날 연행된 9명의 집회 참가자에게 총 2억 원이 넘는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소송을 제기하였다.
대한민국 헌법 제21조는 모든 국민이 집회의 자유를 가지며, (어떠한 기관도) 그것을 허가하거나 불허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경찰은 위헌성 여부로 논란이 된 현행 집회및시위에관한법률을 근거로 실질적으로는 집회를 허가제로 운영하고 있다. 따라서 어떤 집회가 합법인지 불법인지는 경찰의 판단 여부에 의존하는 상황이다. 이런 상태에서 단지 집회에 참석하였거나 단상에 올라갔다는 이유만으로 그 9명에 대해 거액의 민사상 손해배상 청구가 이뤄진다면 이것은 사실상 서울시나 정부에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는 집회를 봉쇄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그 9명 가운데는 거액의 손해배상을 감당할 경제적 능력이 없는 사람들과 심지어 십대의 미성년자까지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만일 서울시가 시민과 소통하고자 하고 시민의 안전을 걱정하였다면, 그 당시 광우병 위험이 있는 쇠고기 수입의 전면 중단을 촉구하는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의 목소리가 공론화될 장을 만드는 일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전혀 없이 일방적인 소통을 강조하며 막대한 예산이 들어가는 하이서울 페스티벌을 개최하였다. 서울시는 정부 또는 서울시에 우호적인 단체의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가 발생한 경우, 손해배상을 청구한 사례가 단 한 건도 없다고 한다. 이 같은 상황은 서울시가 시민을 침묵시키고 길들이려고 비판적 시민에 대한 본보기로 경제적 처벌을 하려는 의도라고 보인다.
미국에서는 사법적 권리구제수단인 소송이 공공참여 봉쇄를 목적으로 악용되는 경우 그러한 소송을 ‘공공참여 봉쇄를 위한 전략적 소송’(전략적 봉쇄소송)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또한 이를 막기 위해 미국에서는 반봉쇄소송법 또는 봉쇄소송 규제법을 만들어 전략적 봉쇄소송을 규제하고 있다고 한다. 한국에서도 국가나 지방자치체가 국민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일 뿐만 아니라 그 목적이 국민의 비판을 묵살하는 데 있다면 이것은 민주주의 질서에도 위험한 일이다.
그런데 하이서울페스티벌이라는 행사의 취지와 목적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몸짓, 소통'을 캐치플레이즈로 내건 지난 해 2010 하이서울페스티벌의 경우에도 시민의 세금을 낭비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다(143억 ‘펑펑’ 쓴 서울시...하이서울페스티벌이 뭐길래 - 헤럴드경제 2010년 10월 31일자 기사 참조 / 출처: http://biz.heraldm.com/common/Detail.jsp?newsMLId=20101029000834 ). 시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하이서울 페스티벌에 막대한 예산을 투입하기에 앞서 시민과 충분한 논의를 하였는가 하는 문제를 논외로 하더라도 민주주의 국가에서 공적인 영역에 정치적 이해관계가 충돌하였을 때 그로 인해 발생하는 비용을 비판적 의견을 제기한 시민에게 전가하는 것이 과연 타당한 것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서울시가 진정으로 시민과 소통하고자 한다면 시민의 목소리를 겸허히 받아들이고 시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것이 오세훈 시장과 서울시가 정책 운용 과정에서 무시해서는 안 될 '민주주의'이다. 그런데 우리는 지금 촛불시민을 향해 서울시가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제기한 사상 초유의 일을 목격하고 있다. 정부와 서울시가 자신이 추진했던 정책이 시민의 저항과 비판에 직면했다고 하여 그것에 대해 보복성 손배 청구 소송을 연달아 제기한다면 이 땅의 경제적 약자들은 거액의 벌금과 손해배상이 두려워 어떠한 비판도 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민주주의는 바야흐로 질식하고 말 것이다.
이번 사건을 보며 시민의 민주주의 요구에 대한 서울시의 사법적, 경제적 탄압이라는 혐의를 지울 수 없다. 서울시가 지금이라도 촛불시민에 대한 손배 청구 소송을 철회하고 시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소통의 지자체로 거듭나기를 기원한다.
첫댓글 소중한 글 고마워~ 이 글 많이많이 퍼다 날라주세요~ *^^*
오세훈 시장은 소송을 취하하고 당사자들에게 사과하여야 합니다.
fucking O
오세훈의 잘못 된 전시행정으로 오히려 돈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1人