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트도 유행을 탄다. 재킷 라펠이 넓어지거나 좁아지거나, 타이의 매듭이 커지거나 작아지거나, 재킷 단추가 둘이거나 셋이거나…. 재킷·셔츠·타이의 디테일이 조금씩 달라지지만 변하지 않는 법칙은 있다. 명문화되진 않았지만, 단정하고 올바른 착용을 위해 알아야 하는 일종의 관습법이다. 수트는 멋을 부리자고 입는 옷이 아니다. 남자가 공식적으로 입는 옷이라는 사회적 의미를 염두에 둬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법을 알고 난 후에야 자신만의 스타일로 멋스럽게 수트를 입을 수 있다.
검정색 수트는 비즈니스와 안 맞아
수트를 입을 때 핵심은 옷과 몸이 하나여야 한다는 점이다. 멋쟁이로 정평이 난 이탈리아 남자들이 수트를 ‘제2의 피부’라고 표현하듯이 말이다. 일단 최적의 사이즈를 찾는 것이 필요하다. 상의는 어깨에, 하의는 엉덩이에 맞춰 입어야 한다. 간혹 왜소한 체격을 가리기 위해 헐렁한 수트를 입는데 몸을 더 작아 보이게 할 뿐이다. 또 넉넉해야 편안하다는 것도 잘못된 생각이다. 매장 직원이 건네는 “손님, 편하지 않으세요?”라는 질문은 경계해야한다.
배가 나오고 체형이 표준 사이즈를 벗어나면 어떻게 해야할까. 허리에 바지를 맞추기 위해, 상의 단추를 잠그기 위해 큰 치수를 선택해야하는 걸까. 이때도 바지의 허리는 늘리거나 줄여서 맞추고, 안 잠기는 상의 단추는 풀고 다니는 게 낫다. 투 버튼이든 스리 버튼이든 ‘앉아있을 때를 제외하곤 반드시 단추를 잠그는 것’이 ‘수트의 공식’이라고는 한다. 하지만 빌려입은 듯 큰 옷을 입느니 '단추를 열어서 뒤에서는 날씬해 보이고, 옆에서는 열린 옷깃 때문에 배가 가려지는 편이 훨씬 낫다'는 얘기다. 길이도 마찬가지다. 바지를 길게 입는다고 절대로 키가 커보이지 않는다. ‘바지 길이는 아무리 길어도 뒷굽을 덮어선 안 된다’는 건 남성들이 금과옥조처럼 지켜야 하는 원칙이다. 약간 짧게 느껴질 정도의 바지 길이가 오히려 적당하다.
다음은 색깔과 무늬다. 한국 남성들의 옷장에 가장 많은 수트는 검정, 밝은 회색, 짙은 밤색이다. 하지만 단 한 벌이라면 짙은 회색을, 두 벌을 가질 수 있다면 짙은 회색과 감색을 갖춰야한다. 한국 남자들은 검정색 수트를 기본으로 장만하지만 검정은 가장 마지막이다. 검정은 비즈니스 수트로는 어울리지 않는다. 관혼상제나 시상식처럼 가장 격식을 차려야 하는 특별한 순간에나 어울린다. 턱시도나 상복을 떠올리면 된다.
“혼자 쇼핑해보라”는 것도 내게 맞는 수트를 찾기 위해 남자들이 시도해볼만 하다. 아내와 함께 쇼핑을 하면 판매원이 아내의 동의를 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내 스타일이나 개성보다 아내의 취향에 맞는 옷을 사게 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핑크·오렌지 같은 밝은색 타이 피해야
수트 안에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셔츠는 매우 중요하다. 몸에 직접 닿는 데다, 몸과 수트 상의의 움직임을 자연스럽게 이어주는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소재가 중요하다. 땀을 흡수하고 착용감이 좋은 100% 순면이 가장 좋다.
비즈니스 수트를 입는다면 흰색과 푸른색 계열의 셔츠가 정석이다. 가장 무난한 것은 무늬가 없는 무지(solid)지만 스트라이프나 체크 무늬 셔츠로 난이도를 높이는 것도 좋다. 특히 무늬 없는 수트를 입었다면 무늬가 있는 셔츠가 포인트를 줄 수 있다. 셔츠 소매는 약 1.5cm 정도 수트 소매 밖으로 나오도록 한다. 요즘엔 맞춤 셔츠를 입는 사람이 많은데, 이때는 이니셜을 새기는 것도 좋다. 다만 소매보다는 왼쪽 갈비뼈가 시작되는 부분이 적절한 위치다. 원래 클래식 수트는 이름이나 로고를 전면에 내세우지 않아야하기 때문에 상의를 입었을 때 안 보이는 위치에 이니셜을 새기는 것이 정석이다.
타이는 늘 셔츠와 함께 가는 아이템이다. 크기는 작지만 전체 스타일에서 가장 강한 인상을 남긴다. 하지만 우리나라 남성들의 타이는 지나치게 강렬한 게 문제다. 어두운 색깔의 수트에 핑크색이나 오렌지색처럼 너무 밝고 화려한 타이를 매는 건 오히려 스타일을 망친다. 남성편집매장 샌프란시스코마켓의 한태민 대표는 “시선이 브이존(V-zone: 옷에서 칼라와 깃 사이에 ‘V’ 자 형태를 이루는 공간)에만 집중돼서 수트의 전체적인 어울림을 망치는 경우”라고 말했다. 제일모직 란스미어의 김효진 디자이너도 “전체적으로 얼굴만 둥둥 떠보인다”며 “결혼식처럼 기쁜 자리에 참석할 때가 아니면 매지 않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정치인처럼 옷차림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드러내고자 하는 경우 강렬한 붉은색 타이를 매기도 하지만, 은근히 세련된 멋을 보여주고 싶다면 수트와 비슷한 계열의 색깔의 타이를 매는 게 좋다.
무늬 없는 타이도 활용도 높은 아이템이다. 흔히 상복에 매는 검정 타이를 떠올리겠지만, 무늬 없는 감색이나 밤색은 특히 어느 곳에나 매치할 수 있는 색깔이다. 소재에서도 변화를 줄 수 있다. 실크가 사계절 착용 가능하고 무난한 소재이긴 하지만, 봄·여름엔 니트(knit) 소재 타이를 매는 것도 괜찮다. 타이를 맬 땐 끝부분이 절대로 벨트의 가장 아래부분보다 아래쪽으로 내려가지 않도록 한다.
갈색 구두 신으려면 무조건 진한 색으로
일본의 패션 저널리스트 오치아이 마사카쓰는 “100이 있다면 50은 옷에 투자하고, 50은 구두에 투자하겠다”고 말했다. 남자의 구두가 단순히 편안한 보행을 위한 도구가 아닐 뿐 아니라, 제대로 갖춘 옷 한 벌에 맞먹을 만큼 중요하단 얘기다. 수트에 어울리는 구두는 끈이 달린 구두다. 기본 중의 기본은 검은 옥스퍼드화다. 4~5년 전부터 불어닥친 ‘갈색구두 열풍’ 때문에 검은 구두는 시대에 뒤처진다거나, 세련되지 않은 것처럼 여기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지만, 여기엔 오해가 있다. 갈색 구두가 멋스러운 수트 차림에 어울리는 건 맞지만 마치 정통인 것처럼 알려진 건 잘못됐다는 것이다.
갈색 구두는 남성 패션의 지루함을 덜어주는 요소 중 하나다. 대체로 어두운 컬러가 중심이 되는 남성복에 다양한 색상으로 재미를 불어넣는 것이다. 따라서 수트를 입고 갈색 구두를 신고 싶다면 가능한 한 진한 갈색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이때 구두의 색깔과 벨트의 색깔은 맞춰야 한다.끈이 없는 로퍼를 신는 경우가 있는데, 복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발이 쑥 밀려 들어가는 슬립온(slip on)은 신발을 자주 신고 벗어야하는 한국의 ‘방 문화’에선 상당히 편리하지만 캐주얼 복장에 매치하는 것이 맞다.
어떤 신발을 신느냐만큼 중요한 게, 어떻게 신느냐다. 좋은 가죽으로 만든 좋은 구두를 장만했다면 관리에 신경을 써야한다. 발 크기는 평생 크게 변하지 않기 때문에 잘만 관리한다면 평생 신을 수도 있다. 깨끗해야하는 건 물론이고, 귀가 후엔 ‘슈트리(shoe tree:구두 보형틀)를 끼워 보관한다. 아무리 좋은 옷을 입었어도 코가 들렸거나 축이 뒤틀린 신발을 신은 남자는 멋있어 보일 수 없다. 또 슈트리는 나무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땀과 오염을 흡수해주고 가죽의 습기도 빨아들여 구두의 수명을 늘려준다. 그리고 같은 신발을 이틀 이상 신는 것은 피하는 것이 좋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이 있다. 잘 입은 옷에 걸맞은 품위있는 자세와 태도다. 수백만원하는 최고급 맞춤 수트를 입고 다리를 벌린 채 서거나 어깨를 움츠리고 있느니, 반듯한 자세로 중저가 기성복을 입는 편이 낫다는 얘기다.
도움말= 강재영 유니페어 매니저, 김효진 란스미어 책임디자이너, 문언배 롯데백화점 남성복 CMD,이재광 로가디스컬렉션 MD, 한태민 샌프란시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