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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國의 壽石産地
揚子江 産地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긴 강으로 길이는 6,300km이며, 유역은 동서로 약 3,200km 남북으로는 970km가 넘게 뻗어 있다.
중국 서부에서 발원한 이 강은 전체적 또는 부분적으로 12개의 성과 지역을 가로지른다.
그 중에는 시짱자치구(西藏自治區: 티베트)도 포함된다. 양쯔강 유역의 인구분포는 고르지 않다. 인구가 가장 많이 집중된 곳은 중국 중부와 동부의 양쯔강과 그 지류의 연변에 인접한 평원이다. 반면 인구가 가장 희박한 곳은 유역 서쪽의 고지대이다. 강 구간의 3/4 이상이 산지를 지난다.
양쯔강에는 8개의 주요 지류가 있다. 왼편으로는 상류에서부터 어귀에 이르기까지 야륭강(雅江), 민장강(岷江), 자링강(嘉陵江), 한수이강이 있으며, 오른쪽으로는 우수이강(武水), 위안장강(沅江), 샹장강(湘江), 간장강을 들 수 있다.
수석의 산지는 기나긴 양자강의 굽이굽이마다 여러 곳에 산재되어 있다. 돌이 탐석되는 산지는 주로 8개의 주요 지류에서 다양한 형태의 질감과 색감이 좋은 석질의 돌이 발견되고 있다.
바닷돌처럼 매끈하게 수마된 예쁜 피부의 둥근 원석이 나온다. 돌 한가운데에 몇 개의 동그라미가 오묘하게 그려진 신비한 문양의 돌을 위시하여 수천년 양자강 모래와 물에 씻기고 다듬어진 매끄럽고 단단한 산수경석도 탐석된다.
미불(米?)의 4원칙에 합당한 빼어나고 군살 없이 야위고 호두껍질처럼 주름잡히고, 유현하게 맞구멍이 뚫린 괴석류의 고태미 감도는 경석도 산출되고 있다.
黃河
중국 북부를 서에서 동으로 흐르는 중국 제 2의 강으로 중국 북부에 위치하고 있다. 길이 5,464km, 유역면적 752,443㎢이다. 칭하이성 바옌카산맥의 야허라다쩌산에서 발원하는 우ㅖ구쭝례거가 원류로 싱쑤해 및 어링호, 자링호를 거친 하류를 가리킨다.
황하 중? 하류는 중국 문명의 발상에서 그 역할과 입지로 인해 중국인에게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황하 유역은 황토층으로 기름진 땅이 농경에 알맞아 신석기 시대부터 농경문화가 크게 발달하였다. 황하 유역에는 은(殷)나라의 유물이 수없이 발견되었고 그 밖에 역대 왕조의 사적도 무수히 남아 있다. 황하는 유수 중에 포함된 진흙의 양이 많아서 1년에 13억 8,000만 톤의 진흙이 하류로 운반되고 있다.
산지는 하남성 낙양시를 끼고 굽이굽이 감도는 황하 줄기에서 출토되는 문양석으로 주로 노란색의 태양석과 하얀 동그라미가 그려진 월석(月石)이 탐석된다. 중국에서는 이 돌을 일월석(日月石)이라고 부른다. 우리도 역시 마찬가지로 부른다.
이 밖에도 형형색색의 다른 무늬가 아름답게 수놓은 문양석을 위시하여 화문석으로 사군자의 으뜸인 매화꽃이 청아하게 그려진 무늬석과 부귀의 상징인 모란이 화사하게 핀 꽃무늬 돌이 나온다.
청도산지
중국 청도는 산동반도의 동남부, 황해연안, 교주만에 위치해 있는 도시이다. 청도는 중국의 유명한 역사문화도시로 삼면이 바다에 접해있으며, 자연풍경이 아름답고 기후가 아주 좋은 도시이다. 여름철 평균 기온은 23도이며, 8월의 평균기온도 25도여서 중국에서 유명한 피서지, 요양지와 관광명소로 알려져 있다.
청도는 100여년전 독일이 교주만 일대를 강점하면서 대규모의 도시계획과 건설을 했다. 이에 따라 청도에는 유라시아풍의 건물들이 많이 남아있으며, 옛 거리를 거닐다보면 유럽의 한 골목에 온 것이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기도 한다.
황해 바닷물이 삼면에서 철석이며 에워싼 산동반도에 위치한 청도는 해안에 펼쳐진 자연경관도아름답다.
산지는 바닷가 해변에서 탐석하는데 주로 둥근 원석에 형형색색의 무늬가 그려진 문양석이 많이 발견된다. 추상과 환상의 나래를 한없이 펼 수 있는 환몽의 무늬가 하얀 바탕에 자주색 고운 색깔로 아로새겨진 문양석이 손짓하고 있다.
신장산지
중국의 북서부 지역에는 사막과 산악으로 된 성이 있다. 이 곳의 외떨어진 수도는 세계 어느 도시보다도 내륙지방이다. 웅대한 역사를 가진 이 지역의 민족은 한때는 중앙아시아 전 지역에 군림했다. 마르코 폴로 자신도 이 지역의 남쪽을 질러가는 유명한 행로를 따라 여행했는데 이 행로의 이름이 실크로드이다. 이 곳은 중국의 미전도 무슬림 집단들의 고향이다.
신장은 그 곳을 가로지르는 텐샨 산맥에 의해 북부와 남부로 나뉜다. 남부에는 타림분지가 있으며 북부에는 중가리아 분지가 있다. 타림 분지는 삼면이 높은 산맥으로 둘러싸인 넓은 분지이며 북동쪽으로 경사가 나있다.
남쪽으로는 쿤룬 산맥이 있고, 서쪽과 북쪽으로는 ‘세계의 지붕’인 파미르 고원과 텐샨 산맥이 있으
며, 남동쪽으로는 다소 낮은 알틴타그 산맥이 있다. 중앙에는 타클라마칸 사막이 있는데 이것은 원래는 대륙 호수였으나 지질연대동안 기후가 건조해지고 지각이 융기하면서 만들어진 지형이다. 둘러싸고 있는 산맥의 얼음이 녹으면서 형성되는 물줄기와 강이 오아시스의 수원이 되고 있으며, 이것은 분지의 북단과 남단을 따라 분포되어 있다.
이 오아시스 도시로는 텐샨 산맥을 따라 북쪽에 하미, 투르판, 카라샤르, 쿠차, 악수, 카쉬가르가 있고 쿤룬 산맥을 따라 남쪽에 야르칸드, 호탄, 차르흘리크가 있다.
텐샨 산맥의 남부에 있는 신장의 타림 분지에서의 2000년 이상의 역사는 위그르족(고대 이름은 후이헤, 후이후, 회홀족)과 다른 투르크 종족들이 이 지역에 살던 시기를 기준으로 두 시대로 나누어진다. 즉, 투르크 이전시대(대략 기원전 2세기에서 서기 8~9세기까지)와 투르크 시대(8~9세기부터 그 이후)이다.
8~9세기와 10~11세기 사이 무렵은 투르크 이주민들이 토착 원주민들과 점점 융화되던 시기였다. 투르크 종족이 정치적으로나 수적으로 보다 우위에 있었기 때문에 투르크어가 타림 분지의 북쪽이나 남쪽에서 모두 토착민들의 언어보다 점점 많이 쓰이게 되었다. 15~16세기에는 전 타림분지가 정치? 경제? 문화? 종교?언어적으로 통일되었기 때문에 새로운 민족공동체인 위구르족이 민족의 형태를 이루게 되었다.
수석의 산지는 어디라고 찍어 말하기는 어렵고, 드넓고 광활한 신장사막 여러 곳에 산재되어 있다. 장구한 세월 세찬 모래바람과 비에 풍화되어 이루어진 까칠까칠한 피부의 흑갈색 돌이 발견된다. 몰아치는 광풍의 모래바람에 할퀴고 깎이고 파여진 앙상한 갯바위형의 경석도 나오고, 기괴한 형태의 괴석도 많이 탐석된다.
광서성의 따화石 산지
광서성은 워낙 넓은 지역으로 각 지방마다 특색 있는 산지가 분포되어 있다. 각양각색의 다양한 형태의 돌이 탐석되는 수석의 보고라 할 수 있다. 그 중에 특색 있는 ‘따화석’이란 강돌은 오랜 세월 물살에 다듬어진 세련된 돌로 경도가 6.5도나 되는 단단한 석질의 돌이다. 그리하여 중국 애석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수석으로 아끼며 애완하고 있다.
돌의 색상이 누런 황토색으로 유현한 고태미가 감돌아 예스럽다. 노란색 바탕에 새까만 오석의 검은색이 띠처럼 감돌아 새겨있어 색상의 대비가 멋지고 오묘한 생김새가 일품이다.
長島 어란石 산지
산지: 장도 13 X 10 X 5
산동성 산속에서 출토되는 토중석으로 둥근 원석과 타원형의 돌이 탐석되고 있다. ‘어란쓰’란 중국어로 거위 알이란 뜻으로 이 돌의 생김새가 거위 알처럼 둥글어 이 이름이 된 듯 하다. 동그란 모암의 원 속에 갖가지 삼라만상의 다양한 문양이 아로새겨져 황홀감을 느끼게 해 준다.
때로는 쟁반보다 더 둥근 십오야 밝은 달이 중천에 떠 있는 月石의 문양석과 붉게 타오르는 아침 해가 세상을 밝게 비치는 해님(日石)의 문양석도 탐석되고 있다.
太湖石 산지
중국 留園에 있는 태호석
남경시 외곽에서 생산되는 괴석으로 돌마다 괴기한 변화미를 간직하고 있다. 다양한 형태의 돌 몸체에는 적절한 곳에 구멍이 시원스레 뚫려 있어 조물주의 오묘한 솜씨에 새삼 놀라게 한다.
예부터 중국의 전통 있는 돌로 많은 사람들이 애석하여온 유명한 기석(奇石)이다. 당나라 때 대표적인 시인으로 이름 높았던 백낙천(白樂天)은 이 태호석을 예찬하며 시문으로 읊기를,
구름 낀 푸르름은 가을빛이요, 파도의 물결은 만고의 흔적이다. 깎아서 푸른 옥조각을 이뤘고, 푸른 운근(雲根)을 잘라 만들었다. 밤기운은 바위의 동혈(洞穴)을 통했고 이끼 무늬는 구렁을 빛낸다.
래빈石 산지
광서성 류주 지방에서 산출되는 좋은 산지로 갖가지 형태의 돌이 탐석되고 있다. 훌륭한 수석감도 많이 나오지만 이 산지의 특색은 변화무쌍한 정원석이 으뜸일 것이다. 강줄기 따라 널려있는 괴이한 모양의 괴석들이 미불의 4원칙에 맞게 태어나 우쭐대며 서 있다.
거대한 돌 적당한 자리에 시원스레 맞구멍이 관통되어 신령스런 바람이 이는 듯 유현하며 신비로움을 느끼게 한다. 운치 있는 이 정원석은 우리나라에도 많이 반출되어 우리의 정원을 멋지게 꾸며주고 있다.
기타의 여러 산지들
① 귀주석
귀주성에서 나오는 수석으로 색상도 아름답고 변화도 무쌍하지만 이젠 거의 고갈되어 많지 않다.
② 삼강석
광서성에서 흐르는 삼강 줄기에서 훌륭한 수석감이 나온다. 검은색 바탕에 붉은색 문양이 그려진 돌과, 돌 전체가 새빨간 홍석(紅石)도 나온다.
③ 위화석
강소성 남경시에서 출토되며 돌을 연마하여 보는 가공석이다. 그릇에 물을 담고 그 속에 색채 영롱한 돌을 넣어 감상하는 문양석으로 무늬가 다양한 소품석이다.
④ 영비석
주로 안휘성에서 출토되고 강소성, 산동성에서도 나온다. 검은색 옷을 입고 변화무쌍한 몸매에 쇳소리 나는 강도의 단단한 석회석 석질인 정원석이다.
⑤ 마노위석
마노라고 부르는 색채문양석으로 경도가 7도인 준보석에 속하는 돌이다. 중국 사람들은 이 돌을 가리켜 마노옥석이라 부른다. 다양한 색상의 아름다운 돌이다.
⑥ 거비석
내몽고 사막에서 나오는 단단한 석질의 돌이며 색상은 초콜릿색이다. 삼라만상과 닮은 갖가지 형상석과 깊숙이 파인 흑갈색 돌도 나온다.
타이완의 산지
오끼나와의 남방에 있는 대만 본도와 팽호(膨湖) 기타 약 300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만에 중국인이 거주하기 시작한 것은 6세기경부터인데 그후 16세기에는 집단적으로 이주하기에 이르렀다. 17세기 초에는 네덜란드인들과 스페인인이 일부를 점령했지만 1662년에 정성공(鄭成功)이 네덜란드인을 몰아낸 이후 명조(明朝)에 의해 개척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차츰 청조(淸朝)의 세력이 팽창하자 1682년에는 청조의 복곤송에 편입되었다.
1894년에는 청일전쟁이 발발했고 그 결과로 대만은 일본에 넘어가게 되었고 일본의 대만총독부에 의한 통치가 시작되었다. 그러나 2차 세계대전에서 일본이 패하자 대만은 다시 중국의 영토가 되었다. 하지만 중국의 대전으로 인하여 본토에서 물러난 중화민국 국민당의 정부가 1949년에 대만으로 건너와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대만 특유의 질감 좋고 단단한 석질의 빼어난 추상석이다. 무엇이라고 꼬집어 말할 수 없는 기이한 형상의 무늬가 까만 바탕색에 눈부시도록 새하얀 석영의 문양이 아로새겨져 추상의 나래를 한없이 펼쳐주고 있다. 모 없는 둥근 모암에 천연의 오묘한 무늬가 양각으로 뚜렷하게 부각되어 현란한 아름다움에 감탄 아니 할 수 없다.
일본의 산지
일본은 홋카이도(北海道), 혼슈(本州), 시코쿠(四國), 큐슈(九州) 등 네 개의 커다란 섬과 약간의 열도(列島) 및 수많은 작은 섬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나라는 우리나라의 남동쪽 즉, 아시아 대륙의 동쪽에 활모양으로 남북 총연장 3,800km에 걸쳐서 뻗어 있다.
순란한 색채가 화려하게 물들어져 꿈속에서 바라다 본 하늘의 오색구름 같아 찬란하고 황홀하다. 환몽적인 문양으로 여러 가지 색채가 어우러진 전형적인 원산형의 산형석으로 아름답고 예쁜 산이다.
일본인의 조상은 소위 야마토(大和) 민족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일부는 동부아시아와 남태평양의 여러 섬에서 이주해온 사람들이라고 한다. 3~4세기 무렵에는 야마토족이 소수민족들을 지배하면서 황실을 세워 통치권을 장악하였다.
그리고 한반도의 신라, 백제 등을 통하여 대륙 문화를 받아들이면서 차츰 문명화되어 갔다. 그러나 궁정이 예술과 향락 추구에만 빠져들자 여러 지방의 호전적인 씨족들에 대한 지배권이 약화되었다. 그러자 이 틈을 타서 군벌이 고개를 들기 시작하였다. 황실의 후예며 당시 대표적인 군벌이었던 겐지(源氏)와 헤이케(平家) 사이에 패권다툼이 벌어졌으며 1192년 이 싸움에서 승리한 겐지가 실질적인 정치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그로부터 무수한 영주들의 내란을 겪으며 장군들이 다스리는 정치가 계속되다가 17세기에 들어와 일본 전국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에 의하여 지금의 도쿄인 에도(江仁)에 수도가 확정되었다.
노토(能登)의 산지
일본해로 머리를 내밀며 육지에서 뻗어나간 노토반도는 일본열도 중앙으로부터 북쪽으로 우뚝 솟아있다.
이시카와 현에 자리 잡고 있는 스즈시의 산속 한곳에서 나오는 토중석으로 흡사 부처님 모양의 돌이 나와 이름하여 노토불석(能登佛石)이라고 한다. 이 돌의 경도는 6도로 단란석질이며 성분은 석영이나 수정같은 이산화규소가 함유되어 있다. 아기자기한 흥미로운 돌로 형상석으로 일품인 부처 모양이 다량 탐석되고 있다.
일본 노토반도의 토중석 노토불석(能登佛石)
키르키스탄의 산지
중앙아시아에 있는 국가로 북쪽과 북서쪽으로는 카자흐스탄, 남서쪽으로는 우즈베키스탄, 남쪽으로는 타지키스탄과 접해 있다. 남동쪽으로 텐샨산맥(天山山脈)의 일부를 이루는 콕살타우 산맥이 중국과 국경을 이루고 있다.
이곳 산지는 다양하게 산출되는 수석의 보고라 할 수 있다. 단단한 질감 좋은 석질에 색상도 푸른 청오석이 나온다. 산지는 나라 안 여러 곳에 분포되어 지역마다의 산지를 간략하게 안내하고자 한다.
키르키스탄 공화국 해발 3,000m의 풍경
① 달라스강
- 주류: 청석과 청오석, 산수경석, 형상석, 추상석 등
- 지류 가락올: 청석, 청오석, 여러 가지 형태의 수석
- 자류 개쉬따시: 청오석, 청석, 산수경석, 형상석, 추상석
② 나른강 액기나른 골짜기
: 청석, 산수경석, 추상석, 형상석
③ 수산우리
: 해발 2,400m 고지에 있는 작은 도시. 텐샨 산맥 계곡 40~100km 사이의 산지. 산수경석, 형상석
④ 잘라밧 가라움굴강
: 청석, 문양석, 산수석, 형상석
⑤ 독도굴(닥다굴) 치치간강
연해주의 산지
석면 가득히 연분홍 색깔의 아름다운 무늬가 영롱하게 아롱져 포근한 비단처럼 부드러운 감촉을 느끼게 한다. 어떻게 보면 붉게 노을 진 석양의 아슴한 하늘의 천경(千景)을 연상케 한다.
무엇인가를 그려내고 있는데 그 무늬가 무슨 형상이라고 딱 찍어 표현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문양이다.
보기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상상하겠지만 이 돌에서는 어떤 사실적인 문양을 찾기보다 자연이 그린 신비롭고 오묘한 무늬에 취하면 만족할 것 같다.
인도네시아의 산지
인도네시아는 아시아대륙과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을 연결하며 태평양과 인도양 사이에 떠있는 대소 13,677(무인도는 7,633)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세계 최대의 섬나라이다.
주요한 섬은 자바, 수마트라 등의 대선다 열도, 발리, 롱보크, 티모르 등의 소선다 열도, 보르네오, 셀레베스, 뉴기니아, 모룩카 등 제도다. 이들 섬은 모두 원유, 주석, 니켈 등의 지하자원이 풍부하며 쌀, 사탕, 밀, 후추 등을 생산한다. 특히 후추는 세계적인 독점 상품이라 할 수 있다. 관광지는 ‘지상의 낙원’이라는 발리 섬이 중심이고 그 외에는 자바 섬에 집중되고 있다.
인도네시아의 역사는 오래되어서 기원전후에서 약 천년에 걸쳐 힌두 문화의 영향을 받았고, 13세기 후반에는 마자파히트 왕국이 거의 인도네시아 전역을 통일하였다. 그러나 16세기가 되자 중부 자바에 이슬람교국인 데마크가 일어나 마자파히트 왕국을 멸하였다.
1602년 네덜란드는 동인도회사를 설립, 1610년에는 총독을 임명하여 식민지 경영에 나섰다. 그러나 18세기 말부터 19세기 초에 걸쳐 네덜란드 본국은 프랑스의 나폴레옹에 의하여 지배되었고, 그 사이에 인도네시아에는 영국의 세력이 부식되었다.
2차대전 후에는 민족운동의 선구자 수카르노를 중심으로 한 독립운동이 일어났고, 네덜란드령 동인도 전역을 영토로 하는 인도네시아 공화국의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네덜란드가 이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4년여의 독립전쟁이 계속되었다.
1949년 12월에는 네덜란드와의 연합으로 인도네시아 연방공화국이 탄생되었으며 그 다음에 서서히 연방 단위를 통합하여 1950년 8월에는 단일 인도네시아 공화국이 되었다. 그러다가 다시 1956년 2월에는 네덜란드와의 연합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하고 자주독립국가가 되었다.
인도네시아 여러 지역에서 산출되는 각약각색의 질 좋은 수석감은 형, 질, 색 삼위일체가 어우러지는 수석의 보고라 할 수 있는 산지가 분포되어 있다. 새까만 오석과 검청색 청석의 질감? 색감 그리고 경도 5~6도 이상의 단단한 석질의 산수경석, 형상석, 추상석 등이 다양하게 탐석되고 있다. 바닷가 해변에서는 예쁘게 단장한 여러 가지 문양의 해석도 탐석된다.
필리핀의 산지
필리핀 공화국(Republic of the Philippines)은 아시아 대륙 남동 해안에서 약 800km 떨어진 지점에 있는 7,100여개의 크고 작은 섬들로 이루어진 나라.
수도는 마닐라이다. 육지 면적은 약 30만㎢이고 남북으로 최장길이는 약 1,850km이며 동서로 가장 넓은 곳은 약 1,125km이다. 태평양에 둘러싸여 있으며, 동쪽은 필리핀海, 남쪽은 셀레베스海, 남서쪽은 술루 海, 서쪽은 남중국海와 접한다. 2개의 주요 섬은 북부에 있는 면적 14,688㎢의 루손 섬과 남부에 있는 면적 94,630㎢의 민다나오 섬이다.
필리핀 중부의 비사얀제도는 파나이? 네그로스? 세부? 레이테? 사마르 섬으로 구성되며, 민도로 섬은 루손 섬 바로 남쪽에 있고, 팔라완 섬은 서부에 외따로 떨어져 있다.
널리 알려진 유명한 해석은 필리핀 해변에서 탐석된다. 거센 파도에 씻기고 고운 모래에 예쁘게 화장한 세련미 넘치는 해석이 해안의 바닷물 속과 모래사장에서 숨바꼭질하고 있다.
육지에서는 방갈 지방과 루나지역에서 파이고 굴곡진 주름잡힌 돌에서 고태미와 세월감을 느끼게 하는 예스러운 돌들이 나온다.
브라질의 산지
브라질은 국토가 광대하여 열대권과 아열대권, 온대권에까지 걸쳐져 있다. 열대권은 아마존 분지 및 북부의 여러 지방이고 연평균 기온이 25~27도이다. 7~8월이 건기고 그 밖이 우기이다. 아열대권은 캄포지대, 대서양 삼림지역인데 기온은 다소 낮아서 연평균 기온이 21~25도 이다.
서기 1500년 포르투갈인에 의하여 발견되고, 1954년에 총독이 임명되었다. 포르투갈의 식민지 정책이 착착 진행되어 1554년에 상파울로가, 1565년에 리우데자네이루가 건설되었다. 그러나 1580년 포르투갈이 스페인에게 정복당하자 브라질도 스페인의 식민지가 되었지만 1640년 포르투갈의 독립과 함께 다시 포르투갈령이 되었고, 그로부터 본국의 압정과 착취가 계속되었다.
1807년 포르투갈 왕실은 나폴레옹의 이베리아 반도 침입에 쫓겨서 브라질로 건너왔다. 나폴레옹이 몰락하자 포르투갈 본국은 왕실의 본국 귀환을 요청하였고, 돈 주앙 6세는 황태자 돈 페드로를 섭정으로 브라질에 남겨두고 1821년 본국으로 돌아왔다.
본국 정부는 다시 브라질을 식민지화하려고 돈 페드로의 본국 귀환을 강력히 요구했으나 돈 페드로는 이를 거부하고 1822년 9월 7일 상파울로 교외의 이피랑가 호반에서 ‘독립을 달라.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부르짖으며 본국의 독립을 선언, 스스로 돈 페드로 1세 왕위에 올랐다.
다음의 페드로 2세는 명군으로 노예제도를 폐지하는 등 브라질의 근대화에 노력했으나 재지주들의 반감을 사서 유럽으로 도망했고, 왕제는 폐지되어 공화국이 되었다.
광대한 국토를 지닌 브라질은 아마존 강을 비롯해 여러 곳에서 다양한 종류의 수석감이 산출되고 있다. 툭히 아마존 강 유역에서 나오는 초콜릿 색깔의 야무진 돌은 그 형태가 변화무쌍하여 형형색색의 오묘한 돌들이 나오고 있다.
육지 깊은 곳에서는 자수정을 비롯해 찬란한 보석류 광석과 퇴적암층에서는 다양한 물고기 화석을 위시하여 여러 종류의 화석이 발견되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의 산지
아라비아 반도의 대부분을 점하고 있는 세계적인 석유 생산국이다. 국토의 절반은 사막이지만 이슬람교의 성지가 있어 교도들에게는 정신적인 중심지가 되고 있다.
기원전부터 상당한 문화를 가진 몇몇 아랍인의 왕국이 있었으나, 7세기에 마호메트가 나와서 이슬람교를 제창하자 다른 중동민족의 협력을 얻어 사라센 문화를 쌓아올렸다. 그 후 몽고, 오스만 터키의 대두로 사라센은 쇠퇴하고 말았다.
1902년 쿠웨이트에 망명하고 있던 사우드가의 압둘 아지즈가 리야드를 기습하여 터키파의 호족 라시이드가를 쓰러트렸다. 후에 인도의 제후들을 평정하고 1927년 ‘헤자즈, 네지즈 및 그 속령의 왕’이 되어 영국과의 조약으로 완전한 독립을 인정받았다. 1932년 9월 ‘사우디아라비아 왕국’이라고 이름을 고쳤다.
뜨거운 열사의 나라 사우디아라비아는 국토의 절반이 광활한 모래로 뒤덮인 사막이다. 어디를 보아도 드넓은 모래 뿐 수석이 될만한 돌이 나올 것 같지 않지만 기적처럼 순수한 자연의 힘으로 빚어낸 신비한 돌이 탄생되고 있다.
뜨거운 모래 속에서 형성된 사막의 장미는 흡사 장미꽃처럼 피어나 신공이 현란한 비법으로 만든 걸작품이다. 갈색 찰흙으로 둥글둥글 빚어 만든 것 같은 신비한 경석과 추상석 등이 발굴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의 산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대륙 오스트레일리아와 태즈메니아, 뉴기니아 섬의 파푸아를 영유하고, 파푸아의 북부 및 비스마르크 제도를 신탁통치하는 입헌군주제의 오스트레일리아 연방은 영국내의 독립국으로 대륙이 모두 국토며 타국과도 국경을 접하지 않고 있다. 그러나 뉴기니아 지방에서는 인도네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에는 구석기시대 말기에 인도 부근에서 건너왔다고 추정되는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 있지만 세상에 발견된 것은 1606년 네덜란드인 위렘 양스존에 의한 것이 처음이다. 그러나 사람이 거주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진 것은 영국의 제임스 쿠크가 1770년에 조사한 다음부터이다.
1788년에는 유형식민지(流刑植民地) 건설을 위하여 죄수 800여명을 포함하는 제 1회 이민이 영국 본토에서 행해졌다. 이어서 1793년에는 자유 이민의 이주가 시작되었다.
호주 여러 곳(주로 해변)에서 탐석되는 돌은 우리나라 돌과 거의 흡사한 수석감으로 단단한 석질로 색감과 질감이 뛰어난 청오석의 경석이다. 이는 흡사 우리 농암천과 남한강의 돌 같다. 오랜 세월동안 온갖 거친 풍상을 다 겪어온 태고의 흔적을 볼 수 있다. 우글쭈글 온몸이 구겨지고 파이고 돋아난 돌갗에서 인고의 세월을 감지하게 된다. 돌 중심에 맞뚫어진 관통에서 천연의 조화로운 신비를 깨우쳐 준다.
인도의 산지
남부아시아에 있는 국가로 수도는 뉴델리이다. 국토면적이 세계에서 7번째로 넓고 인구는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다. 북서쪽으로는 파키스탄, 북동쪽으로는 중국? 내팔? 부탄, 동쪽으로는 미얀마와 국경을 접하며 북동부는 방글라데시를 삼면으로 둘러싸고 있다. 남동쪽 앞바다에 섬나라인 스리랑카가 있다.
산지는 인디스강 지류로 질감 좋은 단단한 석질의 산수경석을 비롯해 강물에 곱게 세수한 동그란 원석도 탐석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산지
말레이시아는 말레이반도의 남쪽을 점하고 있는 서 말레이시아와 거기에서 동쪽으로 약 640km 떨어진 보르네오 섬의 북부를 점하고 있는 동 말레이시아로 되어 있다. 면적은 동 말레이시아가 20만㎢이나 된다. 인구는 전 인구의 47%가 말레이인, 36%가 중국인, 나머지 7%가 기타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어도 공식적인 말레이어 외에 중국어, 영어, 타밀어 등이 통용되고 있으며 종교 역시 이슬람교, 불교 외에 크리스트교, 힌두교 등이 있다.
말레이 반도의 오지에는 예부터 원시민족이 살고 있었는데 거기에 수마트라 쪽에서 신 말레이인이 이주해왔다. 15세기 동서 교통의 요지로 되어 있는 마라카의 말레이인은 이슬람화 되었다.
그때 포르투갈, 네덜란드, 영국이 마라카를 위시한 말레이반도 서쪽 해안을 둘러싸고 쟁탈전을 벌였으나 그 세력은 오래가지 못했다. 한편 마라카에서 쫓겨난 토호들은 반도 내부에 세력을 가지고 많은 토호국들을 만들었다. 영국은 19세기 초에 싱가포르를 획득하자 그 세력을 반도의 오지에까지 뻗쳐 토호국들을 합병하였다. 19세기말 까지는 보르네오의 북쪽 해안 지방도 영국령이 되었다.
제 2차 세계대전에서는 일시 일본이 점령을 하였으나 전후에는 말레이 연방, 싱가포르 자유국이 먼저 자주권을 획득, 1963년에 북 보르네오를 합하여 말레이시아 연방이 탄생하였다. 그러나 화교가 많은 싱가포르는 1965년 여름에 다시 분리 독립하였다. 그러나 같은 민족인 인도네시아는 말레이시아의 배후에 영국의 신식민지주의가 있다고 하여 독립을 인정하지 않고 분쟁을 계속하다가 1966년에야 양국간에 화해가 성립되었다.
온 몸을 검은색으로 감고 있어 기품이 충만되어 있다. 유구한 세월 풍마우세에 너무나 곱게 닦여져 연마한 대리석처럼 매끄럽다. 이런 특이한 바위경은 실경에서는 찾기 어려운 경정으로 추상적인 요소가 강한 상상의 바
위이다. 환상적인 미지의 세계 속으로 몰입해 봄도 멋스러울 것이다.
말레이시아의 특색 있는 돌로 야무진 질감과 윤기 도는 검은색의 색감이 태고의 예스러움을 느끼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