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의 말씀: 고린도후서 5:14-20]
14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하건대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15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16 그러므로 우리가 이제부터는 어떤 사람도 육신을 따라 알지 아니하노라 비록 우리가 그리스도도 육신을 따라 알았으나 이제부터는 그같이 알지 아니하노라
17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 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18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19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 하셨느니라
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말씀나눔]
리퍼 샵에 가면 새 것과 다름없는 제품을 시세보다 많이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어떤 제품은 리퍼 샵에서 구입하였어도 탈 없이 잘 사용 하지만, 어떤 제품은 얼마 못가서 문제가 발생하는 경우도 있다는 것입니다. 새 제품이 아니고 리퍼 상품이기 때문에 이해하고 사용해야 되는 부분도 있지만 리퍼제품의 한계로 새 제품과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한 가지 리퍼 제품은 판매되는 상품이라는 것입니다.
유명작가 작품이 리퍼상품이라고 시장에 나올 일이 없습니다.
아무리 고품이라 할지라도 작가에 손에 들리면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고, 가치가 바뀌게 됩니다.
피카소의 작품 중에 황소 머리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1943년 어느 날 길을 걷던 피카소의 눈에 버려진 고물 자전거 한 대가 눈에 띄었습니다.
그 자전거를 본 순간 번뜩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피카소는 그 자전거에서 안장과 핸들을 떼어내어 핸들을 거꾸로 안장에 붙인 뒤에 ‘황소머리’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작품을 만들고50여 년이 지나서 런던의 한 경매장에 이 작품이 등장했습니다.
그리고 293억원이라는 어머 어마한 금액에 낙찰 되었습니다.
피카소는 고물 자전거의 핸들과 안장을 활용해서 돈으로는 환산 할 수 없을 만큼 가치있는 작품을 만들었습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존재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손에 들리는 순간 하나님의 작품이 되고, 동시에 세상에 없던 유일무이한 매우 귀한 존재로 창조 됩니다.
그렇다면, 누가 이 귀한 창조에 참여하여 귀한 하나님의 작품이 될 수 있을까요?
오늘 본문 17절에 보면,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새로운 피조물이 되기 위한 조건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는 대상은 누구든지입니다.
인종과 민족, 빈부, 남녀노소, 학력과도 무관하게 누구든지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습니다.
다만 조건이 있는데, 그 조건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5장 4-5절에도 보면,
4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아니하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음 같이 너희도 내 안에 있지 아니하면 그러하리라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됨과 동시에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그리스도 안에 있을 수 있을까요?
품안의 자식 이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자식이 어렸을 때는 부모의 뜻을 따르지만 자라서는 자기 삶을 찾아 나서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여기서 품안의 의미는 항상 부모의 품에 안겨 있다는 의미가 아니라, 부모의 통제권 안에 있다는 의미로 보아야 합니다.
‘품안’을 다른 표현으로 한다면‘식구’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식구(食口)는 한 집에서 살면서 끼니를 같이하는 사람을 뜻합니다.
따라서 주님 안에 있다는 것은 주님과 ‘식구’가 된다는 의미입니다.
날마다 주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입니다.
만왕의 왕이신 주님과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얼마나 큰 영광입니까?
요한계시록 3:20절에 보면,
주님을 영접함에도 이 같은 의미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주님을 영접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은 이미 하나님의 식구입니다.
주 안에 있다는 것의 또 다른 의미는
주님의 통제권 안에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2:9에 보면,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 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선택하신 하나님의 소유인 백성입니다.
주인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이 구절의 헬라어 원어는 하나님 안에 있는, 하나님이 취득하신 백성이라는의미로도 볼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 안에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집에들어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과 여러분은 한 집안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한 집안에 있다는 것을 좁은 의미로 해석하면 가족이라 표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이자 가족인 것입니다.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소유이자, 하나님의 가족으로서 하나님과 함께 먹고 마시는 사람은 이미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습니다.
새로운 피조물이라는 것은 고장 난 것을 고친 물건이나 리퍼 상품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하나 밖에 없는 작품이자 포장도 뜯지 않은 새 것이 되는 것입니다.
피카소의 황소 머리라는 작품에서 고장 난 자전거의 모습은 더 이상찾을 수 없듯이, 하나님에 의해서 새로운 피조물이 된 사람에게 옛 사람은 이미 찾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
버려진 자전거 하나도 피카소의 손에 들릴 때 새로운 작품이되어 완전히 다른 가치를 갖게 되는데, 하물며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의손에 빚어진 사람들은 어떠하겠습니까?
주님이 택하신 사람들의 이전 것은 이미 지나갔고, 지워졌습니다.
옛 사람은 주님과 함께 이미 장사되고 없습니다.
주님을 영접하여 주님의 식구가 된 사람들은 완전히다시 창조된 사람들입니다.
이미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난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선택하셔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신 목적이 무엇일까요?
첫 번째, 내 자신이 아닌 주님을 위해 살도록 재창조 하셨습니다. 15절에 보면,
그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살아 있는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그들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들을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이가 누구이십니까?
모든 사람들의 생명을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새로운 피조물로 재창조되었다면,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소유이며 하나님의 종입니다.
종들이 주인의 손끝과 얼굴 표정에 주목하고 있다가 주인의 손짓 한 번에 죽는 시늉까지도 마다하지 않는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을 주목하고 하나님을 위해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재창조의 목적이 이것 하나뿐이라면, 우리는 행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이유가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은혜에 감사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선택하셔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신 목적두 번째는, 하나님과 화목하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18절 상 반절에 보면,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다 말씀하십니다.
단순히 종이 되게 하시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화목하게 만들기 위해서 재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한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건강한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를 양육할 때 화목한 가정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처럼, 하나님과 화목한다는 것은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누리는 것이며 나아가 그 관계 속에 기쁨이 있다는 것입니다.
일개 종에 지나지 않는 사람들, 정확히 말하면 하나님의 종이라고 불리는 것도 민망한 우리들을 가족으로 불러주시고 매우 친밀한 관계를누리게 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가족으로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하여 주신 것입니다.
어린 아이의 웃음에 미소 지으며 행복을 느끼는 부모처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웃음소리를 들으며 함께 기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선택하셔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신 목적세 번째는, 화목하게 하는 자로 살아가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이 땅에서 피스메이커로 세우셨습니다.
18절 하반절에 보면, 또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으니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화목하게 하는 직분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19절에 보면,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 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부탁하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이 무엇일까요?
20절을 함께 읽어보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20절 말씀에 따르면 우리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살 수 있도록 전하는말씀이 있다고 이해 할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하나님과의 화목을 위해 드리는 화목제는‘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구원의 은총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는 것입니다.
즉, 죄를 사하여 주신 그 은혜에 대한 감사를 표현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 속죄제를 드렸습니다.
결국 하나님과 화목하기 위해서는 먼저 ‘죄’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이웃이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도록 하는 말이 무엇이겠습니까?
네! 지금으로 말하면 복음입니다!
나뿐만 아니라 이웃에 있는 불신자들도 새로운 피조물이 될 수 있도록 인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죄에 대한 우리의 현실은 어떻습니까?
관성의 법칙은 물리적인분야 뿐만 아니라 삶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한 번 죄를 지으면 멈출 수 없고 죄의 속도가 빨라집니다.
그 누구도 죄를 멈추고 죄의 자리를 떠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영접한 성도들도 예외는 아닙니다.
이미 하나님의 가족으로 그 신분이 변했지만, 여전히 옛 사람처럼 살아가고 있습니다.
출애굽 당시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들 중에서 애굽에서의 삶을 동경하며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겠다는 백성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모세를 거부하고 새로운 지도자를 세워 애굽으로 다시 돌아가겠다는 백성들도 있었습니다.
죄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다시 죄의 자리로 돌아가 죄의 상태를 지속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죄의 관성을 극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첫 번째, 주님이 나의 주인임을 선포하여야 합니다.
나 혼자 만의 의지로는 옛 습관을 끊어낼 수 없습니다.
내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선포함으로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고히 하고, 흔들릴 때 마다 주변의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됩니다.
영업 사원들의 필독서들에 공통적으로 기록된 가장 기본적인 지침은목표 설정과 신념화입니다.
예를 들면, 아침에 일어나면 거울을 보면서 “나는 할 수 있다!”를 열 번씩 외치면서 긍정적인 마인드로 변화시키고, 자신의 목표를 날마다 점검하는 것입니다. 정신적으로 무장하고 스스로 목표를 정하지않으면 성공을 보장 할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신앙생활에서도 동일한 원칙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주님이 나의 주인임이 신념화되지 않고, 주님이 나의 주인임을 인식하는 일이 생활 속에서 습관화되지 않는다면 임마누엘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죄의 관성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 두 번째는,
주님을 떠나서는 아무쓸모 없는 존재에 불과함을 상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능력을 발휘 할 수 있는 것은 내 힘이 아니라 주님이 주시는 능력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15:5절에 주님께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라고 말씀하심과 같이 주님을 떠나면 아무 일도 할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마른 가지와 버려져 불에 던져지는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됩니다.
내 자신의 힘으로 무엇이든지 할 수 있다는 교만은 주님을 의지하지못하도록 만듭니다.
내가 주인 된 삶이 아니라 하나님의 품안에 거하여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삶이 참 평안의 삶입니다.
죄의 관성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 세 번째는,
주님과 화목하고 동시에 이웃이 화평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힘은 주님이 주신 사명을 수행할 때 발휘됩니다.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사명은 무엇입니까?
영혼 구원하여 제자 삼는 것입니다.
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VIP와 접촉점을 만들고또 그들의 형편과 상황에 맞게 교제를 나누고 목장으로 이어지는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이웃이 화평하게 한다는 것은 주님과 이웃이 화평을 누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불신자인 이웃이 하나님을 알게 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아가는 제자로 세우는 것이 바로 이웃이 화평하게 하는 일입니다.
죄의 관성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 네 번째는,
위에서 언급한 이 모든 것을 주 안에서 행하는 것입니다.
내 이웃이 주님과 화평을 누리게 하려면, 나부터 주님 안에 있어야 합니다. 나부터 주님이 주시는 은혜로 충만해야 합니다.
내게 먼저 채워져야 넘치는 은혜를 흘려보낼 수 있습니다.
주님의 주권 아래 있지 못하면, 이 모든 일은 인간적인 욕심을 채우는 일로 전락하고 맙니다.
즉, 성도가 행하는 모든 활동의 목적은 주님을 영화롭게 하는 일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이 모든 일을 행하기 위해서는 나부터 주님과 화목해야 주님의 마음에 합당한 일을 할 수 있고, 그 일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누리고 있다고 자신 할 수 있습니까?
오늘 여러분이 살아가는 삶의 목적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일과 얼마나 근접해 있습니까?
지난 한 해 동안 하나님과 여러분 주변에 믿지 않는 이웃, 친척, 친구들이 주님과 화목하게 하는 일을 얼마나 자주 실행 하였습니까?
여러분!
저와 여러분은 하나님의 식구입니다.
우리는 날마다 주님과 더불어 먹고 마시는 은혜를 누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가족으로 하나님에게 속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집 안 사람들로서 가문의 영광에 누가 되지 않는 삶을 살아 내야 합니다.
오늘 이후 주님이 새 것이 되게 하신 저와 여러분 모두, 날마다 주님과 동행하며 화목한 삶을살아감으로 우리의 하루하루가 주님을 위한 삶이 되게 하고, 동시에 우리의 이웃들이 주님과 화목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헌신하는 성도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축복합니다.
[추천찬양]
주께 가까이(G), 나의 안에 거하라(G), 서로 사랑하라(F), 예수는 참포도나무(F),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D), 평안을 너에게 주노라(D), 예수 안에서 우리 화목됐네(G),
예수 이름이 온 땅에(D)
찬송가: 321장 날 대속하신 예수께 / 436장 나 이제 주님의 새 생명 얻은 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