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잡지 풍경소리가 통권 400호를 내고 넉 달간 죽었다가 부활해서 401호를 낸다. 종이에 인쇄된 서책이 아니라 화면(畫面)으로 읽는 전자책이다. 아담한 카페에 남녀노소가 끼리끼리 둘러앉아 차를 마시며 벽에 설치된 스크린의 풍경소리를 귀로 듣고 눈으로 읽는다. 한 늙은이가 눈을 감은 채 명상에 잠겨있고 젊은이들은 풍경소리보다 저희들 수다에 더 바쁘다. 그래도 가끔 화면을 흘끗거리며 잠시 진지한 표정을 짓곤 한다. 대체로 가볍고 환한 분위기다. 조금도 무겁지 않다. …꿈에서 나오며 속으로 생각한다. 풍경소리 401호가 나오려면 2030년을 훌쩍 넘겨야 할 텐데 그때까지 우직(愚直)한 일부(一夫)가 살아있어야 하는데… 누가 귀에 대고 속삭여 말한다. 무슨 엉뚱한 소리? 풍경소리를 풍경이 내나? 괜한 걱정 마라. 소처럼 우직(牛直)한 사내는 죽지 않는다. 허공에 바다에 태양이 있는데 구름과 바람이 없을 수 있겠느냐? …카페에서 유난히 맑게 웃으며 깔깔거리던 연두색 머리의 여자아이가 눈에 선하다. 음, 누가 뭐래도 밝은 것이 미래다. (정처 없는 나그네의 가난한 산책, 2024. 9.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