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영적 민감지수☆
지혜자와 같은 자 누구며 사리의 해석을 아는 자 누구냐 사람의 지혜는
그 사람의 얼굴에 광채가 나게 하나니 그 얼굴의 사나운 것이 변하느니라 (전8:1)
사람의 얼굴에 광채가 난다는 이 말로 인하여 자기의 얼굴에 책임을 지라는
말이 생겨난 것인지 모르지만, 여하튼 사람의 얼굴이 각양각색인 것은 분명하다.
얼굴에 윤이 나서 기운이 있어 보이면 다행이지만, 얼굴에 윤기가 없고
맥이 없어 보이면 누구든 자기의 얼굴에 대하여 만족하거나 자신감을
갖는 일은 힘이 들것이다.
그 얼굴 표정이나, 얼굴의 피부 상태에 따라서 내 마음의 상태도
이리저리 움직이는 것이 우리의 모습일 것이다.
얼굴에 죽은 깨나 여드름이 많으면 자기의 얼굴에 대하여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이 쉽지가 않을 것이다.
내 마음의 피부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일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알지만,
우리의 마음은 그 보이지 않는 부분보다는 눈에 보이는 나의 얼굴에
더 많은 관심을 갖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의 모습이다.
내 마음의 피부, 영적인 피부가 각질이 난 상태로 곪아 터져가고 있는
상황이라도 우리는 단지 내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단 한 가지 이유로
하여 더 이상 그 필요한 영역에 대하여 문제의식을 가지고 살지 못한 것이
큰 문제인 것이다.
나의 얼굴과 피부에 윤기가 흐르고 있는가. 아니면 더러운 오물과 잡티가
붙어 있음에도 그것을 인지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가.
나의 모습은 어떠한가..내 마음의 더러운 때를 덜어내고 살아가는 일이
더 시급한 일임에도 너무 태연하게 살아가고 있는 모습이 바로 나의 모습은
아니던가.
그 더러운 모습을 제하고 깨끗하고 성결한 모습으로 살아가지 못하고
있는 것에 대하여 마음의 통회함이나 자복함이 없다면 나의 영적
민감 지수는 아주 둔감한 수치임에 틀림이 없을 것이다.
나의 영적 민감 지수가 예민하지는 않을지라도 둔감한 지경에 이르러
내가 감지할 수 없는 지경이라면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나의 얼굴보다도, 나의 피부보다도 더 중요한 나의 보이지 않는 나의 얼굴에
더 많은 관심을 할애하고 살아가야 하는 것이 하나님에 대한 관심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취해야 할 삶의 태도는 아닌지 이 아침 생각해 본다.
- 아멘 -.
- 허성환 목사님 묵상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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