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휘의 바다>
장경욱
황금노을 물든 수평선 하늘 가득 아지랑이 하얗게 찬란한 봄의 기운이 몰려든다. 신기루를 쫒듯 갈매기는 부질없이 바람에 실려 태평양 저 너머 소식까지 들려온다. 더 높이 더 멀리 비상할수록 볼 수 있는 식견이나 체험은 그만큼 넓어진다. 꿈꾸지 않는 자는 결코 미지의 땅을 밝을 수 없는 것처럼 ‘하고자 노력하는 자’는 좋은 결실을 수확하는 동기가 된다. 한국의 성장 동력은 바로 앞선 사고와 발상을 가진 자들의 피땀 어린 열정과 패기이다. 잠시 천혜의 자원이 풍부하거나 생활에 안주하길 바라는 국민은 결단코 가까운 장래에 한계를 드러낸다.
선진대열에 합류하기도 힘들지만 이를 추월해 우주로의 개척은 더하다. 개인 간의 경쟁에 있어서도 전문성을 갖추고 타(他)의 추종을 불허하기란 얼마나 어려운지 겪어본 자들은 속성을 안다. 어미 품에서 나온 달걀이 알을 깨고 부화해 나오는 아픔처럼 마냥 아무 일 없어 보이는 내부에서 조차 알맞게 무르익는 과정과 진통의 시간이 필요하다. 사람뿐 아니라 사회 내지 국가도 끊임없는 대화와 타협 등 고뇌를 격고서야 비로소 함께 웃는다. 한국은 지난 반세기동안 하더라도 불협화음이 적지 않았다. 심한 경우 전쟁이라든가 정권만 하더라도 조용한 날이 별로 없을 만큼 시위와 갈등이 비재 했다. 실례로, 그동안 우리나라는 국내외의 이해관계로 인해 국익에 대한 손실이 얼마나 컸던가? 지금 처한 60여 년간의 분단이 그렇다. 당당히 뜻과 목소리를 내지 못한 채 몇몇 강대국의 입장에 따라 당시, 우리의 운명은 좌우지 될 수밖에 없었다. 외압에 굴하지 않고 이를 극복하는 지름길은 겨레가 주체적으로 하나 되는 것이 우선이지만 그렇지 않고서야 초강대국의 위용을 겸비하기가 어디 쉬운 일인가. 이젠 백두대간 같은 민족의 정기와 맥을 살려 큰 산과 바다처럼 우뚝 서야 진정 ‘마이웨이’가 가능하다. 요즘 TV드라마 “광고왕 이태백”을 보면 알 수 있듯 실력자가 되기 위해 현장에 직접 뛰어들지 않고 소기의 성과를 바라는 것은 무리다. 가령, 달그림자를 밝기 위해 물에 비췬 달이라도 밝는 시늉을 내야 ‘달을 건져 올린다.’는 것을 인지할 수 있다. ‘좋은 것 위에 더욱 좋은 것을 더한다’ 금상첨화(錦上添花)라 했던가. 가만히 있는데 감이 입으로 저절로 떨어지길 바라지는 말자. 복권이나 일확천금을 통해 팔자한번 고치고자 하는 분들이 많은데 자신의 재능이 뭔지 한번 곰곰이 생각해보길 바란다. 누구나 바라는 태평성대는 그냥 오지는 않는다. 잘 살고자 다함께 뜻과 힘을 모아야 소중한 것을 이루고 지킬 수 있다. 가진 자는 계속 더 갖고 없는 자는 계속 빼기기만 한다면 어디 살만한 세상이라 하겠는가. 이웃끼리도 나누고 베풀며 공생하는 나라, 일상 너무나 들어온 말인데도 바쁜 생활 가운데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 잃어버리기 전에 작은 것부터 행하는 미덕과 자신을 가꾸어 보라. 언젠가 본연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Someday, you will discover your own values and identity.)
사람은 누군가 알아주고 사랑해 줄때 크게 발전하고 성장하는 것처럼 자신과 이웃부터 감싸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전혀 모르는 낮선 자화상보다 참으로 행복한 추억들을 쌓을 때 풍성하고 부강한 유토피아는 시작된다. 성공은 주저앉기보다 넘어져도 다시 일어서는 자의 편이다. 따뜻한 봄 향기와 더불어 온몸으로 한번 뜨겁게 불 태워보라. 눈물은 슬퍼서 울기도 하지만 기쁨의 눈물이 가득해 울기도 한다. 먼 석양의 뒤안길에서 시내와 강을 이뤄 마침내 황금빛 ‘광휘의 바다’를 꿈꾸듯 어느새 그곳을 거닐고 있는 자신을 목도해 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