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스트 세일즈맨
세일즈 시작한지 6개월이 지나면서 영업활동에서 여유와 탄력이 조금씩 생긴다.
영업사원은 3개월 마다 신입사원을 충원하는데 그 이유인즉 3개월 버티기가 녹록하지 않기 때문이다.
영업의 인격은 숫자 즉 영업실적이라 했던가 !
무실적과 저조한 실적으로 반 년의 긴 시간은 본인도 고통의 나날이고 특히 회사가 허용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어려운 시기가 지나 가니 고객의 숫자가 늘어나고 그 고객이 가망고객을 소개하고,
본사에 위치 한 영업소로 이전하면서는 사내 직원들의 소개가 영업활동의 주류를 이룬 적도 있었다.
따라서 신뢰를 기반으로 요즘 말로 고객관계관리(CRM)와 버드 독(Bird Dog) 관리만 잘 해도 기본실적 이상을 무난히 달성하였다.
이 때의 영업은 참 재밌고 영업생산성이 높았다.
돈 벌고 사람 사귀고 세상공부하니 그야말로 일거삼득 !
이 방식을 필자는 '호형호제 휴먼터지'식의 영업방식이라고 두 번쩨 저서 "세일즈맨 이론을 만들자" 에서 표명했다.
당시에는 국내의 자동차 대수가 100만대를 밑돌던 시절이고 자종차를 구매 한 오너 운전자들에게 나름대로
사회적으로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였다.
1987년 6월엔 르망이 출시된 1년을 기념하기 위해 회사에선 판매증진을 위한 '보상 이벤트'를 실시하였다.
요즈음은 모든 차들이 에어컨 장착이 기본이나 당시엔 에어콘 장착은 옵션이었다.
에어컨 없는 르망 1대를 출고하면 3점,에어컨 차는 2점 이런식으로 점수를 합산해서
인센티브를 제공하였는데 그 해 6월 한 달 동안 인센티브만 200여만원을 받은것으로 기억한다.
당시의 대기업 부장 월급이 아마도 70만원 내외였을 것이다.
그래서 6월 세금만 110만원을 납부하였으니 감히 베스트 영업사원이라고 할 만 하였다.
그런데 인간사에 흥진비래(興盡悲來)가 있다 했던가 !
다음 달 7월엔 노사분규가 발생하여 영업소는 개점휴업 상태~~~
이 후유증은 향 후 몇 개월 동안 자의반 타의반 영업실적에 타격을 주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난 그 때 깨달았다.
영업을 통하여 인생의 고진감래(苦盡甘來)와 흥진비래(興盡悲來)를 ~~~
연구하는 세일즈
세일즈는 고객접점에서 말로하는게 주 업무이다 보니 말의 테크닉은 좋아질 순 있어도
고객상담의 내용과 질, 즉 서브퀄은 크게 발전할 수가 없음을 알아 간다.
그래서 조 지라드를 우선 읽어 보고 세일즈 관련 책들을 찾던 중 '세일즈 & 마케팅' 이라는
월간지를 정기구독하게 되는데 이 책은 세일즈의 체계성을 갈망하던 필자에겐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것 처럼 이론을 정립하는데 기초를 이루게 한 고마운 책 이었다.
그러던 중 뭔가 비전을 세워가면서 세일즈에 대한 인식정립을 제대로 세워보겠다는 뭐 그런 생각으로
인하대학교 경영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케팅 전공으로 입학한다.
세일즈 실무를 대학원에서 마케팅 이론으로 풀어 가니 그야 말로 물고기가 물을 만난것 처럼 신나고 재미었다.
퇴근 직후에 대학원엘 가야 해서 저녁식사를 거르게 되는데 필자는 어려서 부터 규칙적인 운동과 식사가 습관이 된지라 ~~~
궁리 끝에 학교 후문의 포장마차에서 순대 500,오뎅 500원어치를 순식간에 입안에 삼키는 동시에
배움의 강의장을 향해 뛰어가면서도 가슴 뿌듯했던 시절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아이러니 하게도 저의 세일즈 최고 기록은 월22대가 최고였는데
이 기록을 대학원 재학시에 달성한다.주경야독하느라 바쁜데 어뗳게 가능할까 ?
그게 바로 조 지라드(Joe Girard) 의 '250명 법칙' 활용과 인맥관리가 주요했던 것이다
이 때 난 알았다 왜 인맥관리와 준거집단이 비즈니스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지 !
3차 학기에 석사대표가 되어 그야 말로 대학원 행사와 원우회 활동 관련하여 종횡무진하였다.
최고위 과정과 원우회는 공동으로 구성하여 운영되는데 그들 과의 교류는 또 다른 세계를 알게 되고
그 것이 견문을 넓히고 사회공부를 하는데 있어서 학습효과가 매우 지대했다.
다양한 사업가들 그리고 각계의 직장인들과의 교류와 경험들은 원동력이 되어 나중에 33세에 지방의원도 되고 뭐 그랬는데
역시 폭 넗게 열정으로 봉사활동을 하다 보니 보상 아닌 보상으로 다른 분야에서 효과를 본 다고 기뻐하였다 ^^
이제 결정적 시기, 논문기간인 5학기가 시작되었다.
논문을 어뗳게 구성하고 해야 할지 걱정이 태산이었다.
세일즈 실무와 운동만 즐겨했던 필자에겐 그 논문을 쓴 다는 그 자체만으로도 연구과제이다.
일단 국회도서관에 소장되어있는 마케팅 관련 논문 목차와 관련 논문의 내용을 조사하고
매주 1회씩 연구에서로 멋지시고 집필을 왕성하게 하시는 교수님의 지도를 받는다.
준비한 논문을 보시면서 빨간 싸인펜으로 엑스표를 죽~죽 그으시면서 지도가 시작되는데
삭제되는 내용들이 얼마나 아깝운지 그리고 또 무슨 내용으로 보충해야 하나 앞이 막막했던 생각이 떠오른다.
몇 개월이 자난 어느날 드디어 지도교수님의 오케이 사인이 난다.
난 그날 교문밖으로 나오자 나도 모르게 운전대를 잡으면서 눈물을 흘렸다
아마도 , 고생했다 !, 이제 부터 경영학석사네 등 ~~~하면서
바로 이것이 그 동안 수고한 자신을 위로하며 감사하는 마음의 표시일거라고 ~~~
아 근데 ,이 논문이 국내최초라고 하면서 조선일보,라디오,잡지,그리고 KBS'아침마당'에 출연하게 된다.
방송출연 후 전국각지에서 전화가 오고 논문을 볼 수 있나 ?, 한 수 배우고 싶다 ! 등
어 떤 보험설계사분은 영업소로 방문하시길래 즉석에서 특강을 해 드렸고
그 분은 감사의 표시로 버드 독이 되어 자동차도 소개 해 주시고 ~~~
회사에선 비서실 과장이 CEO의 명을 받고 밥 사주러 온다면서 점심 내내 영업관련한 제안들을 메모하고 하였다.
공장에서도 특강을 한다. 공장에서 특강했더니 1시간 당 2500원 급여 때 포함되어 지급됐는데 필자의 강사료 최저로 2500원을 기록하는 순간이다 ^^
난 그 때 알았다, 메스컴의 위력을 !
방송출연 & 슬럼프
방송출연, 인터뷰 , 강의 등으로 한 달정도를 보낸다.
주변에선 '시테크'로 소위 한 창 뜨고 있는 윤은기원장님을 벤치마킹하라고 주문한다.
그런데 30세인 필자에게 강사로서의 꿈을 본격적으로 펼쳐보기엔 세상에 대한 기회비용이 클 것 같아
사내 대장부로 태어나서 뭐 그런거 이상적인 야망이라고한 할까 이런 생각을 잠재적으로 해 왔다.
세일즈는 권태기가 오고 전문강사로 진출하기엔 뭔가 아닌것 같고 막연한 생각에
운동은 더 열심히 했다 낮엔 육체미 밤엔 합기도로 이게 나름대로 깨어 있는거라고도 단순히 생각했을런지도 모르겠다.
어느날 비서실 과장이 CEO의 추천이라면서 판매기획부를 부서 이전을 거론하였는데 망설였다
왜냐하면 부평에서 서울역에 있는 대우센터까지 출퇴근도 그랬고 그 곳은
빡세게 일하면서도 고정급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필자에겐 모든것이 불편한 사항이었다.
기획실이라는 명예 하나 빼고는 실용적 측면에선 필자의 경우엔 제로었다.
그래서 필자가 감히 CEO에 가서 건의사항을 다음과 같이 말씀 드린다.
1년 6개월간 해외지사 근무를 통한 영업마케팅 연구를 하고 귀국하여 대우식으로 발전시켜
영업실전에 적용하는 영업마케팅의 모듈을 만들어 보고 싶다고 했다.
CEO가 듣더니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래서 난 그 날 이후로 사장실을 찾아가지 않았다.
아, 그런데 10여년이 지나서 셀트리온 준공식장에서 조우하게 된다.
그 때 기분 좋았다 기분좋아서 소고기 사묵고 싶었다 ~^^
상황이 이러 하니 현실적으로 상황적응을 능동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고 이상적인 일도 준비하지 못한 양
붕확실한 나 날속에서 그저 운동으로 심신을 매일 정리하는데 운동만으로론 30세의 혈기왕성한 청춘에겐 대신 할 수가 없었다.
어떤 날은 출근후 체육관에서 그리고 어떤 날은 동료들과 하루 종일 손도 맞쳐 보기도 하였다.
그 시기에 소년시절 꼭 하고 싶었던 복사가 되었다.
일상의 나 날을 하염없이 보낼 순 없었고 의미있는 일을 찾던 중
논문발표 이 후 처음으로 책을 쓰기 시작한다
책 제목은 '위대한 세일즈맨 ' !
저서 그리고 허탈
원가 시작하면 확실히 끝장을 보려고 하는 성미는
책 쓰기로 맘 멈으면서 6개월여 동안 하루 8시간 이상을 혼신의 힘을 다 하여 책을 쓰기 시작했다.
물론 영업특성상 분명히 영업실적엔 마이너스인데 신경쓰지 않는다는 마음을 갖고서 시작할 수 밖에 없었다.
난 이때 결심해 본다
하나를 얻으려면 하나을 잃어버릴 줄 알아야 한다고 !
아,그런네 하루 8시간 이상을 쓰니까 2~3개월이 지나고 나니 힘들기 시작했다.
평생 운동했으니 이 정도야 했는데 지쳐가기 시작했다.
온 몸의 기가 다 빠져 나가는 것 같았다.
그래서 작가 분들이 하루 청심환을 2알씩 먹는 분도 있다는 것을 알게됐다.
고진감래(苦盡甘來) !
드디어 초고를 끝내고 보무도 당당하게 지금도 유명한 김영사의 박사장을 방문하여 원고를 전달하였다.
그러던 중 회시의 전무로부터 회사에서 발행할 것을 주문받고 원고를 다시 회사 홍보팀에 넘겼다.
2달 가까이 돼서 탄생했다 나의 첫 번째 책 '위대한 세일즈맨'
내가 책도 쓰다니 문장실력도 없고 초딩때 글짓기도 한 번 제대로 쓰지 못한 완전초보가 ~~~
그런데 노력하는 마음과 자기의 경험을 써내려가는 것은 성실과 열정이 있으면 할 수 있는 것이구나 그 시절에 생각한다 !
집필기간 동안의 고생했던 시간들이 기쁨으로 승화되는 순간이다.
그리고 '위대한 세일즈맨'은 대우자동차 영업사원들의 메뉴얼로서 지정되어 회사에서 한 권씩 전달했다.
뿌듯하다는 생각과 동시에 회사에서 어는 정도 공로도 인정받겠지 하는 일말의 기대도 하게 되었다.
물론 누구한테 인정받으려고 처음 시작한 것 아닌데도 말이다..
그런데 보상은 커녕 수고했다는 말 한마디 회사로부터 든질 못한다.
그 당시 필자는 혈기왕성한 시기라 그야 말로 비분강개 하였지면 그래도 저자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인내한다.
그러나 안타깝고 현실이 갑갑하였다.
이러한 것들이 가중 되어 점점 더 야성을 불태우 것 같았다.
뭔가 새로운 것을 획기적으로 찾아 나서야 할 것 같았다.
이러한 기분을 반전시키고 승화시켜 나의 소실적 꿈을 실현시킬만한 그러한 것들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