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학가 勸學歌
◎ 남원 은적암으로 피신한 선생께서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는 자신의 근황과 심경을 밝히며 편지의 서두를 시작하신다.
1 길거리의 버드나무 그늘 아래서 한가로운 이야기나 하는 할 일 없는 나그네와 같은 나는 온 나라의 강산을 모두 밟고 다니다가 지금은 전라도 은적암에 머물며, 『무정하게 흘러가는 이 세월에 놀고나 보고 먹고나 보자.』라는 식으로 하는 일도 없이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으면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아득하게 넓은 이 세상천지를 명아주 지팡이로 벗을 삼아 떠돌다가, 이 한 몸을 잠시 세상에서 비켜서서 만물이 돌아가는 이치를 살펴보니, 하는 일도 없이 이렇게 세월만 보내는 나의 심정은 의지할 곳이 전혀 없구나. 이리하여 서로 이야기도 하고 글도 지으면서, 묵은 한 해를 보내고 새해를 맞이하고자 한다. ◎ 무상한 인생과 세월에 대한 감회를 말씀하신다.
2 무정한 이 세월이 어찌 이리 무정한가? 아, 세상사람들이여, 『사람이 일흔 살을 사는 것은 드문 일이다.』 이런 말이 오랜 옛날부터 전해지지 않았는가? 그러나 무정하게 흘러가는 이 세월을 뚜렷하게 헤아려 보니, 빛살처럼 지나가는 이 세상에 하루살이같이 잠시 살다가 가는 인생인데, 칠십 평생 사는 것을 어찌 칭찬하면서 그만큼 사는 것도 드물다고 했단 말인가?
◎ 편지를 지어 보내는 뜻을 말씀하신다.
3 아, 세상 사람들아, 오랜 세월 수많은 고생을 겪은 나그네인 내가 노래 한 장을 지어 보노라. 오랜 세월 수 없이 겪은 고생을 좋은 산천을 만나 후련하게 풀어 버리고, 두고 온 어린 자식들과 고향 생각도 노래를 지어 시원하게 풀어 보려 하니, 나의 이 글을 보고 웃지 말고 자세하게 읽으며, 그 뜻을 음미하도록 하라. 이 세상에 사는 수많은 사람들이 모두 다 나와 같은 고생을 했겠으며, 많은 사람들이 지은 한글 가사가 모두 내가 쓰는 이 노래와 똑같겠는가? 그러니 구절마다 글자마다 자세하게 살피고 외워서, 춘삼월과 같이 좋은 시절이 오면, 우리 함께 즐겁게 놀고 잘 먹으며 살아 보세.
◎ 세상을 돌아다니며 살펴본 인심풍속에 대하여 한탄하신다.
4 강산 구경은 제쳐 놓고, 오늘날 사람들의 인심풍속을 살펴보니 참으로 이상하구나. 부모와 자식은 친함이 있어야 하고, 임금과 신하는 의리가 있어야 하며, 남편과 아내는 각자가 지켜야 할 도리가 있어야 하고, 나이가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은 차례와 질서가 있어야 하며, 벗들 사이에는 신의가 있어야 한다는 가르침이 있건마는, 세상 사람들의 인심풍속은 (이와는 다르니) 참으로 이상하구나. 내가 세상 구경을 별로 못한 사람이지만, 태어나서 이런 경우는 처음 보는구나.
◎ 인심풍속에 대한 한탄이 계속된다.
5 내가 태어나 자란 고향의 인심풍속이 한탄스러워 집안도 돌보지 않고 길을 떠나 왔는데, 방방곡곡을 돌아 다니며 모든 일을 살펴보니, 남자건 여자건 수많은 사람들이 사람마다 낯이 설고, 그들의 인심풍속과 하는 행동을 보니 모두 눈에 거슬려, 「타향 객지가 이런 것인가?」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나의 좁은 생각으로 좋은 풍속을 보려고 고향을 떠나왔는데, 이런 일을 겪으려고 어진 친구 좋은 벗을 하루아침에 이별하였단 말인가? 산수풍경을 구경하는 것은 제쳐 놓고, 한겨울의 눈과 찬바람을 맞으며 이 마을 저 마을로 떠돌던 일들이 결국 한바탕 웃고 잊어버려야 할 일이 되었구나.
◎ 인심풍속에 대한 한탄이 계속된다.
6 아, 세상 사람들아, 지금 세상의 풍속이 어떠한지 모르거든, 자신이 있는 마을의 풍속을 살펴보라. (그래도 모르겠다면,) 이것도 시절의 운수이니 어쩔 수가 없겠구나. 하기야 온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며 보지 않으면, 이 세상의 인심풍속이 이런 줄 어떻게 알겠는가? 인간들이 행하는 온갖 괴이한 일들이 보면 볼수록 끝이 없구나.
◎ 인심풍속을 올바르게 이끌어 주는 사람이 없음을 탄식하신다.
7 옛날부터 지금까지의 일을 헤아려 본다. 옛날 요임금과 순임금이 다스리던 성스러운 시절에는, 온 하늘 아래의 모든 백성들이 요임금과 순임금처럼 (어질고 슬기로웠다고 한다.) 그러나 세상의 운수가 수레바퀴처럼 돌고 변하여서 (인심풍속이 이렇게 변했다고 한다면,)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아무리 그렇더라도, 이 세상에 어질고 미덕이 있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사람은 진흙 속에 묻힌 구슬과 같으니, 어느 누가 알아보겠는가? 가난을 편안하게 여기며 도를 즐기는 사람도 있을 것인데, (그런 사람 가운데) 누가 이세상을 가르치고 이끌어 줄 것인가?
◎ 성운을 위해 힘쓰는 현인군자들을 만나기조차 어렵다고 탄식하신다.
8 시절이 돌아가는 운수를 말한다고 해도, 한 번 왕성해지면 한 번 쇠락해지는 것이 아니겠는가? 쇠락해진 운이 극도에 이르면 다시 왕성해지는 운이 온다고 한다. 그러나 어질고 맑은 모든 군자들이 한 몸과 같이 되어, (성운을 만드는 데) 동참을 하기는 했던가? 어렵구나, 어렵구나, (어질고 맑은 군자를) 만나는 것조차 어렵구나. 온 세상을 모두 찾아다닐지라도 그런 사람을 만날 수만 있다면, 다른 말은 할 필요도 없이 다만 가슴속에 품은 생각들을 주고받으며, 떳떳하고 올바른 진리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인데, (그런 사람을 만나기조차 어렵구나.)
◎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어찌하여 하늘님을 공경하지 않고 따르지 않는지 안타까워하신다.
9 지금 온 세상 사람들이 진흙 구덩이에 빠지고 숯불에 타는 것처럼 곤궁하고 비참하지 않은가? 목숨이 위태로운 백성들이여, 어떻게 해야 나라를 바르게 하고 백성을 편안하게 할 수 있는가? 사람을 비롯하여 나무와 풀과 같은 모든 생명들의 죽고 사는 것이 하늘님에게 달려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예상하지 못한 폭풍우에 (재난을 당하면) 하늘님을 원망하다가도, 막상 죽을 지경이 되면 하늘님을 찾는 것이 사람들의 당연한 마음이 아닌가? 오랜 옛날의 훌륭한 임금들과 성현들도 하늘님을 공경하고 하늘님의 뜻을 따르지 않았던가? 그런데 인심이 쌀쌀하고 각박한 이 세상에서, 어찌하여 사람들은 하늘님의 명령을 돌아보지 않는가?
◎ 장평전투의 사례를 통하여 사람들이 근본 도리를 다해야 함을 가르치신다.
10 옛날 장평전투에서, 진나라는 사로잡은 조나라포로들을 모두 산 채로 묻었다. 포로들 한 사람 한 사람이 모두 하늘님의 조화로 이 세상에 태어난 (귀한 목숨이었건만,) (진나라와 조나라는) 각기 자기의 이익만 생각하여, 하늘님이 모든 생명을 내신 은덕을 아는 것은 고사하고, 사람이 최소한으로 지켜야 할 근본조차 버렸다. 가련한 세상 사람들이여, (각기 자기만 위하는 마음의 결과가 이렇게 참혹하거늘, 언제까지) 자기만 위하는 마음을 계속 가질 것인가? 하늘님을 공경하고 하늘님의 뜻을 따라야 한다. 비록 이 세상의 인심이 쌀쌀하고 각박하더라도, 사람이 지켜야 할 근본 도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임금을 공경하면 충신이요, 열사가 아니겠는가? 부모님을 공경하면 효자 효부가 아니겠는가? 슬프다, 세상 사람들이여, 이런 일들을 자세히 살펴서 하늘님을 공경하라.
◎ 선생께서 사십 평생을 살아오면서 사람이 해야 할 근본 도리를 다하지 못한 것을 후회하신다.
11 나도 또한 이 세상에 태어나 부모님을 어려서 잃지 않았던가? 부모님께 정성과 공경을 다하지 못했으니, 부모님께 죄를 지은 것이 아니겠는가? 또한 나는 충성스런 열사의 후손으로 태어났으면서도 임금과 신하 사이에 지켜야 할 도리를 다하지 못했으니, 임금에게도 죄를 지은 것이 아니겠는가? 헛되이 세월만 보내다가 어느덧 사십 살이 다 되었구나. 사십 평생을 살아온 결과가 이 모습인가? 지나간 일이니 이제는 어쩔 수가 없구나.
◎ 당시 세상에 퍼지고 있던 천주교 신자들의 행동을 말씀하신다.
12 한 시대가 저물어 가는 경신년에 세상에서 들려오는 소문이 있었다. 요망스럽고 도둑 같은 서양의 나라들이 중국을 침략하여 천주당을 높이 세우고 그들의 도를 전한다는 것이었다. 온 세상에 가득 찬 그 소문을 들으니 가소로워 크게 웃을 일이었다. 전에 들었던 말을 곰곰이 생각해 본다. 우리나라의 어리석은 사람들이 사람으로서 지켜야 할 예의와 다섯 가지 기본 윤리는 다 버리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심지어는 아동과 바쁜 심부름꾼까지도 무리를 지어 헛되이 세월을 보낸다는 것인데, 그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그들은 쉬지도 않고 하늘님에게 비는데, 『높고 높은 곳에 있는 하늘, 하늘님이 계신 옥경대에 내가 죽거든 가게 하옵소서.』 이렇게 빈다는 것이다.
◎ 당시 천주교 신자들의 불합리한 신앙을 비판하고 탄식하신다.
13 우스운 일이다. 저렇게 비는 저 사람은 자신의 부모가 돌아가신 다음에 신도 없다고 말하면서 제사도 지내지 않는다. 또한, 사람이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기본 윤리도 지키지 않으면서 오직 일찍 죽기만을 바라는 것은 무슨 일인가? 돌아가신 부모의 혼령과 혼백은 없다고 말하면서, 어찌 유독 자신의 혼령이나 혼백은 있어서 하늘로 올라간다느니 뭐니 하고 있는가? 어리석은 소리 하지를 마라. 이런저런 말 다 그만두고 하늘님을 공경하면, 우리나라에 해마다 번지는 괴이한 질병으로 죽을 염려는 없을 것이다. 그대들의 허무한 풍속을 듣고 보니 웃음이 나오고, 보고 나니 탄식이 나오는구나.
◎ 선생께서 창건하신 도가 시절의 운수를 타고 온 것이며,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실제로 체험할 수 있는 도라고 말씀하신다.
14 나도 또한 사십 평생을 깊이 생각하지도 않고 지냈는데, 문득 생각해 보니 이제야 이 세상에 운수가 닥친 것인가? 만고에 없는 다함없이 큰 도를 이 세상에 창건하게 되니, 이것 또한 시절의 운수일 것이다. 매일 때때로 음식을 먹을 때만이라도 정성과 공경이라는 두 마디의 말을 지켜서 하늘님을 공경하면, 어려서부터 있던 몸의 병이 약을 쓰지 않아도 저절로 낫게 되지 않겠는가? 또한 그렇게 하면, 집안의 모든 일들에 대해 근심 걱정이 없이 일 년 삼백육십 일을 하루같이 지내게 될 것이니, 하늘이 돕고 신령이 돕는다는 말과 같지 않겠는가? 이렇게 차츰차츰 사실로 경험하게 되니, 수레바퀴처럼 돌고 돌아서 찾아온 시절의 운수가 분명하구나.
◎ 하늘님에 대한 정성과 공경을 강조하며, 선생님 자신도 어진 사람을 만나게 되면 하늘님이 주신 사명을 함께 실천하겠다고 하신다.
15 아, 세상 사람들이여, 내가 이렇게 타이르고 주의를 주는 말을 자세하고 밝게 살펴 잊지 말고 지키며, 정성에 정성을 더하여 공경하면서 하늘님만 생각하라. 부인과 자녀들을 불러서 나의 이 말을 가르치고 타일러, 한평생 잊지 않게 하라. 지금 우리나라는 해마다 전염병이 번져서 사람과 사물이 상해를 입고 있지 않은가? 나도 이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다가 어진 사람을 만나게 되면, 시절의 운수와 변천에 대해 의논하고, 그가 나에게 한평생에 해야 할 일이 무엇이냐고 물으면, 이 글을 주며 신의가 있는 벗으로 삼아나갈 것이다.
◎ 이 편지를 잊지 말고 가르침의 말씀으로 삼으라고 하며 편지를 마치신다.
16 우매한 나의 말을 잊지 말고 생각하라. 우매한 사람도 천 번을 생각하면 그 가운데 한 가지는 얻는 것이 있는 법이니, 그것이 곧 덕이 아니겠는가? 시절이 돌아가는 운수와 관련된 일은 예나 지금이나 자세한 설명이 없기에, 내가 이렇게 잘 쓰지 못하는 글이나마 적어서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전해 주니, 이 글을 보고 웃지말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받아서 가르침의 말씀으로 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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