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은 내면적인 존재요, 관계적인 존재입니다. 따라서 사람의 삶에는 무엇보다 중요한 핵심이 있습니다. 바로 영원하신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하나님과 어떤 관계에 있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관계는 이것입니다.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 _호 6: 6
하나님이 원하는 것은 예배 의식이 아닙니다. 우리의 온 마음을 다한 중심을 원하십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번제물이 아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십니다. 여기서 ‘안다’라는 말은 체험하여 안다는 말입니다.
만약, 여러분의 딸이 정성을 다해 수능을 쳤는데 떨어졌다고 해봅시다.
딸아이가 그 아픔을 표현도 못한 채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을 때, 여러분은 그 아이의 마음이 이해되는 정도일까요? 아니면 그 아이의 아픔이 고스란히 여러분의 아픔이 될까요?
“내가 너를 아노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바로 그렇게 ‘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 영혼의 깊은 슬픔이 있으면 그것은 곧 주님의 슬픔입니다. 우리 마음의 기쁨이 있으면 그것이 곧 주님의 기쁨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을 그렇게 알기를 원하십니다. 신앙은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_신 6:5
주님을 처음 만났던 날을 기억하십니까?
오늘 본문의 에베소교회는 주님께 많은 칭찬을 받은 모범적인 교회입니다. 하나님께서 네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안다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선한 것들이 존재하고 있는 중에 위험천만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바로 첫사랑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베소교회의 여러 가지 선한 행위들을 충분히 아시면서도 첫사랑을 회복하지 않으면, 돌이켜 회개하지 않으면, 촛대를 옮겨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인내와 수고와 예배와 모든 것의 가장 근본이 바로 이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삶에 주님이 찾아오신 날이 있었을 것입니다. 아무도 알지 못했던 나의 작은 신음을 들어주시던 주님, 낙망한 여러분을 붙들어 주시던 주님, 나도 용서할 수 없는 나의 부끄러운 모습에 ‘너를 위해 내 몸을 주노라’라고 말씀해 주시던 주님, 그 주님을 만난 첫사랑의 감격 있지 않습니까?
그 첫사랑 다 어디로 갔습니까? 하나님 앞에서 다른 모든 것은 있지만 예기치 않게 마음을 잃어버리는 위기가 올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여러분이 처음 사랑을 회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주님만이 깨어진 우리의 마음을 회복시킬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의 가슴에서 주님 사랑한다는 고백만 다시 샘솟는다면 이 땅은 변화될 것입니다.
제단에서 흘러나온 생수의 강이 생명수가 되어 우리의 가슴을 적시면 우리가 이르는 모든 곳이 강으로 변하고 바다로 변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생명들이 살아나는 일들을 볼 것입니다.
문제는 우리 심령 안에 잃어버린 첫사랑이 회복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게 주신 그 사랑, 주님의 사랑을 떨어뜨린 자리가 분명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식어진 자리, 다른 것 사랑한 자리가 있을 것입니다.
회개하고 돌이켜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존재 자체를 주님 앞에 드려야 합니다. 이것을 결정하지 않은 사람,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은 주님의 마음을 결코 경험할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