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교사 - 재미있는 한국어 교육 ‘담화’
한국어 교육에 있어서 염두에 두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담화(discourse)’입니다. ‘담화’는 ‘둘 이상의 문장이 연속되어 이루어지는 말의 단위’(표준국어대사전)입니다. 담화는 회화나 대화와 유사한 개념이지만 언어교육에서 'dialogue'는 ‘대화’로, ‘conversation’은 ‘회화’로, ‘discourse’는 ‘담화’라고 합니다. 그리고 문장의 길이로 보면 보통 ‘대화-회화-담화’ 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담화’에 대한 학문적, 현학적 거론은 차치하고 실제 한국어 수업을 염두에 두고 이해하기 쉽게 서술하고자 합니다. 담화는 이야기가 흘러가는 어떤, 흐름의 방향이라고 해야 할까요? 예를 들면 여성의 담화와 남성의 담화 유형이 다르고 아이와 성인의 담화 유형이 다릅니다.
이를 테면 젊은 커플이 꽃집 앞을 지나가면서 여자가 말합니다. “와, 저 꽃 예쁘다!” 그랬더니 남자가 말합니다. “그러네. 정말 예쁘네.”라고. 이 말에 여자는 서운해 합니다. 왜 일까요? 여자가 기대한 말, 여자가 바랐던 말의 흐름(담화)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여자가 기대한 담화는 무엇이었을까요? 아마도 “그래? 저, 꽃 사줄까?” 혹은 “그래, 저 꽃 사줄게”라는 말일 확률이 높습니다.
다른 예를 들겠습니다. 직장에 지각한 사원에게 상사가 말합니다. “지금 몇 시야?”라고. 그랬더니 “(시계를 보며) 지금 9시 30분인데요.”라고 말한다면 어떨까요? 또 여름날 더운 사무실에서 에어컨 가까운 자리에 앉은 직원에게 “덥지 않아요?”라고 말했는데 “그러네요, 너무 더워요.”라고 한다면 어떨까요?
이렇게 ‘언어’는 ‘언어적’으로만 주고받는 것이 아니라 ‘화용’적 ‘담화’ 측면을 고려해야 합니다. - ‘화용(話用 Pragmatics)’은 한자 뜻에서 알 수 있듯이 말의 쓰임을 말하는데 하나의 언어가 사용되는 맥락(말하는 이, 듣는 이, 시간, 장소 등)에 따라 그 언어의 의미가 달라지는 것, 곧 언어의 실제적인 쓰임에 대한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어 ‘저기 집이 보인다.’에서 ‘집’은 건물의 ‘집’이지만 ‘우리 집은 화목해서 좋아.’라고 한다면 ‘가정’을 의미입니다. 이처럼 말의 주고받는 ‘맥락’이 전제됩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누가 누구와 주고받는 내용이냐에 따라 의미가 달라지기 때문입니다. - 예를 들어 앞의 경우처럼 “지금 몇 시야?”라고 말하는 상사에게 “지금 9시 30분입니다.”라는 말은 언어적으로 볼 때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지만 ‘담화’적으로 볼 때는 적절하지 않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화용’과 ‘담화’는 언어 교육에서 염두에 두어야 하는 것입니다. 외국인이 한국어를 배우면서 1차적으로는 ‘언어적’ 의미를 알아야겠지만 언어적 의미가 다가 아님도 가르쳐야 합니다. 예를 들어 한국인들의 담화에서 “나중에 내가 한번 밥 살게.”라는 말이 실제 실행하겠다는 의미보다는 인사치레임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만약 ‘밥 살게’라는 말을 언어적으로만 이해하고 ‘왜 한국 사람은 지키지도 못할 약속을 하지?’라며 의아해한다면 어떨까요?
언어는 언어 그 자체로 홀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그 언어가 사용되는 문화와 맥락에 대한 전제 하에 존재합니다. 그래서 언어와 더불어 문화와 상황에 이해가 수반되어야 언어를 제대로 구사할 수 있습니다. 한국어 교육에서, ‘한국인의 담화, 한국어 담화’에 대한 연구 자료가 있다면 좋을 텐데, 아쉽게도 아직까지는 체계적인 담화 교육 자료를 찾기 어려운 실정입니다.
남녀별, 지역별, 성별, 세대별, 직업별, 연령별 담화의 차이 등을 살펴보며 한국인의 보편적인 담화 유형, 그래서 한국어 교육 내용으로도 다루어야 할 내용으로 어떤 것들이 있는지 관심을 가져보세요. 먼저는 나의 담화로부터 시작해, 가까이 지내는 사람들의 담화를 잘 살펴보세요. 재미있으면서도 한국어 교육의 내용으로 의미 있는 것들을 발견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합니다.
한 가지만 예를 들면 한국인의 담화 특성 중의 하나가 ‘간접 담화’가 많다는 것입니다. 물론 한국인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한국인들이 자신의 의사 표시를 ‘간접적’으로 하는 경향이 많은 것은 사실입니다. 앞서 더운 사무실에서 에어컨 가까이 있는 직원에서 “○○ 씨, 에어컨 좀 켜줘요.”라고 직접적으로 말하기보다는 “덥지 않아요?”라고 묻는 식으로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 하나의 예를 들면, 점심시간이 조금 지나 커피숍에서 지인을 만났는데 점심을 먹지 못한 상황이라 배가 고플 때, 대개의 경우 상대방에서 넌지시 묻습니다. “점심 드셨어요?” 또는 “점심식사 하셨죠?”라고 묻고는 만약 “네, 했어요./ 그럼요. 먹었죠.”라고 하면 ‘나는 배가 고파서 무언가를 먹어야 하는 상황인데….’라는 말은 뱉지 못합니다. 심지어 이미 식사를 한 상대방이 점심 식사를 했느냐고 물어보면 먹었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직접적인 담화로 한다면 “제가 점심을 아직 못 먹어서 커피와 샌드위치 좀 먹으려고 하는데 점심 드셨더라도 샌드위치 조금 드실래요?”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이러한 담화의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래서 상대방이 “점심 드셨어요?”라고 물을 때 눈치 빠른 사람이라면, 혹은 간접 담화 유형을 아는 사람이라면 “저는 먹었는데 혹시 안 드셨으면 샌드위치라도 드세요.”라고 말하기도 할 것이다(한 사람만 식사를 못한 상황에서 식당에 가기는 어렵지만 커피숍에서 샌드위치나 도넛 등의 대체 식사는 어렵지 않은 상황이다).
이렇게 찬찬히 살펴보면 언어생활이라는 것이 참 재미있습니다. 우리는 무심코 말을 내뱉는 것 같아도 우리가 사는 문화에서 형성된 것들이 우리 언어 기저에 흐르고 있고, 말하는 이의 생각과 의식도 반영됩니다. 그리고 ‘언어적 표현’의 표면적 의미가 전부가 아닐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