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연재 소년소설
<응달의 나무들> 6회 - 《굴렁쇠 어린이》 1990년 6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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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분이네 어머니는 원산 아저씨가 너무도 고마웠다. 그렇게 많은 돈은 아니지만 남을 돕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원산 아저씨는 부자도 아니고 가난하기가 마찬가지다.
“이 은혜 잊지 않겠어요. 우리 영분이 아버지 일어나면 열심히 일해서 보답할 거예요.”
“아닙니다. 어서 빨리 완쾌하셔서 농사일도 하고 놀러도 다녀야지요. 저는 그것만 바랄 뿐입니다.”
그러나 영분이네 아버지는 병원에 가서 한 주일 동안 입원해서 치료받았지만 낫지 않았다.
“어쩌면 좋지요? 당신 일어나지 못하면 신세만 지고 미안하지 않아요?”
영분이 어머니가 그러니까
“아니요. 옛날 심봉사도 공양미 삼백 석을 부처님께 바쳤지만 금방 낫지 않고 오래오래 지난 뒤에 눈을 떴으니, 나도 좀 더 기다리면 일어나게 될 거요.”
하고 영분이네 아버지는 조금도 실망하지 않았다. 벽에 기대어 앉아있기도 하고 억지로 일어나 마당을 거닐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자꾸 일어나는 증세는 여전했다. 먹으면 토하고 머리가 쑤시고 아픈 것이었다.
“이제 겨울이 지나면 낫게 되겠지.”
영분이네 아버지는 봄이 오기를 기다렸다.
시절이란 건 사람이 기다리거나 기다리지 않거나 상관없이 지나가고 다가오는 것이다. 그래서 이번 겨울도 쉽게 지나가고 꽃 피고 새 우는 봄이 왔다.
진달래가 피고 개나리가 피었다.
원산 아저씨가 산에서 덫에 걸린 노루를 데려온 것은 진달래가 한창인 봄날이었다. 앞다리 하나가 덫에 치여 피가 흐리고 있었다.
“이만해도 다행이지. 하마터면 죽을 뻔했구나.”
은실은 뼈가 바스러지듯 망가진 다리 상처를 참기름을 발라주고 붕대로 감아주었다. 노루가 버둥거리며 달아나려 하는 것을 원산 아저씨가 보듬어 않으며 붙잡았다.
헛간 구석에다 짚을 깔고 움직이지 못하도록 오목하게 싸리둥우리를 덮어놓았다. 수수알을 바가지에 담아주고 배추잎도 줬다.
학교에 갔다 와서 영분이가 원산 아저씨네 집에 가보니, 노루는 앉아서 배추잎을 먹고 있었다. 사람 소리가 나자 눈을 동그랗게 뜨고 달아나려고 버둥거렸다.
(잡지에서 한 줄이 빠졌음)
"달아나려 한단다. 그러니까 눈치 채지 않게 먼 데서 보도록 하자.”
은실은 다쳐서 갇힌 노루가 안타깝도록 애처로웠다. 어서어서 상처가 아물어 산으로 돌아가게 해주고 싶었다.
“언니, 이 노루가 암놈이야? 숫놈이야?”
영분이가 물었다.
“글쎄, 배가 통통한 걸 보니 암놈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구나.”
다행히 노루는 웅크리고 앉아서 먹이를 잘 먹었다.
그날 밤, 마을엔 집집마다 원산 아저씨네 노루 얘기로 떠들었다.
“할머니, 노루 다리 부러진 것 도로 붙을까?”
순재가 할머니께 물었다.
“붙고 말고지. 죄 없는 짐승인데 꼭 붙어서 뛰어다닐 거야. 못된 사람들, 말 못하는 짐승 잡아먹고 얼마나 살고 싶단 거야.”
할머니는 덫을 놓은 사람이 누군지 원망스럽고 미웠다. 그러나 다른 집 어른들은 한결같이 하는 말들이,
“(잡지에서 한 줄이 빠졌음) 도로 살려주려는 거야.”
“그 노루 서울 사람한테 팔면 십만 원은 받을 텐데요.”
“까짓 거 십만 원 받고야 팔 수 있나. 잡아서 먹는 편이 낫지.”
하는 것이었다.
은실은 다친 노루를 극진히 보살폈다.
“노루야, 자 많이 먹고 어서 낫거라.”
“은실아, 그러다가 노루하고 정이 들면 어떻게 헤어지겠니?”
원산 아저씨가 웃으며 물었다.
“괜찮아요. 헤어져도 근처 산에서 살 테니까요.”
가장 힘든 것은 역시 붕대를 갈아맬 때였다. 아저씨가 붙잡고 은실이 조심스럽게 붕대를 풀고 참기름을 발랐다. 시뻘겋던 살점이 조금씩 아물고 하얀 뼈가 점점 살 속으로 숨어 들어갔다. 순재와 영분이는 다투어 먹을 것을 가지고 왔다.
순재는 산에서 졸가리만 있는 칡넝쿨을 걷어오고 영분이는 쑥을 캐왔다. 한 주일이 되자 노루는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고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어도 가만히 있었다.
은실은 정말 즐거웠다. 어지럽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도 잊어버렸다. 까무라치지도 않고 밥도 많이 먹었다.
“노루가 은실이랑 친하고 싶어 일부러 덫에 친 건지도 모르겠구나.”
원산 아저씨가 웃으면서 그러자 은실은 그게 참말 같이 들렸다.
그런데 어느 날, 아랫마을에서 마음씨가 고약하다는 강 씨라는 아저씨가 원산 아저씨네 집으로 찾아왔다. 강 씨는 뭔가 잔뜩 벼르고 찾아온 듯했다.
“이 집에 덫에 치인 노루가 있다는데 한 번 보고 싶소.”
“노루라면 헛간에 있지만 무엇 때문에 그러십니까?”
원산 아저씨는 강 씨 아저씨가 못마땅했지만 까닭을 몰라 물었다.
“지난겨울 내가 덫을 몇 군데 놓았는데, 틀림없이 이 노루도 내가 놓은 덫에 치인 것일 테니 내가 가져가겠소.”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덫을 놓는 것도 법으로도 금지되어 있고 설령 허락했다 해도 강 씨가 놓은 덫이라고 어떻게 안다는 것입니까?”
“여러 말 하기 싫소. 노루를 가져가야겠소.”
강 씨는 헛간으로 가서 문을 열었다.
“안 됩니다. 내어줄 수 없습니다.”
원산 아저씨는 뛰어가 헛간 문을 막아섰다. 그때였다. 은실이 방에서 뛰쳐나와 소리쳤다.
“저도 내어줄 수 없어요. 그냥 돌아가지 않으면 사람을 부르겠어요.”
은실이 신발을 신고 집 밖으로 뛰어나가려 했다.
그러자 강 씨가 황급히 붙잡았다.
“처녀, 그만 두시오. 오늘은 그냥 돌아갔다가 다음에 확실히 알아보고 또 오겠소. 절대로 그냥 물러나진 않겠소.”
강 씨는 투덜거리면서 골짜기를 내려갔다.
은실은 헛간문에 기대어 훌쩍거리며 울었다.
“아버지 저 사람이 또 와서 기어이 달라고 하면 어떻게 해요?”
“아니야, 오지 않을 게다. 이것으로도 도저히 빼앗을 수 없다는 걸 알았을 테니까.”
그러나 원산 아저씨는 이날 밤 헛간문을 단단히 잠그고 밤늦게까지 잠을 자지 않고 지켰다. 아무 것도 모르는 노루는 맛있는 먹이를 얻어먹고 살이 통통하게 올랐다. 눈에 띄게 배가 불러오는 건 무엇 때문인지 모르고 다만 살이 찐다고만 생각했다.
한 달이 지났다.
떡갈나무잎이 연두빛으로 피어나는 오월 어느 날 아침, 은실이 헛간에 가보니 살이 통통 올랐던 노루 배가 푹 꺼지고 대신 새끼 노루 두 마리가 젖을 빨고 있었다. 은실은 너무도 뜻밖이어서 한참 동안 넋을 잃고 바라보다가 큰소리로 원산 아저씨를 불렀다.
“아버지! 아버지! 노루가 애기를 낳았어요!”
“뭐야? 애기라니…….”
원산 아저씨도 헛간 안을 들여다보고 눈이 둥그래졌다. 참으로 오랜만에 아버지와 딸은 행복에 젖어 들어 엄마 노루와 아기 노루를 시간 가는 줄도 모르고 지켜보고 있었다.
저녁때는 영분이와 순재가 오고 오금골댁도 왔다. 순재네 할머니도 와서 헛간 안을 들여다보고 은실네 집에 경사가 났다고 기뻐했다.
“누나, 이젠 노루가 아기 낳았으니 여기서 오래오래 함께 살겠구나.”
순재는 아그배잎을 다리끼에 훑어와서 엄마 노루한테 주면서 예쁜 아기 노루를 한없이 들어다봤다.
“은실 언니, 아기 노루 한 마리 우리 집에 데리고 가서 키우면 안 될까?”
영분이가 엉뚱한 걸 물었다.
“그건 안 돼. 아기 노루는 엄마하고 산으로 돌아가야 해.”
은실은 절대 안 되는 소리라고 싹둑 자르듯이 말했다. 그런데 딱한 일이 생겼다. 오금골댁이 원산 아저씨한테 새끼 노루 한 마리 달라고 한 것이다.
“우리 영분이 아버지 몸에 좋다는데 한 마리 주시면 고아드리려고요. 병이 거뜬히 나을지도 모르잖겠습니까?”
원산 아저씨는 어찌 했으면 좋을지 몰랐다.
“은실아, 어떻게 할까? 한 마리 드리는 게 좋겠구나. 병이 낫는다면 더 좋을 데가 있겠니?”
“하지만 아버지, 어떻게 그럴 수가 있겠어요.”
은실은 돌아서서 벌써 눈물을 닦고 있었다.
“은실아, 영분이네 아버진 어서 일어나야 하잖겠니? 이것도 인연인지도 모르니까 마음이 한없이 아프지만 한 마리 드리자꾸나.”
“그럼, 아버지 좋으신 대로 하셔요.”
은실은 간신히 말하고는 터지려는 울음을 참았다. 아저씨는 헛간에 들어가서 아기 노루 한 마리를 안고 나왔다. 아무 것도 모르는 아기 노루는 까만 두 눈을 말똥거리며 영분이네 어머니가 가지고 온 망태기에 담겨 갔다.
집에서 아버지 병시중을 들고 있던 영분이가 망태에 담겨 온 아기 노루를 봤다.
“엄마, 그것 얻어 왔나?”
“그래, 아버지 몸에 좋다고 고아드린다 했더니 한 마리 주시더구나.”
“안 돼, 엄마!”
영분이가 큰소리치는데, 영분이네 아버지가 헐떡거리며 자리에서 간신히 일어나 앉았다.
“여보, 그 새끼 노루 도루 갖다 주구려. 짐승도 사람 집에 와서 새끼를 낳았는데, 아무리 약에 좋은들 잡아먹는 건 큰 죄요. 난 그런 것 먹지 않을 테니 어서 되돌려주고 오구려.”
영분이네 아버지가 꾸짖듯이 말하자 오금골댁도 어쩔 수 없었다. 도로 망태기를 메고 원산 아저씨 댁으로 갔다.
“은실아, 내가 깜박 나쁜 마음이 들었지 뭐야. 영분이 아버지가 한사코 도로 갖다 주라고 해서 가져 왔단다. 정말 하마터면 큰 죄 지을 뻔 했구나.”
아기 노루는 엄마 품에 돌아와 맛있게 젖을 빨았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