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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복
" (예수께서) 가라사대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눅 18 :27)
"(그가)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니라" (고후 12 :9)
오히려 한가지 부족한 것
누가복음 18장 27절에서 주 예수님은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주께서 언제 이 말씀을 하셨는지 다 알 것이다. 이는 한 젊은 사람이 주님 앞에 나와서 주님께 "내가 무엇을 하여랴 영생을 얻으리이까?"(18절)리고 물었을 때였다. 그가 무엇을 해야 하느냐고 물었으므로 , 주님은 "네가 계명을 아노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20절)고 답변하셨다. 주님은 이와 같은 다섯 가지 일을 말씀하셨다. 주님이 뜻하시는 바는, 만일 네가 행위로 영생, 곧 하나님의 창조되지 않은 생명을 얻으려 한다면 이와 같은 일들 중에서 어떤 일들은 행해서는 안되고 어떤 일은 마땅히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젊은 관원은 만일 영생을 얻는 것이 행해서는 안될 일은 하지 않고 마땅히 행해야 할 일은 행하는 것이라면 자신이 그러한 요구들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고 또한 이 모든 일들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님은 "오히려 네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22절)고 말씀하셨다.
오늘 저녁에는 이 단락의 말씀을 설명할 시간이 없다. 나는 이 구절을 다만 하나의 원칙으로 삼겠다. 젊은 사람이 주님께 어떻게 하여야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을 때 주님은 그에게 다섯 가지 일만을 알려 주셨다. 주님은 왜 한번에 다 알려 주지 않으셨는가? 주님은 왜 다섯 가지를 말한 후에 또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라고 말씀하셨는가? 주님이 이렇게 하신 유일한 이유는 그로 하여금 그의 할 수 없음을 알게 하려는 것이다. 영생은 사람이 무엇을 하여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선물이요 하나님의 은혜이다. 주님이 먼저 다섯 가지를 말씀하신 후에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나니" 라고 말씀하신 것은 젊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가 행위로 영생을 얻을 수 없고 그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알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젊은이는 이것을 깨닫지 못한 채 자신이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적질하지 말라, 거짓 증거하지 말라, 부모를 공경하라는 이 모든 것을 어려서부터 지켰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주님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나니" 라는 말을 추가하셨다. 주님은 그가 한 가지를 할 수 없고 통과할 수 없다는 것을 꿰뚫어 보셨다.
오늘날 이기는 문제에 대하여, 우리 가운데서도 주님은 똑같은 일을 하시고 동일한 원칙이 있기를 원하신다. 아마 어떤 형제나 자매는 자신이 다른 사람과 같이 그리 교만하지 않고 질투하지도 않고 다른 사람과 같이 강퍅하지도 않다고 말할 것이다. 혹 어떤 사람은 많은 일에서 남보다 낫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형제자매들이여, 하나님은 당신에게 당신이 계속 이기지 못한 한 가지 일이 있음을 아신다. 하나님께서 한 가지를 남겨 두신 것은 이 일에서 사람이 할 수 없다는 것을 당신에게 보여 주시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이 간음하지 않고 살인하지 않고 도적질하지 않고 거짓 증거하지 않고 또한 부모를 공경하기 때문에 분명 뭐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누가 당신에게 이겼느냐고 물으면 아마 당신은 이것도 이기고 저것도 이겼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 문제는 당신이 몇 가지를 이겼느냐가 아니라 당신에게 최소한 이기지 못하는 한 가지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는 데 있다. 하나님께서 한 가지를 남기신 것은 당신에게 여전히 할 수 없는 것이 있음을 말해 주시려는 것이다.
지난 토요일 저녁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내리신 평가가 우리가 다만 십자가에 못박혀 죽기에 합당하다는 것임을 보았다. 하나님은 우리가 죄를 이길 수 없고 영원히 선을 행할 수 없음을 분명히 아셨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가 쓸모없게 되었다고 말하지만 우리는 자신이 여전히 쓸모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투명하게 보시지만 우리는 아직 자신을 투명하게 보지 못했다. 당신이 아무리 자신을 좋다고 말해도 하나님은 당신에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어떤 사람에게는 성질이 계속 따라다니고 어떤 사람에게는 강퍅함이 계속 따라다닌다. 어떤 사람은 교만하지도 않고 질투하지도 않는데 강퍅함이 계속 그를 따라다닌다. 당신에게는 항상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어떻게 해도 당신이 이기지 못하는 한 가지가 있고 당신의 한 가지 죄를 이길 능력이 없다. 어떤 사람은 교만하지도 않고 질투하지도 않으며 강퍅하지도 않고 화를 내지도 않지만 항상 말이 많아서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고는 견디지를 못한다.
그는 이런 죄 저런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말하겠지만 주님은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어떤 사람은 돈을 가까이한다. 일생 동안 어떤 심갓한 죄를 범하지는 않았지만 돈을 탐내는 것이 그의 죄요 그가 가진 오점이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신다. 이 한 가지가 왜 당신 몸에 있는가? 이 한 가지가 당신 몸에 머물러 있는 것은 당신이 할 수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서이다. 당신은 완전한 생명이 당신 몸에서 나타나기를 원하지만 당신에게 있는 한 가지는 당신이 아직 이 생명을 얻지 못했음을 증명한다. 형제자매들이여, 당신이 갖고 있는 그 '한 가지' 를 시인하는 것이 첫 번째 조건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교만이고 어떤 이에게는 질투이고, 어떤 이에게는 말이 많은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생각의 더러움이다. 어떤 사람에게는 한 가지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가 있다.
주님이 이렇게 말씀하신 것은 무슨 뜻인가? 이는 곧 구원받는 것을 사람이 할 수 없고 생명을 얻는 것도 사람이 할 수 없고 이기는 것도 사람이 할 수 없으며 풍성한 생명을 얻는 것도 사람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젊은 사람은 자신이 할 수 없음을 믿지 않았다. 그의 말은 매우 강했다. "어려서부터" "이 모든 것을" "다 지키었나이다" 이것은 얼마나 강한 말인가! 그는 얼마나 통쾌하게 말했는가. 그는 모든 것을 갖추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주님은 그에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은 내가 말한 교만과 질투와 강퍅함과 말 많은 죄들이 그에게는 다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내가 말하지만 당신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집에 돌아가 생각해 보라 당신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이 자신의 할 수 없음을 보기 원하심
형제자매들이여, 하나님께서 내리신 결론은 당신이 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할 수 없다고 이미 정하셨고 당신이 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정확하고 투명하게 보셨다. 하나님은 이미 말씀하셨다. 이제 문제는 당신이 어떻게 반응하는가이다. 형제자매들이여, 당신이 구원받은 이후 하나님은 왜 당신이 자주 실패하는 것을 허락하시는가? 당신은 구원받았지만 계속 실패하고 오늘날까지 실패한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많은 형제자매들은 자신이 이런 죄 저런 죄를 이길 수 없다고 울면서 말했다 형제자매들이여, 내가 당신의 실패를 동정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한 가지 죄가 여러분을 계속 괴롭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러나 당신의 할 수 없음과 당신의 항복과 패배를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한다! 하나님은 당신이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셨다. 하나님은 당신의 많은 죄들을 알려 주실 필요 없이 오직 한 가지 죄들을 남겨 두셨고, 이 한 가지 죄로 말미암아 당신이 할 수 없다는 것을 보게 하신다. 어떤 자매가 다른 죄들은 다 이겼지만 거짓말하는 죄를 이기지 못한다 하자. 말을 하기만 하면 거짓말을 한다. 그녀는 자기가 이길 수 없는 한 가지 죄를 안다. 또한 성질내는 것을 처리하지 못하는 한 자매가 있었다. 그녀는 움직이기만 하면 화를 냈다. 한 면으로 화를 내면서 또 한 면으로 죄를 거듭 자백한다. 화를 낸 후 죄를 자백하고 죄를 자백한 후 또 다시 화를 낸다. 참으로 불쌍하다. 그러나 도리가 없다. 잠시 후에는 다시 화를 낸다.
많은 죄들을 이겼지만 오직 한 가지, 담배 피우는 죄를 이기지 못하는 한 형제가 있었다. 그는 좋은 형제이지만 이 죄를 이기지 못한다. 어떤 자매는 다른 죄들은 다 이겼지만 군것질하는 죄는 이기지 못했다.
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러 가지 다른 체험을 갖는가? 다름이 아니라 당신이 할 수 없음을 증명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이 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계신데도, 당신은 여전히 할 수 있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당신은 소망이 없다고 말씀하시지만, 당신은 여전히 소망이 있다고 말한다. 수 차례의 당신의 슬픈 실패와 부끄러운 실패들은 당신의 할 수 없음을 하나님께서 증명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실패가 충분한지를 증명해 보여 주셨는가? 하나님은 당신이 영원히 승리할 수 없음을 증명하신다. 하나님께서 당신으로 한두 번 실패하게 한 것으로 아직 충분치 않은가? 하나님께서 당신으로 수차 실패하게 하신 것은 당신의 할 수 없음을 보여 주고 하나님께 "하나님!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게 하기 위해서이다. 형제자매들이여, 구원받은 첫 걸음은 하나님께 나는 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사람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나의 할 수 없음을 시인해야 하고 이기기 위해서도 나의 할 수 없음을 시인해야 한다. 당신이 이런 단계에 이를 때 하나님은 역사하신다. 불행하게도, 주 예수님 앞에 나온 젊은 사람은 실망하면서 그냥 돌아가 버렸다! 비록 자신이 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절망하고 떠나 가버린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하나님께서 왜 사람에게 율법을 주셨는가? 하나님께서 지난 사천 년 동안에 사람에게 주신 모든 율법을 다 생각할 필요 없이 다만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주신 십계명만 생각해 보기로 하자. 이러한 계명들을 주신 목적은 무엇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십계명을 주신 것은 지키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범하라고 주신 것이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하나님은 사람이 지킬 수 없고 모든 사람이 죄인인 것을 아시지만, 사람이 이러한 하나님의 판결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이 열심히 시도해 보다가 실패한 후에야 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나님 나는 죄인 입니다" 라고 말한다는 것이다. 로마서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지키라고 율법을 주신 것이 아니라 범하라고 주신 것임을 보여 준다. 사람은 지키지 못할 때 비로소 복종하고 항복한다. 하나님은 사천 년을 사용하여 사람이 할 수 없음을 알게 하셨고 그런 후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그분을 영접하고 구원받는 길을 여셨다.
지난 이천 년 동안 많은 죄인이 구원을 받았다. 죄인이었던 우리가 구원을 얻었다. 논리적으로 본다면 이러한 점에서 우리는 자랑할 만한 것이 없다. 혹 우리의 성질이 많이 좋아지고 교만도 많이 없어져서 어떤 개선이 있었는지 모른다. 소위 개선된 일들이 있다고 말할지 모르지만 사실 이것은 자기 억제의 한 종류이다. 전에는 성질이 밖으로 드러났는데 이제는 안에서 억제된다. 전에는 교만이 밖으로 나타났지만 이제는 안에서 억제된다. 그러나 이러한 억누름이 어느 정도에 이르면 더 이상은 참지 못하고 폭발하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할 수 없음을 보여 주시는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의 죄를 이길 수 있는 자가 하나도 없고 자신의 죄를 처리할 수 있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말씀하신다. 사람에게 처리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기 때문에 사람은 자신이 도저히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형제자매들이여, 우리는 구제 불능이다. 하나님 앞에 나와서 구출받는 첫 걸음은 하나님께 "하나님, 당신께 굴복합니다. 나는 망하고 끝났습니다. 나는 더 이상 분투하지 않겠습니다. " 라고 말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항복이다. 형제자매들이여, 이것이 해방되기 위한 첫째 조건이다. 다만 이렇게 말하라. " 나는 할 수 없습니다. 나는 싸우지 않고 힘쓰지 않겠습니다. 전에 나는 교만을 조금 고치려고 했지만, 주님, 이제는 개선하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전에 성질을 조금 고치려고 했지만, 주님, 이제는 고치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전에 말 많음을 조금 고치려고 했지만 주님, 이제 더 이상 자신을 고치려고 하지 않겠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자신을 고치려 하지 않겠습니다. 자신을 내려놓습니다."
항복은 곧 손을 놓는 것임
형제자매들이여, 십자가 위에서 주님이 대신하여 죽으신 것을 보고 이것을 믿었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났는가? 당신은 선을 행하려고 하지 않고 다만 믿음으로 구원받았다. 이와 같이 십자가 위에서 주님과 당신이 함께 못박힌 것을 볼 때 당신은 분투를 중단하고 자신을 개선하려던 것을 멈출 것이다. 일단 주님이 우리 안에 사시고 우리를 대신해 이기고 계심을 믿는다면 자신의 행위를 멈추게 되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도록 할 것이다. 우리는 "주여, 오늘 이후로 나는 영원히 선해질 수 없고 선해지려고 하지도 않겠습니다. 오늘 이후로 나는 아무것도 상관치 않고 아무것도 주의하지 않겠습니다. 오늘 이후로 모든 것을 손에서 놓겠습니다. 오늘 이후로 어떤 문제도 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라고 말할 것이다. 형제자매들이여, 이것을 가리켜 항복 곧 손을 놓는 것이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은 손을 놓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한다. 시험이 올 때 그래도 싸워야 하고, 성질이 올 때 그래도 씨름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이번에는 이렇게 안 하고 저렇게 안 하기로 해도 결국 실패한다. 그래서 다음에는 뜻을 좀 더 굳게 세운다. 한번 더 뜻을 세우면 한번 더 실패하고 한번 더 서원하면 한번 더 실패한다. 한번 더 결정하면 한번 더 실패한다. 이번에 세운 뜻이 크지 않다 하여 다음에는 더욱 큰 듯을 세워도 안 통한다. 여전히 로마서 7장에 말했듯이 원함(뜻을 세움)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다(18절)! 손을 놓지 않는 한 모든 서원은 틀린 것이다. 당신이 여전히 당신의 죄를 담당하고 있다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박혔다' 라고 말할 수 없고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니다." 라고 말할 수 없다. 죽는 것이 곧 손을 놓는 것이고 손을 놓는 것이 곧 죽는 것이다. 죽는 것은 곧 상관치 않는 것이다. 당신이 더 이상 할 수 없을 때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다. 그러므로 첫째 조건은 바로 당신이 손을 놓는 것이다.
천진에 있는 어느 형제가 내게 어떻게 손을 놓느냐고 물은 적이 있다. 그는 자신이 손을 놓을 수 없을 때 어떻게 하느냐고 물었다. 내가 그에게 회사에서 무슨일을 하느냐고 묻자 그는 OO회사의 천을 공급하는 부서의 부장이라고 말했다. 나는, 만일 당신의 회사 경영자가 오늘 당신에게 내일부터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으므로 해고한다고 말한다면 어떻게 하겠느냐고 물었다. 그렇다면 다음 달에 사표 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다음 달 새로운 부장이 올 때 당신은 모든 일을 인계해야 한다. 당신이 인계한 다음 갑자기 아래층에서 어떤 사람이 당신에게 달려와 어떤 천의 값이 얼마이고 이틀 후에 얼마가 오를 것이라고 말하면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그는, 며칠 전 같았으면 회사의 재고가 얼마이고 얼마를 더 구입할 것인가를 계산하였겠지만 지금은 내가 인계를 했기 때문에 아무 일 없는 것같이 가볍게 다만 옆에서 볼 것이라고 말했다.
이것이 손을 놓는 것, 즉 항복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는 것의 의미이다. 다만 주께 말하라. "주여, 내가 능력이 있는데 그만 두는 것이 아닙니다. 더 이상 견딜 수 없고 조금도 능력이 없기 때문에 그만둡니다. 내 성질이 여전하고 내 교만도 여전하며 내 강퍅함과 시기도 여전합니다. 나는 정말 할 수 없기에 당신께 맡깁니다." 당신은 주께 "주여, 오늘 이후로 모든 것을 당신 손에 맡깁니다" 라고 말해야 한다. 그러나 사람들이 천을 사려고 당신에게 나타나더라도 당황치 말라. 사람들이 매일 당신에게 와서 계속 일을 하라고 유혹한다. 다만 자신을 주님 손에 맡기고 다른 것을 상관하지 말라 . 이것이 승리이며, 이것이 항복이다.
사탄의 시험은 당신이 움직이도록 하려는 것임
여러분은 시험이 무엇인지 아는가? 어떤 형제는 늘 화내는 시험을 받는다고 하고 어떤 형제는 늘 자기의 태도가 아주 딱딱해지는 시험을 받는다고 하며 어떤 형제는 늘 부정한 시험을 받는다고 하고 어떤 형제는 늘 말을 많이 하는 시험을 받는다고 한다. 이렇게 볼 때 천 명에게 천 가지 다른 시험이 있는 것 같다. 그러나 형제자매들이여, 온 세상에 오직 한 종류의 시험이 있다. 우리는 우리가 화내는 시험을 받거나 교만해지는 시험을 받거나 탐심을 갖는 시험을 받거나 간음하는 시험을 받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사탄의 유일한 시험은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사탄의 시험은 당신은 화나게 하거나 교만해지게 하거나 탐심이 일어나게 하거나 간음을 범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다. 당신이 움직이도록 할 때 사탄은 승리한다. 이런 움직임이 어떤 종류의 움지임이든 그것이 사탄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우리는 실패한 것이다. 그것이 기도이든 성경 읽기이든 당신이 움직이는 것이라면 사탄은 승리한다. 나는 많은 눈물로 간절히 이렇게 말하고자 한다. 우리는 움직여서는 안 된다. 일단 우리가 움직이면 우리는 실패한다. 우리가 사탄과 겨루고 싸우며 그에게 저항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움직이는 그때 사탄이 승리하게 된다. 우리는 우리의 승리의 비결이 지켜보며 서 있는데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당신이 상관하려고 할 때 곧 실패한다. 우리가 상황을 처리하려고 할 때 실패하게 된다. 형제자매들이여, 이것은 매우 기이한 일이다! 하나님은 우리를 한쪽에 제쳐놓고 하나님의 아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이기기를 원하신다.
갈라디아서 5장 17절에서는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르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고 말한다. 여기서는 성령이 육체의 소욕을 거스르고 육체의 소욕이 성령을 거스른다고 말했다. 여기서는 우리의 역활이 없고 그 둘이 서로 대적하는 것이다. 이것은 무슨 뜻인가? 어떤 형제는 자신의 원함이 죄 짓는 것과 더러움 뿐이라고 통회했다. 그에게는 방법이 없었다. 그러나 이것은 성령이 육체의 소욕을 거스르고 육체는 성령을 거스르는 것이며 우리는 이러한 싸움에 역활이 없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출하시는 방법이다. 우리가 물러서서 성령이 육체의 소욕을 대항해 싸우는 것을 보고 육체가 성령을 거스르는 것을 지켜볼 때, 우리는 해방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갓 구원받았을 때 나는 승리의 의미를 알고 있는 한 소녀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캐스윅 총회에서, 어떤 사람이 소녀에게 네가 시험을 받을 때 어떤 방법으로 이기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과거에는 마귀가 와서 문을 두드릴 때 내가 들어오지 말라고 한 결과 항상 실패였습니다. 이제는 마귀가 와서 문을 두드릴 때 나는 '주님, 당신이 가서 문을 여십시오.' 라고 말합니다. 주님이 문을 열면 마귀가 주님인 것을 보고는 '내가 문을 잘못 두드렸습니다' 라고 말하고는 도망가 버립니다.
만일 우리가 시험받을 때 "주여, 또 시험이 왔습니다. 주여 날 구원하소서. 주여, 날 구원하소서" 라고 말한다면 문이 열리기도 전에 마귀가 이미 들어 오게 된다. 우리는 전적으로 주님이 이런 문제를 다루시도록 해 드려야 한다. 우리가 그와 같이 기도할수록, 더 간절한 마음을 가질수록, 이런 기도가 반복될수록 손을 놓는것은 더 어렵게 된다. 어떤 형제가 언젠가 말하기를 베드로가 바다에 가라 앉을 때는 다만 "주여 날 구원 하소서." 라고 기도했다고 했다. 당신이 한 마디로만 구하는 것이 곧 손을 놓는 것이다. 만일 당신이 '주여, 날 구원하소서." 하며 연달아 대여섯 번 또는 몇 번 더 말했다면 당신은 실패한 것이다. 나는 이런 기도를 목을 매다는 기도라고 칭하겠다. 이러한 기도는 처음 시도에 실패해서 두 번째 세번 째 계속 자신을 매달려고 시도하는 것이다. 이러한 기도를 반복하는 것은 당신이 아직 손을 놓지 않았다는 것을 보여 준다. 이것은 기도를 이용하여 승리하려고 애쓰는 것이며 자기 힘으로 이기려고 하는 것이다. 예외 없이 결과는 패배이다. 당신이 그렇게 많이 기도하지 않았다면 성공했을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자매들이여, 사탄은 우리를 움직이려고 한다는 것을 기억하라 우리가 움직이는 한, 심지어 그것이 기도하는 것일지라도 사탄이 성공하게 되는 것이다.
예를들어, 누가 당신을 쏘는 말을 들을 때마다 화가 났다고 하자. 오늘 당신은 어떻게 할 것인가? 어떤 사람이 계속 말로 당신을 괴롭히고 아주 그러한 괴로움이 심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당신이 주님께 "주여, 나는 이 일을 상관치 않습니다.
성질은 내 일이 아니요 승리는 당신 일입니다. 나는 내 성질을 다스릴 수 없사오니, 주여, 당신이 책임지소서." 라고 말하는 것이 곧 손을 놓는 것이다. 이럴 때 주님은 당신이 그분의 인내를 살아 나타나게 할 것이고 당신은 주께 감사하고 찬양하며 "주여, 나는 상관치 않겠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사람들이 말로 당신을 괴롭힐 때 견딜 수 없어서 "주여 날 구원하소서. 성질이 나오려고 합니다." 라고 기도 한다면 십 오분이 열 다섯 시간 같을 것이다. 겉으로 화를 내지는 않지만 속에서는 불이 날 것이다. 이것은 승리가 아니다. 사탄은 당신을 크게 성질나게 만들 필요는 없다. 당신을 조금만 움직이게 하면 사탄은 승리한다.
이김은 곧 당신이 움직이지 않고 상관하지 않는 것이다. 움직이지 않고 상관하지 않는 것은 곧 손을 놓는 것이다. 이김은 당신과 조금도 관계가 없다. 당신은 이미 죽었고 그리스도가 당신을 대신하여 이기신다. 당신은 죽고 그리스도가 사는 것을 가리켜 이김이라고 한다.
최근에 연대집회에서 이김의 체험을 갖게 된 형제자매들이 많았다. 그 중 한 자매는 환경이 매우 힘들었다. 남편이 잘 대해주지 않았고 시어머니도 자신을 박대했다. 그녀는 참으로 참았지만 이김이 없었다. 나중에 이기는 생명에 관해 듣고서 그 말을 받아 들였다. 그러나 이틀 후 내게 와서 손을 놓으려고 해도 놓아지지 않는데 어떻게 주님의 손에 놓는 것이냐고 물었다. 내가 많은 말을 했지만 그녀가 깨닫지 못해서 나는 주님께 하나의 예화를 주시도록 구했다. 나는 "자매는 인력거를 타고 친구 집에 가 본 적이 있습니까? 라고 물었다. 그녀는 간 적이 있다고 했다. "당신이 차를 타고 친구 집 문 앞에 도착하여 돈을 꺼내려 지불하려 할 때 당신의 친구가 달려 나와 당신을 대신해 지불했다고 합시다. 결국 당신도 지불하려고 하고 그녀도 지불하려고 하며 당신은 그녀에게 돌려주려 하고 그녀는 당신에게 돌려 주려고 합니다. 이런 일이 없었습니까? 그녀는 있다고 말했다. 나는 계속해서, 가령 그녀가 당신을 대신해서 이 센트를 지불하고 인력거꾼이 받고서 떠났다고 하자. 당신은 그녀가 손을 쓰지 않도록 당신이 떠날 때 갑자기 이 센트를 그녀의 손에 쥐어 준다. 그녀가 당신을 보낼 때 또 갑자기 이 센트를 당신 손에 쥐어 준다. 서로 쥐어 주자 당신은 할 수 없이 돈을 길에 버려 두고 친구에게 가겠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면서 당신은 마음속으로 "내 친구가 돈을 가져 갔을까? 만일 가져가지 않고 행인이 주워 가면 어떻게 하지? 지나가는 인력꾼이 가져 가면 어떻게 하지? 어린아이가 보고 가져가면 어떻게 하지?" 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남 몰래 돌아가서 당신 친구가 가져갔는지를 본다. 당신은 그녀가 가져가지 않은 것을 보고는 걸으면서 몰래 뒤돌아본다. 내가 말하지만, 당신이 몰래 쳐다볼 때 당신의 친구는 분명히 가져가지 않을 것이다. 만일 당신이 길가에 버려 두고 친구에게 돈이 여기 있으니 가져가라고 말한 후 아무것도 상관치 않고 도망간다면 당신의 친구는 분명히 돈을 가져갈 것이다. 이 비유를 말하자 그녀는 깨닫고 이기는 생명을 체험하게 되었다.
많은 사람들이 바로 이런 방식으로 자신의 일들을 하나님께 맡긴다. 한 면으로 하나님께 맡기면서 또 한 면으로 안심이 안되어 돌아가 다시 쳐다본다. 당신이 상관할 때 그분은 상관하지 않고 당신 혼자 처리하게 하신다. 당신이 상관하지 않을때 그분이 처리하고 완전한 책임을 지신다. 만일 당신 자신이 상관해야 한다면 당신은 여전히 자신을 억눌러야 하고 당신이 가서 집어야 한다. 항복이란 무엇인가? 이는 돈을 길가에 둔후 방향을 돌려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는 것이다. 아이들이 가져가든 인력거꾼이 가져가든 행인이 가져가든 당신이 염려하지 않고 상관하지 않는 것이다. 다만 하나님께 말하라. " 하나님, 모든 것을 당신께 맡깁니다. 오늘 이후로 좋든 나쁘든 참견하지 않겠습니다." 당신이 이렇게 맡길 때 하나님은 분명히 당신을 받으실 것이다. 당신이 할 일은 다만 당신이 가진 것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당신이 손을 놓을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받아 주신다. 당신은 하나님께서 받으신 후에야 손을 놓겠다고 생각하지만 하나님은 당신이 손을 뗀 후에야 그것을 들어 일하신다. 내가 그 형제에게 말한 것과 같이 만일 당신의 경영주가 당신에게 다음달 1일에 사직하라고 하고서 새로운 다른 사람을 임명한다 하자. 당신은 한 면으로 그를 가르치면서 그에게 맡겨야 한다. 이럴 때 당신도 그도 절반의 책임을 지어야 한다. 이런 신구 교체는 겹치는 교체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모든 것을 받으시든지 아니면 아무것도 받지 않으시든지 둘 중 하나이다 하나님은 결코 당신이 절반하고 그분이 절반하는 일을 하지 않으신다. 당신이 31일에 그만두면 하나님께서 1일에 착수하시는 것이다. 우리가 점진적으로 그만두려고 하면 하나님은 인수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형제자매들이여, 우리에게 있는 큰 죄 중의 한 가지는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이다. 우리는 매일 자기 스스로 다스리고 억누르려고 한다. 우리 자신이 매일 다스리고 억누르는 것이다. 우리는 만일 내가 내 자신을 다스리지 않고 억누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느냐고 생각할 것이다. 당신은 이빙인에게 복음을 전할 때 그리스도께서 그를 대신해 죽었으므로 아무것도 하지 말고 다만 믿으면 구원을 얻는다고 말해 줄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고 그리스도는 이미 우리 안에 살아 계신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한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머리요 우리는 그분의 지체들이다. 그리스도는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들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요 우리의 모든 것이시다.우리가 나가고, 포기하고, 그만두고, 떠날 때 그분이 책임지기 시작하신다.
만일 믿지 않는 사람이 자신을 비우면, 귀신들이 들어와 거할 것이다. "이에 가로되 내가 나온 내 집으로 돌아가리라 하고 와 보니 그 집이 비고 소제되고 수리되었거늘 이에 가서 저보다 더 악한 귀신 일곱을 데리고 들어가서 거하니...(마 12 :44-45) 그러나 우리 구원받은 사람들의 경우는 두 주인이 한 지붕 아래 함께 사는 경우이다. 만일 한 사람이 이사해도 또 한 주인이 계신다. 구원받지 않은 사람은 자기의 행위를 멈춰도 이기지 못한다. 그러나 구원 받은 사람이 일단 자기의 행위를 멈추면 주님은 즉시 그에게 완전한 승리를 주신다. 자아가 나갈 때 즉시 이기게 된다. 우리가 이사해 나갔을 때 우리는 이기게 된다. 손을 놓고 사임한다는 것은 우리 자신을 끝내고 이사 나간다는 것이다. 이것을 가리켜 완전한 항복이라고 한다.
"그리스도인의 기쁨의 비결" 리하는 책에 아래와 같은 이야기가 있다. 한 그리스도인이 마른 우물 밑으로 내려가려 하고 있다. 그 우물 입구에 밧줄 하나가 있었고 손으로 번갈아 밧줄을 잡고 밑으로 내려 갔다. 그러나 어느 정도 내려가다가 보니 밧줄이 끝나고 말았다. 밑으로 내려 가자니 얼마나 깊은 줄 모르겠고 다시 우물 입구로 올라가자니 힘이 딸렸다. 할 수 없이 그는 밧줄을 잡고서 "사람 살려! 사람 살려!"하고 계속 외쳤다. 그러나 그 우물이 광야에 있었고 또 그가 우물 밑에 있었기 때문에 아무리 외쳐도 구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목소리가 쉬고 힘이 다 빠져 온몸의 기력이 소모되어 더 이상 붙잡을 수 없을 때 그는 "하나님, 나로 영원 안에 떨어지게 하소서"라고 기도했다. 기도를 마치고서 손을 놓자 공중에서 땅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땅과의 거리가 삼 인치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므로 구덩이 속에 떨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손을 놓았을 때 자신이 영원 안에 떨어진 것이 아니라 영원한 반석 위에 떨어진 것을 발견한 것이다. 형제자매들이여, 손을 놓으라! 손을 놓으라! 이기는 생명의 첫 번째 조건은 곧 손을 놓는 것이다. 오늘 이후로 당신이 상관하지 않을 때 당신은 이기게 된다. 오늘부터 상관하지 않겠다고 할 때 승리가 임한다.
최근에 연대(煙臺)에서 이기는 생명을 얻는 두 가지 조건을 들은 한 자매가 있었다. 나는 그녀에게 이것을 체험했느냐고 물었다. 그녀는 늘 산 위에 올라가 기도했으므로 "오늘도 산에서 또 하나님 새 무덤을 파고 자신을 묻어 버렸습니다" 라고 답변했다. 수 차례 그녀에게 물었지만 그녀는 똑같이 대답했다. 나는 그녀가 처리하기 어려운 죄들을 이미 처리한 것을 알지만 그녀는 여전히 근심하고 있었다. 그녀를 위해 기도도 했지만 별 효력이 없는 것 같았다. 어느 날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구변을 주셔서 그녀를 도울 수 있게 해 주시도록 구했다. 그날 그녀가 피아노로 찬송을 연주하는 것을 보고 나는 지금 어떠냐고 물었다. 내가 한마디 밖에 하지 않았는데 그녀는 또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많은 죄들을 다 처리했지만 군것질하는 죄만은 처리할 길이 없다고 말했다. 이것이 다른 사람에게는 아무것도 아니였지만 그녀에게는 작은 죄였다. 그녀가 말하고 있을 때 나는 웃으면서 말했다. "놀랍습니다. 아주 좋습니다." 그녀는 "당신은 이기는 생명을 첫째 조건은 항복이고 둘째 조건은 믿음이라고 말했는데 나는 항복할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그러면 여전히 항복하지도 않고 믿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그녀는, "당신은 이기는 조건의 첫째가 항복하는 것이고 둘째가 믿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까? 지금 나는 항복할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으니 어떻게 해야 종겠습니까?" 라고 말했다.
나는 이렇게 말했다. "그냥 계속 항복하지 말고 믿지 많으면 됩니다. 항복이란 무엇입니까? 항복은 손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손을 내려놓는다는 것은 곧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인데 지금 당신은 손을 놓는 것을 일로 여기고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은 일하지 않는 것인데 지금 당신은 믿는것을 일로 삼고 있습니다. 지금 당신이 항복할 수 없고 믿을 수 없다면 다만 당신의 모습대로 그대로 있으면 됩니다. 자신을 개선하려고 하거나 심지어 손을 놓으려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본래 이김의 조건은 당신이 항복하고 믿으라는 것인데, 당신은 항복하고 믿는 것을 승리하기 위한 하나의 방법을 취했습니다. 이것은 통하지 않습니다. 완전히 당신의 손을 내려놓으십시오.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심지어 손을 놓거나 믿으려고 하지도 마십시요. 찬양할 수 있으면 찬양하고 찬양할 수 없으면 찬양하지 마십시오.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으면 나오십시오. 당신이 살아있든 죽어있든 상관하지 말고 그분 앞에 나오십시오. 이렇게 하는 것이 손을 놓는 것입니다.
"친구들이여! 우리는 너무 복잡하다. 하나님은 아무 것도 할 필요가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그래도 이것저것을 하려고 한다. 많은 형제자매는 손을 놓아야지라고 말하면서, 손을 놓는것을 하나의 일로 여긴다. 놓지 않다가 놓고 또 놓았다가 다시 잡으며 여전히 발버둥치면서 자기의 힘을 쓴다. 형제자매들이여, 손을 놓는다는 것은 당신은 끝났다는 것이다. 이것은 이김이다. 이 자매는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듣고 삼 일 동안 혼돈 가운데 있었다. 빛이 너무 커서 혼돈 가운데 빠져 버렸다. 삼 일이 지난 후 그녀는 통과했다! 형제자매들이여, 당신이 통과할 수 없는 것은 어떤 것인가? 하나님은 그 자매가 손을 놓지 못하던 유일한 한 가지를 통과하도록 인도하셨다.
우리의 약함은 자랑할 만한 것임
고린도후서 12장 9절에서는 "내게 이르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은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 말한다. 이것은 우리가 자신을 약한 자요 할 수 없는 자여며 방법이 없는 자로 여겨야 할 뿐 아니라 우리의 약함과 할 수 없음과 방법 없음을 인해 기뻐해야 함을 우리에게 보여 준다. 여기서 당신은 당신의 약함으로 인해 울어야 한다고 말했는가? 아니다. 울지 않고 기뻐해야 하며, 기뻐할 뿐더러 또한 자랑해야 한다. 약한 것을 자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세상 사람은 다 자기의 약함을 탄식한다. 그러나 이기는 자들은 자기의 약함을 자랑하는데 그 이유는 바로 믿음이 있기 때문이다.
형제자매들이여, 당신에게 몇 가지 어려움이 있다고 느끼는가? 당신은 실패했다고 느끼는가? 당신에게 있는 어려움과 실패는 축복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이러한 것들은 당신이 이기도록 돕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이번에 연대(煙臺)에서 나는 구원받은 지 삼사 년밖에 안 된 의사를 만났다. 그는 군대에서 십여 년간 근무를 했기 때문에 그의 행동은 직선적이고 솔직했으며 군인다왔다. 그에게는 담배를 피우는 취미가 있었다. 그가 구원받은 것은 조금도 의심할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담배피우는 습관이 있었다. 만주에 있었을 때는 담배 피우는 것이 그리 문제되지 않았는데 연대에 와서는 약간 어려워졌다. 교회 안에서 형제자매가 칠팔십 명이 되고 또 연대 지방은 작기 때문에 집에서 몰래 피워야 했다. 그러나 그의 아내가 자매였기 때문에 밝은 데서 피울 수가 없었다. 병원의 몇몇 간호원도 우리 자매들이었다. 그는 한 면으로 피우고 싶고 또 한 면으로는 고통스러웠다. 담배를 피우고 있을 때 사람의 음성을 들으면 담배를 꺼야 했다. 길에서 피울 때는 아는 사람이 없는지 앞뒤를 살펴보아야 했다. 담배를 끊을 수도 없고 안 끊자니 또 안 좋고 참으로 길이 없었다. 어느 날 집회 후 그는 다음날 아침 아홉시에 나와 대화를 갖자고 약속했다.
그는 나와 교통할 아주 중요한 일이 있다고 말했다. 이튼 날 아침 그는 나를 만나자마자 그의 일을 내게 알려 주었다. "십여 년간 담배를 피웠는데 아무리 끊으려고 해도 끊을 수 없으니 어떻게 해야 합니까? 말을 계속하고 있을 때 나는 천장을 보면서 웃었다. 그는 "니 선생님, 이 일은 아주 심각한 일입니다"라고 말했고 나는 안다고 대답했다. 그는 자신이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고 말했고 나는 "당신에게 아무런 방법이 없다니 이것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라고 말했다. 그는 그것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나는 말했다. "오직 주님만이 이 일을 하실 수 있기 때문에 내 마음이 즐겁고 기쁩니다. 이 일에 대해 나도 길이 없고 당신에게도 길이 없습니다. 당신의 아내에게도 형제자매에게도 방법이 없습니다. 당신 같은 환자가 있으므로 주 예수께서 왕진할 사람이 하나 더 생겼습니다." 그는 십여 년간 방법이 없었던 이일은 작은 일이 아니라고 말했다. 나는 "맞습니다. 당신에게는 어렵지만 주님에게는 어려운 일이 없습니다. 주님은 상황을 쉽게 바꾸실 수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나는 또 "사(史) 형제님, 당신은 뛰어난 의사입니다. 나는 몸이 건강하기 때문에 당신에게는 내가 필요 없고 내게는 당신이 필요 없습니다. 당신이 내 몸에서 치료하는 솜씨를 나타내려면 내가 병을 앓아야 하고 더욱이 큰 병을 앓아야 합니다. 내 병이 치료하기 어려울수록의사의 능력이 더욱 나타날 수 있습니다. 오늘 여기에 주 예수님이 계십니다. 그분은 사 형제님이 처리하지 못하는 일을 처리하실 수 있습니다." 그는 이것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나는 고린도후서 12장 9절을 알려 주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이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나를 덮게 하려 함이라." 그가 담배를 끊으려 했던 것은 좋은 일이고 또 그가 끊을 수가 없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고린도후서 12장 9절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다. 그가 담배를 끊을 수 없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고린도후서 12장에서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사람의 약한 데서 온전하여진다고 말했기 때문에 만약 그가 담배를 끊으려 하지 않았다면 그 일이 그렇게 놀라운 일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나는 "당신이 볼 때에는 담배를 피우는 것이 좋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보실 때는 당신이 담배를 끊지 못하는 것이 놀라운 입니다" 내 말로 인해 그는 어리둥절해졌다. 나는 계속 말했다. "당신이 결코 담배 피우는 것이 통탄할 만한 일어나거나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오히려 '주님, 담배 피우는 것을 인해 당신께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내가 담배 끊지 못함을 인해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그러나 주님, 당신은 내가 담배를 끊게 하실 수 있기 때문에 감사하고 찬양합니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는 의심스럽다는 듯이 "정말로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습니까?"라고 물었고 나는 참으로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함께 기도했는데 내가 먼저 몇 마디로 기도하고 이어서 그도 기도했다. 그는 믿음이 있었고 군인답게 직선적으로 기도했다. "하나님, 담배 피우는 것으로 인해 당신께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또한 내가 담배를 끊지 못함을 인해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그러나 주님, 당신은 내가 담배를 끊게 하실 수 있기 때문에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기도를 마치고 그는 눈물을 흘리면서 모자를 쓰고 나갈 준비를 했다.
내가 그에게 "사(史) 형제님, 당신은 또 담배를 피우실 것니까?라고 묻자 그는 "나 사재림은 담배를 끊을 수 없지만 하나님은 날 위해 끊어 주실 수 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때 나는 그에게 문제가 없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저녁 때 나는 그의 일이 약간 염려스러워서 병원에 가서 그가 어떤가를 물었다. 그는 아무 일 없다고 말했다. 이튼날 아침 다시 그에게 어떠냐고 물었지만 그는 여전히 아무 일 없다고 말했다. 그날 오후 그를 만났을 때 그는 오늘 아내와 논쟁이 있었다고 말했다. 지난 십 년간 그의 아내는 담배 피우는 것 때문에 그에게 불평했었지만 그는 담배를 끊지 못했다. 그가 하나님께 말씀드린후 삼십 분만에 담배를 끊게 되었다. 그는 "어제도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오늘도 피우지 않았습니다." 라고 말했다. 내가 떠나기 전에 다시 그에게, "사 형제님은 자신이 담배를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까? 라고 물었다. 그는 끊을 수 없다고 말했다. 내가 "그럼 어떻게 하려느냐"고 묻자 그는 "주님이 날 위해 끊어 주신다"고 말했다. 그 말에 나는 안심하고 나왔다.
형제자매들이여, 당신이 조금 개선될 수 있다고 생각지 말라. 지금부터 오십 년이 더 지난다 하더라도 당신은 여전히 화를 낼 것이다. 승리는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대신해 사시는 문제이다. 당신은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의 할 수 없음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며 그리스도의 할 수 있음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나는 온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나는 사람의 성질이 너무 나쁠까봐 두렵지 않고 사람의 성품이 너무 조급하고 사람이 너무 크게 교만할까봐 두렵지 않다. 오직 사람이 자신의 할 수 없음을 보지 못하고 그리스도의 할 수 있음을 보지 못할까봐 두렵다."
형제자매들이여, 당신이 당신의 승리를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매우 좋은 것이다. 그러나 더욱 당신의 약함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해야 한다. 왜냐하면 당신이 약한 데서 그리스도의 능력이 특별히 나타나기 때문이다. 내가 철저히 부패했음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한다. 그리스도가 또 한번 내 몸에서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셨음을 하나님께 감사한다. 나는 하나님께 나에게는 선한 것이 없고 의로움과 거룩함이 없으며 인내와 침착함이 없다고 말씀드렸다. 이러한 것들이 내게 없음을 인하여 또한 이러한 것들을 얻으려고 더 이상 노력하지도 않음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한다. "오 주님, 오늘 이후로 내 모든 것을 당신께 맡깁니다. 이제부터는 날 대신해 이기는 분은 당신의 아들이십니다." 당신이 이렇게 할 때 즉시로 이길 수 있게 된다. 일 분 일 초 만에도 당신은 즉시 이긴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음
누가복음 18장에서는 할 수 없는 젊은 사람을 보여 준다. 누가복음 19장에서는 할 수 있는 삭개오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주여,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며 사 배나 갚겠나이다." (8절). 그는 즉시 행했다. 그 젊은 사람은 할 수 없었지만 삭개오는 해냈다. 누가복음 18장에서는 사람이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 누가복음 19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누가복은 18장에서는 젊은 사람은 할 수 없었지만 19장의 나이든 사람은 오히려 해냈다. 누가복음 18장에서 주님이 젊은 사람에게 말씀하셨는데 젊은 사람은 들을 수 없었고, 누가복음 19장에서는 주님이 나이든 사람에게 별로 말씀하시지 않았는데도 오히려 믿었다. 이 젊은 사람이 할 수 없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나이든 사람과 그 가족들은 아브라함의 자손들이다. 그들에게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그 집이 구원이 임했다. 이것은 바로 하나님께서 하신 것이다.
형제자매들이여, 우리는 사랑할 수 없고, 인내할 수 없고, 겸손할 수 없고, 온유할 수 없음을 인해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해야 한다. 그러나 성경 안에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해야 한다. 그러나 성경 안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모든 말씀 가운데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은 당신이 하고 당신이 통과할 수 있는 것을 당신이 통과하라고 말한 구절은 한 군데도 없다. 하나님은 당신이 할 수 없는 일을 하게 하고 당신이 살 수 없는 생활을 살아내게 하신다. 매일 아침 나는 하나님께서 오늘도 기적을 행하실 것이라고 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한다. 저녁에도 하나님께서 또 기적을 행하셨다고 말하면서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한다. 오늘 하나님은 나로 견딜 수 없는 것을 견디게 하셨고 내가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을 사랑하게 하셨다. 오늘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게 하셨다.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한다. 날마다 우리는 이 말씀을 체험한다.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