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구학의 현대적 계승-들어가는 글
선사시대부터 침뜸술이 수천 혹은 수만년을 이어오면서 불멸(不滅)한 까닭은 그만한 쓰임새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21세기 첨단의학시대에도 침과 뜸은 계속 쓰임세가 있을까?
인류의 문명사는 그 어느 때 보다도 획기적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마치 미래(未來)가 현재로 쳐들어 와서 세상을 어디론가 휘몰아 가고 있는 듯하다. 우리가 살아온 얼마 전 시대와만 비교해 봐도 상상하기조차 어려웠던 일이 현재 일상생활이 되고 있다. 정보혁명이나 생명공학 같은 것이 엄청난 속도로 세상을 휩쓸면서 의학분야에도 천지가 뒤집히는 듯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시대에 오랜 고래(古來)의 침구학이 현재까지는 불멸이었다고 하더라도 앞으로도 불멸일 수 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원시적 자연의학이기 때문에 영원할 수 있다고 생각된다.
원래 모든 생명체는 스스로 자신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고자 한다. 자연환경에 적응해 나가고 상처가 나거나 병이 들면 스스로 치유할 수 있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침뜸의학은 이러한 생명체의 자기 존립을 위한 생물학적인 특성을 바탕으로 하여 생겨난 가장 원시적인 자연의술이다. 가려울 때 긁어서 시원하게 하는 것, 아픈 곳을 누르고 도구를 이용하여 자극하는 행위에서 시작된 것이다. 돌침․뼈침 등을 만들어 스스로 병을 치료하고 건강을 지키고자 했던 것이다.
뜸은 불을 쬐면서 생겨난 원시 자연의술이다. 수천 만 년 전 원시시대부터 아픈 곳을 따뜻하게 하고, 불로 약한 화상을 입힘으로써 질병을 치료하며 발전시켜온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생명과 건강을 지키기 위하여 식생활과 자연치유법을 배워 익히고 생활에 활용해 왔다. 이렇듯 침과 뜸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발전해온 대표적인 자연치유법이다.
거기다가 자연과 생명에 관해 통찰하여 기와 경락과 경혈이론을 음양오행론을 중심으로 체계적으로 정리한 생명학을 바탕으로 하고 있어서 전통의술이지만 동시에 미래의술이기도 한 것이다. 물론 미래의 침구학이 과거나 현재와 같은 모습은 아닐 수도 있다. 그 이유는 우선 조기치신(調氣治神)하는 도구가 변화하고 있고, 기(氣)와 경락경혈이론 등 전통 생명학에 관한 재조명이 이루어지고 있는 등 새로운 시도들이 계속 되고 있기 때문이다.
허준의 동의보감이 조선의 한의학을 대표하듯이 허임의 『침구경험방』은 조선의 침구학을 대표한다. 그래서 허임 침구학의 현대적 계승에 관한 논의는 우리나라 침구학 전체의 과제로 파악할 수밖에 없다. 때문에 허임 침구학도 우리나라 침구학 자체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범주에서 다룰 수밖에 없다.
침구학의 현대적 계승이라는 주제는 대단히 포괄적일 뿐만 아니라 기술적 제도적 사회문화적 문제까지 복잡하게 얽혀있다. 다만 여기서는 문제제기 차원에서 몇 가지 측면을 언급하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