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락교회 마당에서
어제 낮에 서울의 영락교회를 방문하였다. 영락교회에 볼 일이 있었던 것은 아니고 영락교회의 한 부속기관에서 로마서 강의를 녹화하기 위해서였다. 영락교회 안에 들어서니 큰 건물이 여러 개 나온다. 그런데 건물 사이의 마당에서는 바자회를 하고 또 여러 행사가 있어서 사람들이 제법 모여 있다. 한곳에서 음악회가 열리는데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린다. 수십 명의 사람들이 계단에 앉거나 서서 듣고 있다. 이게 뭔가 싶어 나도 뒤에 가서 구경하려고 하는데 무대에 선 두 사람이 갑자기 "은혜"라는 찬양을 부른다. 아름답고 은혜로운 가사와 곡조에 관중 모두가 흥겨워하고 나도 이 순간을 놓치기 아까워 휴대폰을 꺼내 녹화하였다. 서울 한복판에서 이렇게 여유있고 은혜로운 광경이 펼쳐지다니? 사람들은 대개 중년의 나이에 느긋하고 평화로워 보였다.
내가 아직도 의아해 하는 것은, 신학이 올바르지 못한데 어떻게 이렇게 풍성한 삶의 모습이 나올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여기 모인 사람들은 푸근하고 교양이 있고 음악과 예술을 즐기고 있다. 한 사람 한 사람 다 평안하고 행복해 보인다. 한경직 목사가, 비록 신학과 교단 정치에 있어서는 문제가 있었지만, 어쨌든 목회를 잘하고 교회를 잘 이룬 것 같다. 이에 비해 신사참배를 반대하고 회개를 외친 한상동 목사가 이룬 우리 고신교회는 어떠한가? 그 열매의 모습이 과연 여기 있는 교인들의 모습보다 낫다고 할 수 있겠는가? 물론 이 문제는 쉽사리 판단할 수 없고 알기 어렵지만 내 머리 속에는 이런 의문이 떠나지 않는다. 우리가 옳다고 배우고 알고 있는 것들이 과연 얼마나 옳은 것일까?
물론 통합측의 신앙과 신학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최소한 나의 견해로는 그렇다. 그러나 다른 좋은 점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문화적이고 인간적인 면들에 있어서는 우리보다 뛰어난 점들이 많이 있을 것이다. 설교도 통합측이 인간적이기는 하지만 푸근하고 더 은혜로울 수 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강조하고 믿음을 강조하고 소망과 사랑을 강조한다면, 이것은 다른 그 어떤 것들보다 더 중요한 것이 아닌가? 형제의 허물을 들추어내고 판단하고 정죄하는 것보다 그것을 덮어주고 용서하고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에 더 부합한 것이 아닌가? 그렇지만 종교다원주의와 WCC는 잘못되었다. 신앙의 진리를 지키는 것도 중요하다. 이를 위해 내가 멀리서 기차를 타고 와서 녹화를 하는 것이 아닌가? 스튜디오로 향하는 내 마음이 좀 복잡하다. 나는 우선 다음과 같이 잠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우리의 좋은 것을 지키면서 다른 사람의 좋은 점을 배우는 자세가 필요하다.
2024. 10. 25.
변 종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