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을 하거나 관광을 하면 대부분 그 곳의 경치나 맛있는 것을 먹으면 여행을 잘 한 것으로 생각을 하는데 나이가 든 사람이
야 그렇다고 치더라도 아직 생각할 수 있는 사람들이라면 그런 여행을 해서는 안된다는 생각이다.
미주알고주알 다 뿌리부터 훑어보며 알아보는 것은 힘이 들더라도 상식적인 것은 알고서 지나가는 것이 맞고 현장에서 몰랐다
면 집에 돌아와서라도 한 번 알아보는 것이 여러 가지 면에서도 좋을 것이다.
유흥준 전 문화부장관이 했던 말인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은 이제 누구나 알 수 있는 말로 말들은 잘 하지만 실지로 아는 만큼
의 아는 것을 실천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유럽에 가면 어디에 가더라도 광장이 있고 성당이 있으며 그 건물이 그 건물이다.
그래서 별로 감흥도 없고 재미도 없다.
그러나 건물마다의 역사를 알고 간다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유럽이나 지중해 가면 그리스로마 신화와 로마의 역사를 알고 가야 하는데 그것을 모르고 가면 그냥 돌무더기와 건물만 보고
오게 된다.
터키여행도 마찬가지로 기독교와 회교의 역사와 그 관계를 모르면 건물만 보다가 오는 격이 되고 마는 것이다.
여행 후기를 쓰다가 보면 그곳의 역사와 문화 사람 모든 것을 훑어 보게 되는데 여행후기를 한 번 쓰게 되면 영원히 기억에 남
게 되고 다른 사람의 여행이나 자녀들의 여행에도 도움을 줄 수 있는 이점이 있다.
보다 내실 있는 여행과 관광이 되었으면 하는 마음에서 쓸데없는 소리를. 한 것이니 이해를 ...
태로각 협곡을 구경하고 나와서 화련에 있는 대리석 공장을 견학하러 갔는데 그날이 마침 일요일이어서 공장은 쉬고 판매하는
가게만 문을 열었다.
관광상품에는 견학이라고 되어 있지만 사실은 대리석판대점 쇼핑을 하는 셈이다.
화련에 대리석 공장이 있는 것은 대만의 지질이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곳이 많기 때문이고 대리석은 석회암등이 변해서 대리석
으로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암석은 세 가지 방식으로 만들어지는데 화산이 폭발하면서 마그마가 굳어져서 만들어진 화산암. 그리고 진읅이나 모래 자갈이
쌓여져 굳어져서 만들어진 퇴적암, 그리고 화산암과 퇴적암이 또 다른 압력이나 열에 의해서 변형되어서 만들어지는 변성암이
있는데 대리석은 변성암에 속하는 것으로 퇴적암의 종류인 석회암이 높은 압력과 열에 의해서 변질되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 돌을 대리석(大理石)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중국의 운남성의 대리(大理)라는 곳에서 많이 나기 때문에 이름이 붙여진
것이며 대리석을 뜻하는 영어 "marble"은 빛나는 돌이라는 뜻을 가진 그리스어 (marmaros)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한다.
대리석 공장에 있는 십이지신상
옥을 파는 가게 앞에 있는 청옥 맨 처음 이돌에 대해서 부터 설명이 지작된다.
코를 만져서 손때가 묻었는데 누구인지는 알아보지 못했다.
공장 주변
잡업장인데 우리는 문이 닫혀 있어서...인터넷에서
각종 옥제품들...구경하시라고
이 대리석 공장의 한 편에는 원주민의 공연장이 있는데 우리는 공연관람계획이 없어서 그냥 지나쳤는데 인터넷에 보니 아미족
의 공연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아미족은 화련과 대만의 동해안 쪽에 살았던 원주민으로 18만 정도로 원주민 중에서 가장 많은 원주민이라고 한다.
지난번에 태로각 협곡에서 태로각족에 대해서 설명하면서 대만의 원주민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를 하였는데 대만의 원주민은 현재
대만 인구의 2%가 채 안된다고 한다.
평지에 있던 원주민들은 한족화가 되었기 때문에 원주민으로 구분하지 않는다고 한다.
옥공장 들어가는 입국에 있는 원주민 그림...왜 이런 그림이 있나 했었는데 이곳에서 공연이 있어서였다.
이곳이 아미족이 살던 곳이라서 아미족 공연을 한다고(인터넷에서 퍼움)
아래 그림들은 나무백과에 있는 대만 원주민에 대한 그림들이다
1986년부터는 중부의 내륙 난터우 현에 '구족문화촌'(九族文化村)이라는 이름의, 원주민 문화, 풍습을 주제로 하는 테마공원이 조
성되어 있다. 일종의 민속촌인 셈. 이곳에는 유럽식 정원, 케이블카 등의 위락 시설들도 위치하고 있어서 나름 대만의 관광명소로
알려져 있다.(나무위키에서)
알아보는 길에 대만의 국민들의 구성에 대해서 조금 더 알아본다면 수천년 전부터 살던 원주민이 있고 명(明)나라의 멸망으로 만
주족을 피해서 대만으로 넘어온 본성인(本省人)이 있으며 1949년 국공내전에서 패해 국민당과 함께 건너온 외성인(外省人)으로
구분되는데 이 세 구성원들 사이에 갈등이 심하다고 한다.
원주민은 한족에 비해서 사회적인 지위와 경제적인 지위가 낮지만 같은 한족이라고 하더라도 명나라 때 넘어온 본성인인가와 장
개석과 같이 넘어온 외성인인가에 따라서 지위가 차이가 있다고 한다고.....
본성인과 외성인을 합하여도 전체 인구의 14%밖에 되지 않는 한족이 사회경제적으로 지배하는 입장에 있다가 보니 84% 달하는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억울한 일이 아닐 수가 없고 원주민의 입장에서 보면 한족은 침략자인 셈인 것이다.
그래서 이런 차이와 차별에 대한 갈등이 표출되기도 하는데 가장 큰 사건이 본성인과 외성인간의 갈등으로 2만 명가량이 사망한
‘2·28 사건’(1947년) 때에 원주민들도 같이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지금은 중국이 대만을 자기 나라의 하나의 성으로 간주하여 대만을 독립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어서 대만은 국제적으로 나라로
인정을 받지 못하고 올림픽 같은 곳에도 출전은 하지만 국기를 게양할 수가 없는 처지이며 중국은 호시탐탐 대만을 홍콩처럼 합병
하려고 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원주민의 입장에서는 자신의 나라를 외지인들이 좌지우지 하는 것이 억울하고 황당한 일이겠지만 그것이 현실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대만 원주민(臺灣原住民, Taiwanese Aborigines)은 혈통적으로나 언어학적으로 본래 대만에서 '기원'한 민족으로 한족이
아니라고 한다. 언어도 아예 중국티베드족의 언어가 아닌 오스트로네시아어족의 언어인 마인(말레이 인도네시아)어, 필리핀어 등
과 같은 계통의 언어를 사용하였다고 한다.
대만 원주민들의 언어나 풍습이 남태평양과 아프리카의 다마스카르 섬까지 퍼져 나갔다고 하는데 문신이나 사람의 목을 베는 것
이나 문신을 하는 것들이 비슷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만의 원주민 중에서 아미족과 타오족을 제외하고는 다른 부족의 머리를 자르는 풍습이 있었다고 하며 일본이 청일전쟁이후 일
본군이 주둔을 하면서 못하게 금지시켰다고 하니 100여 년 전까지만 해도 목을 자르며 살았다는 셈이다.
대리석 공장 견학을 마치고 칠성담으로 갔는데 가는 도중에 빗방울이 떨어지더니 해변에 도착하서는 소나기로 변한다.
여기가 칠성담이군 하는 정도로 눈도장만 찍고 차로 돌아와고 말았는데 왜 바닷가를 칠성담이라고 부르는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
담(潭)이라는 한자는 깊은 연못을 의미하는데 왜 바닷가에다 담자를 붙였는지...
가이드가 이곳에서 파는 오징어구이는 반드시 먹어 봐야 한다고 했는데 비가 와서 그냥 식당으로 가고 말았다.
비가 오는 칠성담
기념점프
오징어 구이를 파는 매점
해가 밝으면 이런 곳이라고
패키지여행을 하게 되면 여행객이 가는 식당에는 언제나 한국 사람들만 마주치게 되는데 여기서도 한국의 관광객들을 실은 버스
가 쉴 새 없이 들어오고 나간다.
화련역에서 기차를 탔는데 그 기차의 손님들 역시 한국관광객들이 많다.
화련으로 갈 때는 두시간이 조금 넘게 걸렸는데 타이뻬이로 올 때는 세시간 반이 걸렸는데 차 시간 때문인지 가격을 아끼느라 느
린 기차를 탓는지....
타이페이 중앙역에 도착하니 열시가 다 되었는데 역사 밖으로 나오니 군데군데 이불을 뒤집어쓰고 자고 있는 숙자들이 보인다.
아침에 갈 때는 히잡을 쓴 무슬림(이슬람을 믿는 사람이라는 뜻)여성들이 많더니 그 사람들은 한 사람도 남아 있지 않고 숙자들만
이....
이곳에서도 하나 깨달은 것은 어느 나라에서나 역에는 숙자들이 산다는 것이다.
저녁을 먹는 식당에서 본 태로각쪽
화련역에서 본 시가지 ...건물에 있는 한문의 뜻은 렌커카라는 의미이다.
화련역 내부
플렛폼으로 가는 지하도
타이페이 역의 노숙자들....
대리석공장
칠성담 해변
화련 기차역 지하의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