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생을 위한 일과 기도의 영성수련 체험기
뜨거운 뙤약볕에서 매순간 체험하는 임마누엘의 삶
구재복(한신대 신학과 3학년, 신학과 과대표)
기독교 농촌 개발원에는 세 번째 방문이다. 다른 교단의 기도원도 다녀보지만 우리 교단에 속한 기관이기 때문인지 기농원은 내게 더더욱 친근하다. 지난 겨울 신학과 임원들이 일과 기도의 수련을 위해 기농원에 갔을 때는 농한기여서인지 조금은 일정에 여유가 있었는데, 올 여름 기농원의 삶은 아침 5시부터 시작된 기도와 농장 체험이 저녁까지도 이어지고 저녁 식사 후, 계속되는 강연과 영성훈련은 더운 여름에 매우 빡빡한 일정임에 분명했다. 하지만 이태영 원장 목사님과 사모님, 안재학 준목님의 관심과 배려 그리고 그 분들의 일하시는 모습, 말씀하시는 한 마디 한 마디는 배움의 자리에 있는 신학도들에게 귀중한 체험이었다.
4박 5일 일정의 수도생활과도 같았던 기농원의 체험은 나의 나됨을 생각하고 자연을 생각하며 그동안의 학교에서 배운 생명사랑과 살림을 몸소 실천하는, 즉 머리가 아닌 온 몸과 마음으로 체화하는 귀중한 시간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신학이 관념적이지 않고 실생활에 직접적이고 또 임마누엘하시는 주님이 우리의 삶 속에 이렇게 밀접하게 함께 하신다는 체험을 할 수 있었다.
'구도자를 위한 일과 기도의 영성'이란 주제 하에서 행해진 이번 농활은 한신대학교 내 다른 여러 개 학과와는 별도로 행해진 농활이었던 만큼 신학생으로서 정체성을 다지는 중요한 시간이었다. "내 아버지께서 지금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요5:17)고 말씀하신 예수님을 본받아 "주님께서 일하시니 저도 일합니다."라는 기도의 제목을 갖고 참여한 27명의 학생들은 각자의 현장(콩 북주기, 고구마밭 김매기)에서 우리가 하는 일에만 치우치지 아니하고 목사님께 배운 호흡기도를 통하여서 일과 기도를 균형 있게 행하려 노력하였다.
처음에는 일도 기도도 어느 하나 제대로 된 것이 없었다. 평소 교회와 학교 등 책걸상 문화에 익숙해있는 학생들에게 강의실을 벗어나 호미질이나 낫으로 갈대를 베는 일은 매우 고역이었다. 밭고랑과 고랑 사이에서 쭈그리고 앉아 밭일을 하며 몸 여기저기 아픔을 호소하는 학생들이 많았었다. 농촌교회의 나이 드신 여집사님들이 품을 팔며 하루를 살아가는 대로 살아보자는 기농원측의 방침을 따라 하루 일과를 산다는 것은 우리에게 있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5시에 일어나서 새벽기도를 하고 6시에 아침식사를 했다. 그리고 7시부터 일을 시작하여 점심을 먹고 1시간 정도 쉰 다음, 뜨거운 뙤약볕에서도 일을 하여 저녁 6시 반, 혹은 7시까지 일이 계속됐다. 저녁식사를 하고 영성수련에 대한 특강과 하루를 마치는 기도회로 일정이 진행됐다. 지도자가 될 신학생이기에 더욱 철저한 수련을 한다는 방침에 나름대로 적응하려고 노력했지만 이러한 하루 일과대로 사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또한 일을 하는 사이에 쉽게 진척은 있지 아니하고 서툴렀기에 여기저기에서 불만과 불평이 터져 나왔다. 그런데 하루가 지나고 이틀이 지날수록 그러한 불평은 수그러들었다. 개인적으로는 호흡기도가 큰 힘이 되었다고 생각되어진다.
"주님께서 일하시니 저도 일합니다."는 기도를 통하여서 위로 받고, 허리가 아플 때면 "주님께서 치유하시니 저도 치유 받습니다."는 고백을 통하여 어려움들을 극복할 수 있었다. 땅을 맨발로 밟고 콩 북주기나 모종 옮겨심기 등의 일을 통하여서 우리의 노동이 생명을 살리며 생명을 지키는 일에 기여한다는 사실에 큰 보람을 느꼈다. 더욱이 노동을 통하여서 인간을 구하러 오신 주님, 부족하고 모자란 죄 많은 인간에게 복음을 선포하시고 생명을 살리신 예수님의 삶을 묵상할 수 있었다.
우리는 대개 바쁜 일상 속에서 상념에 치우쳐서 내가 하는 행동 하나하나에 의미를 부여하며 살지 않는다. 스스로 생각을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 이끌려서 내가 하는 행동에 온전히 집중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농원에서의 단순한 노동의 반복을 통하여서 '나'의 행위 하나 하나 그리고 '나'의 내면에 있는 고민들을 수면 위로 떠올려 집중하여 생각할 수 있었다. 또한 시간에 이끌려, 상념에 이끌려 살아오던 지난날의 모습에서 스스로 상념에 이끌려 시간을 헛되이 소비하지 않고 주체적으로 의미 있게 보낼 수 있다는 사실이 좋았다. 또한 노동과 더불어 실시된 에니어그램을 통한 성격 분석 및 자아 찾기 프로그램은 일과 기도의 영성수련에 중요한 도움이 되었다.
현재 공식적으로 학부생은 1년에 한 번 정도만 신앙수련회를 통하여서 영성수련을 하고 있다. 물론 성령님께서 우주적이고 매우 역동적으로 임하시며 우리의 생활 곳곳에서 임마누엘하시고 계시지만 우리 스스로가 자각하지 못한다면 은혜는 거저 얻어지지 않는다. 또한 우리가 배우는 신학의 여정은 단순히 학부와 대학원에서 졸업 후 끝나는 것이 아닌 평생토록 진리를 구하는 작업임에 분명하다. 신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며 또한 경건의 훈련을 통해서 신학생으로서 매 순간 자각을 잃지 않아야겠다. 가능하면 한신 신학의 과정 중에서 졸업 이전까지 꼭 한 번 필수 과정으로 노동과 기도의 영성수련을 하였으면 하는 생각도 든다.
현재 우리 기장에는 수많은 농촌교회가 있다. 적지 않은 학생이 졸업 후 농촌 목회의 비전을 품고 있음도 사실이다. 그러나 나 또한 농촌 출신으로 적지 않은 시간 농촌에서 보냈지만 사실 농업에 대하여서는 아는 바가 없다. 더욱이 농민으로서 신앙생활을 하시는 분에 대한 이해도 또한 일천할 따름이다. 올바른 신학관과 목회관을 가진 목회자 양성에 있어서 교단과 학교가 농촌목회와 영성수련 부분을 좀더 고민하고 보다 적절한 협력관계가 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