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3:1-11, 헛된 것 그리고 참된 것
비교 종교학이라는 학문이 있는데 모든 종교가 만나는 장소가 있습니다. 바로 죽을 때입니다. 죽을 때가 되면 모든 종교가 영혼의 사는 문제를 논한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가 뭔가? 모든 종교가 다른 형태로 발전했지만 결국 신은 한 분이기 때문입니다. 절대 신이 계셔서 우주적인 섭리를 하고 계시기 때문에 인간은 그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결국은 영원자의 품으로 마지막에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것입니다. 학문적으로 종교의 조건을 세 가지로 말합니다. 신관, 현세관, 내세관이 분명하여 종교라고 합니다.
신관에 있어서 절대자를 믿는 종교자가 있고, 수양 종교가 있습니다. 깨달음으로 인생의 참 진리를 발견하고자 하는 것과 절대 신을 믿는 종교입니다. 절대 신을 유일신, 하나님으로 믿는 종교가 유대교와 이슬람, 기독교인데 기독교는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고 유대교와 이슬람교는 그렇지 않은 것이 차이점입니다.
현세관에 있어서는 우주 만물 세상은 하나님이 선하신 세상을 주셨기 때문에 인간 행복을 위해서 아름다운 노력을 통해서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아가라는 현실관을 주장하고, 내세관이 있어야 되는데 죽음 이후에 주어지는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영원한 나라의 존재를 확실하게 하는 것이 종교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인생은 바람을 잡으려는 것이라고 전도서가 말하는데 바람은 있습니다. 절대 잡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 피부에 와서 닿아있고 내 손을 스치고 지나가지만 절대 내 손에 머물지 아니한 존재입니다. 그 잡히지 않는 바람을 잡으려고 일평생 애를 쓰는 것이 인생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인간이 평생을 통해서 얻고자 하는 참 행복과 평안은 육신적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습니다. 영적인 평안이 있을 때에만 그 행복감을 사람이 누리도록 되어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평안을 주노니 내가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 같지 아니할 것이다.” 이것을 받을 때에만 평안의 세계에 우리가 들어갈 수가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바람을 잡으려는 모든 사람을 향해서 “헛되도다. 안 잡힐 것이다.” 말하는 것입니다.
“서구의 몰락”을 집필한 오스발트 A.G. 슈펭글러는 “인생이란 뭐냐? 세 가지이다. 숨쉬기 운동을 하면서 왔다가 숨쉬기 운동을 하면서 끝난다. 어머니 자궁 안에 갇혀 있다가 무덤 안에 갇히는 것이다. 마지막 인류의 문명은 모두 폐허가 되고 인간은 그 옛날 동굴 생활로 되돌아 갈 테니 두고 보아라.” 이번에 모든 세계인이 깨달은 것이 있게 될 것입니다. ‘아! 지구의 멸망은 간단하구나.’ 저 바다 어느 보이지 않는 모퉁이에서 돌 하나가 “쿵”했더니 세계 제2의 강대국 일본이 망가져버렸습니다.
한 시간 만입니다. 저는 처음 보았습니다. 물바다가 되는데 왜 그 물바다 속에서 또 불바다가 됩니다. ‘세상 뒤집어지고 망하는 거 간단한 문제로구나!’ 세상 사람들이 이 전도서에 나와 있는 대로 소유가 행복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렇게 많은 노력들을 열심히 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소유에 대한 가치를 영적으로 해석하지 못하면 내 행복에 아무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여러분! 소유에 대한 개념을 한번 살펴봅시다. 세상에서 무엇이 내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첫째는 서류적 확인이 되어야 내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집이나 땅을 사서 등기 문서를 내서 서류를 만들어서 내 도장을 찍어놨을 때 이것이 내 것이 되는 효력이 유지됩니다. ‘이매동 360-1번지’에 위치한 이 땅과 건물은 갈보리교회 소유라고 등기 문서를 받았기 때문에 갈보리교회라고 지금 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둘째는 그러한 나의 소유는 국가적 보호 안에 있을 때에만 내 것으로 효력이 됩니다. 아무리 내 것이라고 서류를 잘 꾸며 놓았어도 전쟁이 나서 나라를 빼앗겨 버리면 또, 정부가 헌법을 고쳐서 개인의 소유는 인정하지 않는다고 국회에서 과반수 통과하면 끝납니다. 사회주의 국가는 그래서 피 땀 흘려 모은 개인 재산을 다 빼앗겼잖아요? 국가적 보호제도 속에 있을 때에만 내 것으로 효력이 있습니다.
셋째는 “내 생명이 있을 때 내 것이지 호흡이 끊어지면 당일에 그 도모가 소멸하리로다.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네 예비한 것이 뉘 것이 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비록 우리는 바닷물이 들이닥치는 쓰나미는 내게 없다하여도 어느 날 갑자기 건강 쓰나미가 나를 덮어버릴 수가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이 “아이고! 6개월인데요.” “뭐라고요?” 건강 쓰나미가 덮쳐버리면 흙탕물이 됩니다.
내가 과학적인 정보와 방법을 통해서 안전하게 투자를 했는데도 어떨 때는 다 날아가 버립니다. 물질 쓰나미입니다. 우리 모두 경험했습니다. 의사는 항상 아프다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 직업입니다. 목사는 일평생 교인들에게 듣는 소리가 하나 있습니다. 망했다는 소리입니다. 어쩌면 그렇게 망하기 전에는 안 오시고 망한 다음에만 오십니까? “목사님! 나 어떻게 삽니까? 주식 투자했다가 수십억 날렸습니다.” 그거 십분의 일만 하나님께 바쳤어도 괜찮았었을 텐데…. “나 보증 섰다가 재산 다 빼앗겼습니다. 나 어떻게 삽니까?”
이런 소리를 평생 들어야 목회 생활입니다. 그래서 주님은 뭐라고 하셨습니까? “너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어라. 거기는 지진도 쓰나미도 없느니라.” 영국이 자랑하는 최고의 영적 지도자 요한 웨슬레, 이 사람 때문에 감리교가 생긴 것입니다. 요한 웨슬레가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주머니가 열리지 아니한 사람을 믿음 있다고 하지 마라.” 그 다음에 “내게 주어진 것이 내게 기쁨을 줄 때만 내 것이지 해를 끼칠 때는 없는 것만 못하다.” 어떨 때는 “어휴! 저 사람은 그것만 없으면 행복했을 것을….” 있기 때문에 더 불행해지는 것이 있습니다. 관리를 잘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전도서 마지막은 내세관을 연결합니다. 결국은 죽은 자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헛된 세상에서 헛된 일에 정신 팔지 말고 영원을 향한 길을 떠나라. 이것이 헛되지 아니한 참 진리라.”라고 가르쳐서 마지막 12장에 와서는 인생의 허무성을 계속 말하다가 말을 바꿉니다. “너는 청년의 때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라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에,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들이 가깝기 전에 해와 빛과 달과 별들이 어둡기 전에, 비 뒤에 구름이 다시 일어나기 전에 그리하라.” 마지막에 전도서가 무슨 말을 합니까?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
헛된 세상일을 회의론적으로 말해서 우회론적으로 참 진리를 선포하는 형식의 성경이 전도서입니다. 세상은 참 단조롭습니다. 자고 일하고 먹고 입습니다. 평생 똑같습니다. 그 자체가 인생의 목적이라면 바울 선생의 말씀대로 인생이 불쌍합니다. 슬픔과 기쁨이 반복되고 똑같은 인간 삶의 그 과정 속에서 인간됨의 참 진리가 영원을 향해 있다는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인간이 내 영혼 안에서 발견이 될 때에만 이 지상도 헛되지 아니한 삶을 살아가게 됨을 이 전도서는 가르치고 있습니다.
천재지변의 고난 속에 있는 일본 국민들도 이런 일이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언제나 있었던 일 중의 하나일 뿐입니다. 다만 우리 모두는 이러한 사건들이 주는 영적 교훈을 깨달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얻을 수 있는 것의 인간 한계성입니다. 아무리 선진국이고 아무리 과학적이고 완벽한 준비를 하였을지라도 인간 능력의 한계점은 그것 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 말씀에 하나님의 일을 인간이 측량할 수 없다는 말이 나오는데 여러분! 63빌딩 밑에도 개미들은 기어다닙니다. 그 개미가 63빌딩을 알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땅에서 개미같이 기어다니면서 조그만 거, 우리 주변 밖에 모릅니다. 하나님의 우주관이나 하나님의 내세관에 대해서 우리가 알 수 없는 것이 훨씬 더 많습니다. 하나님이 주관하시는 우주관은 누구도 확실한 대답을 할 수가 없는 나약한 인간의 한계성을 인정하고 무엇이 허무하고 무엇이 허무하지 아니한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거기에 대한 내 영혼의 확실한 대답을 갖고 있지 못하다면 이러한 재앙적 인간의 고난의 문제는 아무리 합리적으로, 과학적으로 해결을 하려 하여도 해결이 안 됩니다.
여러분! 전도서의 이 우주관과 인생관과 내세관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왜냐하면 옛날부터 지금까지 인간들이 사는 모습을 다 우리가 보고 경험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 지로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이 전도서의 우주관과 인생관과 내세관이 이런 문제를 능히 해결할 수 있는 진리가 되는 하나님의 선물이 오늘 이 주일에 주신 하나님의 뜻이 되시기를 축복합니다.
퍼온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