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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느헤미야6장1~14절
제목 : 끈질긴 음모
예루살렘 성벽이 거의 다 완성되어 가자 대적들은 다른 방법으로 성벽 재건을 중단시키려고 시도합니다.
산발랏과 게셈은 느헤미야를 오노 평지와 한 촌으로 유인하여 죽이려고 합니다.
결국 이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게 되자, 도비야와 산발랏이 스마야에게 죄물을 주고 거짓으로 예언하게 하여 느헤미야를 함정에 빠뜨리려고 시도합니다.
산발랏이 느헤미야를 제거하기 위해 끈질기게 음모를 꾸미고 모략을 세우지만 느헤미야는 지혜롭게 분별하여 위험에서 벗어나고 마침내 성벽 공사를 마칩니다.
1. 신발랏의 함정(1~4절)
1) 상황설명(1절)
“[1]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과 그 나머지 우리의 원수들이 내가 성벽을 건축하여 허물어진 틈을 남기지 아니하였다 함을 들었는데 그 때는 내가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였더라”
전장에서 대내적인 문제를 타개한 느헤미야는 이제 본장에서 또다시 외부의 적들의 음모와(1-4절) 모함(5-9절) 및 공갈, 협박(10-14절)에 직면하기에 이릅니다.
대대적인기습공격의 무용성을 깨달은 산발랏 일당은 성벽 재건의 막바지 단계에 이르러 마지막 계교를 짜내었는데, 그것은 성벽 재건의 주동자요 책임자인 느헤미야를 암살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산발랏과 도비야와 아라비아 사람 게셈. - 이들에 대해서는 2:10 주석 및2:19 주석을 참조하라.
나머지 우리의 원수들. - 이들은 '산발랏'에 동조하여 예루살렘 성벽 재건을 방해하던 또 다른 자들입니다.
구체적으로는 '암몬 사람들'과 '아스돗 사람들'을 가리킵니다(4:7).
아직 성문에 문짝을 달지 못한 때였더라. -보통 '문짝'은 건축 공사를 할 때에 마지막으로 달게 된다는 점에서 볼 때, 본 문구는 성벽 공사가 전반적으로 완료되기 일보 직전에 있었음을 나타냅니다.
2) 산발랏과 게셈의 암살 음모(2~4절)
(1) 느헤미야에게 사람을 보내 오노평지 한 마을에서 만날 것을 제안합니다(2절)
“[2] 산발랏과 게셈이 내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기를 오라 우리가 오노 평지 한 촌에서 서로 만나자 하니 실상은 나를 해하고자 함이었더라 ”
본절에 '도비야'라는 인물의 이름이 빠져있는 것은 본절의 두 인물이 '총독'혹은 '족장'(2:19)인데 비해 도비야는 다만 그 총독의 막료일 뿐이었기 때문입니다(2:10).
오노 평지 한촌에서. - '오노 평지'의 '평지'(비크아트)는 '나누다' 혹은 '쪼개다'의 뜻을 갖는 동사 '바카'에서 파생된 명사로서 오히려 '계곡'으로 번역해야 적당합니다(Fensham).
한편, '오노'는 예루살렘 북서쪽 약 32.4km 지점에 위치했습니다.
이곳은 그 당시로서는 사마리아와 아스돗 사이의 중립 지대로서(A. Alt), 완전한 이스라엘 땅이 아니었습니다.
바로 이 같은 점을 감안한다면, 산발랏 일당이 '오노'를 느헤미야와의 면담 장소로 택한 것이 느헤미야를 이스라엘 영토 밖으로 꾀어내어 살해하려는 음모에 따른 것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한 촌에서'(바크피림)에 대해서는
⓵ 본절의 '바크피림'을 장소를 나타내는 전치사 '베'와 고유한 지명 '하크피림'의 합성어로 보고 '하크피림에서'라는 견해(Williamson, Myers, Rawlinson, Kidner, Schultz, Fensham),
⓶ '바크피림'을 전치사 '베'와 '마을'을 뜻하는 명사 '카파르'의 복수가 합쳐진 것으로 보고 '여러 마을들 중의 하나에서'라는 견해(Keil),
⓷ '바크피림'을 전치사 '베', 즉 '-와 함께'와 '케피림', 즉 '사자들'의 합성어로 보고 '사자들' 이란 말로 암시된 '방백들과 함께'(겔 19:1-6)라고 해석하는 견해(Schirmann)등이 제시됩니다. 그러나
첫째, 산발랏 등이 '여러 마을들 중의 하나에서' 만나자고 함으로써 느헤미야로 하여금 그 마을들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게 할 경우 그로부터 의심을 덜 받을 수 있으며,
둘째, 본문에서 짐승의 이름과 방백들을 굳이 연관시켰다고 보기는 힘들다는 점에서 볼 때, 두 번째의 견해가 보다 타당 할 것입니다.
실상은 나를 해하고자 함이었더라. - 고대 사회에서는 원한 관계에 있는 사람을 안심시켜서 제3의 장소로 불러내어 거기서 죽이는 일이 흔했던 것 같습니다(창4:8;렘41:1-3).
바로 이러한 습속을 아는 느헤미야는, 외딴 곳으로 자신을 나오라는 대적들의 제안에 어떤 흑막이 숨겨져 있었음을 눈치 챌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느혜미야가 이처럼 재빨리 그 음모를 눈치 챈 것은, 느헤미야도 나름대로의 첩보망을 갖고 있었던 때문 일 가능성도 큽니다(Fensham).
(2) 느헤미야는 이들의 제의를 즉시 거절합니다(3절)
“[3] 내가 곧 그들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이르기를 내가 이제 큰 역사를 하니 내려가지 못하겠노라 어찌하여 역사를 중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하매 ”
본절에서 느헤미야는 음모 섞인 대적들의 제안을 완곡히 거절합니다.
그러나 느헤미야가 일 때문에 가지 못하겠노라 한 것 자체도 거짓이 아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성벽 재건이 크게 진척된 것은 사실이었으나, 문을 달아서 작업을 마무리하는 일이 그 무엇보다 시급했기 때문입니다(1절).
어찌하여 역사를 중지하게 하고 너희에게로 내려가겠느냐 - 본 문구를 통해 우리는
⓵ '오노'가 예루살렘보다 상대적으로 낮은 지대였다는 점과,
⓶ '오노'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적들의 땅과 인근해 있었으므로 상대적으로 낮추어 언급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3) 산발랏과 게셈은 포기하지 않고 네 번이나 느헤미야에게 초청장을 보내지만 느헤미야의 결심은 흔들리지 않습니다(4절)
“[4] 그들이 네 번이나 이같이 내게 사람을 보내되 나는 꼭 같이 대답하였더니”
대적들의 반복된 메시지의 전달은 그들이 성벽 재건의 방해를 위해 얼마나 필사적이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Myers).
2. 봉하지 않은 편지(5~9절)
1) 신발랏의 공개 서신(5~7절)
(1) 다섯 번째는 봉하지 않은 편지를 보냅니다(5절).
“[5] 산발랏이 다섯 번째는 그 종자의 손에 봉하지 않은 편지를 들려 내게 보냈는데 ”
종자(나아르). - 이것은 산발랏의 하급 신하를 뜻할 것입니다(4:16).
봉하지 않은 편지 - 고대의 공식 문서는 양피지 등에 기록된 뒤 끈으로 묶여 인장으로 날인되어 봉해졌었습니다.
이는 작성된 내용의 변조를 막아서 그 문서의 신빙성을 보증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발랏 일당이 인봉치 않은 편지를 보낸 까닭은, 편지의 내용을 백성들도 알게 해서 놀라게 하며, 느헤미야로 하여금 자신들에게 나오게끔 촉구하려는 데 있었습니다.
(2) 산발랏의 다섯 번째 편지의 내용이 소개되고 있습니다(6,7절)
“[6] 그 글에 이르기를 이방 중에도 소문이 있고 가스무도 말하기를 너와 유다 사람들이 모반하려 하여 성벽을 건축한다 하나니 네가 그 말과 같이 왕이 되려 하는도다 [7] 또 네가 선지자를 세워 예루살렘에서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지금 이 말이 왕에게 들릴지라 그런즉 너는 이제 오라 함께 의논하자 하였기로 ”
그 내용은 한 마디로 느헤미야가 페르시아 왕실에 대해 모반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방 - 이스라엘 주변의 나라들을 가리킵니다(4:7).
가스무도 말하기를. - 이것은 '가스무'가 이방 사람들 사이에 떠돌던 느헤미야의 모반 사실을 확증했다는 뜻입니다(Fensham).
'가스무'는 느헤미야를 비롯한 이스라엘 백성에 의해서 '게셈'으로 불리워지던 인물의 아라비아식 이름입니다.
너와 유다 사람들이 모반하려 하여 성벽을 건축한다. - 느헤미야가 '성벽을 건축'했던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 중심지인 예루살렘과 그 안에 살던 백성들을 외적의 칩입으로 부터 보호 하려는데 있었습니다(1:3).
따라서 느헤미야가 모반을 꾀한다는 소문은 말할 나위도 없이 대적들이 지어내어 퍼뜨린 완전한 허위였음이 분명합니다.
휠씬 이전에 있었던 성벽 재건의 시도도 바로 이와 같은 허위 보고가 페르시아 왕실에 올려 짐으로써 좌절되었었습니다(스 4:11-23).
바로 이 같은 사실을 알고 있던 산발랏은 금번에도 그와 유사한 헛 소문을 퍼뜨려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벽 재건을 중지시키려 하고 있는 것입니다.
네가 선지자를 세워 예루살렘에서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유다에 왕이 있다 하게 하였으니 . - 이것도 산발랏의 거짓말입니다.
사실 왕족도 아닌 느헤미야가(2:3), 스룹바벨과 같은 직계 왕족도(스 2:2) 왕에
오를 수 없었던 포로 후 시대의 상황에서 스스로 왕이 되려는 시도를 했다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네가 선지자를 세워'는 스룹바벨 시절에 생긴 건축 사역의 재개를 위하여 활약했었던 학개 및 스가랴 선지자의 메시야의 도래에 대한 예언(학 2:22,23;슥 9:)을 알고 있었던 산발랏의 거짓말입니다.
즉, 산발랏은 거의 1세기 전에 활동했던 선지자들의 메시아 예언을 왜곡시켜서, 느헤미야가 그 당시에는 있지도 않았던 선지자의 도움을 받아 왕에 오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고 헛된 주장을 하였던 것입니다.
너를 들어 선전하기를. - 이에 관해서는 본 단락 주제 강해, '왕의 즉위와 관련된 선지자의 역할'을 참조하라.
이 말이 왕에게 들릴지라. - 본절에서 산발랏은, 자신이 느헤미야를 모반 혐의로 고소할 준비가 되어있음을 시사함으로써 그를 협박하고 있습니다.
사실 ⓵ 아닥사스다 왕 시대에는 페르시아 정복지 전역에 걸쳐서 모반이 끊이지 아니했었으며,
⓶ 특히 많은 권력을 쥐고 있었던 술 관원들의 모반이 잦았었다(Fensham)는 점 등에서, 술 관원 출신 이었던(1:11) 느헤미야가 모반을 하고 있다는 고소는 비록그것이 무고(誣告)이기는 했지만 아닥사스다 왕에 의해서 진실로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적지 않았습니다.
산발랏은 바로 이 점을 이용해서 느헤미야를 협박하려 드는 것입니다.
2) 느헤미야의 반응(8~9절)
(1) 느헤미야는 소문이 신발랏이 지어낸 것이라고 묵살합니다(8절)
“[8] 내가 사람을 보내어 그에게 이르기를 네가 말한 바 이런 일은 없는 일이요 네 마음에서 지어낸 것이라 하였나니 ”
본절에서 느헤미야는 단 몇 마디의 말로써 산발랏의 장황한 참소(6, 7절)를 기각시켜버리고 있습니다.
만일 산발랏의 무고가 아닥사스다 왕에 의해서 받아들여질 경우 느헤미야가 곤란한 문제들에 직면할 가능성이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담대할 수 있었던 것은, 그가 하나님을 신뢰한 때문이었습니다(9절).
지어낸 것이라. - '지어낸'(바다)은 구약성경 중 본절을 제외하고 유일하게 나타나는 왕상 12:33에서는 자신의 입지를 강화할 목적으로 소견에 옳은 대로 어떤 계획을 세우는 것을 가리킵니다.
그 밖의 성경 외적 문헌에서도 이 단어는 '거짓을 꾸미다'라는 의미로 사용됩니다(Fensham).
따라서 여기서 이 단어는 '타인을 해롭게 할 목적으로 진실을 교묘히 왜곡시키는 것'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2) 느헤미야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합니다(9절)
“[9] 이는 그들이 다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말하기를 그들의 손이 피곤하여 역사를 중지하고 이루지 못하리라 함이라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하였노라”
우리를 두렵게 하고자 하여 - 이스라엘 백성들은 산발랏 일당의 집요한 심리전에 의해서 낙심에 빠졌었던 쓰라린 경험을 갖고 있었습니다(4:4).
이제 다시 산발랏은 느헤미야를 회유 . 협박함으로써, 그런 결과를 재차 얻으려고 했었습니다.
사실 이것은 성벽 재건을 신속히 추진하려고 애쓰던 느헤미야에게 큰 장애 요소였음에 분명합니다.
이제 내 손을 힘있게 하옵소서. - 이에 대해서는 두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즉, ⓵ 개역 성경처럼 하나님께 담대한 마음을 허락해 주실 것을 소원하는 기도로 봐야 한다는 견해(Fensham, Rawlinson, Schultz, Keil, Battem, Kidner, NIV),
⓶ 기도의 대상인 하나님이 언급되고 있지 않음을 근거로 해서 느헤미야 자신이 스스로 마음을 굳게 먹었던 것으로 봐야 한다는 견해(Williamson, Myers, JB, 공동번역)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본서 전체를 통해서 볼 때 느헤미야의 기도는 특별한 형식 없이 필요한 상황에서 드려졌었다는 사실(2:4;4:4,5;5:19)등으로 미루어 위의 두 견해 중 첫 번째의 것이 보다 타당성이 있습니다.
3. 스마야의 함정(10~14절)
1) 스마야의 협박(10절)
“[10] ○이 후에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가 두문불출 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그가 이르기를 그들이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우리가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 안에 머물고 그 문을 닫자 저들이 반드시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하기로”
본절에서 부터 19절 까지에서는 산발랏 일당의 또 다른 음모가 언급됩니다.
그런데 이 음모에는 느헤미야 진영에 있는 사람, 더욱이 선지자가 가담하였다는 점에서 가히 충격적입니다.
므헤다벨의 손자 들라야의 아들 스마야. - 이 사람에 대해서는 분명히 밝혀진 바가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성전에도 들어갈 수 있었던 신분의 소유자라는 본절의 암시로 볼
때 제사장이었으리라 짐작됩니다(Bowman).
또한 그는 그 당시에 선지자 행세를 하기도 했었습니다(12절).
두문불출(杜門不出)하기로 내가 그 집에 가니. - 본절의 '두문 불출'에 대해서는
(1) 그 당시에 스마야가 부정(不淨)한 상태에 있었던 관계로 성전 봉사에 참여치 못했었음을 뜻한다는 견해(Rawlinson),
(2) 서원 이행을 위하여 근신하고 있었음을 뜻한다는 견해(Schultz).
(3) 스마야 자신처럼 은둔하지 않으면 느헤미야가 암살을 당할 위험이 있음을 암시하려는 술수였다는 견해(Keil),
(4) 마치 슬픈 사건을 예견한 선지자가 그것으로 인해 비탄에 빠져있었던 것처럼 행동함으로써(사 20:2;겔 4:1-8). 느헤미야로 하여금 자신의 말에 귀를 기울이게끔 하려는 술수였다는 견해(Rudolph,illiamson),
(5) 마치 감금되어 있었던 것처럼 꼼짝하지 않음으로써 느헤미야로 하여금 스마야 자신을 찾아 헤매도록 하려고 한 술수였다는 견해(Myers)등이 제시됩니다.
그러나 첫째, 스마야가 만일 부정한 상태에 있었거나 서원 이행을 위해 근신하고 있었다면 성전으로 가자는 제안을 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점과
둘째, 위의 '아추르'라는 단어가 구약 성경에서 비탄의 상태를 가리키는데 사용된 적이 없다는 점 등으로 볼 때 위의 여러견해 중(3)이나 (5)의 것이 가장 타당 할 것입니다.
그들이 너를 죽이러 올 터이니. - 이것은 산발랏 일당이 보낸 자객들이 느헤미야를 암살하기 위해서 사마리아로 부터 올 것이라는 뜻입니다.
대규모 공격은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에 의해서 쉽게 눈에 띄어(4:9, 22) 실패할 가능성이 많았던 반면, 느헤미야 개인에 대한 스마야의 암살 협박은 느헤미야에게 대단한 두려움을 안겨줄만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전으로 가서 외소(外所)안에 머물고. - 이것은 산발랏 일당의 암살을 모면하기 위하여 성전으로 피신하자는 스마야의 제안입니다.
사실 살해 위협으로부터 몸을 보호하기 위해서 성전으로 도망가서 제단 뿔을 잡는 것은, 모세 율법에 규정되어 있었습니다(출 21:12,13;왕상 1:50-53;2:28).
따라서 본절과 같은 스마야의 제안은 어느 정도 타당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음흉한 함정이 깔려있었습니다(12절 주석 참조).
한편, '외소'(토크)는 '-의 중앙'을 뜻하며, 구체적으로는 '성소'를 가리킵니다(겔48:21). 즉, 성전 현관과 지성소의 사이입니다(Rawlinson).
그문.-'성소'와 성전의 현관 사이의 잣나무로 만들어진 문입니다(왕상 6:34).
밤에 와서 너를 죽이리라. - 느헤미야의 공포심을 가중시키기 위한 반복입니다.
스마야는 이미 자신의 경고 서두에서 '죽이러 올터이니'라고 말한 바 있습니다.
2) 느헤미야의 반응(11~13절)
(1) 스마야의 제안을 거절합니다(11절)
“[11] 내가 이르기를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나 같은 몸이면 누가 외소에 들어가서 생명을 보존하겠느냐 나는 들어가지 않겠노라 하고 ”
본절에서 느헤미야는 두 가지의 이유를 들어서 성전으로 피신하라는 스마야의 음모적인 권고를 거절한다.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며. - 이것은 느헤미야가 성전으로의 피신을 거절한 첫째 이유입니다.
즉, 그는 페르시아 왕실로부터 임명된 총독의 신분으로서 생명의 위협이 있다고 해도 몸을 숨기는 것은 타당치 않음을 그 이유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특히 느헤미야는 내우외환(內憂外患)의 시련을 앞장서서 극복해야 할 지도자의 위치에 있었기 때문에, 비록 죽음이 눈앞에 닥쳐왔다 하더라도 초연함으로써 백성들의 모범이 되고자 했습니다(Rawlinson).
나 같은 몸이면...생명을 보존하겠느냐. - 성전으로의 피신을 거절한 두 번째 이유입니다.
사실 모세 율법은 생명의 위협을 받는 자에게는 성전으로서의 피신을 허용하였습니다(출 21:12, 13).
그러나 그러한 피신은 특정한 경우에 제한되었으며, 외국인 특히 이방 군대에 의한 경우는 포함되지 않았습니다(Fensham).
따라서 이 같은 상황에서의 성전으로의 피신은 제사장 이외의 사람은 성전 안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행위였습니다,
율법은 이러한 범법자는 죽임을 당해야 한다고 선언합니다(민 18:7).
(2) 스마야가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자신을 속이려고 했다고 합니다(12절)
“[12] 깨달은즉 그는 하나님께서 보내신 바가 아니라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내게 이런 예언을 함이라”
깨달은즉. - 느헤미야의 이러한 깨달음은 '스마야'의 음모 섞인 권고를 듣는 즉시 있었을 것입니다.
즉, 느헤미야는 스마야가 자신에게 범법행위를 권하는 그 사실을 통해서 그 즉시 그가 하나님의 참 선지자가 아님을 발견했던 것입니다(Williamson).
참선지자의 여부는 그의 메시지 및 행실를 통해서 분별될 수 있음(마 7:15-20)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습니다.
도비야와 산발랏에게 뇌물을 받고. - '뇌물을 받고'(세카로)는 원래 ' 고용하다' 혹은 '보답하다'는 의미로서 어떤 악한 일을 애써 해주는 대신 그에 대한 삯을 받는 것을 가리킵니다(신 23:4;삿 9:4;왕하 7:6).
그런데 혹자는 이 동사가 3인칭 단수인 점과 산발랏이 도비야 다음에 언급되었다는 점을 들어서, 본 문구에 나오는 두 사람 중 뒤의 '산발랏'은 필사자의 실수로 기록됐다고 보고 그 이름을 탈락시켜야 할 것을 주장합니다(Rudolph). 그러나 주어를 두 사람 언급하면서 단수 어미의 동사를 사용 한 것은, 두 사람중 먼저 언급된 사람의 역할을 특별히 강조하려는 느헤미야의 의도 때문인 듯합니다(Fensham).
그렇다면 도비야는 거짓 선지자 스마야를 매수하는데 있어서 계획부터 실행 과정까지 직접 담당했으며, 산발랏은 그것을 후원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3) 느헤미야로 하여금 제의 규정을 어기도록 해서 제사장들의 적대감을 사도록 의도했던 것 같습니다(13절)
“ [13] 그들이 뇌물을 준 까닭은 나를 두렵게 하고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
느헤미야가 분석한 바, 곧 도비야가 스마야를 매수한 삼중적인 이유입니다.
나를 두렵게 하고. - 도비야가 스마야를 매수하여 느헤미야에게 거짓 예언을 하게끔 한 가장 큰 이유입니다.
사실 산발랏이 보낸 자객이 밤중에 느헤미야를 암살할 것이라는 경고는, 느헤미야에게 두려움을 주기에 넉넉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 범죄하게 하고. - 이에 대해서는 11절 주석을 참조하라.
악한 말을 지어 나를 비방하려 함이었느니라. - 이 같은 비방은, 만일 느헤미야가 '스마야'의 공갈에 심약(心弱)해져서 성전으로 피신하는 잘못을 범했을 경우 이루어졌을 것입니다.
3) 느헤미야의 기도(14절)
“[14] 내 하나님이여 도비야와 산발랏과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곧 나를 두렵게 하고자 한 자들의 소행을 기억하옵소서 하였노라”
이러한 기도는 느헤미야가 얼마나 신앙적 인물이었는지를 잘 보여줍니다 - 즉, 그는 이 기도를 통해서
(1) 하나님만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겸손한 마음을 보여주며,
(2) 원수를 자신의 손으로 직접 갚지 아니하고 하나님 손에 넘기라는 율법의 정신을(신 32:35;시94:1;롬12:19) 이행하고자 했음을 보여주었던 것입니다. 한편, 느헤미야에게 이 처럼 많은 대적들이 있었던 까닭은
(1) 산발랏이 일찍이 많은 사람들을 포섭해놓았고,
(2) 또한 느헤미야가 상류층에 대해 엄격한 정책(5장)을 편 때문이었습니다(Fensham).
여선지 노아댜와 그 남은 선지자들. - 이들이 누구이며 느헤미야에 대해 어떤 일을 했었는지는 분명치 않습니다.
다만 이들은 본절의 언급처럼 '스마야'와 함께 느헤미야를 대적했던 무리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도록 특별히 부르심 받은 선지자들이 오히려 그 뜻을 정면으로 거스린 일에 대해, 느헤미야가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임하기를 기도한 것은 너무도 당연했습니다.
한편, 느헤미야가 이들의 행위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언급치 않고 '스마야'의 행위에 대해서만 특별히 다른 까닭은, 스마야의 경우 그 대적 행위가 너무도 교활하고 사악하여 나머지 악한 선지자들의 계교를 대표할 만한 것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입니다(Williamson).
대적들은 페르시아 왕의 재가로 시작된 성벽 재건 공사를 공식적으로 방해하는데 한계가 있어 공동체 내부 인사들과 연계하는 방법을 택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느헤미야는 하나님의 과업을 이루기 위해 안팎의 방해 세력과 싸웠던 것입니다.
꿋꿋하게 하나님만 바라보고 맡은 일을 이루어가는 느헤미야의 지도력이 돋보입니다.
주의 일꾼은 순결하되 순진해선 안 됩니다.
악한 세력을 물리칠 지혜와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하라는 주의 명령이 주의 일꾼들에게 이루어지기를 소망합니다.
나(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성벽 공사가 마무리될 즈음, 산발랏 일당이 느헤미야를 제거할 음모를 꾸밉니다(1~3절).
무력으로 공격하는 것이 불가능했기에 그들은 느헤미야를 유인해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그들의 속셈을 간파합니다.
자칫 성벽이 마무리되었다고 경계의 끈을 느슨하게 했다면, 공든 탑이 무너질 수도 있었습니다. 성취를 목전에 둘 때가 가장 위험합니다.
‘나’는 안심하여 힘을 빼고, ‘적’은 근심하며 마지막 힘을 낼 것이기 때문입니다.
2) 대적들은 굴하지 않고 같은 요구를 네 번이나 반복합니다(4절).
그만큼 그들은 절박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틈을 주지 않습니다. ‘한 번쯤’이라는 여지는 사탄이 성도를 유혹하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작은 타협, 조그만 악을 거절하지 않으면, 그것이 큰 성벽을 무너뜨리는 단초가 될 것입니다.
나를 시험하는 ‘한 번만’의 유혹은 무엇입니까?
3) 유인책이 실패하자, 산발랏은 봉인하지 않은 편지를 보냅니다(5-9절).
봉인하지 않은 것은 느헤미야 주변을 흔들어보려는 심산이었습니다.
편지에는 성벽 공사가 반역 행위라는 소문이 널리 퍼졌고 이 소문을 왕도 들었다는 것과, 이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느헤미야를 초청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심지가 굳은 지도자입니다.
소문에 휘둘리지 않고, 원수의 계책에 휘말리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들의 겁박에 성벽 재건의 동력이 약해지지 않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정당하다면, 사람들의 말에 좌고우면하지 맙시다.
4) 실패를 거듭한 산발랏은 도비야와 함께 이번에는 선지자를 포섭해서 느헤미야를 함정으로 몰아넣습니다(10~14절).
선지자 스마야는 느헤미야에게 안전한 성전으로 피할 것을 제안합니다. 도움을 주는 것처럼 가장하나, 실상은 율법을 어기게 함으로써 느헤미야의 위상을 실추시키기 위한 술책입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옳지 않은 일이라며 거절합니다.
그는 사익을 위해 정도를 벗어나지 않습니다.
이처럼 바르고 강직한 성품을 지녔기에 느헤미야는 곧 스마야의 정체를 간파할 수 있었습니다.
정직한 길이 당장은 손해로 보이나 궁극적으로 승리하는 길입니다.
기도
공동체-말씀을 따라 정직하게 행함으로, 악을 분별하여 시험에 넘어지지 않게 하소서.
열방-파키스탄에서 기독교인을 향한 과격 무슬림의 폭력, 약탈, 방화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파키스탄 정부와 치안 당국이 기독교인을 보호하고 사법적 정의를 실현하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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