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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 에베소서 3장1~7절
제목 : 그리스도의 비밀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에베소서 기록의 목적이 풍성한 은혜와 평강을 누리라는데 있습니다.
풍성한 은혜와 평강을 누리기 위해서는
첫째는 우리는 날마다 찬양하고 기도해야 합니다.
왜 찬양 해야 합니까?
우리는 선택의 복과 구원의 복과 영생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왜 기도해야 합니까?
하나님을 알고,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우리가 구원 받은 자의 삶을 살아야 은혜와 평강을 누립니다.
셋째는 우리가 구원 받은 은혜를 생각하며 살아야 은혜와 평강을 누립니다.
오늘은 네 번째인데,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아야 은혜와 평강을 누립니다.
오늘 말씀에 “이러므로”로 시작합니다.
엡 3:1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이러하므로. - 이말은 앞장에서 가르친 교회론을 받아서 결론하는 것입니다.
앞에서 말한 교회론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잇돌이 되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을 말합니다.
2:21절 “그의 안에서 건물마다 서로 연결하여 주 안에서 성전 되어 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 말은 세 가지 사실을 보여줍니다.
① 교회들은 서로 화합해야 된다는 것이고,
② 교회(성도들의 단체)는 구약 시대의 지성소처럼
신자들이 하나님을 만나는 단 체라는 것입니다.
③ 교회는 자라나야 된다는 것 입니다.
무엇보다도 신앙과 성결에 있어서 자라나야 됩니다.
-지난 주에 말씀드렸지만 여기서 교회성장의 세 가지 원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① 교회 건물은 한 장씩 쌓아 나갑니다.
급격한 성장이 있는 게 아닙니다.
한 장 한 장 올라갑니다.
벽돌 한 장 한 장이 좋은 것이어야 좋은 건물이 됩니다.
교회의 성장은 [개인성장]으로부터 이루어집니다.
② 교회 건물은 서로 연결된다는 것입니다.
벽돌 한 장이 아무리 좋아도 서로 연결되어 쌓이지 않으면 건물을 이룰 수 없습니다.
개인 신앙이 아무리 좋아도 서로 협력하지 않으면 교회는 성장할 수 없습니다. [관계성장]이 있어야 합니다.
③ 쌓을 벽돌은 이미 쌓여있는 벽돌에 맞게 깎여야 합니다.
깎이지 않은 채로 쌓아놓으면 부실공사가 됩니다.
좋은 건물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내가 남의 유익을 생각할 때, 성장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양보성장]을 말합니다.
바울은 자기가 이방인의 사도로 사역함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이 말을 직역하면, "그리스도 예수의 수인(囚人)"입니다.
다른 귀절에서는 이 말을 "주 안에서 갇힌 자"라고 하였습니다.
*엡4:1절 “주 안에서 갇힌 내가”
*엡6:20절 “내가 쇠사슬에 매인 사신이 된 것은 나로 이 일에 당연히 할 말을 담대히 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말의 뜻은 바울이 그리스도의 일 때문에 갇힌 바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의 옥고(獄苦)가 그리스도에게 필요한 것임을 알았으니만큼
위안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것은 이방 전도를 위한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2절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고하였습니다.
은혜의 경륜이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구원 역사를 계획하시고,
진행하시는 것 일체를 의미합니다.
바울은 은혜의 경륜을 “비밀”로도 표현했습니다. 3,4절입니다.
“[3]곧 계시로 내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4]그것을 읽으면 내가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비밀>은 인간의 성숙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폴 투르니에는 “인간 성숙의 단계”를
<비밀>이라는 코드를 중심으로 세 가지 단계로 나누고 있습니다.
첫째 어린이의 시절은 비밀을 갖지 못하는 단계입니다.
아이들은 “이것은 비밀이에요”하면서 비밀을 다 말해 버립니다.
둘째는 사춘기가 되면서 비밀을 갖기 시작하는 단계입니다.
부모에게도 비밀을 말하지 않고 입을 닫습니다. [아들의 사춘기]
부모에게는 답답한 일입니다.
그러나 이런 현상은 사실 자연스런 인간 성숙의 단계입니다.
비밀을 가지면서 부모를 의존하는 존재가 아닌
독립적인 존재로 자라가는 것입니다.
이때 부모들은 자녀들의 비밀을 존중해 주어야 합니다.
일기장 들춰보고 컴퓨터 열어보고, 전화번호 검열하고 하지 말아야 합니다.
셋째는 청년기가 되면서
우리는 비밀을 소중한 사람들과 더불어 나누는 새로운 단계를 경험합니다.
이 단계에서 우리는 비밀을 자발적으로 안전하게 나눌 대상
곧 친구나 파트너를 찾습니다.
비밀까지 말할 수 있는 대상을 가지면서
우리는 진정한 친밀감이 무엇인가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대표적인 관계가 부부관계가 되겠지요.
벌거벗고도 부끄러워 하지 않는 것
-그것이 바로 비밀을 나누고 사는 성숙한 부부의 삶의 현장인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서신서를 통해 바울 사도는
인생의 가장 숭고한 비밀이 두 가지라고 말합니다.
첫째는 “복음”이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사람들이 구원받는 것,
이것은 세상이 모르고 있는 비밀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죽음, 승천, 재림 등이 비밀입니다.
둘째는 복음을 수용한 사람들의 공동체인 교회가 비밀이라는 것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 두 번째 비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교회의 비밀을 자신의 지성의 추구를 통해서가 아닌
하나님의 계시로 깨닫게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면 교회가 왜 비밀이며
-우린 이 비밀을 어떻게 해야 한다는 말입니까?
1.교회가 왜 비밀이란 말입니까?
교회 공동체가 비밀이라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그럴까요? 그것은
-모든 인간관계의 벽이 교회 안에서만은 무너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교회는 인간관계를 넘어서서 모든 사람들이 평등하게 교제할 수 있는
유일한 공동체라라는 사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사실을 모릅니다.
그래서 교회는 비밀입니다.
예수님 당시 가장 견고한 인간관계의 벽은 유대인과 이방인의 벽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벽이 복음을 통해 교회 안에서 무너지는 기적을 보게 된 것입니다.
6절이 그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고 하였습니다.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가 됨이라 -
이 문구에는 "함께"란 접두어가 세 번이나 나오는데
누가 누구로 더불어 함께 한다는 것입니가?
그것은 '이방인이 유대인과 함께'라는 의미이다.
"함께 후사"란 말은 '함께 천국에 들어가는 기업을 누릴 자'를 가리키고, "함께 지체"란 말도 '함께 몸이 됨'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이방인도 유대인과 함께 그리스도 신앙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교회의 지체(肢體)가 됨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함께 약속에 참예하는 자"란 말은 이방인들도 믿음으로써 아브라함에게 주신 하나님의 구원 언약(메시야 약속)에 참예하게 됨을 의미합니다.
성전에도 이방인의 뜰까지만 접근하고
그 이상 나오는 것이 금지되어 있던 이방인들이
함께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하게 되었고,
함께 천국에 가고,
함께 하늘의 상급을 받아 누리는 놀라운 특권이 주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 이전의 시대에는 상상도 못할 사실이었습니다.
그것이 5절의 증언입니다.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라고 하였습니다.
위에서 말한 대로 복음의 비밀은 신약의 사도들에게 밝히 계시되었으나
그 전에는 그렇게 밝히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이 비밀은 다른 것이 아니고
이방인들이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 받게 되는 “복음”입니다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 - 여기 말한 "거룩한"이란 형용사는 사도직의 특수성을 가리킵니다.
사도직은 계승직이 아니고 "단번에 주신 믿음의 도"를 전하기 위해(유 1:3)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우신 성직이었습니다.
여기에 언급된 "선지자"는 구약시대의 선지자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고
신약시대의 선지자를 가리킵니다.
이 직분은 실상 사도들이 겸임하였던 것입니다.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 이 문구에서 우리가 주목할 것은 "같이"입니다.
구약시대에도 이방인의 구원 받을 일에 대하여 하나님의 계시가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닙니다(창 12:3; 시 72:8, 11;사 19:18;미 4:1).
그러나 신약의 사도들에게서처럼 명백하게 계시되지는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바야흐로 초대 교회가 이렇게 문을 열어 이방인을 수용하고
함께 어우러지는 놀라운 일을 경험하기 시작했다면,
오늘의 교회 내에서도 이런 기적이 일어남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오늘의 교회 내에서도 좀처럼 이런 벽이 무너뜨리지 못하고 있는
여러 행태들을 우리는 목격하고 있습니다.
그 본질적인 이유는 우리가 복음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진지하게 수용하지 못한 때문이라고 믿습니다.
복음을 복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드린다면,
그 말씀에 순종함이 마땅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예화]
전라북도 김제군 금산교회는 신앙적으로 매우 독특한 교회입니다.
불교의 고찰 금산사와 증산교의 본부가 있는 김제에 기독교가 전래된 것은 1905년.
전주에 와 있던 미국 남장로교 테이트 선교사(한국명 최의덕)가
이 지방 마방의 주인이며 지방의 부호였던 조덕삼과
그의 집안의 마부였던 이자익을 전도하면서 부터입니다.
경남 남해 출신인 이자익은 당시 집안이 어려워
6살 때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서 성장,
16살 때 전라도 지역으로 와서
조덕삼을 만나 그 집안 하인으로 일하고 있었습니다.
특이한 것은 주인과 하인이 나란히 입교하였으며,
교세가 커지자 교회에 장로를 세우게 되었는데 교인들의 투표 결과
주인 조덕삼은 떨어지고
그 집의 머슴으로 일하는 이자익이 장로로 당선 되었습니다.
반상(班常)을 철저히 따지던 봉건 시대에 이것은 큰 사건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조덕삼은 교회 앞에 나가 너무나 너무나 겸손한 말을 합니다.
“여러분 이 결정은 하나님이 내리신 결정입니다.
나는 교회의 결정에 순종하고,
이자익 장로를 받들어서 열심히 교회를 섬기겠습니다.”
그리하여 집에 돌아와서는 주인과 머슴의 관계가 되고,
교회에 가서는 반대로 장로와 평신도의 관계가 되어 두 사람 모두 열심히 자기 직분을 다하였습니다.
그 당시에는 목회가 없는 때라 이자익 장로는 설교하고,
조덕삼은 머슴이 하는 설교를 듣었습니다.
머슴이 장로가 되었다는 소문이 퍼져
많은 사람이 교회로 모여 들었다고 합니다.
그 뒤 조덕삼 옹도 장로가 되었지만,
주인 조덕삼 옹은 후에 머슴 이자익을 평양신학교에 유학을 시켜
훗날 유명한 목사가 되게 하였고,
그 후 이자익 목사는 그 믿음과 행함과 진실성과 경건으로 모든 총대들에게 인정을 받아 조선야소교장로회 총회 총회장을 3번이나 역임하는 귀한 인물이 되었다.
아들 조영호는 독립운동가로, 손자 조세형은 국회의원으로 3선을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의 화두는 소통입니다.
문명이나 기계의 발달과 함께 인간은 더 고독해 지고 ‘소외’의 문제가 발생하자 소통의 도구를 발명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페이스 북이라든지 혹은 트위터 같은 것입니다.
저도 트위터를 사용하면서 한 번도 소통하지 못했던 사람들과 소통하면서 서로 정보를 주고 받으며 정을 나눕니다.
세상도 이런 소통의 노력을 하고 있다면,
이제 교회 내에 있는 벽들로 속히 무너짐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그래야 우리는 인간을 차별하지 않고 수용하는 진정한 사랑의 공동체를 보여줄 수 있지 않겠습니까?
예수를 믿으라고 하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고 못 믿겠다는 소리를 들어서야 되겠습니까?
외로움에 목말라 하는 이웃들에게
그리스도의 비밀을 알리므로 냉대 받지 않고, 치유 받고,
사랑받을 수 있는 곳이 있다고 소개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곳이 교회라고, 교회가 피난처라고, 교회가 병원이라고,
교회가 당신의 영적인 집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런 의미에서 교회는 세상이 찾고 있는 비밀의 공동체입니다.
2.교회 비밀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울은 오늘의 본문에서 이 복음을 받고 전하는 교회 공동체의 일꾼이 된 것이 너무나 감격스럽고 감사하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7절입니다.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고 하였습니다.
구원이 은혜인 것처럼
구원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꾼이 된 것도 은혜의 선물인 것입니다.
바울이 복음의 사역자가 된 것은,
자기의 인격 소질로 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되었습니다.
곧, 그리스도를 핍박하던 그가 하나님의 은혜로 사도가 되었습니다.
그 은혜는 하나님의 능력의 역사로 나타나서 그의 인격을 변화시키신 것입니다.
7절에 나오는 “일군”은 헬라어로 “디아코노스”라고 하는데,
“손님의 식탁에서 시중드는 자”를 가리키는 말로 하인, 봉사자, 집사,
섬기는 자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울사도는 그리스도 예수로 인하여 일군이 되었다고 스스로 고백하고 있습니다. 자신은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파하기 위하여 세움을 입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의 일군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첫 번째로, 고난을 극복해야 합니다.
1절에보면 바울사도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그리고 감옥에서도 복음을 쉬지 않고 전했습니다.
우리에게 도전을 주는 말씀입니다.
요즘 복음을 전하면 감옥에 가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오히려 열심히 한다고 칭찬을 들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복음을 전한다는 자가 적습니다.
왜 그럴 까요? 고난을 두려워하고, 수고를 하기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너무나 안이해 졌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일군이 되려면,
첫 번째는, 고난을 각오해야 합니다.
1) 새벽기도 각오해야 합니다.
2) 주일성수도 각오하고
3) 전도 각오해야 합니다.
4) 헌신, 충성 각오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비밀을 깨달아야 합니다.
바울사도가 말하는 비밀은 “복음”입니다.
복음은 원래 하나님의 비밀에 속한 것이었습니다.
알려지지 않았던 것이었습니다.
그 누가 천지를 창조하신 성자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셔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할 줄 알았겠습니까?
1) 성경을 연구하는 바리새인들도 몰랐습니다.
2) 세례요한도 잘 몰랐습니다.
3) 3년 동안 동거 동락했던 제자들도 몰랐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깨달을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알 수 있었습니다.
1) 바울사도는 복음을 깨닫기 전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쫓아다녔습니다.
2) 바리새인들은 주님의 말씀을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3) 제자들도 주님께서 잡혀가시던 날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로 복음을 깨달았을 때
비로써 하나님의 일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세 번째는, 하나님의 능력을 확신해야 합니다.
바울사도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복음의 일군이 되었지만,
자신의 힘만으로는 사역을 감당할 수 없었습니다.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 강하게 임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저와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1) 돈 2) 지혜 3) 능력 4) 재능 5) 학력 6) 경험... 물론 이런 것이 필요하지만 이것 보다 더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1) 삼손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니 나귀턱뼈로 일천명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2) 다니엘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니 사자굴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3) 스펄젼 목사님에게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니 복음을 감당할 수 있었습니다.
이 하나님의 능력이 이 시간에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외지교회가 서로 화합하여 하나님을 만나는 공동체로 자라나게 하옵소서.
개인이 성장하고, 서로연결하며 남의 유익을 생각하게 하시고,
은혜의 경륜에 따라 복음의 일군으로 살게 하여 주옵소서.
1) 고난을 극복하게 하시고
2) 비밀을 깨달아 알게하시고
3)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주신 소명 감당하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