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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마태복음 17장 14절로 20절에 있는 말씀을 가지고 “작은 믿음에서 큰 믿음으로” 이런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말씀이 마가복음에도 자세하게 기록이 되어져 있는데 제자들이 주님께 나와서 묻습니다.
“주님 우리들은 어떻게 왜 우리는 귀신을 귀신들을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그러니까 오늘 말씀에서는 “너희의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이렇게 기록이 되어 있는데, 마가복음 9장에 보면 “기도와 금식 이외에는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 이렇게 예수님께서 답변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에게 필요했던 것은, 제자들이 귀신을 쫓아내기 위해서 필요했던 것은, 예수님께서 마가복음의 관점으로 보면 “기도가 없어서 기도가 없었기 때문에 이런 유들이 나가지 않았다.”고 하신 것입니다. 한마디로 얘기하면 능력이 부족해서 나가지 않았다 이런 얘기를 한 것이죠.
왜 제자들이 예수님께 “왜 우리는 쫓아내지 못했습니까?”라고 물었는가 하면 제자들이 그전에는 귀신들을 쫓아냈거든요. 각 처에 나가서 복음을 전하면서 병든 자를 위하여 기도했을 때 병이 났고 귀신 들린 자를 위해서 기도하며 귀신이 쫓겨나가는 그런 일들이 실제로 있었거든요.
그런데 이번에는 귀신 들린 그 아이가 쫓겨나갈 줄로 알았는데 안 나가는 겁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예수님, 예수님은 하셨는데 왜 우리는 안 된 겁니까?”라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 이와같이 대답을 하신 겁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 또는 다른 성경에는 “기도와 금식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가지 아니하느니라”
이와같은 예수님의 대답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대답 속에는 “너희들의 능력이 부족해서 결국에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것이다. 그러니까 너희가 이런 귀신들을 쫓아내려면 더 많은 능력을 가져야 한다.” 이렇게 예수님의 말씀을 이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17장 20절에 있는 “너희 믿음이 작은 까닭이니라” "믿음이 작았기 때문에 결국에는 너희가 귀신을 쫓아내지 못한 것이다."라고 예수님의 말씀을 또 우리가 이해 해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를 종합적으로 이해를 해보면 “우리가 기도를 많이 하게 되면, 우리의 믿음이 큰 믿음이 될 수 있다.”라고 답을 확정지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이런 작은 믿음에서 큰 믿음으로 성장하여 어떤 귀신이라도, 어떤 귀신 들린 자라도 능히 쫓아낼 수 있는 그러한 삶을 우리들이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 비결이 뭘까요?
비결은 기도하는 것이고, 열심히 기도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의 믿음을 키우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믿음이 자라가는 방법, 믿음이 커지는 방법에 대해서 몇 군데 이렇게 기록된 것이 기록이 되어져 있어요.
어느 날 제자들이 누가복음 17장에 5-6절에 보면 제자들이 예수님께 구합니다.
(눅 17:5, 개정) 사도들이 주께 여짜오되 우리에게 믿음을 더하소서 하니
(눅 17:6, 개정)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에게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 있었더라면 이 뽕나무더러 뿌리가 뽑혀 바다에 심기어라 하였을 것이요 그것이 너희에게 순종하였으리라
“예수님 우리가 믿음이 너무 부족하니까 우리에게 믿음을 더해 주십시오.”라고 부탁을 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너희가 만약 겨자씨 한 알 만한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면 너희가 이 뽕나무더러 명하여 저 바다에 심기어라 라고 말을 하였을 것이오"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그렇죠? 예수님은 지금 제자들이 믿음을 좀 보태주십시오. 믿음이 우리에게 넘쳐나게 해 주십시오. 그렇게 구하고 있는데 예수님은 답을 내린 게 뭐라고 했냐 하면 “너희가 작은 믿음이 있었다고 한다면 너희가 말을 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말에 어떤 것들이든 다 순종을 하게 되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 믿음을 어떻게 하면 성장할 수 있다고 키울 수 있다고 말씀하시는 거죠? 말을 하는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말을 하면 된다”라고 하는 것이죠. 오늘 우리들이 어떻게 하면 우리들의 믿음을 키울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들의 믿음을 작은 믿음에서 큰 믿음으로, 그냥 관념적인 믿음 - 나도 저런 일을 할 수 있어. 이렇게 생각만 하는 그런 믿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삶을 변화시키고 귀신을 쫓아내고 어떤 응답을 가져오는 이런 믿음을 우리들이 구현해낼 수 있을까요? 그 방법이 뭘까요? 그것은 바로 작은 믿음에서 큰 믿음으로 우리들이 자라가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우리들이 작은 믿음에서 큰 믿음으로, 관념적인 믿음에서 역동적인 믿음으로 우리의 삶을 우리의 믿음을 이끌 수가 있을까요?
첫째로 믿어야 합니다.
어떤 일들을 우리들이 믿을 때, 역동적인 믿음을 향하여 출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생각만 하는 믿음 즉 나도 저런 것을 할 수 있어. 예수 믿으면 저런 삶을 살 수 있어. 예수님은 살아계신 분이니까 저런 일들이 내게도 일어날 수 있어. 이렇게 동의하고 생각만 하는 믿음이 아니라, 실제적으로 기도했더니 응답이 나타나고, 기도했더니 공급이 이루어지고, 기도했더니 병이 낫고, 기도했더니 어떤 막혔던 일들이 풀어지는 역사가 나타나는 그런 믿음으로 자라가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그 첫 번째가 바로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믿음은 믿고자 원하는 그 마음에서 출발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믿으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나도 저런 믿음을 가지면 좋겠다, 믿으려고 하지도 않으면서 나도 저 사람이 가지고 있는 저런 능력을 행하면 좋겠다" 하는 생각을 가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믿음을 우리들이 가지려면, 우리들이 먼저 그런 일들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나의 생각이나 나의 경험이나 나의 어떤 지식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또는 사도들이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우리들의 신분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주는 것이 있습니다.
“너희는 이러이러한 사람이다.”
예를 들어서 고린도후서 5장 17절에 보면 “너희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옛 사람이 아니라 너희는 새로운 피조물이다. 새로운 사람이 되었다.”
또 요한복음 1장 12절에 보면 “너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
이처럼 우리의 어떤 신분에 대해서, 우리의 영적인 변화에 대해서 가르쳐 주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는 잘 안 믿어질 때가 있습니다. 내가 진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인지, 내가 진짜 새로운 피조물이 된 것인지, 진짜 나에게 놀라운 능력과 권능이 실제로 존재하고 있는 것인지 잘 안 믿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우리들이 경험하기 위해서, 나에게 능력이 있는지 없는지를 실제적으로 우리들이 알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요?
해보면 알죠. 실천해 보면 아는 거예요.
그렇죠? 그래서 해봤는데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네. 해봤는데 진짜 완벽하지는 않지만 좀 그렇게 일들이 이루어져 가네.
이런 경험들을 작으나마 하게 되어 질 것입니다. 이런 일들이 왜 일어나게 되어질까요? 왜 어떤 사람에게는 이런 일들이 전혀 일어나지 않고, 어떤 사람들에게는 이런 일들이 진짜 일어나게 되는가? 그 비결은 그들이 믿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성경에는 믿음의 법칙이라고 하는 것이 존재합니다.
예수님께서 마가복음 9장 23절에서 뭐라고 하시냐 하면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이렇게 말씀셨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믿기만 하면, 병든 자를 위해서 기도했을 때 병이 낫기도 하고, 우리들이 믿기만 하면, 귀신 들린 자를 위해서 기도했을 때 귀신이 쫓겨가기도 하고, 때로는 비 오는 하늘을 향하여서 명령을 했을 때 비가 멈춰지기도 하고, 또 하늘이 개이기도 하고, 또 추웠던 날씨의 변화가 일어나기도 하고 하는 이런 일들이 실제적으로, 자연 환경을 거스르는 일들이 실제적으로 일어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예수님의 사역에서 놀라운 이런 과학을 초월한, 자연을 초월한 일들이 수없이 일어났던 것을 기록해 주고 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이 바로 그런 것이고, 물 위를 걷는 기적이 바로 그런 것이었고, 죽은 자가 살아나는 기적이 그런 것이었고, 각종 병자들이 낳는 기적들이 그런 것이었습니다.
“믿는 자에게는 능이 하지 못할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도 나는 할 수 있다 하는 생각을 가지고 이 믿음의 말씀을 여러분의 삶 속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니 내가 기도해서 뭔 일이 일어나겠어? 해보지도 않고 어떻게 압니까? 아예 할 생각을 하지 않으니까, 아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있는 존재로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능력을, 예수님의 권세를 여러분에게 부여해 주셨습니다.
마가복음 16장에 보면 “믿는 자에게 이러한 표적이 따르리니 저희가 내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새 방언을 말하며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
믿는 자가 손을 얹으면 병이 낫는다고 예수님께서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그렇죠? 또 우리가 믿음으로 귀신을 쫓아낸다고 예수님께서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이것을 믿음으로 해보는 겁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이런 일을 할 때 처음부터 귀신이 바로 바로 그냥 쫓겨나가면 좋겠지만 그러지 않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그 말씀을 진짜 단순하게 믿고, 바로 귀신을 쫓아내기도 하지만 어떤 사람은 진짜 될까? 의심 반, 진심 반으로 섞어 가지고 한번 해보기도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들이 생각하는 관념적인 믿음에서 역동적인 믿음, 실제로 삶을 변화시키는, 역사를 일으키는 그러한 믿음으로 우리들이 나아갈 수 있을까요?
믿기 시작함으로 역동적인 믿음의 자리로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일들을 바르게 믿기 위해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되어 있는 것을 믿어야만 합니다. 그래서 우리들이 바른 믿음을 갖기 위해서 성경을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원수 마귀는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경을 가까이하지 못하도록 성경 읽는 것을 방해하는 것입니다.
이런 마귀의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이 성경을 읽으면 성경을 통해서 우리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우리들이 어떤 삶을 살 수 있는지, 우리들이 어떻게 변화가 되어져 있는지,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이미 어떤 것을 이루어 주셨는지, 그래서 우리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 그런 것을 성경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 가르쳐 주고 보여준단 말입니다.
그러나 이 성경을 읽으면 이런 것들을 알게 되니까 아예 모르게 만들기 위해서 아예 접근조차, 생각조차 못하게 하기 위해서, 그냥 성경 읽지 못하게 하고, 듣는 설교를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설교 시간에 졸게 만들고 또 듣기는 들었는데, 눈 뜬 장님처럼 그냥 뜨긴 떴는데 보지 못하는, 듣기는 듣는데 저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생각하지 못하도록, 이해하지 못하도록 만드는 그런 일들을 원수 마귀가 지금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 돼요? 믿기 위해서, 바르게 믿기 위해서, 성경을 열심히 읽어야 되는 것입니다.
바르게 믿기 위해서 성경을 읽을 뿐만 아니라, 읽은 성경을 바르게 깨닫게 하기 위해서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야 됩니다.
성경을 읽는다고 다 그 진리를 다 깨달아 알면 신앙생활 제대로 못하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습니까?
그러나 태반이, 거의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깊은 뜻을 제대로 알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그 깊고 오묘한, 온전한 그 믿음의 길을 그들이 바르게 걸어가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절로 18절에 보면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뭐라고요? 항상 기뻐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또 쉬지 말고 기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왜 그렇게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뜻, 이런 것들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가르쳐 주고 있을까요?
우리들이 이런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갈 때 하나님의 역사가 하나님의 손길이 하나님의 은혜가 함께하기 때문에, 이렇게 힘들어도 너희가 자연적으로 이게 잘 되지 않을지 모르지만 이렇게 살아가라 이렇게 얘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라, 그러면 나의 도움이 너희와 함께할 것이다.”
“너희가 그렇게 살아갈 때, 내가 너희를 효과적으로 도와줄 수 있을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루어진 그 놀라운 보혈의 은혜가, 십자가의 은혜와 능력이, 너희들에게 나타나게 되어질 것이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라”
이렇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믿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들이 하나님의 뜻에 비추어 봐서 내 삶이 내가 진짜 그렇게 될 위인이 아닌 것 같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사람처럼 우리는 인정하고 우리가 그렇게 살려고 힘쓰고 노력하고 나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를 믿는 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말씀 되게,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인 줄 알고, 그 말씀이 실제인 줄 알고, 나의 경험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인정하면서, 웃기 싫어도, 기뻐하기 싫어도, 기뻐하는 삶을, 즐거워하는 삶을 살고, 기도하는 게 힘들어도 기도하는 삶을 살아가고, 그다음에 감사하는 게 부담이 되고, 이해가 되지 아니해도 하나님 이것조차도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할 때 하나님의 은혜가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사도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 갇혔습니다.
아무런 이유도 없고, 죄도 없는데 갑자기 붙잡아서 채찍으로 때리고, 그다음에 감옥에 수갑 채워서 넣어버렸습니다.
얼마나 분통이 터지겠어요? 얼마나 억울하겠어요? 그런데 바울과 실라가 감옥에서 하나님을 찬송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찬송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더니, 하나님께서 감동을 하셔서 옥문이 열리고 수갑이 저절로 풀어지는 이런 일들이 있게 되어졌습니다.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이 베풀어지고, 그래서 그 간수가 자살하려고 하다가 사도 바울 일행이 우리가 다 여기 있으니 네 몸을 해하지 말라. 그러니까 그들이 와서 "어찌 해야 내가 구원을 받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고 복음을 전할 때, 그 가정이 거기서 예수를 믿게 되어집니다.
그게 바로 빌립보 교회가 세워진 최초의 자리가 되어진 것입니다.
그 간수들이 회개함으로 간수의 가정이 회개함으로 그곳에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사도 바울이 그곳에 왜 갔지요? 왜 복음을 전했지요?
하나님의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그들이 간 것 아닙니까?
그런데 공교롭게도 얻어맞고 쥐어 터지고 나서 하나님께 감사드렸더니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기적을 베풀어주시고, 간수의 마음을 열어주시고 그들이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하는 이 이런 기적이 나타나고, 원래 바울이 원했던 그대로 복음이 증거되어지는 일들이 일어날 수가 있게 되어졌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어떻게 해야 됩니까?
우리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힘을 써야 되는 것입니다.
늘 기뻐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항상 기뻐하라.
늘 기도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늘 감사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믿으면서, 받아들이면서 살려고 힘쓰고, 노력하게 되어질 때 우리들의 믿음의 진보가 점점 더 생겨나게 되어 질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믿음, 꿈으로 바라기만 하는 그런 믿음에서 실제적으로 역사를 일으키는 믿음으로 옮겨가기 위해서 무엇을 했습니까?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죠? 그러기 위해서 뭘 어떻게 하라 그랬어요?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을 읽으라는 것입니다. 성경을 읽어도 내가 다 아나요? 나의 힘만 가지고 안됩니다. 나의 지식 가지고 안됩니다.
머리가 똑똑한 사람이 성경을 잘 알 것 같죠? 세상에 천재들의 모임이 있잖아요.
멘사 클럽.
한 번은 신천지에 빠진 사람이 나에게 왔는데 나를 그쪽으로 끌고 가려고 왔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자기를 소개하기를 자신이 멘사 클럽 회원이래요. 그러면서 자기가 얼마나 똑똑한지를 얘기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그렇게 똑똑한 사람이 분별력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경은 머리가 똑똑하다고, 두뇌가 좋다고 이해할 수 있는 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함을 받아야 바르게 분별하고, 바르게 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쨌든 여러분 역동적인 믿음을 갖기 위해서 여러분이 먼저 어떻게 해야 된다고요?
믿어야 합니다.
바르게 믿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된다구요? 성경을 읽어야 됩니다.
성경을 바르게 깨닫기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깨닫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된다구요?
성령님께 도움을 청해야 됩니다.
내가 그냥 읽기만 하면 성령께서 알아서 도와주실 거야라고 하면 안 된다는 겁니다.
실제적으로 내가 성령님께 도와달라고 말을 해야 됩니다.
이게 신앙생활의 비법입니다. 성령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하지만 원수 마귀는 인격적이지 않고 그놈은 비인격적입니다.
내가 원하든 원하지 않든, 그냥 마구잡이로 자기 뜻을 강행시키려고, 나의 인격을 무시하고, 내 생각을 무시하고, 나에게 유익한 것도 무시하고, 자기가 하고 싶은 것만 하려고 밀어붙이는 녀석이지만, 성령님은 우리가 아무리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우리가 진짜 원하지 않으면 안 도와주십니다.
왜냐하면 성령님은 인격적인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바르게 신앙생활하는 것 같고, 바르게 사회생활하는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내가 볼 때는 그렇지 않은 것들도 많습니다. 내가 그런 모습을 보시면서도 “이렇게 살아야지. 이렇게 해야지?” 안 하시잖아요.
여러분이 인격체이기 때문에, 여러분이 깨닫고 어느 순간 부족함이 느껴지면 그때서야 “어떻게 해야 되죠? 이럴 때 어떻게 해야 되죠?”
이렇게 물어오면 그때는 성령님께서 얘기를 하시지만, 물어보지도 않는데 그냥 마구잡이로 “이거야, 저거야, 이렇게 저렇게 하라”고 하면 여러분이 살아나겠어요? 여러분의 마음이 평안하겠어요? 그 도와주는 어떤 그 가르침들이 여러분에게 유익이 되겠어요? 기분만 상하게 될 것입니다.
뭐, 나도 알아. 지금은 내가 경험이 없어서 모르는 것뿐이야. 불만이 터져 나오지 않겠어요. 이처럼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우리가 원하지 않는 일들, 우리가 구하지 않는 일들 함부로 막 하시지 않습니다.
감동을 해서 하늘의 태양이 따뜻한 그 온화한 빛을 비춰주는 것처럼 우리들이 깨닫도록, 깨달을 수 있도록, 생각할 수 있도록, 이해할 수 있도록, 접근할 수 있도록, 문을 두드려주고, 길을 열어주셔서 하나님께 다가오게 만드시는 거지, 강제로 막 끌어다가 여기 앉혀놓고 어떤 일을 하지 않는 여러분에게 그런 일들을 강제로 하게 하시지는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 하나님께 구하세요. "성령님 나를 도와주세요."
그럼 따라 할까요?
"성령님 나를 도와주세요."
수시로 이야기하시기 바랍니다. 수시로 그러면 성령님께서 여러분들을 도와주실 것입니다.
역동적인 믿음 즉 큰 믿음에 이르기 위하여 우리들은 믿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들이 한 번 믿으면, 내가 온전한 믿음을 가질 수 있을까요?
두 번째로 반복해야 됩니다.
바른 믿음의 자리에 이르기 위해서 우리들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기도와 금식 이외에는 이런 유가 나가지 않아 아니하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너희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에, 지금 이 군대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던 것이다.”
이렇게 얘기하신 말씀 아닙니까? 그러니까 반대로 이야기하면 또 마태복음에 나와 있는 그 말씀으로 이해해서 이야기를 하면 “주님 우리가 어찌하여 쫓아내지 못했습니까?” 그때 예수님께서 뭐라 그러셨죠?
“너희 믿음이 작은 연고니라”
이 말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는 것일까요?
“너희 믿음이 커지면 너희는 할 수가 있다. 그런데 그 믿음이 커지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한다구요?” 바로 “꾸준한 기도생활이 필요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꾸준한 기도생활은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반복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우리들이 큰 믿음을 갖기 위해서, 역동적인 믿음을 갖기 위해서 우리들은 반복하는 기도를 꺼려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려진 엘리야도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하기 위하여 그 종으로 하여금 일곱 번까지 가서 보라고 한 말씀이 있습니다.
왕상 18장 42절 “엘리야가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43절, 그의 사환에게 이르되 올라가 바다쪽을 바라보라 그가 올라가 바라보고 말하되 아무것도 없나이다 이르되 일곱 번까지 다시 가라
(왕상 18:44)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 만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이르되 올라가 아합에게 말하기를 비에 막히지 아니하도록 마차를 갖추고 내려가소서 하라 하니라”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도 반복하며 기도를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한번하고 그 다음에 또 구하지 않습니다.
이제 이런 내용들을 우리들의 삶에서 현실적으로 적용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이 기도를 한 번하는 것을 통하여 우리에게 큰 믿음이 주어지고, 또, 우리가 큰 능력을 얻게 될까요?
아니잖아요. 기도는 하고 또 하고 또 하면서, 에너지가 충전이 되어지고 또 충전되어지고 또 충전되어지고 뭐 그런 거 아닌가요? 이처럼 우리가 믿고자 원하는 그 믿음의 내용을 자꾸 말하고 또 말하고 또 말하고 또 말하고 또 말을 하고 또 하나님을 찾고 자꾸 찾는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지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믿음의 문이 열려지게 되고, 우리가 믿음의 역사를 우리의 삶 속에서 경험하게 되어 진다”는 그러한 이야기인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로마서 1장 17절에 보면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라고 기록이 되어져 있는 것입니다.
한번 믿음으로 우리들이 온전한 믿음의 자리에 이른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믿기 때문에, 그 믿음을 통해서 우리가 결국에는 온전한 믿음의 자리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작은 믿음을 가지고 시작을 하기 때문에 작은 믿음이 변하여 큰 믿음이 되어 진다는 겁니다. 작은 믿음에서 큰 믿음이 되기 위해서 뭐가 필요했을까요? 바로 반복하는 게 필요했다는 겁니다.
이제까지 지내왔던 많은 믿음의 사람들의 흔적을 보니까 “어떤 사람들은 한 가지 기도 제목을 가지고 병이 낫기 위해서 한 달을 기도한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두 달, 석 달을 기도한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몇 개월을 기도한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몇 년을 기도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자신의 책 "기도의 기술"이라는 책에서 기도의 응답을 받은 간증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1장 17-23절과 3장 14-21절은 어느 곳에 있는 어떤 교회에도 적용되는 성령님께서 주신 기도입니다.
내 삶의 전환점은 이 기도를 나 자신을 위해 천 번쯤 기도했을 때 찾아 왔습니다.
나는 성경을 펴놓고 무릎을 꿇고 이렇게 말합니다.
“아버지,제가 이 기도를 저를 위해 하겠습니다.이 기도가 에베소의 교회를 향한 아버지의 뜻인 것과 똑같이 저를 향한 아버지의 뜻임을 확신합니다…”
그리고 나서 바울이 “여러분(you)”이라고 한 부분만 “나(me)”로 바꾸어서 기도를 계속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그의 능력이 그리스도 안에서 역사하사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시고 하늘에서 자기의 오른편에 앉히사…
6개월쯤 후에 내가 기도하던 것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계시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내가 이 기도를 내 자신을 위해 기도할 때 일어났던 일입니다.
(케네스 해긴 『기도의 기술』 김진호 옮김. 용인: 믿음의 말씀사, 2009. pp. 122-124.)
짐 골 목사님은 자신이 영적으로 열리게 되었던 기도 응답의 간증을 "약속 위에 무릎 꿇고"라는 책에서 이와같이 소개하였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신약의 구절 중 하나는 에베소서 1장 15~19절이다.
“이를 인하여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 너희를 인하여 감사하기를 마지 아니하고 내가 기도할 때에 너희를 말하노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정신을 너희에게 주사 하나님을 알게 하시고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 그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 안에서 그 기업의 영광의 풍성이 무엇이며 그의 힘의 강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떤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나는 이 구절을 가지고 십 년 동안 매일 경건하게 기도했다. 나는 여전히 이 구절을 놓고 최소한 일주일에 한 번은 정기적으로 기도한다. 나는 어느날 갑자기 하나님의 주권적인 은사로 비전을 보고 영적인 꿈을 꾸게 된 사람은 아니다. 에베소서의 말씀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일정 기간 동안 서서히 얻었다.
위의 사항들과는 직접 관련이 없을 수 있지만, 나의 생각과 증거들을 당신과 나누고 싶다.
에베소서 1장 15~19절에서 우리는 바울이 아버지이자 사도로서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만일 그가 그 당시 신약 교회의 모형을 위하여 이러한 기도를 해야 했다면 우리 시대는 더 많은 기도가 필요하다. 바울은 믿음 안의 양육자들을 위해 이렇게 기도했다.
“너희 마음 눈을 밝히사”(엡 1:18) 다른 번역본은 이것을 “너희의 이해의 눈을(또는 너희의 믿음의 눈을 빛으로 넘치게 하시고”라고 표현한다. 놀랍지 않은가?
수년 동안 내가 헌신적으로 기도했던 방법을 소개한다. 때때로 나는 손을 가슴에 얹고 다음과 같은 기도를 드렸다.
아버지, 지혜의 영, 곧 주님을 향한 귀중한 경외감을 저에게 주십시오. 저는 제 삶에 계시의 영이 임하기를 원합니다. 저는 성령으로 충만해지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을 초자연적으로 알도록 저에게 성령충만함을 주십시오. 당신의 임재의 은혜로 이미 알려진 지식 이상으로 당신을 알 수 있게 하소서.
주님, 저는 당신이 저를 아시는 만큼 당신을 알기를 원합니다. 지금 저는 당신께서 저의 마음의 문을 열고 계시의 빛줄기를 저의 내면에 쏟아주시기를 간구합니다. 마음이 당신의 영광스런 임재로 가득 차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나를 부르신 목적과 선에 대한 긍정적인 기대가 되는 소망을 알기 원합니다. 제가 지금 성령님의 전으로 존재하는 것처럼 저에게 은혜를 베푸사 제 안에 있는 당신의 영광스러운 기업에 속한 풍성한 유산을 저축할 수 있게 하소서. 저는 이러한 보물 상자에서 많은 적립과 인출이 있을 것임을 선언합니다.
오 하나님, 당신의 빛이 저에게 넘쳐서 저를 향한 당신의 능력이 얼마나 큰지를 경험하여 알게 하소서. 저를 믿음의 신자로 삼아 주소서, 지상에서 당신의 위대하신 이름의 영광과 명예를 위해 기도 하옵나이다. 아멘!
(짐 고울 『약속 위에 무릎 꿇고』 석창훈 역. 인천: 도서출판 바울, 2002. pp. 128-130.)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사모님이었던 오레타 해긴 사모님은 자신의 책 "케네스 해긴부부의 평생순종"에서 9개월간의 말씀 묵상을 통해 치유받은 것을 간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절대로 그만 두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신실하십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그분의 말씀에 끝까지 신실하면 하나님은 결코 당신을 실패시키지 않으십니다.
나는 4월부터 그런 심장 상태와 전쟁을 하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12월에 집회를 마치고 돌아왔는데, 나는 더 많은 검사를 받기 위해 다시 의사에게 가보기로 스케줄을 잡았습니다.
어느 날 저녁, 케네스와 내가 우리 집 거실에 앉아 있을 때 내가 성경말씀을 묵상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치유를 받기 위해서는 말씀이 나의 머리가 아닌, 나의 영, 즉 마음속에 들어와 있어야 한다는 것을 나는 깨달았습니다.
내가 거실에 앉아서 그 성경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해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두 개의 손과 같은 것이 나의 심장 속으로 들어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건 바로 성령님이셨습니다. 그 두 손이 나의 심장에서 뭔가를 끄집어내어 그것을 의자 옆에 두었습니다.
바로 그 때 나의 치유가 완전히 끝났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치유가 충분히 나타났던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의 사랑에 대하여 조용히 하나님께 감사를 드릴 때 나의 두 뺨에서 눈물이 비 오듯 흘러내리기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행복했던지요!
하나님께서 나를 지극히 사랑하셔서 그와 같은 치유를 해주셨다고 생각하니 너무도 기분 좋고 너무도 신성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그토록 사랑하시지만, 당신도 그와 똑같이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 중 한 사람을 다른 사람보다 더 사랑하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분을 신뢰하는 우리 모든 사람에게 그토록 놀라우시고 은혜로우신 분이십니다.
(오레타 해긴 『케네스 해긴부부의 평생순종』오태용 옮김. 베다니출판사, 2010. pp. 182-189.)
위의 간증들에서 케네스 해긴 목사님은 천번이 넘는 기도로 6개월만에 응답을 받기 시작했다고 하였습니다. 짐 골 목사님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10년 넘게 기도해온 결과로 영안이 열리고 영적인 꿈을 꾸게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케네스 해긴 목사님의 사모님이었던 오레타 해긴 사모님은 자신의 심장병을 치유하기 위하여 4월부터 12월까지 즉 9개월간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는 중에 치유를 경험한 것을 간증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응답이 오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이 필요한 것을 다들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응답이 오기까지 그들은 멈추지 않고 계속 하나님의 선한 말씀을 묵상하고, 그 말씀들이 자신에게 이루어지도록 기도를 계속하였던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사람들도 수개월에서 10년에 이르는 시간들이 필요했다면 우리들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 역시 우리들에게도 많은 시간들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응답이 오기까지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며 꾸준하게 기도하는 시간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반복하는 것을 두려워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반복하는 것은 믿음의 사람들의 믿음이 온전케 되기 위하여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인 것입니다.
기도 응답이 어떤 기도 제목이냐에 따라서 어떤 것은 며칠 만에 어떤 것은 바로 되지만 어떤 것은 몇 달이 걸릴 수 있고 어떤 것은 그 기도의 양에 따라서 그 분량에 따라서 몇 년이 또 몇십 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이 해야 될 건 뭐예요? 반복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나는 나음을 입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으심으로 나는 나음을 입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들이 해야 될 게 뭐예요? 반복하면서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믿음이 역동적인 믿음이 되기 위하여 걸어야 되는 세 번째는 무엇일까요?
세 번째는 “결과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대로 되었다”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변화된 모습을 우리들이 마음속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기도 응답을 꿈도 안 꾸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냥 기도만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그것은 믿음의 기도가 안 되기 때문에 응답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응답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죠? 응답을 바라봐야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내게 믿음이 있다고 하는 것은 내가 바라는 것이 실상으로 나타난 것으로 여기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관념적인 믿음에서 역동적인 믿음으로 가기 위해서 우리들이 결과를 바라봐야 한다는 겁니다. 기도의 응답을 바라봐야 된다는 겁니다.
내가 원하는 것이 “나는 되었다”라고 자꾸 인정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믿는 방법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를 가르쳤던 그 믿음의 방법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이 믿음의 방법을 배우고, 그 믿음의 방법을 적용하면서, 실질적인 믿음의 역사를 일으키고 그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살아가는 일들이 비일비재합니다.
오늘도 제대로 된 믿음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은 이렇게 결과물을 생각하면서, 그들의 끝을 생각하면서, 그들은 오늘도 풍성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막 11:24, 개정)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서 우리들이 작은 믿음에서 큰 믿음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 출발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됩니다.
내가 원하는 것 즉 하나님 말씀에 있는 그 말씀대로 믿기 시작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고백해야 됩니다. 그리고 이제 그것을 계속적으로 멈추지 말고 이루어질 때까지 반복을 해야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반복을 하느냐? 그것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이루어진 것으로 반복을 해야 됩니다.
“하나님! 나에게 이러한 일들을 일으켜 주시옵소서”가 아니라 “이렇게 이루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면서 기도의 내용이 이루어진 것으로 바라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른 믿음입니다.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아뢰라.”
빌립보서 4장 6절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 하나님 이렇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은혜 베풀어 주시고, 이렇게 응답해 주시고, 이렇게 역사해 주셔서, 또 이렇게 사업의 축복을 주시고, 이렇게 건강의 복을 주시고, 이렇게 치유의 복을 주셔서, 이렇게 놀라운 능력을 주셔서, 이렇게 영안을 열어주셔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변화된 것을 바라보고, 기도가 응답된 것을 바라보고, 날마다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면 주님께서 어느 순간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로 우리에게 이와 같은 일들을 일으켜 주실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들이 작은 믿음에서 큰 믿음으로 자라갈 수 있을까요?
오늘의 말씀을 잘 기억하시고, 한 주간도 아니 평생 이 믿음의 원리를 따라 복된 삶을 살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감사합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들이 작은 믿음에서 큰 믿음으로 변화가 되어질 수 있고, 우리들이 자라갈 수가 있을까요? 그 방법에 대해서 오늘 말씀을 주셨습니다.
주님! 이 말씀을 함께 들은 모든 성도들이 이 말씀을 마음속에 잘 되새기게 하여 주시고, 이 말씀이 저들의 마음속에 잘 박힌 못과 같이 깊이 새겨지게 하여 주셔서 늘 떠나지 아니하고, 이 말씀을 생각하게 하여 주셔서, 이 믿음의 원리를 깨닫고 적용하여서, 모든 영역에서 믿음으로 충만한, 믿음으로 축복받는 복 있는 삶을 사는 성도들이 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능력이 나타나고, 기적이 나타나고, 치유가 나타나는 놀라운 은혜 속에 사는 모든 성도들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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