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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들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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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인 글 스크랩 지상에서의 첫번째 사랑 - 아담의 일기 편 / 마크 트웨인
천사 추천 0 조회 13 10.02.26 20:09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지상에서의 첫번째 사랑 - 아담의 일기 편



지상에서의 첫 번째 사랑

- 아담과 이브의 일기 -

마크트웨인 지음 / 이 상 옮김 / 안미영 그림
 






 

 

 

 


아담의 일기

 

 

 

 


 
 


몇 해인가 전에 나는 이 일기의 일부를 해독했다.

비록 완벽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친구 하나가 한정판 몇 부를 인쇄해 주었다.

그러나 일반 독자들의 손에는 전혀 닿지 못했다.

그뒤 나는 아담이 새긴 상형문자를 더욱 많이 해독하였다. 그리고 이렇게 생각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아담도 오늘날에는 공인(公人)으로서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따라서 그의 일기를

출간해도 별로 지장될 것은 없다'고.

-마크 트웨인

 

 





월요일

긴 머리카락을 지닌 이 낯선 생물은 너무도 거추장스럽다.
언제나 내 주위를 배회하다가는 뒤를 따라오곤 한다. 이런 일은 정말 달갑지 않다.

같이 다니는 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이다. 다른 동물들과 함께 있어 주면 좋을 텐데.
오늘은 구름이 잔뜩 끼고 동풍이 분다. 아무래도 우리들은 비를 맞을 것같다.

우리? 어디서 이런 말을 들었더라.

아, 그렇군. 그 낯선 생물이 사용하던 말이지!






화요일

요즘 며칠은 대폭포수를 조사하며 지냈다. 이 근처에 이 폭포보다 더 멋진 것은 없다는 생각이 든다.

낯선 생물은 그것을 '나이아가라 폭포'라고 부른다.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단다.

여하튼 '나이아가라 폭포'처럼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이유가 되지 않는다.

일시적 기분에 사로잡혀 내놓은 실없는 답변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내가 먼저 스스로 사물에 이름을 붙여 본 일이 없다. 도무지 그럴 기회를 가질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 낯선 생물은 내가 미처 항의할 틈도 주지 않고

눈에 띄는 모든 사물에 닥치는 대로 이름을 붙여 버린다.

그리고는 언제나 똑같은 구실을 늘어놓는다.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여기에 도도새(인도양의 말리셔스 군도에 살던 희귀한 새로 지금은 멸종했다)가 있다고 치자.

 그럴 경우 누구라도 그 새를 보면 한눈에 '도도새처럼 보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그 새는 결국 도도새라는 이름을 갖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런 일에 애달아 해봐야 이쪽만 피곤에 지칠 뿐이다.

게다가 애를 태운다고 해서 별 도움이 되지도 않는다.

도도새! 도대체 어째서 그 이름이 도도새에 어울린단 말인가?

내가 그 새를 닮지 않은 것과 다를 게 무언가.

 



 






수요일

비를 피하기 위해 움집을 하나 지었다.

그렇지만 움집을 나 혼자 평화로이 차지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그 낯선 생물이 침입해 왔던 것이다.

밖으로 밀쳐내려고 하자 그것은 사물을 보는 구멍(눈)에서 뚝뚝 물방울을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앞발등으로 얼굴의 물기를 닦으면서 다른 짐승들이 어려움에 맞닥뜨렸을 때 내는 것과 같은

큰 소리를 내었다.

그것이 지껄이지만 않아 주어도 좋겠다.

끊임없이 조잘대기 때문이다.

마치 내가 이 가련한 생물을 헐뜯기나 비방하기라도 하려는 듯이 들릴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특별히 그런 의미로 말한 것은 아니다.

사람의 소리라는 걸 나는 이제껏 한번도 들어본 일이 없다.

그래서 마치 한 폭의 그림 같고 꿈결 같은 정정을 깨뜨리는, 무언가 귀에 익지 않은 새로운 소리가

침입해 들어오면 그 소리가 귀에 거슬려 불협화음 같은 기분이 드는 것이다.

 

게다가 이 새로운 소리는 섬뜩할 정도로 가까운 곳.

내 어깻죽지 바로 밑이나 귓가에서 들려온다.

처음에 이쪽에서 나는가 하면 다음에는 반대쪽에서.

 

나는 이제까지는 다소 떨어진 거리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익숙해 있었던 것이다.




금요일

내가 아무리 막으려고 해도 사물에 이름붙이는 일은 차근차근 진행되고 있다.

나는 내가 사는 땅에 알맞은 훌룡한 이름을 갖고 있었다.

음악적이고 아름다운 이름. 바로 '에덴 동산'이다.

나 스스로는 지금도 그렇게 부르고 있지만, 공공연하게는 더이상 그렇게 부를 수 없게 되었다.



그 낯선 생물은 말하기를, 이곳은 숲이라든지 바위라든지, 풍경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정원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공원'처럼 보일 뿐 아니라, '공원' 이외의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 결과 나와는 의논조차 없이 제멋대로 '나이아가라 폭포 공원'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 버렸다.

이것은 너무도 고압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는 어느 틈에 벌써 팻말까지 세워 놓았다.



"잔디밭에 들어가지 마시오."



나의 생활은 이제 이전처럼 즐겁지가 못하다.

 


 




 

 



토요일

그 낯선 생물은 과일을 너무 많이 먹는다.

이러다가는 틀림없이 먹을 것이 바닥나고 말 것이다. 또 '우리'라는 말을 썼는걸.

그 생물의 말이건만, 하긴 이제는 내 말도 되어 버렸다.

수도 없이 들어왔으니.

오늘 아침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었다.

나는 안개가 낀 날은 외출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 낯선 생물은 안개 낀 날에도 밖으로 나간다.

어떤 날씨에도 밖으로 나갔다가는 잔뜩 진흙이 묻은 발로 쿵쿵거리며 들어온다.

그리고는 계속 떠들어댄다. 이전에는 이곳도 즐겁고 조용한 곳이었는데.




일요일

마침내 하루가 지나갔다. 오늘은 점점 피곤한 날이 되어간다. 11월부터 일요일이라는 것이 정해졌다.

그리고 다른 날과 구별되어 휴식을 위한 날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전에는 쉬는 날이 한 주일에 엿새나 되었다.

오늘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 낯선 생물은 금단의 나무에서 사과를 따기 위해 흙덩이를 던지고 있었다.






월요일

그 낯선 생물은 자신의 이름을 이브라고 했다.

그건 아무래도 좋다. 특별히 반대할 이유도 없다.

이름은, 내가 그것을 가까이 오도록 하고 싶을 때에 부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면 그것은 '불필요한'일이라고 말해 주었다.

그 말을 드는 순간 나에 대한 그것의 존경심이 한층 높아졌다.

확실히 그 말은 폭넓고 유익한 표현으로서, 앞으로는 종종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그것은 자신이 '그것'이 아니라 '그녀'라고 말했다. 그 말은 아무래도 괴이쩍다.

그렇지만 내게는 어느 쪽도 마찬가진인 것이다. 그녀가 무엇이든 나와 무슨 관께가 있겠는가.

만일 그녀가 홀로 제 갈 길을 간다면야. 그리고 수다만 떨지 않는다면.




화요일

그녀는 이 땅의 여기저기에 꺼림칙한 이름들을 갖다 붙이고는, 눈에 거슬리는 팻말을 세워 놓았다.



<월풀 가는 길>
<고트 아일랜드 가는 길>
<바람의 동굴은 이 길로>*



이 공원은 손님만 있으면 틀림없이 피서지가 될 것이라고 그녀는 말했다.

피서지도 그녀가 지어낸 말이다.

아무런 의미도 없는 단순한 말에 지나지 않지만. 피서지라는 게 뭐지?

그렇지만 그런 질문은 하지 않는 게 상책이다. 그녀는 설명하고 싶어 좀이 쑤신 상태이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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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풀,고트 아일랜드, 바람의 동굴은 모두 나이아가라 폭포의 관광 명소이다.




금요일

그녀는 폭포를 건너는 일만은 그만두어 달라고 간청했다.
도대체 어떤 위험이 있다는 거지?

그녀는 폭포수를 보면 몸이 떨린다는 것이다. 왜 그런지 나는 까닭을 모르겠다.

그건 내가 이제껏 늘 해오던 일이다. 물 속으로의 자맥질과 시원함이 언제나 좋다.

내 생각으로는 폭포란 이런 일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다른 용도가 있다고 해도, 무언가 다른 목적을 위해 생겨났다고 해도, 그것이 무엇인지 나는 모른다.

그녀는 폭포가 그저 풍경을 위해 만들어졌다고 주장한다.

무소나 마스토돈(코기리를 닮은 기원전3세기 경의 포유동물)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나는 통나무를 타고 폭포를 건너려고 했다. 그녀가 내켜할 리 만무하다.

그래서 함지를 타고 건넜다.

그녀는 여전히 불평을 늘어놓았다. 하는 수 없이 무화과나무 잎사귀를 몸에 두른 채 월풀과 래피즈의

소용돌이 속을 헤엄쳤다. 무화과나무 잎사귀는 곧 갈갈이 찢어지고 말았다.

쓸데없는 데 물품을 낭비한다고 그녀에게서 진절머리날 정도로 잔소리를 들어야 했다.



이곳은 이제 너무도 거추장스러운 곳이 되어 버렸다. 내게 필요한 것은 환경의 변화다.






토요일

화요일 밤에 그곳을 빠져나와 이틀을 돌아다닌 끝에 마음에 드는 곳을 발견했다.

그곳에 또 하나의 움집을 지었다. 그리고 가능한 한 발자국 흔적을 지우기 위해 애썼다.

그렇지만 그녀는 이내 나를 찾아내었다.

평소에 길들여 놓은 '이리'인가 하는 이름으로 불리는 동물을 길잡이로 사용하였던 것이다.

그리고는 또 다시 처량한 소리를 내며 눈물을 흘렸다. 나는 먼저 있던 곳으로 그녀와 함께 돌아가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기회가 오면 곧 다시 달아날 생각이다.

그녀는 여러 가지 바보 같은 짓을 한다.

특히 바보 같은 일은 사자라든지 호랑이 같은 동물이 왜 풀이나 꽃을 먹고 사는가 하는 이유를

연구하는 따위다. 그녀의 말로는 그런 동물들의 이빨은 서로 상대방을 잡아먹도록 생겼다는 것이다.

정말로 어리석은 일이다.

그렇게 되면 서로 죽이게 되고, '죽음'이라는 것이 생겨날 것이다.

죽음이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은 있지만, 내가 알기에 아직 그것이 이 '공원'에 들어온 적은 없다.

그것은 여러 가지 점에서 유감스러운 일이다.






일요일

지루한 하루였다.

 

 






월요일

평일이 왜 있는지를 마침내 알았다.

일요일의 권태를 털어 내고 몸을 쉴 수 있도록 여가를 주기 위해서다.

정말로 기발한 생각이라는 느낌이 든다.

 

 

 



 


 

 


그녀는 또 다시 그 나무에 기어 오르고 있었다. 흙덩어리를 집어던졌더니 나무에서 내려왔다.

그녀는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다고 말했다.

어떤 위험한 일을 해도 보는 사람이 없다면, 충분히 정당화된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그렇게 얘기해 주었다.

그녀는 정당화라는 말에 감탄사를 아끼지 않았다. 한편으로 부러워하는 것으로도 생각되었다.

그것은 참 좋은 어휘이다.




화요일

그녀의 이야기에 따르면, 그녀는 내 갈비뼈 하나로 만들어 졌다고 한다.

거짓말은 아닐지 몰라도 괴상하기 짝이 없는 이야기다.

내 갈비뼈는 없어진 게 하나도 없기 때문이다.

그녀는 밧저드 새에 관한 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풀을 먹지 않기 때무에 기를 수가 없고, 꼭 썩은 고기를 먹으려고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밧저드 새는 아무 모이나 주는 대로 먹고서도 잘 살 수 있어야 한다.

밧저드 새만의 편의를 위해 모든 구조를 뒤바꿀 수는 없는 일이다.




토요일

그녀는 어제 연못에 빠졌다.

늘 하던 버릇대로 연못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들여다보다가 빠진 것이었다.

그녀는 거의 질식할 듯했다.

그리고 그처럼 기분이 좋지 못한 경우는 처음이었다고 했다.

그러더니 그녀는 연못에 사는 것들을 몹시 동정하기 시작했다.

그녀가 '물고기'라고 부르는 것들을 말하는 것이다. 지금도 그녀는 변함없이 이름을 붙이고 있다.

 

이름이 도무지 필요하지 않고, 이름을 부른다고 모여들 리도 없는 것들에게까지 이름을 붙여 주는

것이다. 불러서 오지 않아도 그녀에게는 그다지 중요한 문제가 아닌 모양이다.

어쨌든 그녀는 그만큼 바보다.

그런데 그녀는 어젯밤 여러 마리의 물고기들을 연못에서 건져내어 가지고 돌아왔다.

그리고 물고기들을 따뜻하게 해주기 위해 내 침대 속에 집어넣었다.

그것들의 모습을 하루종일 지켜보았지만 이전보다 침대 속에서 더 행복한 것 같지는 않았다.

다만 좀더 얌전히 있을 뿐이었다. 밤이 되면 밖으로 던져버려야겠다.

이제 다시는 그들과 함께 잠을 자지 않으리라.

몸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에서 물고기들 틈에 누워 잔다는 것은 몹시 끈적끈적하고 불유쾌한

일이었던 것이다.

 



 





 


일요일

지루한 하루였다.

 






화요일

그녀는 이번에는 뱀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다른 동물들은 모두 즐거워했다.

늘 실험대상이 되던 것이 괴로웠기 때문이다. 나도 기뻤다.

그 뱀이 말상대를 해주기 때문이다. 덕분에 나는 잠깐의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금요일

그녀는 뱀이 그 나무의 열매를 따먹어 보라고 권하더라는 말을 했다.

그 결과는 아주 위대하고 멋진, 그리고 고상한 교훈이 되리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말해 주었다. 또 다른 결과도 있을 것이라고.

결국 이 세상에 죽음이라는 것이 생기고 말 것이라고.

쓸데없는 것을 말해 버린 꼴이었다.

그 이야기는 나 혼자 가슴속에 묻어 두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내 말을 듣자마자 그녀는 어떤 생각을 떠올렸다. 이를테면 앓고 있는 밧저드 새를 구출하고,

무기력한 사자와 호랑이에게 날고기를 줄 수 있을리라는 데 생각이 미쳤던 것이다.

그녀에게 그 나무에는 가까이 가지 말라고 충고했다.

그녀는 싫다고 했다. 어쩐지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날 것만 같다.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




수요일

파란만장한 하루였다. 나는 어젯밤 그곳을 도망쳐 나와 밤새도록 있는 힘을 다해 말을 달렸다.

공원에서 성공리에 빠져나와 고통스러운 일이 일어나기 전에 어디든지 다른 곳에 몸을 숨기고 싶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는 되지 않았다.

해가 떠오른 지 한 시간쯤 되었을 무렵,

나는 수천 마리의 동물들이 제각기 습성에 따라 풀을 뜯고, 잠을 자고, 서로 장난을 치고 있는

꽃이 만발한 초원을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동물들이 미친 듯이 울부짖기 시작하더니 한순간에 초원은 광란의 소용돌이로 변했다.

짐승이란 짐승은 모두들 가까이에 있는 다른 동물들을 물어뜯어 죽이는 것이었다.

그것이 어쩐 일인지 나는 알 수 있었다.

이브가 그 과일을 먹었고, 이 세상에 죽음이 생겨난 것이다.

호랑이들은 나의 말을 잡아먹었다. 내가 그만두라고 말했건만 귀기울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그 자리에 꾸물거리고 있으면 나까지도 잡아먹을 기세였다.

나느 그곳을 빠져나와 있는 힘을 다해 도망쳤다.

 

 



 


 

 


그래서 발견한 것이 이곳이다.

이곳은 '공원'의 바깥에 위치한 곳으로서, 얼마 동안은 마음이 무척 편했다.

그렇지만 그녀에게 발견되고 말았다.

그녀는 나를 찾아내곤 이곳을 토너원더(이리호 부근의 도시)라고 이름지었다.

그처럼 보이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사실 나느 그녀가 찾아온 것을 원망스럽게 생각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여기에는 아주 조금밖에

먹을 것이 없었는데, 그녀가 그 사과를 몇 개 가지고 왔기 때문이다.

사과를 먹지 ?을 수는 없었다. 몹시 배가 고팠기 때문이다.

그것은 내 주의에 어긋나느 일이었다.

그러나 주의란 것은 충분히 배가 부를 때를 제외하고는 별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게 되었다.

그녀는 이곳으로 올 때 나뭇가지와 나뭇잎을 엮은 것으로 몸을 가리고 있었다.

무엇하러 그런 바보 같은 짓을 하느냐며 그것을 던져 버리자, 그녀는 킥킥거리며 얼굴을 붉혔다.

킥킥 거리거나 얼굴을 붉히는 녀석을 나는 이제껏 본 일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의 모습은 아무래도 어색하고 바보스러워 보였다.

그녀는 나도 곧 어떤 형편인지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것은 옳았다.

나는 배가 고픈데도 불구하고 반쯤 먹던 사과를 옆으로 내려놓았다.

사과는 비록 제철을 지난 것이었지만, 지금까지 먹어 본 적이 없는 정말 맛있는 것이었다.

나는 아까 던져 버린 나뭇가지를 주워모아 내 몸을 가렸다.

그리고 다소 엄숙한 어조로 그녀에게 나뭇가지를 가져다가 노출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라고 명령했다.

그녀도 내가 시킨 대로 했다.

그런 다음 우리는 조금 전에 짐승들이 싸우던 장소로 가서 모피를 주워모았다.

그리고 그녀에게 그것을 꿰매서 공공장소에서 입는 데 어울리는 정장을 두 벌 만들게 했다.

착용감은 좋지 않았다. 그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제법 맵시가 있었다.

옷이라는 건 우선 맵시가 중요한 것이다.

그녀가 동반자로서 훌륭한 존재임을 알았다.

그녀가 없으면 나는 몹시 외롭고 맥이 풀리는 것이다. 어쨌든 나는 이제 나 자신의 재산을 잃어버렸다.

 또 하나 그녀가 말해서 알게된 것이있다.

그것은 이제부터 우리가 생계를위해 스스로 일을 해야 하는 운명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녀는 퍽 쓸모가 있을 것이다.

잘 감독해야겠다.




열흘 후

그녀는 이와 같은 재앙은 내 탓이라고 비난했다.

그녀는 사탄이 자기에게 금단의 열매는 사과가 아니라 밤이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었다고

정색을 하며 말했다. 그래서 나는 말해 주었다.

나는 밤 같은 건 먹은 적이 없기 때문에 결백하다고. 그랬더니 그녀는 사탄이 가르쳐 주기를,

'밤'이란 비유적인 말로서 아주 낡고 케케묵은 농담을 의미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들은 나는 새파랗게 질렸다. 왜냐하면 나도 그동안 적지 않은 농담을 하면서 따분한 시간을

보냈을 뿐더러, 그 가운데는 그런 종류의 농담도 있었을 것으로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농담을 할 때 그것들이 새로운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만은 확실하지만 ‥‥‥.

그 파국이 일어나던 순간에 내가 무슨 농담 같은 것을 한 적이 없느냐고 그녀는 물었다.

나는 소리를 내어 말한 것은 아니지만 스스로를 향해 한 가지 농담을 했노라고 대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이와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 폭포에 관해 생각하다가 혼잣말로 이렇게 말했다.



'거대한 물기둥이 저렇게 굴러떨어지다니, 얼마나 멋진 풍경인가!'

 

 



 


 


그때 갑자기 머릿속에 한 가지 기발한 생각이 떠올랐다.

그래서 생각의 나래를 펼치며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저 물이 하늘을 향해 거슬러올라간다면, 훨씬 황홀한 모습이 될 텐데.'



이 실없는 소리가 너무도 우스꽝스러워서 스스로 생각해도 우스워 죽을 지경이었다.

그런데바로 그때 자연계의 모든 동물들이 풀려나면서 전쟁과 죽음의 아스라장으로 변했다.

그래서 나도 살기 위해 도망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자 그녀는 의기양양한 어조로 외쳤다.

"바로 그거야. 사탄이 들려 준 농담이 바로 그거라구.

그것을 <최초의 밤>이라고 부르면서, 천지창조와 함께 생겨난 것이라고 말했어."



아아! 정말로 책망받아야 할 존재는 바로 나로구나.

내게 기지 넘치는 재주가 없었으면 좋았을 것을.

아아! 그런 기발한 생각일랑 떠오르지 말았어야 했는데‥‥‥.

 

 



 




 



그 이듬해

우리들은 그것들을 카인이라고 이름지었다.

그녀가 그것을 잡은 것은 내가 마침 이리호 북쪽 연안으로 사냥을 나가 있는 동안이었다.

그녀는 아무래도 그것을 우리들이 살고 있는 움집에서 2마일 저도 떨어진 숲 속에서 잡은 것 같다.

혹시 4마일 정도인지도 모르지만, 그녀는 어느 쪽이 맞는지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은 몇 가지 점에서 우리를 닮았다. 친족 관계라도 되는 듯이 그녀는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렇지만 내 판단으로는 그것은 틀린 생각이다. 몸집의 크기만 보아도 그것이 우리들과는 다른

새로운 종류의 동물이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다.



혹시 물고기가 아닌가 하고 시험삼아 물 속에 집어넣어 보았더니 그대로 가라앉고 말았다.

그녀가 달려들어 곧바로 건져내었기 때문에, 모처럼의 실험으로도 그것이 물고기인지 아닌지 결론을

내리지 못하고 말았다. 나는 지금도 그것이 물고기일 것이라고 생각하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는 그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도대체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아무리 해도 내게 다시금 시험에 볼 기회를 주지 않는다. 나는 이해할 수가 없다.

 



 


 


이 동물이 오고 나서 그녀의 성격은 완전히 변해 버린 듯하다.

이런 저런 실험에 대해 도무지 무관심해진 것이다.

이 동물을 다른 여느 동물보다 끔찍이 위하면서도 왜 그런지는 설명하지 못한다.

그녀의 마음은 혼란스러워 갈피를 못잡고 있는 것 같다. 그녀의 모든 행동이 그것을 웅변해 준다.

때때로 그 물고기가 칭얼거리며 물 속에 들어가고 싶기라도 한 듯이 보챌 때면,

그녀는 그 물고기를 양팔에안고서 한밤중 가까이 까지 이리저리 거닐곤 한다.

그럴 때면 항상 그녀 얼굴의 눈가에 이슬이 맺힌다.

그녀는 물고기의 등을 토닥거리기도 하고 부드러운 소리를 흥얼거리며 그 물고기를 달래려고 한다.

그리고는 슬픔과 근심을 잊으려고 갖은 애를 쓴다.



그녀가 다른 물고기들에게 이렇게 하는 것을 나는 이제껏 한번도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나는 마음이 몹시 괴롭다.

이전에도 그녀가 새끼 호랑이들을 같은 모양으로 안고서 데리고 논 적은 있다.

우리가 우리들의 땅을 잃기 전의 일이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장난에 지나지 않았다.

새끼 호랑이들에게 준 먹이가 그들의 입에 맞지 않는 경우에도,

그녀는 결코 호랑이들에게 이렇게까지 야단법석을 떤 적은 없었던 것이다.






일요일

그녀는 일요일에는 아무 일도 하지 않은 채 완전히 녹초가 되어 자리에 누워 있기만 한다.

그리고는 그 물고기를 자신의 몸 위에 태우고 즐기며 논다.

바보 같은 괴상한 소리를 내어 즐겁게 해준다든지 물고기의 앞발을 짐짓 깨무는 흉내를 낸다든지

하면서 말이다. 그러면 물고기는 소리를 내어 까르륵 웃는다.

나는 이제껏 웃을 줄 아는 물고기는 한번도 본 적이 없다.

이런 점을 보면 아무래도 의아한 생각이 든다.



나 자신도 일요일을 좋아하게 되었다. 한 주일 내내 쉬지 않고 감독하는 일은 여간 중노동이 아니다.

일요일이 좀더 많이 있어야 할 것 같다.

이전에는 일요일이 몹시 지루했지만 지금은 아주 편리해졌다.



 






수요일

그것은 물고기는 아니다. 도대체 무엇인지 잘 모르겠다.

마음에 들지 않는 일이 있으면 아주 괴상한 소리를 내고, 마음이 흡족하면 '구우 구우' 한다.

그것은 우리들과 같은 족속은 아니다. 왜냐하면 걸음을 걷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날지 못하는 것으로 보아 새도 아니다. 펄쩍 하고 뛰지 못하니 개구리도 아니다.

땅바닥을 기어가지 않는 것으로 보아 뱀도 아니다.

그리고 이제껏 기회가 없어 과연 헤엄칠 줄 아는지 모르는지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물고기가 아니라는 것만은 틀림없는 것 같다.



그것은 그저 누워서 뒹굴기만 한다. 주로 반듯하게 누워 있다가 다리를 쳐들고 바둥거리곤 한다.

다른 동물들에게서는 그런 모습을 한번도 본 적이 없다.

나는 그래서 그것이 불가사의한 존재로 생각된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그녀는 내가 한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모른 채, 그 말을 칭찬만 할 뿐이었다.

내 판단으로는 그것은 처음 보는 불가사의한 동물이거나 일조으이 곤충임에 틀림없다. 그

것이 죽는다면, 몸을 해부해서 구조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알아볼 작정이다.

이렇게도 나를 혼란 속에 빠뜨리는 것은 정말 처음이다.






3개월 후



혼란이 줄어들기는 커녕 점점 커져만 간다. 나는 이제 잠도 제대로 이룰 수가 없게 되었다.

그것은 요즈음은 한자리에 가만히 누워 있지를 않고, 네 다리로 이리저리 왔다갔다 한다.

그렇지만 다른 네 발 짐승과는 달리 앞다리가 매우 짧다. 그

 결과 몸통이 불안정하게 위로 치솟아 있는 것이다. 그 모습이 그다지 매력적이지는 않다.

몸의 생김새는 우리와 매우 닮았으나, 걸음걸이를 보면 우리와 같은 족속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앞발이 짧고 뒷발이 긴 것으로 보아 캥거루 종류에 속할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분명 캥거루와는 다른 변종이다.

진짜 캥거루라면 껑충껑충 뛰어다닐 텐데, 이놈은 절대 그런 법이 없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그것은 아직 동물도감에도 오르지 않은 진기하면서도 재미있는 변종인 것이다.



그것을 발견한 것은 나이기 때문에, 발견에 대한 명성을 획득하기 위해 그 동물에 나의 이름을 붙여

주어도 괜찮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것을 '캥거루럼 아다미엔시스'(아담 과의 캥거루 속)라고 명명하기로 했다.

그것이 이곳에 왔을 때에는 틀림없는 아직 어린 새끼였다. 왜냐하면 그후 굉장히 많이 자랐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 무렵과 비교해 다섯 배는 커졌을 것이다.

그리고 불만이 있을 때는 초기보다 스물두 배 내지는 서른여덟 배나 되는 큰 소리를 내지르게끔 되었다.

 아무리 고압적인 수단을 써도 녀석을 다스리기는 불가능하다.

오히려 점점 역효과만 날 뿐. 그래서 나는 이 방식을 중도에 포기해 버리고 말았다.

그녀는 그것을잘 구슬러 달래거나, 이전에 내게는 절대로 줄 수 없다고 하던 물건들까지 주어가며

다독거리는 것이었다.



앞서 말한 바 있듯이, 그것이 맨 처음 우리 집에 왔을 때 나는 집에 없었다.

그리고 그녀는 그것을 숲 속에서 찾아냈다고 말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것이 단 한 마리뿐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한 마리뿐인 건 틀림없는 사실인 것 같다. 왜냐하면 나는 요 몇 주 동안 몸이 지치도록 여기저기

를 찾아 헤매었던 것이다. 내 수집푸메 한 마리를 더 보태고, 여기 데리고 있는 녀석의 놀이 상대로도

삼기 위한 생각에서였다. 그렇게 하면 녀석이 한층 조용해질 것이고, 우리는 녀석을 좀더 수월하게

길들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하였다.



그렇지만 다른 녀셕은 커녕그림자조차 찾을 길이 없었다.

무엇보다도 불가사의한 것은 발자국 따위의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것은 땅 위에서 사는 것 외에 별 다른 도리가 없을 것이다.

따라서 아무런 흔적도 남기지 않은 채 이곳저곳을 배회하기는 불가능하다.



나는 덫을 열두어 개쯤 설치해 두었다.

그러나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덫에 걸려든 것은 모두 자그마한 동물들뿐으로, 잡으려고 한 놈은 걸려들지 않았다.

다른 동물들은 아마도 무엇 때문에 그곳에 우유가 놓여 있는가를 알아보려는 호기심에 덫에 뛰어들어

본 것으로 생각된다. 그곳들은 결코 우유 같은 것을 마시지는 않기 때문이다.






3개월 후

그 캥거루는 아직 성장을 계속하고 있다.

이것은 정말 기이하고 당혹스러운 일이다. 자라는 데 이렇게까지 오래 걸리는 캥거루는 처음 보았다.

이제는 머리에 털이 나기 시작했다. 그러나 캥거루의 털과는 달리 우리의 머리카락과 똑같았다.

단지 우리의 머리카락보다 훨씬 가늘고 부드러우며, 색깔도 검지 않고 붉으스름했다.

이처럼 변화무쌍하고 불가사의하게 발육하느, 동물학적으로 분류할 수 없는 기형적인 동물을

보고 있자니 발광을 하고 말 지경이었다.

만일 같은 동물을 한 마리 더 잡을 수만 있다면 좋겠지만 그것은 이제 절망적이다.

그것은 새로운 변종인데다 단 한 마리밖에 없는 유일한 표본인 것이다.

그것만은 분명하다.



나는 진짜 캥거루 한 마리를 잡아가지고 왔다.

우리가 데리고 있는 캥거루가 너무도 외롭기 때문에, 제 동족이 하나도 없는 것보다는 그놈을 벗삼고

싶어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우리처럼 낯선 자들 틈에서 보내야 하는 고독한 생활에서 벗어나 조금이나마 친근한 정을

느끼고 동정을 얻을 수 있는 동물을 갖고 싶어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어쨌든 우리는 이 캥거루의 습관이나 습성도 잘 모르고 또한 녀석이 동료들 사이에 있다고

느끼도록 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하면 좋은지도 모르는 낯선 존재인 것이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생각은 잘못된 것이었다.

녀석은 캥거루를 보자마자 그만 경기를 일으키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는 녀석이 이전에 캥거루를 한번도 본 적이 없는 거스으로 확신하게 되었다.

나는 이 가련하고 시끄러운 작은 동물이 딱하게 느껴졌다.

그렇지만 녀석을 행복하게 해주기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이 녀석을 길들일 수 만 있다면 ‥‥. 그렇지만 그건 생각할 수조차 없는 일이다.

온순하게 만들려고 하면 할수록 그것은 더욱 고약해지는 것 같다.

작은 폭풍이 몰아치듯 울부짖고 떼를 써대는 것을 보면 깊은 슬픔에 가슴이 메어진다.

나는 녀석을 풀어 주어 제 마음대로 가게 해주고 싶다.

그러나 그녀는 도무지 내 말을 귀담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말 잔인한 일이며, 여느 때의 그녀 답지 않다고 생각되었다. 그렇지만 그녀 쪽이 옳을는지도

모른다. 녀석을 놓아 주면 녀석은 지금까지보다도 더 고독해질지도 모르는 일이다.

갖은 애를 썼지만 똑같이 생긴 놈을 발견조차 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어째서 그 녀석에게 이런 일이 생겨났단 말인가?

 


 






5개월 후

녀석은 역시 캥거루는 아니다. 확실히 다르다.

왜냐하면 녀석은 그녀의 손에 이끌려 몸을 지탱하고서는, 뒷발로서서 두세 발자국 걷다가

곧 주저 앉아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면 아마도 일종의 곰인 모양이다.

그렇지만 꼬리가 없다. 아직까지 나는 꼬리가 없는 곰을 본 적이 없다.

게다가 머리에만 털이 나 있을 뿐, 다른 데는 하나도 없다.

그리고아직도 계속해서 자라고 있다.

이것은 기묘한 일이다.

왜냐하면 곰이라면 이 녀석보다 빨리 성장을 멈추기 때문이다.

곰은 위험한 동물이다.

우리에게 그 대파국이 일어난 이래 위험한 존재가 되었다.

녀석이 집안을 쏘다니는 동안에는 입마개라도 씌워 놓지 않으면 안심이 되지 않을 것 같다.

나는 만약 그녀가 녀석을 풀어 준다면 그 대신 캥거루를 한 마리 잡아다 주겠다고 제의했다.

그러나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녀는 우리를 온갖 어리석은 위험 속으로 몰아가려고 작정한

모양이다. 그녀도 본 정신을 잃기 전까지는 이렇지 않았는데 ‥‥.




2주일 후

녀석의 입을 조사해 보았다. 아직 위험한 상태는 아니다. 이빨이 한 개밖에는 없기 때문이다.

아직 꼬리는 생기지 않았다. 요즈음은 이전보다 더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그것도 주로 밤중에.



나는 집을 나와 버렸다. 그러나 매일 아침마다 집에 들를 작정이다.

아침밥을 먹기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녀석의 이빨이 더 생겼는지 알아보기 위해서다.

만일 입 안 가득히 이빨이 들어차면, 그때야말로 녀석을 어디론가로 내보내지 않으면 안된다.

꼬리야 있건 없건 그건 문제가 안된다.

곰이란 놈은 꼬리가 없다고 덜 위험한 것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4개월 후

짐승과 물고기를 잡기 위해 한달 정도 집을 비웠다.

그동안 그녀가 버팔로(미국 이리 호 연안의 도시)라고 부르는 곳에 가 있었다.

왜 그렇게 부르는지는 모른다.

그 근방에 버팔로(들소)라고는 없기 때문이라고 하지 않는다면. 내가 없는 동안에 그 곰은 뒷다리만으로

혼자 서서 아장아장 걸음마를 배우고 있었다.

 그리고 '아빠','엄마' 라는 말도 하는 것이었다.

이 녀석은 새로운 변종임에 틀림없다.

이 동물이 우리와 비슷하게 말을 하는 것은 물론 전적으로 우연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뜨라서 거기에는 어떤 목적이나 의미 따위가 있을 턱이 없다. 그렇지만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다. 다른 곰들에게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우리말을 흉내내고, 몸에 털이 거의 없는데다가 꼬리가 없는 것으로보아, 이놈은 분명히 새로운

 종류의 곰이다. 이 동물을 좀더 깊이 연구하는 일은 무지무지하게 흥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머지않아 북방의 삼림지대로 원정을 떠나게 되면, 철저히 조사해 보아야겠다.

분명히 어딘가에 똑같은 놈이 있을 것이다. 곧 떠나야겠다.

그렇지만 떠나기 전에 우선 이놈에게 입마개부터 씌워야겠다.




3개월 후

몹시 힘든 사냥이었다. 새로운 동물을 잡는 일도 헛탕만 치고 말았다.

그런데 그 사이에 그녀는 집에서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았는데 도 한 마리 같은 놈을 잡아놓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런 행운은 이제껏 본 일이 없다.

이 근처 숲에서 백년 동안은 사냥하며 살아온 셈인데, 도무지 그런 행운에 맞닥뜨린 적이 없는 것이다.




다음날

나는 새로운 녀석과 원래의 녀석을 비교해 보았다.

누구의 눈에도 분명한 것은 그 둘이같은 종족이라는 사실이다.

그래서 한 녀석을 박제해서 수집품(콜렉션)으로 삼기로 하였다. 그런데 그녀는 왠지 모르지만 전적으로

 반대를 해왔다. 그래서 나도 그와 같은 생각을 포기해 버리고말았다.

물론 지금도 포기한 것은 잘못이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만일 두 녀석이 도망이라도 가는 날이면,

그야말로 과학상의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 되고 말 것이다.

 

원래의 녀석은 이전보다도 온순해졌으며, 앵무새처럼 웃고 떠들고 할 수 있게 되었다.

녀석이이런 일을 기억하고 있는 것은, 틀림없이 지금까지 앵무새와 함께 생활해왔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고도로 발달한 모방하는 재주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만일 녀석이 새로운 종류의 앵무새라고 밝혀진다면, 나는 혼비백산하게 될 것이다.

그렇지만 이젠 놀랄 필요가 없게 되었다.

왜냐하면 이 녀석은 물고기라고 생각했던 첫날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내 생각이 미치는 한 이미

여러 가지 동물로 변해 왔기 때문이다.

새로운 녀석은 원래의 녀석이 맨 처음 그랬던 것처럼, 아주 똑같이 징그럽게 생겼다.

유황과 날고기를 합쳐놓은 듯한 얼굴색 하며, 털 한올 나 있지 않은 맨머리까지 똑 닮았다.

그녀는 이 녀석을 '아벨'이라고 부른다.




십년 후

그들은 이제 소년이 되었다.

우리는 꽤 오래 전에 그 사실을 알았다.

그들이 너무도 작고 미숙한 몸으로 나타났기에 우리는 당혹해 하지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일은 처음 겪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이제는 몇 명의 소녀도 생겼다.

아벨은 착한 소년이다.

그렇지만 카인도 만일 곰의 모습 그대로 남아 있었다면, 한결 나았을 것이다

(카인은 동생 아벨을 죽이게 된다-창세기).



이렇게 몇 년이 흐른 뒤, 나는 애초에 이브를 오해하고 있었음을 깨닫게 되었다.

에덴 동산 밖에서 그녀와 함께 사는 편이 에덴 동산 안에서 그녀 없이 사는 것보다 나았던 것이다.

처음에 나는 그녀가 너무 수다스럽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만일 그 소리를 침묵시켜 내 생활 속에서 지워 없애버린다면, 나느 분명히 애석해 하게

될 것이다.

아무쪼록 그 '밤'에게 축복이 있기를, 우리를 서로 가까이 맺어 주고,

내게 그녀의 착한 마음과 아름다운 영혼을 가르쳐 준 '밤'에게 축복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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