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달음..
이에 대한 이야기는 수 천년 동안..
아니, 어쩌면 인류가 출현한 태고적부터 마음 한켠에 주어진 과제가 되어 온 물음일 것이다.
깨달음은 세상에 태어나서 한 번도 보지도 듣지도 못한 아주 생소한 동물에 비유할 수 있다. 종교의 경전에서 말하는 이야기로는 저자의 의도처럼 우리는 불에 덴듯한 자각이 아니고서야 알 수가 없다. 그래서, 종교의 본질에 대한 이해는 물과 기름처럼 우리들에게 이질적인 입장으로 살아가게 되는 이유라 할 수 있다.
그 동물을 직접 보지 않고는 그 동물에 대한 전체적인 크기와 질감, 색깔, 눈, 코, 입, 귀 다리의 굵기 모양 등등 세세하게 알 수 없는 노릇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과거 선각자들은 그렇게도 깨달음 또는 재림심판에 대한 이야기만 줄줄이 해 왔는지도 모른다. 옆사람이 어디 갔다와도 우리는 그 사람의 이야기에 의존할 수 밖에 없으며, 들어도 직접 다녀온 그와는 인식의 차이가 있게 마련인 것이다.
사실, 언어라는 것은 그 시대 인류의 약속이다. 그 언어에 가치는 그들이 인식하는 가치관에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유로 아무리 언어로 설명하여도 언어에 제한되어진 가치관의 제한으로 쉬이 일치화 되기 어려운 면을 가지는 것이다. 이러한 한계로 인하여 각자의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몇가지 방법을 제의 하여 본다.
한가지, 현대인류는 자연문명의 과거인류와 달리 우주를 개척하고 있는 기계문명의 현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여러가지 이유로 자연문명의 과거인류보다 과학문명의 현대인류가 깨달음에 이를 수 있는 변화된 최적의 환경이 주어져 있기 때문에 수월할 수도 있다. 아니, 수월한 현대인류이며, 우주적 시각으로 지구에서 갖게되는 인류의 삶의 형식으로 보면 현대인류는 3.5차원의 인류라 이름할 수 있다.
깨달음이라는 인식을 통하여, 개체적 자아로서의 '나'라는 존재의 본질에 대한 인식이 우주적 본성에 대한 인식으로서 우주적 자아에 대한 가치관이 흔히 정신이라고 하는 생각의 영역인 혼(魂)의 영역에 구체화되어, 물물적 본성인 개체적 자아의 불필요한 개입을 제어할 수 있는 여건이 된다. 우주적 자아가 혼의 영역에 실현됨으로서 '깨달음'이 실현된 '부처'가 될 수 있으며 하나님이 보낸 아들로서 '예수'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외침은 부처나 예수나 어느 선각자의 소수의 외침이 아니라, 이제는 우리 모두의 정신에 구현됨으로서 불국정토와 하나님 나라에서의 영원한 삶이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의 의식을 갖기 위해서는 내재된 본성을 발견함으로서 타의의 수동적인 삶이 아닌 자의의 능동적인 삶을 가짐으로서 비로소 누림의 삶이 주어질 수 있을 것이다.
이의 의식을 갖기 위해서는 오직 스스로에게 내재된 본성을 발견함으로서 가능한 것이다. 그 발견에 대한 방법을 몇가지 제의하여 본다. 우주의 모든 존재에게는 스스로 존재케하는 우주의 시작의 성질을 내재함으로서 존재하고 있으며, 모든 대상의 현상과 그 스스로의 욕구를 관찰함으로서 그 자신의 정체성도 함께 발견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의 본성은 우주의 시작의 성질로서 존재하기 때문이다.
아래의 방법 제시는 의견적 사항이므로, 그 방법에 대하여는 그 자신에게 이미 이외의 무한한 가능성이 있으므로 예시적 사항으로 하여 참고만 하였으면 한다. 일상의 생활 중에 때와 장소와 자세와 무관하게 아무런 방해의 의식이 없는 가운데 잠시의 시간으로도 충분하므로, 그 시간이 불현듯 주어진다면 모든 이야기를 잊고 그 인식에 몰입하여 만끽하여 보기를 바라는 바이다.
1. 더하기 (增-증)
지금의 내가 아무것도 없음부터 살과 뼈와 모든 장기와 땅과 하늘과 공기와 해와 달과 수 많은 별들을 더하기 하다보면 완전한 우주를 인식할 수 있지 않을까?
2. 빼기 (減-감)
지금 내 육체에 있는 것 부터 하나씩 빼보다보면 비로소 지금의 존재인 나를 다시금 인식할 수 있지 않을까?
3. 욕구를 쫒아 (內-내)
내 안에서 일으나는 생각, 욕구를 쫒아가다 보면 우주의 시작을 만날 수 있지 않을까?
4. 움직임을 쫒아 (外-외)
하나의 사물의 현상을 쫒아가다보면 우주의 시작을 볼 수 있지 않을까?
5. 멀리 (遠-원)
멀리 아주 멀리.. 멀어져 보면 '나'의 의미가 다시 보이지 않을까?
6. 가까이 (近-근)
가까이 아주 가까이.. 가다보면 '나'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ㅅ
첫댓글 앱솔의 세계로 본 "나"의 구조 하단에 있는 <제0원천자>의 4가지 표시를 대입해 보니 조금은 이해가 되는 듯 하여 적어 봅니다. 1. 더하기 : 모든 문명이 발전하여도 지구의자체는 언젠가는 우주에서 사라지게 되니 그때의 발전된 미래인류는 지구와 함께 사라지는 것이 아닌 다른 새로운 문명을 발전시키기 위해 다른 행성으로 떠나 갈테니 또 다른 시작 즉 문명을 계속 이어 발전 시키는 영원성을 잃지 않는 것이 되니 우주시작의 성질이 아닌가 합니다.2. 빼기 ; 육체, 생각, 등등 모든 것을 제외해도 남아서 있는 무엇인가가 존재하고 있으니 스스로 존재케 하는 그 성질 이 또한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영원성을 의미하는것 같습니다.
3. 움직임을 쫒아 : 씨앗이 사계절을 지나 새로운 열매를 맺은 후 하나의 다른 씨앗이 되어 반복되어 계속 이어져 나가 듯이 그 힘 또는 의지 역시 영원성을 잃지 않음이요,
4. 욕구를 쫒아 : 끊임없이 일어나는 욕구 또한 내면의 이것으로 인함 즉 무의식의 영이 존재함이니..
결국 깨달음의 궁극적가치는 나,(제1당사자, 주체) 너(제2당사자, 객체)가 합해 우리가 되어<하나> 영속성(영생)을 잃지 않는 것이 아닌가 제 견해에서 풀어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모든 수련의 총아를 본듯합니다
게시글 메뉴에 <불경(佛經)에 대한 오해>
- 앱솔의 세계로 본 반야심경(般若心經) 한글풀이 : http://cafe.daum.net/absoul/HnL6/1
- 그림으로 보는 반야심경(般若心經) : http://cafe.daum.net/absoul/HnL6/4
- 무아(無我)와 아뇩다라삼먁삼보리(阿褥多羅三藐三菩提)란? : http://cafe.daum.net/absoul/HnL6/2
- 진여불성(眞如佛性) : http://cafe.daum.net/absoul/HnL6/3
시간 나실 때 천천히 보시고, 어느 정도의 사념을 정리할 시간을 가지신 다음에 나-중에 다시 이야기의 기회를 가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ㅅ
⊙미생물도 인간의 심보와 조금도 다름없이
네트웍 망식으로 고리와 매듭으로 연결 되여
있슴을 히미하게 떠울려 봤습니다._()_
혹시, 역삼각형의 깔때기 모양으로 보았을때, 삼각꼭지가 무기체의 모래알이고 윗면이 유기체의 사람이라고 예를 든다면,
작은 모래알이 부서지는 꼭지점의 미미한 감정이 확대된 것이 사람의 감정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즉, 사람의 감정은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갖는 감정을 모두 느낄 수 있는 당사자이자 대변자이기도 한 일체자라 할 수 있겠습니다. 들어 보셨나요.. 지렁이의 비명소리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