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정생 연재 소년소설
<응달의 나무들> 7회 - 《굴렁쇠 어린이》 1990년 7월호
7
원산 아저씨네 집에 와서 꼭 두 달 반만에 엄마 노루는 산으로 돌아갔다. 다친 다리는 소나무 옹이처럼 마디가 생겼다. 그러나 약간 절뚝거릴 뿐 심하지는 않았다.
은실은 아침 일찍부터 헛간에 가서 쪼그리고 앉아 새끼노루를 쓰다듬어 주고 있었다.
“이쁜아, 산에 돌아가거든 마음껏 뛰어 놀면서 훌륭하게 크거라, 응.”
새끼노루는 엄마 노루를 닮아 눈이 참 예쁘고 착했다. 구슬처럼 반짝거리는 눈동자를 굴리며 빤히 쳐다보는 것도, 조금만 바스락거려도 깜짝 놀라 동그랗게 겁먹은 빛을 보이는 것도, 모두가 은실이 마음에 들었다.
“은실아, 이제 그만 놓아주자꾸나.”
원산 아저씨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아버지, 순재랑 영분이 학교 갔다 오거든 한 번 더 보여주고 보내줘요.”
“그렇냐? 그럼 그렇게 하자.”
은실은 오늘 하루해는 좀 더 오래 길었으면 싶었다. 그러나 한낮이 이내 다가오고 학교 갔던 순재와 영분이가 달려왔다.
“언니! 노루 아직 안 보냈구나.”
영분이는 헛간으로 달려가 엄마 노루의 목을 안아보고 새끼노루의 허리를 껴안아 들어보고 부산을 떨었다.
“영분아, 너무 그러지 말어. 아기노루들이 놀라잖니?”
“괜찮어. 이제 헤어지면 못 볼 텐데 뭐.”
원산 아저씨가 와서 헛간 큰문 빗장을 뽑았다.
“자, 이제 나가서 마음껏 뛰어놀아라.”
큰문이 활짝 열렸는데도 엄마 노루는 멀뚱멀뚱 쳐다보며 나가려 하지 않았다.
“자, 어서 가거라.”
원산 아저씨가 노루 엉덩이를 밀어 문밖으로 몰아내었다. 새끼노루들이 엄마 노루 뒤를 따라 마당으로 나갔다. 엄마 노루는 바깥이 낯선 듯이 두리번거리더니 천천히 걸어갔다. 이내 엄마 노루는 텃밭 비탈로 뛰어가더니 곧장 산으로 상큼상큼 달려갔다.
새끼노루들이 엄마 뒤를 따라 깡충깡충 거리며 뒷산 소나무 숲으로 올라갔다.
산중턱쯤 뛰어 올라가던 엄마 노루가 잠깐 서서 이쪽을 바라 보았다. 은실이 손을 흔들었다.
“잘 가!”
영분이가 소리치고 순재도 손을 흔들었다. 엄마 노루는 새끼노루를 데리고 골짜기 산모퉁이로 사라졌다.
은실은 울고 있었다. 갑자기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렸다.
영분이가 울고 있는 은실이 팔을 붙잡고 얼굴을 기대었다.
“언니, 울지 말어. 노루 산에 가서 잘 살 거야.”
“그래, 산에 가서 기쁠 거야.”
“그러니까 언니는 울지 않아도 되잖어?”
“안 울게. 하지만 언니는 외롭구나.”
은실은 툇마루로 가서 앉아 마루기둥에 얼굴을 묻고 더울 섧게 울었다.
“언니, 돌아가신 어머니 생각나서 그래?”
“…….”
“어머닌 심청이네 어머니처럼 부처님이 계시는 극락에 가셨으니 울지 말어. 연꽃이 이쁘게 피고 사철 봄바람이 분 댔어.”
영분이는 은실을 달래느라 애쓰고, 원산 아저씨는 마당에 서서 먼 곳 하늘을 바라보고 있었다. 순재는 엉거주춤 서 있다가 역시 은실이 곁으로 다가갔다.
“누나, 누나가 울면 나도 엄마 생각이 날 텐데 그만 울어. 누나는 몸도 아픈데 자꾸 울면 해로워.”
은실은 울음을 그쳤다.
“순재야, 내가 잘못했구나. 순재 생각은 안 하고 내 기분대로 이렇게 울고 말았어. 그러나 지금 누나는 참을 수 없단다. 돌아가신 어머니도 불쌍하시지만 살아계신 아버지가 더 가엾으시단다. 아버지는 고향을 떠나와서 혼자서 얼마나 외롭겠니? 가보고 싶어도 갈 수 없고 소식조차 모르고 살고 계시단다.”
이 날 밤 은실은 기어코 열을 일으키고 말았다. 온몸이 불덩이처럼 뜨거워졌다.
순재네 할머니가 밤늦도록 앉아서 간호를 했다.
“은실아, 네가 이렇게 자꾸 아프면 아버지는 더 괴롭고 외로우시지 않겠니? 그러니까 몸을 잘 건사해서 어서 건강해져야지.”
은실은 할머니의 손을 꼬옥 쥐고 고통을 참으려고 애쓰고 있었다.
다음날 은실은 일어났다. 은실은 뜰로 나가 뒷산 소나무 숲을 바라보았다. 떡갈나무잎이 퍼렇게 덮이고 새떼들이 지저귀고 있었다.
“은실아, 몸이 아직 안 좋을 텐데 나와 있어 되겠니?”
원산 아저씨는 걱정스러웠다.
“아버지, 괜찮아요. 노루 이젠 찾아오지 않을까요?”
“왜 안 찾아오겠니, 아직은 헤어졌던 식구들하고 그 동안 있었던 이야기하느라 틈이 없을 거야. 아마 며칠 안으로 찾아올 게다.”
은실은 날마다 노루를 기다렸다. 모퉁이에 바스락 소리만 나도 뛰어가보고 골짜기를 살펴보았다. 그러나 한 번 돌아간 노루는 매정하게도 찾아오지 않았다. 그래도 은실은 그만 두지 않고 기다렸다.
순재네 아버지가 감옥에 끌려갔다는 소식을 들은 것이 그 무렵이었다.
“할머니, 아버지가 왜 감옥에 갔어요? 무얼 훔쳤나요? 아니면 사람을 죽였나요?”
“…….”
할머니는 대답 없이 가만히 앉아있었다. 울고 있는 듯하기도 하고 화를 내고 있는 것 같기도 했다.
“할머니, 왜 암말도 안 해?”
순재는 머뭇거리다가 다시 물었다.
“어서 가자. 들깨모종이라도 심어야지.”
할머니는 순재 말을 못들은 척 일어나 호미를 들고 밭으로 간다.
“벌써 해가 지려고 하는데 인지 밭으로 가?”
“넌 오기 싫으면 오지 말아라.”
순재는 할 수 없이 할머니를 따라 나섰다. 비탈밭에 할머니가 모종으로 심어 놓은 들깨가 밭머리에 소복이 자라고 있었다. 할머니는 들깨 모종을 한웅큼 솎아 밭둑으로 심어나가기 시작했다.
“할머니 몇 포기씩 심으면 돼?”
순재는 다 알고 있으면서 일부러 물었다. 어떻게 해서도 할머니 입을 열게 해서 아버지 소식을 자세히 알고 싶어서였다.
“두 포기씩 심어라. 발자국 하나 사이만큼 건너 심으면 된다.”
아침나절까지 비가 내렸기 때문에 흙은 축축이 젖어서 모종심기는 알맞았다.
해가 지고 어둑어둑할 때까지 할머니는 집으로 돌아갈 생각을 안 했다.
“할머니, 이젠 어두워 안 보인다.”
그제서야 할머니는 굽혔던 허리를 펴고 일어났다. 흙이 묻은 손을 털고 밭머리 둑으로 나와 하늘을 잠깐 쳐다보고 나서,
“순재야, 이리 와서 앉아라.”
그러면서 할머니는 밭둑 풀밭에 앉았다.
“집에 가지 않고 뭣 하려고?”
순재는 그러면서 거뭇거뭇해지는 수풀을 성큼성큼 밟으며 할머니 곁에 가서 앉았다. 이제 갓 피어나는 망초꽃 냄새가 생그럽게 풍겼다.
“순재는 애비 얼굴 아냐?”
“사진으로만 알어.”
“할아버지는?”
“할아버지는 사진도 없잖아?”
할머니는 소맷자락으로 눈가장자리를 훔쳤다. 눈물을 닦았는지도 모른다. 할머니는 순재 보는 앞에서나 누가 보는 데서는 울지 않지만 혼자서 가끔 울고 계실 때가 있기 때문이다.
“할아버니 사진 없어도 괜찮다. 순재가 꼭 할아버지 얼굴하고 같으니까.”
“할아버지는 수염도 안 났어?”
“할아버지가 지금 살아계시면 수염이 났겠지.”
“…….”
“할아버닌 순재 애비가 돌도 지나기 전에 집 나가셨단다.”
“왜 그랬어. 할머니가 살아 계셨는데도 집 나가셨어?”
“할아버지는 배고파 울고 있는 애들이 불쌍하다 하셨거든.”
“그런데 왜 집을 나가셨어?”
순재는 아무래도 알 수 없었다.
“배고픈 사람이 없는 세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하셨었지.”
“그걸 어떻게 하면 되는데?”
다 함께 부지런히 일하고, 다 함께 고루 고루 나눠 사는 세상이 오면 된다고 했단다.“
“지금 모두 부지런히 일하고 있잖아?”
“하고 있지. 일을 너무 많이 해서 오히려 병이 나고 죽기까지 하잖니?”
“그런데 또 어떻게 더 부지런히 일을 해야 돼?”
“그래서 나쁜 거야. 영분이네 아버지도 일을 너무 해서 병이 났는데, 점점 더 가난해지고 있고, 쪼깐네랑 은실네는 저렇게 슬프게 살아야 하니 말이지.”
할머니는 점점 모르는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하늘에 별이 하나 둘 나오고 있었다.
“그만 집에 가자.”
할머니는 순재 손을 잡고 일어섰다. 순재는 자꾸 찜찜해서 일어서기가 싫었지만 할머니 손에 끌려 일어났다.
비탈길을 내려와 개울을 건넜다. 순재는 할머니 겨드랑이 곁으로 꼭 붙어 서서 걸으며 물었다.
“할아버진 그럼 여태 아무 소식도 없었어? 편지도 안 오고?”
“그런 일을 하자면 집 걱정할 틈이 없단다. 굶기도 하고 한 데서 자기도 하고 숨어 다녀야 하고…….”
“왜 그래야 돼? 그건 나쁜 일이 아닌데 왜 숨어 다녀야 하는 거야?”
“그건 네가 크면 알게 된다.”
할머니는 그러면서 더 빠른 걸음으로 돌멩이가 울퉁불퉁 튀어나온 달구지길을 걸었다.
“그럼, 아버지도 같은 거야.”
순재는 할머니 말꼬리 붙잡고 다그치듯 물었다.
“그건 모른다.”
할머니는 순재 손을 잡고 어두워진 달구지길을 쫓겨 가는 사람처럼 걸었다. 할머니 손은 왜 이렇게 힘이 있고 발걸음은 당당한 걸까? 무엇 때문에 주저앉지 않고 할머니는 두 다리를 버티고 살아가는 것일까.
집에 가니 오두막은 캄캄했다.
이날 밤, 순재가 잠에서 깜박 깨어나 살펴보니 할머니는 곁에 없었다. 어스름 달빛이 종이문을 희뿌옇게 비추고 밤뻐꾸기가 울고 있었다.
‘할머니는 뒤란에서 또 칠성님께 빌고 계시겠지. 할아버지를 위해, 아버지를 위해, 그리고 은실 누나를 위해 할머니는 정성껏 치성을 드리시겠지.’
순재는 두 눈을 꼭 감았다.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