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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는 생명을 체험하는 길(2)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서 2장 20절
며칠 저녁 동안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의 생활이 어떠해야 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생활이 어떠한 것이며, 사람이 어떤 방법으로 이김을 얻으려 하고 하나님은 어떤 방법으로 이기시는가를 보았다. 또 이기는 생명이 무엇이고 이 생명의 성질이 어떠한 가를 보았다. 오늘 저녁 우리는 어떻게 이 생명을 체험하는가를 볼 것이다. 우리는 한 가지 중요한 문제인 어떻게 이 생명 안에 들어가고 그리스도를 얻는가를 보아야 한다.
오늘 저녁에 읽은 성경 말씀은 어떻게 이 생명 안에 들어가는가를 우리에게 보여 준다. 먼저 첫 부분은 건너뛰고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라는 부분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이자. 이것은 바로 우리가 체험해야 할 생명이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소극적인 면에서는 더 이상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고, 적극적인 면에서 이기는 생명은 전에 말한 적이 있는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다. 오늘 우리는 갈라디아인들에게 쓴 편지에서 바울이 이 위치에 도달했고 이러한 체험을 가졌으며 이러한 체험 안에 들어갔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이제 우리는 바울이 어떻게 도달했고 어떻게 이 체험을 가졌으며 어떻게 들어갔는가를 보기로 한다. 바울이 어떻게 들어갔는가를 본다면 우리도 들어갈 수 있다.
바울이 그러한 체험에 들어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다음 두 부분의 말씀에 따른 것이다. 첫 번째 부분은 "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 서 사신 것이라" 이며 이 말씀 뒤에 두 번째 부분이 있다. 20절의 첫 구절의 말씀인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는 이러한 생명의 체험 안으로 들어가는 첫째 조건이다. 두 번째 부분은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며 이것이 생명의 체험 안에 들어가는 둘째 조건이다. 바울은 이 두 가지 조건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자신의 의와 거룩함과 승리로 취했다. 이제 이 두 가지를 자세히 보기로 한다.
항복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첫째 조건인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는 대체 무슨 뜻인가? 왜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혀야" 이 이기는 생명을 얻을 수 있는가? 형제자매들이여, 당신 안에 거하시는 이는 대체 몇 분인가? 우리는 우리가 주님을 믿을 때 그분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시인 할 것이다. 고린도후서 13장 5절에서는 "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고 말한다. 우리 믿는 사람은 버리운 자가 아님을 알기 때문에 우리 안에 주님이 거하시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그러나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단지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실 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주님을 이기는 생명으로 체험하기 위하여는 우리 자신이 이사 가고 옮겨져야 하며 우리 자신의 손을 놓아야 한다. 우리 자신이 나갈 때 우리는 이기는 생명을 얻게 된다. 어제 어느 자매가 내게 어떻게 이 이기는 생명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가 이사 가면 된다고 말했다. 한 집에 두 사람이 산다 하자. 우리 믿는 사람은 버리운 자가 아님을 알기 때문에 우리 안에 주님이 거하시는 것은 확실한 사실이다. 그러나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은 단지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거하실 뿐 아니라 우리 자신도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이다. 오늘 우리가 주님을 이기는 생명으로 체험하기 위하여는 우리 자신이 이사 가고 옮겨져야 하며 우리 자신의 손을 놓아야 한다. 우리 자신이 나갈 때 우리는 이기는 생명을 얻게 된다. 어제 어느 자매가 내게 어떻게 이 이기는 생명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가 이사 가면 된다고 말했다. 한 집에 두 사람이 산다 하자. 그 함께 사는 사람이 나쁘면 그로 이사 가게 하면 된다. 지금 문제는 당신 안에 그리스도가 없는 것이 아니다. 오늘 문제는 그분이 당신 안에 계시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이사를 가야 하는 데 있다. 함께 사는 당신이 너무 더럽고 어떤 죄든지 다 갖고 있기 때문에 당신이 나가면 문제가 없다. 첫째 조건은 당신이 나가는 것이다. 첫째 조건은 당신이 이사 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고 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수 차례 이사하고 싶어도 나가지지 않고 수 차례 자신을 못 박으려고 생각했지만 죽지 않았다. 대체 문제가 어디에 있는가? 오늘 저녁 이것을 자세히 보기로 하자.
1. 나는 할 수 없다.
오늘 여기서 형제자매들은 다 십자가의 사실을 보았다. 우리가 알듯이 주님이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우리의 죄를 담당했을 분 아니라 우리 자신도 못 박았다. 로마서 6장의 가르침은 우리가 수 년간 알았던 것이다. 이는 곧 십자가 위에서 주의 죽으심은 내 죄를 담당했을 뿐 아니라 나의 옛사람도 그분과 함께 못 박혀 죽었다는 것이다. 이것이 수년간 우리가 우리가 주의했던 것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사실이지만 왜 나는 항상 죽지 않는가? 주님은 이미 나를 못 박았다. 그런데 나는 여전히 나이다. 나는 여전히 묶임을 받고 약한이 있으며 실패를 하고 무력하다. 성경에서는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다고 말했지만 왜 나는 여전히 무력한가? 그러므로 구원받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쉬지 않고 노력하며 계속 노력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이기기를 바라지만 승리는 그들에게서 너무나 먼 것처럼 느껴진다.
형제자매들이여, 주 예수께서 구원을 이루신 것과 우리가 이 구원을 영접하는 것은 별개의 일임을 알이야 한다. 마치 밥을 하는 것과 먹는 것은 별개의 일임을 알아야 한다. 주 예수님이 당신을 위하여 성취하신 것과 당신이 주님이 성취하는 것을 영접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죽으신을 받아야 하는지를 보여 준다. 로마서 6장은 우리 모든 사람이 다 이미 죽었음을 말해 준다. 할렐루야! 우리 모든 사람은 다 이미 죽었음을 말해 준다. 로마서 7장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마땅히 다 죽어야 하지만 실제로는 여전히 죽지 않고 살아있다는 것을 보여 준다. 로마서 6장은 객관적인 진리요 7장은 주관적인 체험이다. 로마서 6장은 사실이고 로마서 7장은 체험이다. 오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로마서 6장을 잘 안다. 그들은 우리의 옛 사람이 그분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과 우리가 다시는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않고 율법의 얽매임에서 벗어났다는 것을 깨닫는다. 또한 매일 죄에 대하여 죽은 것으로 여길 줄을 알았다. 이런 것들을 깨닫지만 실제가 되지 않는다. 교리는 여전히 교리이고 나는 여전히 나이다. 교리에서는 내가 이미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다고 말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살아 있다고 말한다. 교리는 내가 이미 죄를 벗어났다고 말하지만 나는 죄가 여전히 내몸에 있다고 말했다. 교리는 내가 이미 율법의 얽매임에서 벗어났다고 말하지만 나는 여전히 내가 율법 아래 있다고 말한다. 이것은 대체 무엇 때문이다.
오! 로마서 7장은 한 가지 큰 사실을 알려 준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신 일에 우리가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판결을 우리가 기꺼이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형제자매들이여, 하나님께서 왜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았는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 너는 형편없고 조금도 쓸모가 없다. 너는 변개될 수도 없고 개선되지도 않으며 진보할 수도 없다. 너는 아무 쓸모도 없다. 그러므로 너를 못 박는 것 외에 다른 소망이 없다." 고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내가 서중결형제의 어깨를 치면서 " 서중결은 철저히 부패했다! 고 말한 적이 있다. 만일 그를 책망해서 소망이 있다면 책망할 가치가 있다. 만일 그를 감금해서 소망이 있다면 그를 감금할 것이다. 그러나 벌을 줘도 감금해도 안 된다면 조금도 소망이 없기 때문에 그를 사형시킬 수밖에 없다. 서중결은 철저히 부패하고 그가 조금도 소망이 없기 때문에 그를 십자가에 못 박는 수밖에 없다. 당신과 나는 다 서중결과 같이 철저히 부패하고 쓸모가 없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바로 다름 아닌 우리에 대한 평결문이다! 십자가에 바로 다름 아닌 우리에 대한 평결문이다! 십자가의 평가는 당신이 오직 죽기에 합당하다고 말한다. 당신에 대한 평가는 당신이 오직 죽기에 합당하다는 것이다. 나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는 내가 오직 죽기에 합당하다는 것이다. 만일 십자가가 우리에 대한 평결문이라는 것을 알고 우리가 아무 쓸모 없다는 것을 알며 우리에게 좋은 사상이 조금도 없음을 안다면 " 나는 죽을 수밖에 없다. 오직 죽기에 합당하다." 고 말할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이 죽는 것외에 아무 쓸모가 없다고 말씀하셨는데 당신은 여전히 자신의 선을 이루기를 원하는가?
최근 중국 정부에서 아편을 금하는 한 가지 새 법령을 내렸다. 강력한 금지령을 내린 후에 아편을 피우는 사람은 발견되기만 하면 총살한다는 것이다. 아편을 오랫동안 피웠던 어떤 사람이 있다 하자. 한동안 참았지만 다시 아편을 피우게 되었다. 금지령이 내린 후에 아편을 피우다 공안에게 발견되면 총살될 것이다. 만약 발각되었을 때 그 사람은 어떻게 하겠는가? 그가 무엇을 하리라고 생각하는가? 내일 사형이 집행되기로 예정되어 있는데, 얼마있지 않으면 총살될 것이기 때문에 속히 의사를 불러와서 아편을 끊게 하는 주사를 맞겠는가? 그렇게 하는 것은 너무나 무의미한 일이다. 사형에 처해질 사람은 더 이상 어떤 개선을 하려고 하지 않는다. 자신의 행위를 개선하려고 할 필요가 없다. 다만 죽음을 기다릴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오직 죽기에 합당하고 개선될 수 없고 진보할 수도 없다고 말씀하셨다.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은 오직 죽음 뿐이요 오직 죽기에 합당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구원받기 전에 우리를 고치려 해도 안 고쳐지고 개선하려 해도 개선이 안되며 진보하려 해도 진보할 수 없기 때문에 포기했다가 구원받은 후에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고쳐보고 개선해 보고 진보해 보려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구원받은 후 우리는 선을 행하려고 결심한다. 형제자매들이여,당신은 몇번이나 뜻을 세웠는가? 그 중 얼마를 이루었는가? 우리는 하나님과 여러가지 영적인 약속들을 한다. 당신은 하나님께 그분이 하라시는 것을 하겠다고 말하고 저렇게 하라고 해도 하겠다고 말한다. 당신은 일찍 내일 일찍 일어나겠다고 하나님께 약속드렸다. 서양에서 온 한 자매는 하나님께 서원한 서른 가지 일 중 한 가지도 이루지 못했다고 말했다. 오, 우리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판결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우리는 이미 사형되기로 작정되었다.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의사를 부르고 좋은 옷으로 바꾸어 입으려고 하고 있다.
십자가란 무엇인가? 십자가는 사람에 대해 하나님께서 절망했음을 표명한다! 십자가는 사람에 대해 하나님께서 소망을 버리셨음을 표명한다! 십자가란 무엇인가?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다. " 내가 너희를 고쳐도 고쳐지지 않고 개선하려고 해도 개선되지 않으며 진보하게 하려 해도 진보하지 않는다. 그래서 도리 없이 너희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기묘하게도 우리는 이 사실, 곧 하나님께서 우리가 철저히 부패하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또 한 면에서는 우리가 그렇게 나쁘지 않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늘도 뜻을 세우고 내일도 이런 뜻을 세운다. "하나님, 이것을 할 것을 서원합니다. 저것을 할 것을 서원합니다. 하나님, 오늘 이후로 다시 화를 내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조금도 통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들은 그 때의 결심이 견고하지 못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뜻을 잘 세워야 한다고 말하면서 다시 뜻을 세운다. 지난 번 화를 낸 후 다음에는 화를 내지 않겠다고 결심하지만 결국 화를 낸다. 그러면 세 번째 뜻을 세운다. 바울이 지내 온 세월은 바로 "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롬 7:18)의 세월이다. 계속 원하고 계속 실패하고, 또 계속 원하고 또 계속 실패한다. 이것은 과거 바울이 지낸 생활만이 아니라 오늘날 우리가 자주 체험하는 것이다. 형제자매들이여, 뜻을 세우는 것이 충분하지 않는가? 하나님은 당신이 오직 죽기에 합당하고 아무런 쓸모가 없으며 아무런 소망이 없다고 말씀하셨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무슨 뜻인가? 이는 하나님께서 나에 대하여 이미 절망하고 나도 나 자신에 대해 이미 절망했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 너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았다," 는 것은 하나님께서 절망하셨다는 말이다. 내 편에서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 고 말하는 것은 내가 절망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 쓸모 없고 아무런 소망이 없는 자임을 분명히 보셨다.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란 무엇인가? 이는 곧 내가 자신에 대해 절망하고 내가 선을 행함으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음을 시인하는 것이다. 오, 하나님은 나를 죽게 하지 않을 수 없다. 육체 안에 있는 사람은 아무런 소망이 없고 오직 죽음뿐이고 죽기에만 합당하다.
형제자매들 집에 병든 사람이 있나 모르겠다. 내가 가 본 대 여섯 집에서는 혹은 남편이 혹은 아내가 병을 앓았고 혹은 자녀들이 병을 앓았다. 그들은 환자에게 더 이상 소망이 없다고 느낄 때마다 내게 " 니 선생님, 만약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빨리 데려 가시는게 좋겠습니다."라고 말했다. 왜 이렇게 말하는가? 그것은 더 이상 소망이 없기 때문이다. 오, 모든 희망이 사라졌기 때문에 오히려 일찍 죽기를 바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더 이상 소망이 없기 때문에 못 박아 죽일 수 없다고 말씀하신다. 당신 또한 자신이 쓸모없기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히는 길밖에는 없다고 말한다면 잘한 것이다.
오늘날 우리의 문제는 우리가 한 면으로 로마서 6장에 아주 익숙하면서 또 한 면으로 로마서 7장에 있는 사람처럼 결심하는 것이다.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께 서원하고 자기가 아직도 약간의 용도가 있다고 생각한다. 로마서 6장을 분명하게 말할지라도 당신의 행동은 로마서 7장이다. 로마서 6장은 하나님께서 바울이 쓸모없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로마서 7장은 바울도 자신은 쓸모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형제자매들이여, 하나님은 우리를 철저히 아시고 우리에 대해 이미 절망하셨고 우리를 조금도 가치 없는 자로 보신다. 이제 당신이 어떻게 말하는 가를 볼 때이다. 만일 당신도 자신에 대해 절망했고 당신이 쓸모없다고 말한다면 즉시 구원받게 된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계속 화를 내도록 허락하고 교만하도록 허락하고 성실하지 않도록 허락하며 죄가 당신을 넘어뜨리도록 허락한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당신이 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우리는 어떠한가? 우리는 지난 번에 뜻을 세운 것이 약했기 때문에 이번에 뜻을 강하게 세우면 가능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결국은 통하지 않는다. 이것이 로마서 7장의 체험이다. 로마서 6장은 단지 교리일 뿐이다. 로마서 7장은 로마서 6장이 사실임을 알도록 인도한다.
만일 나더러 철저희 부패했다고 말한다면, 나는 할렐루야! 아멘이라고 말할 것이다. 나 워치만 니는 철저히 부패했다. 할렐루야! 바울은 조금도 방법이 없었다. 그는 수년간 고통을 당했다. 그는 오직 죽기에 합당하다, 오늘 여기서 만일 당신이 쓸모 없다고 말한다면 당신은 즉시 구원받게 된다. 선을 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영원히 구원받지 못한다. 선하게 되려고 뜻을 세우는 그리스도인은 영원히 이기지 못한다. 형제자매들이여, 하나님의 십자가는 당신에 대해 조금도 잘못 말하지 않았다. 매일 나는 한 가지 일을 좋아한다. 그것은 곧 어제도 쓸모 없었고, 오늘도, 내일도 쓸모없는 것이다. 나는 영원히 쓸모없는 사람이다.
하나님은 왜 우리가 십자가의 평가를 받기를 원하시는가? 이는 우리가 십자가의 평가를 받아야 주님을 우리의 거룩함으로 취할 수 있고, 주님을 우리의 온전함으로 취할 수 있으며, 우리의 이김으로 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약간의 소망이라도 있고 한 치의 소망이라도 있다면 하나님은 당신을 조금도 소망이 없는 단계에까지 인도할 것이며 한 치의 소망이 없는 단계에까지 인도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우리로 십자가를 받게 하기 위해서이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이 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시고 또한 이러한 사실을 우리가 시인하기를 원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을 할 수 없다는 것을 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이기지 못했다. 무엇 때문인가? 하나님은 우리가 또 하나의 조건을 이행하기 원하시기 때문이다.
2. 하려고 노력하지 않음
어제 내가 한 자매를 만났는데 그녀는 십여 년 간의 그녀의 실패한 역사를 두 시간에 걸쳐 내게 말해 주었다. 그녀가 말할수록 나는 계속 웃었다.나는 그녀에게 이제 만족하고 즐거운가? 당신이 아직도 소망이 있는가? 당신의 실패가 충분하냐고 물었다. 그녀는 자기가 할 수 없음을 시인했지만 그녀에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었다. 하나님은 첫째 우리를 인도하여 우리 자신이 할 수 없음을 시인하게 하고 자신에 대해 절망하게 한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이기지 못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수 없다고 시인하는 것과 하려고 노력하지 않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그래서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할 수 없음을 시인하는 것은 좋고 옳은 것이지만, 당신은 여전히 '하려고 노력한다' 는 것을 보지 못했습니까? 당신 자신이 할 수 없음을 알았다면 마땅히 자신의 일을 멈춰야 합니다. 입으로는 할 수 없다고 말하지만 여전히 스스로 노력하고 있음을 보지 못했단 말입니까? 그녀는 계속 할 수 없다고 말했지만 자기가 여전히 무언가를 하고 있고 자기가 "할 수 있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보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거듭하여 여러 번 그녀에게 "당신은 당신이 무언가 하고 있다는 것을 아직도 보지 못했습니까? 당신이 이기기를 노력하고 있다는 것을 아직도 보지 못했습니까?" 라고 말했다. 그녀가 계속 발버둥치고 계획하기 때문에 아직도 이길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또 그녀에게 말했다. " 당신은 다만 십자가를 받아들이고 당신이 할 수 없음을 시인하고 또한 하려고 애쓰지 말고 할 수 있기를 바라지도 마십시오."그녀는 그럼 자신은 무엇을 하느냐고 물었다. 나는 만일 무엇을 원한다면 반드시 실패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자 그녀는 " 무엇을 해도 다 실패하는데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더욱 실패하지 않겠느냐? 고 말했다. 많은 사람의 어려움이 바로 여기에 있다. 분명히 자신은 아무 쓸모가 없는 줄을 알면서도, 자기에게 조금도 힘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발버둥치며 노력한다. 결과적으로 여전히 승리는 없고, 여전히 이길 수 없는 것이다.
우리가 항복하는 것과 관련하여 이기는 생명을 체험하는 데에는 아주 중요한 두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는 하나님의 우리는 자신 안에서 할 수 없다는 것임을 시인하는 것이고, 둘째는 해 보려는 생각조차 갖지 말고 완전히 자신에게 소망을 두지 않는 것이다. 어떤 형제는 자신은 대체 믿어지지가 않는다고 말했다. 내가 그에게 믿을려고 노력하지 말라고 말하자 그는 이것이 무슨 이론이냐고 말했다. 나는 그에게 "당신은 다만 하나님께 나는 믿을 수 없습니다." 라고 말하면 된다고 했다. 하나님은 다만 당신이 믿을 수 없다고 시인하기를 원하신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이는 곧 오늘 이후로나는 이김이나 실패를 상관치 않고 나의 일들을 다 그리스도의 손에 맡긴다는 것이다.
가령 한 자매가 당신에게 차 한 잔을 가져다 준다 하자. 당신의 손은 찻잔의 한 쪽을 잡고 있고 그녀의 손도 놓지 않고 있다. 당신은 마시려 했지만 그녀는 당신에게 마시라고 하면서도 손을 놓지 않는다. 그녀가 손을 놓지 않으면 당신은 마실 길이 없다.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인가? 첫째는 나의 손을 놓는다는 뜻이고, 둘째는 내가 상관하지 않는 다는 뜻이다. 당신이 하나님께 "하나님, 오늘 이후로 내 자신을 당신께 맡깁니다. 오늘 이후로 이기는 것은 당신의 일이고 인내도 당신의 일입니다." 라고 말해야 한다. 어떤 형제는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나는 그에게 승리하는 것은 사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자신의 일을 그만두고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의미이다. 이것은 승리하는 것이 더 이상 자신의 일이 아니라는 뜻이다. 한번은 어느 자매를 만났는데 그녀에게 다음과 같이 하나님께 말하라고 했다. "오늘 이후로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고 오늘 이후로 아무것도 상관치 않겠습니다." 나는 화를 내지 않을 수 없고 억누를 수도 없고 항복할 수도 없다. 오늘 이후로 나는 상관하지 않겠다고 말하고, 하나님 앞에 나가서 우리는 할 수 없고 방법이 없다고 말하지만, 돌아올 때는 자신과 함께 돌아온다. 형제자매들이여,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갈 때 하나님께 가져간 것은 반드시 그분께 두고 나와야 한다. 그러한 것들을 어떻게 하나님께 남겨놓고 나오는 지를 아는 사람이 해방됨을 체험하게 된다. 한번은 한 자매에게 원고를 가지고가서 깨끗하게 다시 써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나는 떠나올 때 다시 원고를 집으로 가져왔다. 그녀가 다시 쓰기를 원하지만 어떻게 쓸 방법이 있겠는가? 이것이 오늘날 우리의 기도하는 방법이다. 입으로는 "하나님 저를 도우소서." 라고 말하지만 마치고는 다시 가져와 버린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손을 놓는 것이다. 하나님께 이렇게 말씀드려야 한다. "하나님, 나는 이길 수 없습니다. 나 또한 이기려고 생각하지 않고 이기려고 시도하지도 않겠습니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이다. 얼마나 좋은가!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아침에 일어났는데 사탄이 당신은 이러저러해서 아주 나쁘다고 말하면 당신은 근심할 것이다. 내가 당신께 묻겠다. 당신은 또 무엇을 하려고 계획하는가? 다만 이렇게 말하라. " 내가 철저히 부패한 것은 이미 네가 아는 바이다. 나는 이미 절망했다. 나는 진보하려고 계획하지 않는다." 이럴 때 당신은 즉시 좋아 질 것이다. 이것은 매우 기묘하다! 왜냐하면 문제는 개선하는 데 있지 않고 바꾸는 데 있기 때문이다. 당신은 하나님 께서 성취하신 사실을 붙잡아야 한다. 만일 당신에게 약간의 용도라도 있었다면 하나님은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지 않았을 것이다. 당신이 철저히 부패했기 때문에 하나님은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고 그리스도를 당신 안에 두셨다. 그러므로 당신은 손을 놓아야 한다. 실제적인 면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다만 말하라. "하나님! 나라는 사람은 선하게 될 수 없고 선하게 되려고 하지도 않겠습니다. 주여, 오늘 이후로 나는 끝났습니다. 오늘 이후로 나는 절대로 할 수 없습니다. 오늘 이후로 또한 하려고 하지도 않겠습니다."
형제자매들이여, 담대히 당신의 손을 놓겠는가? 나는 담배를 피우던 의사 이야기를 했었다. 그는 거의 70 여세가 되었는데도 담배 피우는 것과 싸웠다. 어느 날 집회에서 그는 담배와 싸우겠다고 말했다. 하나님을 아는 한 청년은 만일 자기라면 싸우지 않겠다고 그에게 말했다. 그는 담배와 싸워도 끊을 수 없는데 싸우지 않으면 더 어렵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그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 않습니다. 만일 나라면 하나님께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여, 당신이 내 대신 끊어주십시오.' 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정말 하나님께 이렇게 말했다. " 하나님이여, 나는 담배를 끊을 수 없습니다. 이제 나도 힘을 들여 끊지 않겠습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당신께 맡깁니다. 나는 상관치 않겠사오니 당신이 나를 대신해 끊어주소서." 전에 그는 하루에 열두 가치 내지 스무가치를 오십 년 동안 피워 왔었다. 하나님께 항복한 후 이튿날 그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기억에 의하면 아침에 일어난 다음 담배 생각을 하지 않은 것은 처음이었다고 말했다.
형제자매들이여, 만일 당신이 거룩해질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 만일 당신이 온전케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 만일 당신이 스스로 인내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당신은 반드시 실패하게 된다. 오, 하나님은 우리를 고칠 수 없고 개량할 수 없는 사람으로 보신다. 오늘 저녁 당신은 바울과 같이 당신이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할 수 있는가? 바울의 뜻은 그가 철저히 부패하고 조금도 쓸모가 없으며 오직 십자가에 못 박기에 합당하다는 것이다. 북평에서 나는 어떤 형제에게 "당신은 끝났는가?" 라고 물었다. 그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며 "나는 끝났다!" 고 말했다. 이것이 하나의 조건이다. 당신은 반드시 당신이 하나님 앞에서 아무런 쓸모가 없고 조금도 고칠수 없으며 조금도 개선할 수 없다는 것을 보아야 한다. 우리 모두가 주님께 이렇게 말해야 한다. " 주여, 오늘 이후로 모든 것을 다 당신께 맡깁니다. 당신이 모든 것을 내 대신 행하소서." 왜 어떤 형제자매들은 이미 자신의 할 수 없음과 끝났음과 자신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을 시인했지만 아직도 이기지 못하는가? 왜 오늘날까지 여전히 실패하는가? 왜 아직도 이김을 보지 못했는가? 형제자매들이 잊어서는 안 될 또 한 구절이 아래에 있다.
믿음 - "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못 박혔고 나는 끝났다. 하나님께서 내가 철저히 부패했다고 말씀하실 뿐 아니라 나도 내가 철저히 부패했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내가 아무 쓸모없다고 말씀하실 뿐 아니라 나 자신도 조금도 쓸모 없다고 말한다. 하나님께서 내가 오직 죽기에 합당하다고 말씀하실 뿐 아니라 나도 내가 다만 죽기에 합당하다고 말한다. "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것이 사실이다. 오늘 다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다. 오늘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 하나의 사실이다. 왜 이제 사는 것은 내가 아닌가? 2 빼기 1은 1이다. 내 속에서 아담을 빼 내면 그리스도밖에 남지 않는 법이다. 두 사람이 함께 살다가 한 사람이 이사가 버리면 다만 그리스도만 남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어떻게 이 사실이 나타날 수 있는가? 유일한 길은 바로 믿는 것이다.
1. 하나님의 사실을 믿음
하나님의 복음은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이미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보여 준다. 하나님의 아들은 우리의 의가 되고 우리의 구속함이 되실 뿐 아니라 더욱이 우리의 거룩함이 되셨다. 우리는 먼저 그분을 생명으로 영접한 후, 나중에 그분의 온전함과 인내와 온유를 받는 것이 아니다. 그분은 이미 우리의 생명이시다. 성경은 그리스도가 이미 우리의 머리이심을 보여 준다. 머리가 몸을 위하여 느끼고 책임지며 지배하듯이 그리스도께서 그렇게 하신다. 우리는 그분이 우리의 머리가 되고 우리가 그분의 몸이 되도록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오늘날 그분은 이미 머리이시고 우리는 이미 지체들이다. 여기서 요구되는 것은 믿음이다. 소극적인 면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머리가 되시어 현재 우리를 위하여 느끼고 우리 전체를 책임 맡고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모든 일을 지배하고 계심을 우리가 믿을 수 있는가이다. 우리는 그분이 성경에 따라 참으로 우리의 머리가 되시고 참으로 모든 책임을 지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는가? 당신은 당신이 모든 일을 책임질 필요가 없고 이제부터는 그분이 당신을 위하여 책임을 질 것이며 지금 이미 책임을 지기 시작했음을 믿을 수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또한 그분이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임을 보여 준다.
그분이 장래에 우리의 포도나무가 되고 우리가 장래에 그분의 가지가 된다고 말한 것이 아니다. 머지 않은 장래에 우리의 영적 상태가 오늘 보다 조금 진보한 후 우리가 그분의 가지들이 되고 그분이 우리의 줄기가 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그분이 열매를 맺듯이 열매를 맺어야 하고 그분에게 미덕이 충만하듯이 미덕으로 충만해야 한다. 진액과 생명과 열매 맺는 힘을 우리에게 분배하는 분은 주님이시다. 지금 그분은 이미 포도나무이시고 우리는 이미 그분의 지체들이며 지금 그분은 우리 안에 생명과 거룩함과 온전하심과 그분의 모든 것을 우리에게 공급하고 계신다.
형제들이여, 당신은 믿을 수 있는가? 당신은 그분이 이미 우리의 포도나무이시고 우리는 이제 그의 가지인 것을 믿을 수 있는가? 당신은 그분을 구주로 영접할 때 이미 완전히 그분과 연합되었음 (물론 과거에는 이물질이 있었으나 지금은 이물질이 사라졌음)을 믿을 수 있는가? 당신은 당신 자신을 그분과 연합하기 위해 노력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은 이미 당신을 그분과 한 나무가 되게 하셨다. 당신은 나무가 가지를 공급하듯이 주님께서 여러분을 공급하실 것을 믿는가? 당신은 그분을 위하여 열매 맺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당신을 통해 열매 맺는 것이다.하나님은 또한 주 예수와 우리와의 연합이 마치 음식과 우리 몸과의 관계와 같음을 보여 주셨다. 그분은 우리가 마시는 피요 우리가 먹는 살이다. 그분은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는 분이시다. 음식이 우리의 모든 필요를 공급하고 이런 공급이 끊어질 때 우리가 죽게 되듯이 주 예수님도 우리에 대해 이러하시다. 하나님은 그분의 말씀 안에서 우리가 주 예수와 연합했음을 보여 주신다.
그분은 우리의 머리와 나무와 음식이 되셨다. 우리는 주 예수처럼 살 수 있도록 하나님께 능력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고 이 아들이 우리를 대신하여 책임을 지고, 우리를 대신하여 살며, 우리의 생명 능력이 되신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부터 그분의 모든 온전함과 교통과 희락과 풍성을 살아 나타내도록 그분을 우리에게 주셨다. 과거 깨닫지 못할 때 우리는 계속 자신의 거룩함을 세우려 하다가 하나님의 거룩을 순종치 않게 되었다. 지금 우리가 소극적인 면에서는 자기의 행위를 멈추었지만 이것만으로는 여전히 부족하다. 하나님께서 그분의 말씀을 통해 그분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말씀하셨다면 우리는 반드시 그분이 우리의 생명되신 것을 믿어야 한다. 그분은 그분의 모든 것을 능히 우리 몸에서 표현하실 수 있다. 우리에게 무엇이 필요할 때 그분은 그것을 우리에게 나누어주신다. 우리는 그분이 이미 이렇게 이루었음을 믿어야 한다. 승리하는 비결은 그러한 승리가 점차적으로 오는 것이 아님을 깨닫는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승리가 되셨음을 안다. 이김은 곧 그리스도이고 믿음은 그리스도의 모든 것을 우리 몸에 실체화 시킨다. 하나님의 은혜는 이미 주 예수를 우리에게 주셨다. 오늘 우리는 그리스도의 생명과 능력과 자유함과 거룩함이 우리 몸에 나타나도록 믿음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을 영접해야 한다. 이 비밀스런 연합은 하나님께서 하신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측량할 수 없는 모든 풍성을 우리의 것이 되게 하신다.이것을 믿는가? 그리스도의 모든 것은 다 우리의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믿는가?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거룩함과 온전함과 생명과 능력과 풍성을 다 우리에게 주셨다. 우리는 이것을 믿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과 연합되게 하셨고 그분이 우리의 머리와 줄기와 양식이 되게 하셨다. 지금 그분은 우리의 의와 거룩함과 구속함이시며 지금 우리 안에서 그분의 생명을 살아 나타내시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이것을 믿는가? 지금 하나님은 주 예수님이 하나님과 하나이신 것처럼 우리가 주 예수와 하나되었기 때문에 그분의 인내와 온유함과 청결함과 선량함이 모두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은 믿으라고 우리를 부르고 계시며 또한 명령하고 계신다.
과거 우리가 그분을 우리 의로 믿었듯이 지금 또한 우리는 그분을 우리의 거룩함으로 믿는다. 형제들은 많은 사람의 실패가 바로 여기에 있음을 아는가? 그들은 하나님의 이기는 방법을 알았지만 믿음이 없었다. 그들은 자신의 무능함을 알았지만 그리스도의 유능하심을 몰랐다. 그들은 자기 육체가 완전히 부패한 것을 알았지만 그리스도의 풍성이 이미 다 우리에게 주신 하나님의 선물임을 보지 못했다. 우리는 어떻게 선물을 받는가? 아무것도 하지 않고 다만 영접하면 된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면 하나님의 은혜를 영접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복음이다. 우리가 믿음으로 영접할 때 우리의 믿음이 하나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기점이 되게 한다.
하나님의 크신 능력을 체험해 본적이 없다면 이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체험있는 사람은 이것이 얼마나 참된지를 안다. 우리가 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이 다 우리의 것이라는 사실을 믿을 때, 성령께서 주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우리의 것이 되게 하실 것이다. 이 어떠한 복음인가?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것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다 우리의 것이 된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온전한 생명은 매일 우리의 죽을 몸에서 살아 나타날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일 뿐 아니라 "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는 것" 이다. 의심할 여지없이 분명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서 우리를 대신하여 살고 계신다! 그러나 이것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2. 이미 받았다는 것을 믿음
형제자매들이여, 하나님은 여러분이 믿을 수 없는 것을 믿으라고 하실 수 없다. 어떤 형제자매들은 손을 놓으라고 하면 놓을 수 있고 떨치라면 떨칠 수 있지만, 믿지는 못한다. 그는 한 면으로 믿는다고 말하면서 또 한 면으로는 이틀만 더 두고 보자고 말한다. 물론 손을 놓는 것이 중요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주 예수께서 우리 안에서 그분의 승리를 살아 나타내실 수 있게 해드리는 것이다. 일단 손을 놓은 후에 우리는 믿어야 한다. 하나님은 주께서 십자가에서 대신해 죽은 것을 믿으면 영생을 주실 것이고, 주님께서 우리 안에 살아 계신 것을 믿으면 우리에게 이기는 생명을 주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나는 많은 사람의 실패가 바로 주께서 그의 안에 살아 계심을 믿지 못하고 주께서 대신 이긴다는 것을 믿지 못하는 데 있음을 안다.
어떤 자매에게 손을 놓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녀는 손을 놓았다고 말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손을 놓는 것이냐고 물으니까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 나는 조금도 방법이 없습니다. 나는 아무것도 상관치 않겠습니다. 지금부터 이겨도 좋고 실패해도 좋습니다. 하나님이여, 이 모든 것을 당신께 맡깁니다." 그러나 그녀에게 이겼냐고 물어볼 때 그녀는 감히 그렇게 말하지 못했다. 왜 감히 이겼다고 말하지 못하는가? 그녀는 아직 자신이 이겼다고 느끼지 못하고 효능을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나는 그녀에게 이렇게 말했다. "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사실을 믿고 주 예수가 바로 이김이요 그분이 당신 안에 사는 것을 믿는다면 마땅히 즉시 당신이 이미 이겼음을 믿어야 한다. 만일 당신이 효능을 보려 한다면 영원히 승리를 체험하지 못한다."
형제자매들이여, 이김의 은혜를 얻는 것은 죄 사함의 은혜를 얻는 것과 똑같다. 당신이 한 죄인에게, " 만일 당신이 예수께서 당신을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을 믿으면 믿는 즉시로 당신의 죄는 사함 받습니다," 라고 말했다 하자. 만일 그가 믿었다면 그의 죄는 사함을 받게 된다. 당신이 그에게 믿었느냐고 물으면 믿었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죄가 사함을 받았느냐고 묻는다면 그는 사함을 받지 않았다고 말할 것이다. 왜 그런가? 만일 그가, 사람들이 죄 사함을 받으면 희락과 평강이 있다고 하는데 그에게는 아직 희락과 평강이 없기 때문에 계속 기도하다가 희락과 평강이 있은 후에야 그의 죄가 사함 받게 될 거라고 말한다 하자. 당신은 이 말을 듣고 이렇게 말할 것이다. " 당신이 무릎을 꿇고 일 년을 기다려도 희락과 평강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언제 당신이 희락과 평강을 가질 수 있습니까? 언제든지 당신이 믿을 때 희락과 만족을 갖게 됩니다."
이와 같이 당신이 하나님의 이기는 조건을 이행하여 당신이 손을 놓고 잡은 것을 풀며 자신에 대해 절망한 다음, 당신이 이미 이기는 생명을 얻었고 하나님의 아들이 지금 당신 안에 그의 이김을 살아 나타내고 있음을 즉시로 믿어야 한다. 당신이 이렇게 믿을 때 효과가 오게 된다. 만일 당신이 무릎 꿇고 효과를 기다린다면 내가 말하지만 당신은 결코 효과를 얻지 못한다. 형제자매들이여, 만일 당신이 효과를 얻은 후에야 당신에게 이기는 생명이 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면 당신이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당신의 체험이다.
형제자매들이여, 일단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체험이 오고 느낌이 오며 이김도 오게 된다. 바울은 내가 이긴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하지 않고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고 말했다. 당신이 매우 냉랭하고 웃을 수 없다고 느껴도 당신은 하나님께 감사하고 찬양하면서 " 이제 내가 사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고 말할 수 있다. 여러분은 내가 정신이 말짱하게 보이겠지만 나는 하루도 피곤하다고 느끼지 않는 날이 없다. 자신의 느낌에 따르다면, 즐겁다고 생각되는 날은 하루도 없었고 아침에 일어날 때 차갑지 않는 날이 하루도 없었다. 사탄은 "네게 희락의 느낌이 날마다 너는 차가운데 이것이 네 안에 주 예수가 사는 것이냐? 며칠 전에 네가 그렇게 차갑고 느낌이 없었는데 지금도 여전히 똑같고 차갑고 느낌이 없지 않으냐? 이것이 그리스도의 승리냐? 고 여러 번 말해 왔다. 그 때마다 하나님은 즉시 내게 이런 답을 주셨다. " 내가 느끼는 것은 내가 사는 것이요 내가 믿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것은 육신이 느끼는 것이요 내가 믿는 것은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내가 느끼는 것은 육신이 느끼는 것이고 내가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당신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을 때 주님은 당신 안에서 당신을 대신해 이김을 살아 나타내실 것이다. 하나님은 마땅히 이행해야 할 조건을 이행할 때 그리스도가 당신을 대신하여 이김을 살아 나타내실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 하나님! 당신께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나의 느낌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거짓은 바로 나의 느낌입니다. 느낌은 사탄과 가까운 친구일 뿐입니다. 하나님, 나는 내 느낌을 믿지 않고 당신의 말씀을 믿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참되고 모든 느낌은 거짓된 것이다. 그러므로 형제자매들이여, 당신이 어떤 시험을 만나든 어떤 느낌을 갖게 되든, "나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음으로 산다. 나는 어떤 책임도 지지 않는다. 다만 손을 내려 놓는다." 고 말하라.
당신이 손을 내려 놓고 믿을 때 당신은 하나님의 아들이 당신을 대신해 싸우고 이기신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당신의 성질을 제해 버리시고 당신의 강퍅함과 교만을 제하시며 당신의 질투를 제해 버리신다. 할렐루야, 온 세상에서 유일한 승리자가 한 분 계신다. 할렐루야, 온 세상 사람들은 다 약한 사람들이다! 할렐루야, 우리는 다 실패한 사람들이다! 다 아무 쓸모없는 사람들이다! 할렐루야, 오직 주님만이 이기는 분이시다! 할렐루야, 옛부터 지금까지 승리하신 분은 오직 한 분이시다. 할렐루야, 그러므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자랑하지 않을 수 없다.
오, 형제자매들이여, 우리가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인가? 우리가 자랑할 것이 무엇인가? 당신 손으로 강도와 창녀를 지적하지 말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라면 우리도 그들과 똑같을 것이다. 할렐루야, 우리는 개선되는 것이 아니라 바뀌는 것이다!
형제자매들이여, 우리가 할일은 이러한 조건들을 지키면 되는 것이다. 한 면으로는 우리는 할 수 없고 또 하려고 노력하지도 않으며 또 한 면으로는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이다. 할렐루야, 주님이 모든 것을 이미 이루어 놓으셨다! 우리는 우리가 한 일이 없고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아들이 이루신 것임을 보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구해야 한다 .
이것이 승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