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천안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개최된 고재수 교수 기념 신학강좌에 다녀왔다.
전국에서 600명이 넘는 많은 사람이 왔다. 대부분은 그에게서 배우고 은혜받은 제자들일 것이다.
오전 11시에 시작되었는데 첫 순서로 고재수 교수 부인이 나와서 자기 남편의 생애에 대해 말하였다. 고재수 부인은 씩씩하게 자기 남편의 생애에 대해 잘 발표하였다.
고재수(N. H. Gootjes) 교수는 1948년에 네덜란드 북부에 있는 레우바르던(Leeuwaarden)에서 태어났다. 그는 캄펀에서 신학을 공부한 후 1976년에 레이던(Leiden)의 한 교회에 청빙을 받아 목회 사역을 시작하였다. 행복하게 목회하고 있는데 1979년에 갑자기 전화를 받았다. "축하합니다. 당신은 한국에 가서 가르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가족과 함께, 그리고 바토(Batteau) 목사 가족과 함께 교수 선교사(missionary professor)로 1980년 2월 14일에 한국에 왔다. 근 10년간의 사역을 마치고 그와 그의 가족은 1989년 9월에 캐나다 해밀튼으로 떠나갔다(거기서 가르치다가 2008년에 알츠하이머 병으로 인해 더 이상 가르칠 수 없게 되었으며, 2023년 8월 20일에 하나님의 품으로 갔다).
많은 사람이 그의 가르침과 그의 삶에서 큰 감화를 받고 영향을 받았다. 그래서 그의 가르침과 삶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오늘 이렇게 많이 온 것이다.
필자는 1980년 3월에 고려신학교(신대원) 2학년 때 헬라어 수업 시간에 그를 처음 보았다. 나는 일반대학을 나왔기 때문에 아침 일찍 1교시(8시 30분 시작)에 헬라어 강독 수업을 들었다. 그런데 키가 크고 잘생긴 서양 사람이 밝은 표정으로 헬라어를 강의하였다. 또박 또박 영어로 강의하는데 간단하고 쉬운 영어로 설명하였다. 그때 그는 요한복음의 한 부분을 한 절 ,한 절, 한 단어, 한 단어 설명해 주었다. 그는 그때 체르윅(M. Zerwick)이란 문법학자를 소개해 주었다. 그 후로 나는 체르윅의 Biblical Greek을 구해서 수시로 참고하면서 헬라어에 대한 이해력을 높일 수 있었다.
1981년 3월, 3학년이 되자 박성복 교수님이 고재수 교수와 함께 월요일 오후에 화란어 강독이라는 세미나를 열어 주셨다. 정식 과목이 아니라 스터디 모임이었던 것 같다. 6-7명 정도 참석했는데 교재로 판 브루헌 교수(Prof. Van Bruggen)의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아티클을 사용하였다. 나는 이 글을 같이 읽으면서 판 브루헌 교수의 글에 매료되었다. 그의 정확하고 날카로운 분석과 평가에 탄복하였다. 그래서 1, 2년쯤 지났을까 어느 날 나는 고재수 교수에게 판 브루헌 교수라면, 이런 분 밑에서 공부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고재수 교수는 웃으면서 내가 이미 말해 놓았다고 하셨다. 매년 여름에 네덜란드로 가면서 갈 때마다 판 브루헌 교수를 만나서 내 이야기를 한 모양이다. 몇 년 더 있다가 때가 되어 판 브루헌 교수에게 편지를 쓰니 빨리 오라고 하셨다. 그래서 1985년 2월 12일에 출국하여 그 이튿날 암스테르담 스킵홀 공항에 도착하였다.
그 지도교수님이 이제 88세를 지나셨다. 오늘 따라 지도교수님이 생각나서 오늘 찍은 사진 몇 장과 함께 지도교수님께 메일을 써서 소식을 전하였다. 고재수 교수님은 작년에 캐나다에서 하늘나라로 떠났지만, 그래도 이 한국 땅에서 그의 삶과 가르침을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게 흐뭇하다.
2024. 10. 29(화).
변 종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