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 3시, 병실 옆 침대에 누워 있던 어머니의 숨소리가 이상해 잠에서 깨어났다. 숨 쉬는 소리도 불규칙하지만 호흡이 어려운지 연신 입을 크게 벌리고 숨을 내 쉬는 소리가 복도까지 들릴 정도다. 간호사를 깨워 원인을 물어보지만 알 수가 없다고 하니 내일 원장님께 여쭤봐야겠다. 잠이 오질 않는다. 어머니는 도림동 옥탑 방에서 늘 혼자 주무시기에 어떻게 자고 있는지 확인할 수 없었으나 이제라도 알 게 되어 다행스러운 일이다.
곰곰이 어머님의 지난날을 회상해본다. 그동안 바쁘다는 이유로 어머님에 대해 깊이 생각해본 적이 별로 없었으나 병원에서 나를 간병하는 어머님을 보고 비로 소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의 긴 한숨 소리도 지난날 험난한 인생 고개를 넘나드는 한숨이리라 생 각하니 어머님과 우리 가족이 걸어온 길이 기구하기만 하다. 지금 이렇게 마음 편 히 글로 옮길 수 있는 것은 우리 가족들이 모두 안정 기로에 서서 옛 시절을 회상 해도 좋을 만큼 여유가 생겼기 때문이리라.
어머님은 인정 많은 충청북도 보은군 마로면 관기리 담배창고 건넛집에서 가난 하지만 6남매 중 맏딸로 다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처녀 시절엔 부엌에 한번 들 어가지 않고 물에 손 한번 담가본 적 없이 자라났다. 6・25 당시 1천5백 리 길 태백 산맥을 넘어 피란길에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곤 전 씨 집으로 출가와 고된 시집살이를 했다. 40대 후반에 남편을 잃고 4남매를 홀로 키우며 54년, 인고의 세월을 보냈다.
충청북도 보은군 마로면 갈전리는 시골 동네라지만 부잣집 맏며느리로 시집와 행복도 잠깐, 오랫동안 남편 병수발로 세월을 보내고 가계마저 정리한 이후엔 그야말로 밑바닥 인생길을 걸으며 안 해본 일 없었다.
어린 시절 기억은 잠깐 스쳐지나갈 뿐 연결되지 않고 좋은 추억, 가슴 시린 기억 들만 남아 있다. 우리 집안의 내력을 아는 분은 이제 어머님밖에 안 계시는 셈이다. 그나마 어머님의 기억이 비교적 초롱초롱하기에 지나온 과거를 기록할 수 있음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
2006년 정초,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나를 간병하는 어머님과 두 달여 동안 병실에서 함께 시간을 보내게 되었고, 밤마다 옆 침상에 누워 어머님의 지난날들 을 구술해 정리하게 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닐 것이다.
나는 병실에 있는 동안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고, 치료 중이지만 이 시간을 헛되이 보내고 싶지 않았다. 평소 마음이 정리되지 않아 읽지 못하던 서적들을 많이 보게 되었고 무엇보다 장모님께서 할머니 첫 기일 미사를 마치고 오면 서 건네주신 『하느님의 어린 양』 요한묵시록 해설서가 성서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지금도 성서만 보면 희망이 솟고 무엇이든 자신감이 솟아오른다.
허리가 좋지 않아 오랫동안 앉아 있을 수는 없었지만 나는 밤새도록 책 속에 빠 져 있기도 하고 전문서적들과 씨름했다. 그러자 노후 생활에 대한 불안감도 가시 고 인생에 대한 자신감도 생겼다.
병실에서도 어머님이 옆 환자와 간병인들을 각별히 대했다. 외할머니를 닮으셨 는지 훈훈한 인정, 가식 없고 늘 배려하는 마음, 티 없이 맑은 마음, 누구도 어머님 의 오랜 인생 경륜과 사랑이 묻어났다. 그러나 이제는 쉬게 해야겠다. 그리고 우리 형제들이 어머님이 편하게 숨을 쉴 수 있도록 해드려야 할 때가 온 것 같다. 너무 늦기는 했지만.
어슴푸레 문틈 사이로 비치는 어머님의 하얀 운동화 두 짝을 바라보며 아버님 이 준 마지막 유언을 떠올려본다.
“대식아, 어머님 모시고 행복하게 잘 살아라.” (2006년 2월 10일 연세정형외과 병실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