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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내용
1. 뜻있는 교사들의 슈퍼스타, 임길택 선생님이 있었다.
1952년生 임길택 선생님은 이오덕 선생님과 함께 활동하던 시인이다.
1976년 강원도 정선군의 작은 분교에서 교직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후 14년간 탄광마을에서 아이들과 함께 한 좋은 교사였다.
그래서 뜻있는 교사들에게는 가슴에 품은 슈퍼스타가 임길택 선생님이라고 한다.
1997년 4월 폐암 선고를 받고, 그 해 12월 돌아가셨다.
교사로 재직하는 동안 아이들의 글과 그림을 모아
《나도 광부가 되겠지》, 《하늘로 간 풍선》, 《물또래》, 《꼴지도 상이 많아야 한다》 등을 엮었고 동시·동화·수필 창작을 계속했다.
본인의 작품집으로는
시집 《탄광마을 아이들》, 《할아버지 요강》, 《똥 누고 가는 새》, 《산골 아이》,
동화집 《우리동네 아이들》, 《느릅골 아이들》, 《탄광마을에 뜨는 달》, 《수경이》, 수필집 《하늘 숨을 쉬는 아이들》, 《나는 우는 것들을 사랑합니다》 등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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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전설이 된 학급문집이 있었다.
사북 사태가 일어났던 1980년 무렵,
동양 최대의 광업소가 있던 정선군 사북면 사북 초등학교에 부임한 임 선생님은
1980년 6학년 7반, 1981년에는 5학년 8반 담임을 맡아
아이들과 함께 8권의 학급문집을 펴낸다.
선생님이 아이들에게 가르친 시 쓰는 법은 단 한 가지였다.
“꾸미지 말고 솔직하게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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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가져온 호차리> 삼학년 때 내보고 호차리를 가져오라고 하였다. 나는 갖다드렸다. 내가 공부시간에 떠들어서 내가 가져온 호차리에 맞았다. 나는 무언지 억울한 것 같았다. <딱지 따먹기> 딱지 따먹기를 할 때 딴 아이가 내 것을 치려고 할 때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딱지가 홀딱 넘어갈 때 나는 내가 넘어가는 것 같다.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 아버지 월급 쓸 것도 없네. <나도 광부가 되겠지> 우리 아버지께서는 광부로서 탄을 캐신다. 나도 공부를 못하니 광부가 되겠지 하는 생각이 가끔 든다. 그러나 아버지께서는 난 이제 광부가 되었으니 열심히 일해야 되겠지만 너는 커서 농부나 거지가 되었으면 되었지 죽어도 광부는 되지 말라고 하신다. |
때로 싱긋 웃음 짓게 하고, 때로는 짠하게 가슴을 때리는 동심.
소설가 조세희는 <침묵의 뿌리>에서
이 학급문집을 ‘이 세상에서 제일 귀중한 책’으로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쓰껌헌 아빠 얼굴이 예쁘다고 했던 하대원의 시는
김민기에 노래극 <아빠 얼굴 예쁘네요>가 되었고,
강원식의 <딱지 따먹기>는 동요로 다시 탄생했다.
3. 그 후 27년, 64명의 꼬마 시인들은 무엇이 되었을까.
27년 만에 배달된 자신의 시집을 받아들고, 그들은 어떤 표정을 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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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임길택 선생님이 담은 동심이 동시집 <아버지 월급 콩알만 하네>로 출판되었다.
선생님이 돌아가신 지 10년만의 일이다.
그 사이 꼬마 시인들은 장성하여 마흔 줄에 들어섰다.
27년 전 탄광촌의 동심들은 과연 지금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정말 광부가 되었을까.
어른이 된 꼬마 시인들과 27년 전 자신이 쓴 시가 만나는 순간,
과연 어떤 울림을 만들어낼까.
제작진은 강원도 정선의 사북에서부터 시작해,
춘천, 속초, 서울, 안산, 대구, 제주에 이르기까지 등 전국 곳곳을 수소문하며
자신이 쓴 시가 시집이 되어 나온 지도 모르고 살고 있는
그때 그 꼬마 시인들을 찾으러 다녔다.
사북 최고의 자장면을 만들고 있는 명환이와 서울에서 간호사가 된 명희,
나라에서 주는 월급을 받게 된 중원이, 학교에서 제일 시 잘 쓰는 아들을 둔 김명희,
그리고 그 옛날 전교에서도 알아주는 말썽꾸러기였던 삼총사들의 현재까지.
이들이 27년 만에 배달된 자신의 시집을 받아든다.
그리고 그때 그 시절처럼 목청껏 자기 시를 읽어본다.
이것은 꼬마 시인들과 선생님, 그리고 전설이 된 27년 전 학급문집이 만나는
그 순간에 대한 기록이다.